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짧은 H이벤트 포함)마법 오염(3)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군!”
“뭐지?”
호리스에게 안내를 받으며 떠나려는 찰나에 급하게 부르자 성가시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쉬러 가시는 길에 방해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만…나디아를 그, 지금 깨워도 괜찮을까요?”
“아아. 그러고 보니까 말해주는 것을 잊어버렸군. 치료 중에 고통스러워하지 않도록 재워놓았을 뿐이니까 깨워도 된다. 오히려 그동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서 몸이 굳어버렸을 테니까 적당히 움직여주는 게 좋겠지. 물어보고 싶은 건 그게 전부냐?”
“네, 다시 한번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주군! 저희 남매가 평생을 갚아도 모자란 커다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만끽하도록 해라.”
리한은 적당히 대답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토스의 곁에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던 간병인 하나가 참았던 숨을 뱉어내었다.
“휴우. 정말로 대단하신 분이군요. 세상에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을 약속대로 겨우 2시간 만에…”
“하하! 백번 지당한 소리다. 나는 지금 저분이 자신을 데피리스님의 화신이라고 자처한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아니지. 진짜 귀족이라고 하셨으니까 귀족 중에서귀족 나리라고 해야 되나? 하하하하! 정말로 살다가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는 입꼬리가 양쪽 위로 올라가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며 누워있는 여동생의 손을 소중하게 잡아 쥐었다.
항상 너무 차갑던 손에서 확실하게 온기가 느껴져 왔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주마. 너만은 꼭…’
그렇게 생각하며 기도하듯이 이마를 가져다 대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떠올랐다는 것처럼 머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잠깐! 그러고 보니까 오늘 저녁 메뉴가 뭐지?”
“그, 글쎄요.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만 오늘은 손님이 많으시니까 칠면조나 통돼지 바비큐 요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만…”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에 간병인이 더듬거리면서 대답을 했다.
“통돼지 바비큐라고? 겨우 그따위 하찮은 요리를 주군에게 대접할 수는 없지.”
그렇게 대답하고는 허둥지둥 품속을 뒤져서 묵직한 돈주머니를 꺼냈다.
“받아라. 모르기는 몰라도 50대륙 은화 정도는 들어있을 거야. 이 돈으로 주방장과 상의해서 최고의 만찬을 준비하도록 일러라. 만약에재료비가 모자란다면 얼마든지 줄 테니까 돈 걱정을 말고!”
“오십?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습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며칠을 묶으실지도 모르는데 이렇게까지 대접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터무니없는 액수에 당황하면서 물었지만 오히려 버럭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멍청한 소리! 너는 대체 저분이 누구시라고 생각하는 거냐? 오팔 왕국의 육백작 중의 하나인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님이시란 말이다. 그분의 기준은 감히 우리와 같은 시정잡배의 상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돼! 대접하려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 아슈킬 가문?! 아,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으하하하하하! 오늘은 파티다. 파티! 이제부터는 빌어먹을 흡마석을 구하기 위해서 돈을 저축할 필요도 없어. 너희들도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여기를 정리하고 떠나기 전에 성과급에 보너스까지 넉넉하게 챙겨줄 테니까 며칠만 더 부탁하마!”
“감사합니다. 나리! 다시 한번 나디아님의 쾌유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말에 주변에 있는 간병인들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졌다.
그리고 이 소식은 응접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용병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쿵!
“마, 마혈병을 치료했다는 게 정말인가요?!”
의자를 넘어트리면서 일어선 클레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와우. 실화냐? 이거.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조금 이상한 귀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입만 살아있는 양반이 아니었잖아. 하하! 예감이 좋아.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커다란 물주를 잡았을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응? 특히나 푸른 수염 가이슨씨는 말이야.”
“크헉?! 쿨럭, 쿨럭! 화, 확실히 저, 정말이라면 놀라운 일이로군.”
“단순하게 놀랍다는 말로 끝낼 사건이 아니라고요. 이거는! 도대체 어떻게치료한 거죠? 역시 신성 마법인가요? 아니면 아티펙트? 어떤 혁신적인 외과 시술이라도 있었나요? 어서 가르쳐주세요. 가까이 있었으면 뭔가 사소한 거라도 주워들었을 거 아니에요!!”
흥분한 그녀가 간병인의 멱살을 잡아 쥐고서 격렬하게 흔들어댔다.
“으아아앗?! 죄, 죄송합니다만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들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애초에 병실 자체를 아토스님이 기막으로 봉인해버려서, 안에서 무슨일이 일어났었는지는 후계자님과 동행하신 메이드님밖에 모르십니다.”
“그럴 수가?! 아아아아. 줄리아님. 도대체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어째서 저는 거기에 참관하지 못하는 거죠? 도대체 저의 어디가 모자랐기에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큰일이야. 클레어가 망가져서 뭔가 이상한 소리를 뱉어내고 있어!”
“정신 차리세요. 클레어님!”
공황상태에 빠져서중얼거리는 그녀를 동료들이 부축하는 사이에 아토스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상큼한(?)미소를 지어 보이며 응접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친구들!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인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하하하하. 화창한 날씨에 싱그러운 꽃냄새가 저택 안으로 가득해. 거기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안녕. 친구들?’
‘새들이 지저귀고 뭐?’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처럼 그렇지 않아도 않아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카오스 수치를 끌어올리는 등장에 좌중의 표정이 완전히 썩어들어갔다.
그들의 앞으로 나타난 아토스는 아토스였지만 그들이 알고 있던 아토스와는 완전히 동떨어져있는 별개의 아토스였다.
언제나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다녔던 험상궂은 마초남. 일 처리는 언제나 신속하고 완벽했으며 한 마리 고독한 녹대로 떠돌아가지는 황야의 무법자이자, 돈이 되는 일이라면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수전노 생태계 파괴자.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가 갑자기 기분 나쁜 중년의 변태가 되어서 떠들어대는 모습이 역겨운 역병에 감염된 것처럼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대가리에 바스타드 소드라고 박혔냐? 소름 끼치게 도대체 왜 그래?”
“하하하하. 브리카. 아무리 우리가 거친 환경에 노출되어있는 용병이라고 해도 바른 말과 고운 말을 사용해야지. 세상이 이렇게 따듯하고 아름다운데 말이야. 우리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어. 러브 앤 피스. 세상 만물을 사랑하면서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가자고.”
“아, 제발. 데피리스님. 이건 좀…”
“우에에에엑! 젠장, 망할! 나 지금 진짜로 토했어. 제기랄! 혹시 누가 이 꼬라지를 보지 않은 사람 없어? 제발 있으면 눈과 귀를 교환해줘. 젠장! 대뇌전두엽에 각인되어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 같아!!”
“저기…”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을 때 아토스의 등 뒤에서 작고 가냘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디아?”
“재미있게 대화하시는 도중에 죄송하지만, 여러분에게 인사 올려도 괜찮을까요?”
‘여기까지 접근했는데 아무도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어?’
브리카의 표정에서 잠시 이채가 어렸다.
심지어는 아토스마저 놀란 모양이었는지 금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그녀를 다독였다.
“나디아! 내가 여기는 위험한 곳이니까 다가오지 말라고 했잖아. 여기는 못생긴 얼굴들이 많아서 심신 상태에 악영향을 줘요. 자자.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뭐 이 새끼야?”
“대, 대체 무슨 실례되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오라버니.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동료분들에게 그렇게 험악한 표현을…죄송합니다. 여러분.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릴게요.”
스커트 자락을 양쪽으로 잡아 올리며 공손하게 사과해오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한 폭의 그림이 만들어졌다.
“크흠. 흠, 흠. 아니, 뭐 아름답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후후후후. 아 근데 진짜로 예의가 바르네. 정말로 친남매 맞아?”
“한 떨기 장미처럼 가련하군.”
“허허.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단아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우아한 몸가짐, 예의 바른 모습에 용병들의 호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일어서서 성큼성큼 다가온 클레어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해서 그녀를 이리저리 살펴보기시작했다.
“흐음, 흐음, 흐으으으음?!!”
“크, 클레어님?”
“오랜만이에요. 나디아양! 예전에 병세를 살펴드리러 왔었는데 기억하고 계시죠? 죄송하지만 실례가 아니라면 지금 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 봐도 괜찮을까요?”
“네, 상관은 없습니다만…”
과도한 관심에 약간은 겁을 먹고 물러서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야! 지금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여동생한테서 떨어지지 못해? ”
“죄송하지만 빠져있으세요. 아토스님! 이것은 인류 의학의 역사가 움직일지도 모르는 중대사라고요! 마혈병을 치료한 환자라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전대미문의…앗?!”
“중대사고 나발이고 당장 떨어지란 말이야!”
“오라버니!”
분노한 아토스가 거칠게 어깨를 잡아당기자 깜짝 놀란 나디아가 급하게 그녀를 부축하며 호통을 쳤다.
“당장 사과하세요! 클레어님한테 지금 뭐 하는 짓이세요?”
“아, 아니야. 동생아. 그러니까 이건…”
“단순하게 제 상태를 보고 싶다고 하시는 것뿐이잖아요. 예전에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에 사례 하나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줄리아님의 이름으로 간호하고 돌봐주셨던 은인이라고요! 설마, 이제는 사정이 바뀌었다고 함부로 대하시는 건가요? 원수보다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라고 가르쳐주셨던 것은 오라버니였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