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테세우스의 배(3)
“우리 중에서 말입니까?”
캐논이 놀라는 표정으로 용병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어디까지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소릴세.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제니아의 실세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래리님이 아닌가? 우리를 고용한 후계자님의 저력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면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이렇게 돌아가는 거겠지.”
“…”
이 말에 장내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가이슨! 아까부터 너는 왜 이렇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하게 있는 거야? 그렇게 땀까지 줄줄 흘리고 말이야.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찔리기는 누가 찔린다고…”
그렇게 대답하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누가 봐도 수상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꿀꺽꿀꺽! 크흐! 마, 맛있어. 정말로 맛있는 차야!”
“이 새끼. 말하는 태도가 진짜로 이상하네.”
“아, 글쎄 아니라니까? 진짜로 차가 좋아서 하는 소리니까 너도 한번 마셔봐라. 브리카.”
“어디? 흠. 오. 진짜로 괜찮네. 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달짝지근하고 입에 부드럽게 감기는 맛이 일품인데?”
“그래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세요. 중독될지도 모르니까.”
“뭐?”
캐논이 꺼낸 말에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까 정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장미꽃들을 보셨죠? 이 차의 이름이 문샤인 로즈라고 하거든요. 달빛을 받아서 밤에 피는 장미 품종의 꽃술을 우려내서 마치는 건데 잘 희석하면 지금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차가 만들어져요.”
“오, 그래? 그러면 너무 맛있어서 중독된다는 거야?”
“아니요. 잘 희석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맹독이거든요. 어느 정도냐면 한 방울로 미노타우르스를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독해요.”
“푸흡!!”
설명을 경청하면서 차를 음미하고 있던 모든 사람이 일제히 뿜어버렸다.
“미친! 지, 지금까지 그런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처마신 거야?”
“농담이지? 제발 농담이라고 말해! 젠장, 대접을 이따위로 하다니 이 싸이코 새끼들을 모조리 박살 내버리겠어!”
모두가 흥분해서 들썩거렸지만 캐논은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여유롭게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후후후후.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괜찮다니까요? 중독된다는 말은 문샤인 로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농담이고 이렇게 희석해서 마시면 오히려 심신이 차분해지고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된다고요.”
“그, 그래?”
“그렇게 넘어갈 이야기가아니잖아! 애초에 이게 제대로 희석했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할 건데?”
“만약에 희석하지 않았다면 냄새부터 이상했을 거예요. 입술을 가져다 대면 피부가 따끔거리고 혀로 찍어보면 마비되는 것처럼 알싸해질 정도로 독하거든요. 입 주변으로 가져다 대기 싫다면 민감한 피부 주변에 찍어 발라서 가식성 테스트를 해봐도 되고요. 뭐, 상대방을 작정하고 암살할 생각이라면 속이는 방법도 있지만 간병인 분들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후후후후.”
혼자 태연하게 웃는 모습에 주변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어라? 다들 왜 그렇게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으세요?”
“아니, 그게. 아토스를 공격할 때 암독술을 공부했다고 해서 농담이라고 생각했거든. 이제 보니까 진짜였구나 해서.”
“물론이죠. 험한 세상이니까 호신술 정도는 필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하필이면 그런 공부를…”
“그게 말이죠. 용병 길드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이상하게 독에 관심이생기더라고요. 다양한 상황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기술을 연마하는데 어찌나 몰입되고 빠져들게 되던지. 후후후후후후후.”
오싹.
“…”
두 눈을 반짝거리면서 음침한 웃음소리를 뱉어내는 모습을 보고 용병들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떤 상황을 상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그에게 잘 대해줘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 브리카가 재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아, 아무튼 본제로 돌아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고용주님에게 걸어봐도 좋다고 생각해. 배틀 메이지라는 것도 믿음직스럽지만 용병 길드에서 보여주었던 수완과 배짱이 보통내기가 아니었잖아?”
“흠. 확실히 배틀 메이지라는 점이 크기는 하지.”
이 세계에서 직업 랭크로 최강을 구분한다면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직업이 바로 무장과 배틀 메이지였다.
양쪽 모두 검과 마법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징적인 존재들.
굳이 둘 중에 하나로 우열을 정하라고 하면 무장이라는 개념이 조금 더 포괄적이고 강력하다는 인상을 대중들에게 주고 있지만, 전투 경험이 많은 실력자들일수록 양쪽 모두가 누가 더 위고 아래라고 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히려 다양한 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에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을 정도.
“아토스가 B급 무장을 일대일로 쓰러트렸다고 하지만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본인도 말했고 말이야. 백작 가문의 후계자님이라면 최소한 A급은 되지 않으시겠어?”
“A급이라. 후후후. 우리 모두가 짐 덩어리는 아닌지 모르겠군.”
“클레어는 어떻게 생각해? 후계자님께서 마혈병을 치료하시겠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동요해서 안절부절못했잖아.”
“저는…”
지명을 받은 그녀가 잠시 뜸을 들였다.
“만약에 고용주님께서 나디아님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무조건 따르겠어요.”
“그 문제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야?”
브리카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저한테는 아니, 줄리아님을 섬기는 모든 사제들에게 아니, 어쩌면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일이거든요. 만약에 정말로 이 병을 치료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은?”
“아니, 뒷말은 듣지 못한 것으로 해주세요. 아무튼 제 결정은 그렇습니다.”
“좋아. 그러면 다들 후계자님을 따르는데 동의한다는 소리지? 나중에 가서 마음이 변했다거나 그딴 말은 하지 말라고. 굳이 무덤을 세 개 준비할 필요도 없이 뒤통수를 쳤다가는 내 거검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후후.”
“물론이지.”
브리카의 말에 제각각의 반응으로 수긍하는모습을 보여주면서 티타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못다 한 말을 남겨놓은 클레어는 골몰히 생각에 빠져서 차갑게 눈빛이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이 세상에 모든 곳에는 마나가 머무르고 있어요. 마법 오염이 정말로 무서운 이유는 그 마나를 불규칙하게 변화시켜서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도, 무장도, 사제나 성인이라고 해도 이것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어요. 자신들의 힘의 원천이 묶여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죠. 하지만 이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다면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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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피아가 더 원을 이끌고 테세트 황무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었다.
인간들이 마나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에너지였고, 그것이 이 행성의 하늘과 땅, 바다 심지어는 아주 자그마한 미생물에게까지 고르게 분포되어 생태계 전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테세트 황무지가 죽음의 땅이 되어버린 이유는 그런 마나가 미쳐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에너지 시냅스 장애(Energy synapse disturbance).
이 현상은 단순하게 마나의 상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형상과 성질에도 영향을 줘서, 모습이 제멋대로 분해되고 결합하면서 바뀌어 주변 일대의 모든 생태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것은 마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더 원에게도 위험한 영향을 미쳤다.
퍼스트 선을 포함한 신하들은 이 땅을 떠나서 안전한 정착지를 찾아보자고 권유했지만 오르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일이 아니냐? 어차피 이곳은 버려진 땅이었으니까 우리가 정화하여 소유로 삼아도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터전을 만들고 이 세계와 공존할 방법을 연구해 보자꾸나.]
오르피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엔지니어들과 함께 몇 날 며칠을 연구했다.
그리고 내놓은 해결책은 단순했다.
너무빠르게 변화해서 손을 쓸 수가 없는 불안정한 상태라면 아예 완전히 부수고 다시 만들자.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더 원에게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마스터 코어라는 보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오랜 고심 끝에 그녀는 이 계획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테세우스의 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