〈 51화 〉bad jok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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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비슷한 시간에 벡워스의 경비대장 멜더릭은 풍비박산이 나버린 용병길드 앞에 서있었다.
“길드가…2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길드가아아아…”
출장을 다녀온 사이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길드장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절규하고 있었다.
사방에는 이리저리 찢어져 나간 용병들이 참혹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고 까마귀 마스크를 착용한 의료진들이 시체를 들것으로 분주하게 실어 날랐다.
“하아.”
짧은 한숨을 토해낸 멜더릭은 괜스레 바닥에 피어있는 하얀 민들레 근처의 흙더미를 자신의 강철 부츠로 짓이겨댔다.
“생존자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나?”
“네, 충격파가 워낙 강했던 모양인데다가 누군가가 조그마한 암기를 사용해서 숨이 붙어있는 용병들을 제거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을 일으킨 범인이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손을 쓴 것 같습니다.”
하늘색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스포츠 머리로 다듬은 부관 지젤이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이게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계획적인 범죄라는 말이렸다?”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쿵!
“젠장! 도대체 어떤 녀석이 이렇게 잔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다는 말이냐!”
분노한 그가 지면을 구르자 충격파로 찢어져 나간 꽆잎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말씀드리기외람되오나 세상에 이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존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만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기술이라면 십중팔구 무장이 사용하는 무투기라고 생각됩니다만…”
“무장 나으리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용병 길드를 파괴했다는 거지? 제기랄. 정말로 재난이 따로 없군. 어제는 슬럼가에서 혈마법사들이 대학살을 일으키지를 않나, 겨우 며칠 사이에 시체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지 않느냐? 대관절 벡워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
“…”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고 멀뚱히 쳐다보자 깊은 한숨을 뱉어내었다.
“하아. 자취를감춘 혈마법사를 찾아내는 것도 시급을 다투는 일이지만 용병 길드가 소멸해버렸으니 당분간은 난리도 아니겠군. 조만간 밀려드는 일을 처리하느라 경비대 업무 전체가 마비되어버릴 거야. 대체 이 실태를 휴크 남작님에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한다는 말이냐?”
멜더릭의 말처럼 용병 길드는 오팔 왕국 도시들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작게는 근처 농민들에게 의뢰를 받아서 작물과 가축을 해치는 해수를 퇴치하는 일부터, 군대과 경비대가 처리하기 어려운 몬스터 토벌, 상공업자들의 호위와 학자들의 연구 조력, 채집, 수렵, 등등 시민들의 다양한 대소사를 의뢰금을 받고 해결해주는 민원 창구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주요 수입원이라고 할 수 있는 몬스터와 전쟁이 씨가 말라버리는 바람에 불황에 시달리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대체할 수 없는 필수인력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라져서는 안 됐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야 해. 아니, 최소한 단서만이라도 알아내서 수사를 이어나갈 수 있어야 남작님을 뵐 면목이 생긴다.”
“하지만 범인을 알아낸다고 해도 체포할 수 없는 특권 계급이라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지젤이 범인이귀족일 것을 염려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이름만이라도알아내야 한다. 귀족의 일은 귀족의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까 상부에 보고하면 알아서 처리할 거야.”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목격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장님.”
“뭐? 그게 정말이냐?”
멜더릭이 반색하면서 물었다.
“듣자 하니 이 길드에는 B급 무장을 일대일 대결로 쓰러트린 아토스라는 용병이 등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만한 실력자라면 뭔가 단서를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뭐라고 했지?”
“그러니까…”
“아니. 잘못 들은 게 아니겠지. 일대일 대결로 B급 무장을 쓰러트렸다고? 그런 자가 어째서 용병 길드에 있는 거지?”
“듣자 하니 상당히 요행이었다고 합니다. 퍼큘리어의 도움이 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용병 중에서는 최고 랭크인 오리하르콘이라고 들었습니다.”
“요행이라고? 하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B급 무장은 감히 용병 나부랭이가 요행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그게 사실이라면 십중팔구 자신의 진짜실력을 감추고 있는 걸 테지. 아니, 어쩌면 녀석이이번 사태를 일으킨 범인일지도 모르겠군. 지젤! 지금 당장 경비대에 연락해서 녀석의 거처를 조사하라고 해라. 순찰대원들에게는 용모파기를 전하고 발견하는 즉시 내게 연락하라고 말해라. 극도로 위험한 인물이므로 현장 대처는 불허한다. 취조는 내가 직접 진행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명령을 들은 그녀가 차렷자세로 경례하면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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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 때까지 스위트 룸에서느긋하게 행위를 즐긴 리한은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시종의 알림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에에에에~”
침이 떨어져 내리는 조그마한 혓바닥을 내밀고 두 눈이 풀린 상태로 엎드려 있는 오리나.
파지지지직!
“일어나라.”
“꺄악?!”
전신을 통과하는 짜릿한 충격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옷을 차려입어라. 저녁을 먹으러 내려가야 할 게 아니냐?”
“조, 조금만 쉬게 해주세요. 허리가 너무…괜찮네? 몸도 어딘지 개운하고 상쾌…끄응. 역시 주인님이?”
“빨리 준비하지 않으면 먼저 가겠다.”
“앗?!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주인님. 지금 바로 준비할게요!!”
너무 빠르게 변하는 신체 상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던 오리나가 허둥지둥 메이드 복으로 갈아입었다.
‘생각보다 채음보양을 많이 하지 못했어. 역시 회복시키는 만큼 부담을 떠안는 건가? 이 녀석도 감당하지 못해서 힘에 부치는 모양인데 새로운 여자가 필요해.’
주르르륵-
리한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가랑이사이에서 새하얀 액체가 흘러내려왔다.
“앗?! 으으으으으”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
“소중한 정자를 흘려버리다니 괘씸한 녀석이로군. 조임을 단련해라.”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주인님은 변태, 변태!!”
그렇게 투덜거리며 가슴을 두드렸지만 이내 슬그머니 자신의 머리를 기대어 왔다.
하지만 리한은 그것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1m.”
“네?”
“나에게서 1m이상 떨어져라.”
쿵!
깜짝 놀란 그녀가 쇼크를 받은 표정으로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멀어지시라고 해서…”
“떨어진다고 해도 3m 이내를 벗어나지는 마라. 부를 때까지 언제나 그 거리를 유지하도록. 그것이 측근 메이드로서의 올바른 자세다.”
“에에에에?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에 있어요?”
“내가 없는 말을 지어냈다고?”
“아,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정말로 그렇게 해야 하나요?”
“물론이지. 아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도록 몸에 직접 새겨줄까?”
“하,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힝.”
귀엽게 볼을 부풀리면서 울먹거리는 모습이 사랑스럽기는 했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만 해서 어쩔 수 없었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언제까지나 어린애처럼 행동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오리나는 엄마가 되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어차피 대부분의 육아는 더 원의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엄마로서의 최소한의 품위와 소양을 갖추도록 철저하게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실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포함된 부분이 아주 적은 부분이기는 했지만 두 종족의 유전자가 합쳐지는 최초의 혼혈이태어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알아낸 사실에 의하면 자신과 인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물론, 다양한 종족의 집합체인 더 원이었기에 모두 똑같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인류와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졌던 과거의 자신. 퍼스트 선으로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면 인류의 조상으로 추측되는 원숭이보다도 더 가까울 정도.
만약에 리한이 학자라면 망설이지 않고 두 개체가 같은 종족이라고 분류할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오르피아가 자신의 게놈 데이터를 작성할 때 인간을 참고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의심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원인 자신의 유전자에 인류의 유전자를 섞는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이유는 그들이 지나치게 흉포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오욕칠정은 세상에 어떤 생물이라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특징이었다.
여기에는 더 원은 물론이었고 인간이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악마, 마족, 몬스터조차 조금 더 치우쳐있을지언정 동일한 선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살인, 강간, 약탈, 심지어는 동족 포식 같은 극단적인 행위는 인간만 저지르는 게 아니라 다른 짐승, 동물도 모조리 저지른다는 소리다.
문제는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냐는 것.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는 말이 괜히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끝없이 다른 문명을 침략해서 파괴하고 소멸시켰으며 종극에는 자기 자신들과 세계까지도 파멸로이끌어갈 만한 극단적인 포학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족을 학살한 것은 신도, 악마도아닌 인간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더 원이 협상의 미학을 통해서 다른 종족과 교류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인간은 세상 전체를 불태우고 지배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상극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마법 오염이었다.
과거에 리사엘의 무리를 전멸시키는데 사용한 마법은 발로 퓌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전략 규모의 대마법이었다.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동위원소 마법사들이 마법진으로 의식을 동조해서 발동하는 궁극의 파괴 마법.
이 힘은 어지간한 규모의 도시 왕국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을정도로 강력하지만 여기에 따라오는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인류의 기술로는 아직 처리할 수가없다고 해야 맞았다.
이 마법이 발동하면 일대 전체의 마나가 엄청난 고열에 일시에 끌어 오르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해버리기 때문에, 파괴당한 지역 전체가 마법에 오염되어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파괴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전쟁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다양한 명분과 논리를 앞세워 수백, 수천 번에 이르는 전략 마법에 의존하는 인류.
그마저도 대부분 자신과 같은 인간들을 향해서 사용했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리한으로서는 자신의 유전자가 그런 파괴적인 충동을 억제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