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테세우스의 배(2)
“그건…”
“아, 크흠. 말씀하시는 바는 알겠습니다만 후계자님. 저희가 아무리 돈으로 움직이는 용병이라고 해도 이중 계약을 맺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신용에 관련한 문제니까요.”
말문이 막힌 클레어를 대신해서 브리카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그것은 너희들이 지금까지 신용과 바꿔도 될만한 보수를 제시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약속한 보수는 어땠지? 너희들 중에서 노블 마크를 마다하고 보수만 받고 다시 용병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녀석이 있느냐?”
“…”
여기에 대해서는 그녀도 대답할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돈도 돈이었지만 대귀족의 가신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장차 귀족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등용문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부유한 부르주아 상인이 억만금을 내고 사려고 해도 구할 수없는 신분 상승의 기회.
이익계산이 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
“너희들의 신용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여기서부터 진짜 시험대에 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나의 적들은 나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서 내가 요구한 것보다 더 큰 보수로 너희를 매수하려고 하겠지. 그때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비로소 우리 관계에 신뢰라는 단어가 싹틀 것이다.”
리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용병들의 면면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더 큰 이익을 위해서 나를 배신하겠다면 얼마든지 배신해도 좋아. 하지만 명심해라. 나는 처음부터 너희를 조금도 믿지 않았다. 내가 관대한 얼굴로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라는 착각은 버려라. 날 배신하고 싶다면 적어도 세 개의 무덤을 파라. 거기에사랑하는 사람까지 한꺼번에 묻어줄 테니까.”
꿀꺽.
이 말에 유난히 창백한 표정으로 겁을 먹은 기색이 역력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고도 아무런말없이 등을 돌린 리한이 아토스를 향해서 명령을 내렸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어서 동생을 데리고 병실로 안내해라.”
“네, 알겠습니다!”
나디아를 조심스럽게 휠체어로 옮긴 일행은 저택에 들어가서 조그마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커텐을 치고 촛불을 켜라.”
촤아아아악!
리한의 명령에 간병인들이 자연스럽게 따랐다.
“좋아. 환자는 침대 위에 눕히고 오리나만 빼고 전부 나가라. 그리고 아토스! 치료를 하는 동안에 나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된다. 바깥에서 이 방 전체를 감쌀 수 있는 기막을 펼칠 수 있느냐?”
“문제는 없습니다만 어느 정도로 하면 되겠습니까?”
“대략 2시간이다. 누군가 마법을 사용해서 엿보려고 하는 시도를 완전히 차단하고 바깥으로 어떤 소리도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 할 수 있겠느냐?”
“그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치료를 하시기에…”
“거기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는 순간부터 우리의 계약은 끝이다. 내가 아직 신용하지 못하는 대상에는 너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마라. 네가 약간이라도 기막을 풀고 내부 사정을 엿들으려고 하는 순간부터 동생의 목숨은 없는 거라고 생각해라.”
꿀꺽.
엄중한 경고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후계자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로 관심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문을 닫고 나가라.”
잠시 후.
시키는 대로 환자와 오리나만 남겨놓고 모두가 밖으로 나갔고 방문을 걸어 잠근 후에는 기막이 펼쳐져서 완전한 밀봉 상태가 되었다.
“몸 상태는 어떻지?”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모습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몽롱해 보였다.
“일단은 잠드는 편이 좋겠군.”
파지지지직!
마스터 코어의 힘을 끌어올려서 의식을 끄고 기절시켜 버렸다.
“오리나. 지금부터 환자의 옷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벗겨야 하니까 도와라.”
“네, 주인님…네?”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다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는 것이냐? 어디까지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일 뿐이야. 사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환자의 부담만 커질 뿐이다. 어서 움직여!”
“네,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런데 저기…”
“왜 그러느냐?”
“사심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어째서 자신의 옷을 벗고 계신가요?”
“치료를 위해서 필요한 행위다.”
“그런데 그 물건은 어째서 그렇게 크게 부풀어 오르셨…어맛?!”
지적하기가 무섭게 우뚝 솟아오르는 남근을 보면서 화들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지만 리한은 태연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할 뿐이었다.
“치료를 위해서 필요한 행위다.”
****
병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무렵.
간병인들에게 응접실로 안내를 받은 용병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히 앉아서 어색한 침묵에 잠식되어 있었다.
테이블에는 먹음직스러운 차와 다과가 차려져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손을 대려고 하지는 않는 상태.
결국, 그런 분위기를 참지 못한 브리카가 먼저 나서서 너스레를 떨었다.
“크흠! 오우야. 부잣집이라서 그런지 평범하게 내오는 다과도 보통 수준이 넘네. 다들 뭐해? 먹자고, 먹어!”
“그, 그래요. 자자! 차는 식으면 맛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와! 이것 좀 보세요. 정말로 달콤하고 맛있는 버본이네요.”
캐논이 맞장구를 치면서 호응하자 간신히 분위기가 누그러져서 하나씩 테이블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브롱크, 너는 과자는 안 먹는 거야?”
“나는 단것을 먹지 않는다.”
“그래? 특이한 입맛이네.”
“아니. 어디까지나 근손실을 예방하기 위해서야. 나의 아름다운 육체의 완성도에 금이 가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뭐래는 거야. 미친놈이…”
“푸흡! 크크크크큭!”
자신의 알통에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빵 터진 클레어가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무릎 옷자락을 잡아 쥐었다.
“오호라. 보아하니 클레어는 이런 아재 개그가 취향이구나?”
브리카가 그것을 보고 약점을 찾아냈다는 것처럼 입맛을다셨다.
“아, 아니거든요!”
“진짜로? 그러면 오리를 생으로 먹으면 뭐라고 하는지 알아? 회오리야, 회오리! 깔깔깔!”
“아, 씨 이년이 선 넘네…”
“푸흡?! 크크크크큭! 회, 회오리래. 회오리! 키키키킥킥킥!”
캐논을 비롯한 다른 용병들은 저질 개그에 증오스럽다는 듯이 노려봤지만 클레어만은 완전히 꽂혀버려서 배꼽을 잡으며 자지러졌다.
“실화냐?”
“수녀원에서 자라면 다들 저렇게 되어버리는 건가?”
“허허. 오랜 금욕생활이 가져오는폐해가 설마 이런 곳에서…절레절레.”
“왜들 그래?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는 개그 아니야? 그러면 하나만 더해볼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 위에 하나씩 가지고 다니는 흉기는…”
“머리칼이라고 대답하면 네 머리카락을 모조리 씹어먹어 버리겠어.”
브롱크가 전에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히이이이푸후흡흡흡흡!!”
하지만 클레어만은 너무 웃다가 뒤로 쓰러져서 탈진해버리고 말았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간신히 진정하고 난 후에는 어딘가 선정적으로 느껴지는 숨 고르기를 하는 그녀.
눈물을 머금고 초점까지 사라져버린 표정으로 헐떡거리는 모습은 누가 보면 마치 윤간이라도 당한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브리카는 거기에 결정타를 날리고 싶은 눈치였지만 다른 용병들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엄근진한 표정으로 하지 말라는 강한 의사 표현을 해왔다.
“끙. 클레어는 이렇게 재밌어하는데 왜 그렇게 다들 정색하고 그래?”
“실화냐? 우리 여성진은 개그 코드가 대체 왜 이래?”
“허허. 뭐, 브리카의 개도 못 먹을 썰렁한 개그는 둘째 치더라도 말일세.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우리의 고용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말이야.”
나이가 지긋한 반다크가 운을 띄우자 가벼워졌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브리카였다.
“뭐, 특별하게 문제 될 것은 없잖습니까? 노공. 후계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보수가 파격적이니까 계약한 것도 사실이고 신뢰 관계야 차차 쌓아나가면 되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용병의 생명은 신용이지만 이번에는 종신 계약이잖아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끄덕.
캐논의 말에 이어서 브롱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흘흘흘. 자네들의 말은 100번 지당한 말일세. 하지만 우리 중에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는 새겨들어야 할 것 같더군. 후계자님의 말씀하신 것처럼 더 큭 이익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