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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지도자의 조건(3) (42/429)



〈 42화 〉지도자의 조건(3)

“오오. 좋은 생각이십니다. 역시나 주군!”

[이런 무도한 녀석들이!!]

투콰아아아아아앙!!

가슴을 크게 부풀어 올린 엑케라곤이낚시대를 붙잡고 있는 남자를 향해서 아이스 브레스를 발사했다.

“오?”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보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절대영도의 냉기.


분자운동이 완전히 정지해버리는 온도 속에서 푸른 얼음 결정으로 덮여 들어가는 남자였지만, 어째서인지 표정에서는장난기가 사라지지 않고 미소마저 그려져 가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투드드드득!


당황한 수호룡이 공격을 멈추자 가볍게 몸을 흔들어서 멀쩡하게 원래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하하하하! 제법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세게 불어야지 않겠느냐? 그래야 달아오른 몸의 열기가 식혀질 테니까 말이야!”

[네 이놈! 너희들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는 알고 있느냐? 반쯤 장난하는 기분으로 영장을 어지럽히고 부정을 퍼트리려고 하다니!]


“아따. 물고기 새끼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시끄럽게 굴지 말고 다시 한번 정정당당하게 힘겨루기를…”

후우우우웅!

그렇게 말하면서 낚시대를 잡아당기려고 하던 남자였지만 갑작스럽게 엑케라곤의 머리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검사가 국화문양이 새겨져 있는 칼등으로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투쾅!

[커헉! 인간…]

마지막 의식이 담겨있는 짧은 단말마를 뱉어내면서 허무하게 쓰러져버리는 수호룡.


그 모습에 남자는 낚시대를 놓고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절규했다.


“안돼에에에에!! 한참 재미있어지려고 하는 참이었는데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 이리나!”

사뿐하게 지면으로 내려선 그녀는 유려한 동작으로 검을 집어넣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여흥은 잠시 미뤄두시지요. 주군. 사모님이 오셨습니다.”

“어? 도, 돌로레스가?”


“이미 뒤쪽에 서계십니다.”

“으아아악?!”


이 말에 뒤를 돌아보다가 아내를 발견하고 귀신이라도 마주친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는 남자.

덕분에 날아오는 부채에 얼굴을 얻어맞았다.


“아이고. 이놈의 양반아! 도대체 나이가 몇인데 이런 오밤중에 알몸으로 낚시를 하고 있어? 내가 진짜로 당신 때문에 창피해서 사교계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겠어. 아오오오오오! 진짜로 앓느니 죽지! 우리 데일이가 이런 아버지를 보고 도대체 무엇을 배울꼬!”


“여, 여보! 일단은 진정  해. 왜 또 그렇게 화가 나서 그래? 혹시 또 어떤 건방진 년이 무례하게 굴기라도 한 거야?”


나름대로 눈치를 보면서 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성질만 돋웠다.


“뭐예요?! 설마 당신. 지금 내가 나보다 어리고 예쁜 년들한테 질투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이고! 진짜로 미치고 팔짝뛰겠네. 하나밖에 없는 서방이라는 사람이 이렇게마누라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데. 이러니까 내가 아랫것들한테까지 무시당하고 수모를 겪지. 수모를 겪어!!”


“아니야. 여보! 나는 절대로 그런 의도로 꺼낸 말이 아니라.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내가 잘못했네! 정말로 잘못했어. 이 입이 웬수지! 미안해. 정말! 응? 그러니까 조금만 제발 좀…”

수호룡 엑케라곤을 압도하며 놀라운 용맹을 과시하던 남자, 래리는 완전히 팔불출이 따로 없는 비굴한 모습으로 부인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과받고 나서야 간신히 화를 푸는 그녀.


덕분에 그도 겨우 찾아온 용무를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야심한 새벽에 이렇게  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여보.”

“흥. 기가 막혀서 정말! 보아하니 당신처럼 태평한 양반은 이런 소식에도 기뻐하실  같네요. 리한 도련님이 살아있답니다. 지금 벡워스까지 와 계시데요.”


!!!


이 말에 놀란 것은 래리만이 아니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뜨는 버질과 이리나. 특히나 이리나는 무표정한얼굴에 금이 가버린 것처럼 충격에 떨며 동요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사모님!”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겠니? 그런데 오호라. 네년은 도련님하고 어린 시절에 동문수학했던 각별한 사이였지? 왜? 이제와서 도련님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누구를 주인님으로 섬겨야 할지 헷갈리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런  아니오라…”

그녀가 감정적으로 대답하려고 했지만 래리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에헤이! 여보는 또 왜 갑자기 그런 소리는 꺼내고 그래? 같은 가족끼리 네 편, 내 편을 나눌 필요는 없잖아? 아, 맞다. 이리나는 오늘 아침부터 해야 하는 근무가 있었지? 여기는 버질하고 내가 정리할 테니까 그만 들어가 봐. 오늘 하루 수고했어! 오후에는 푹 쉬고 내일보자?”

“주군…아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예정에 없는 일을 언급하면서 자리를 피하라는 눈치를 주자 잠시 망설이는 그녀였지만 곧바로 공손한 자세로 예의를 갖춰보였다.


“정말로 일이 바빠서 보내주시는 거예요?”


“어휴. 여보는 의심도 많아. 그나저나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리한 조카가 살아서벡워스까지 와 있다고?”

돌로레스가 의심하는 눈초리로 물어보자 그는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래요. 도대체  일을 어쩌실 거예요?”

“음…아니, 그게 말이야. 솔직히 나는 우리 조카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지명 수배를 했거든? 그런데 살아있다면 죽이라는 명령은 취소해야 하지 않을까? 3년 동안 외지에서 이만저만 고생이 심하지 않았을 텐데 따듯하게 맞이해 주면 좋잖아. 그리고 우리 어머님도 손자를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시고…”

“당신 미쳤어요?!”

대번에 그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미 바운티 헌터를 시켜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순간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요! 당신은 이대로 후계자 자리를 빼앗겨버려도 상관없다는 말씀이세요? 도련님이 돌아오면 우리 가족 모두가 길바닥에서 비참하게 죽어 나갈 거라고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도 래리는 허허 웃으면서 사람 좋은 대답만 돌려주었다.


“하하하하. 아니야. 그거는 여보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리한 조카가 그렇게 막돼먹은 여석이 아니에요. 얼마나 착하고 순수한 녀석인데 말이야. 내가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아무래도  사람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는 게…”

“흐윽! 어흐흐흐흐흑!”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로레스는 얼굴을 감싸 안으며 들썩거렸다.


“여보?”

“아이고. 데일아! 아무래도 우리 모자는 틀린 모양이다! 아버지라고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이렇게 철딱서니가 없으니 우리가 어찌 살아가겠느냐? 그냥 이대로 모자 둘이서 접싯물에 코를 박고 콱 죽어버려야겠구나! 이승에서는 이 무념과 원한을 갚을 방법이없으니 저승에서 데피리스님에게 간청해야겠다. 아이고, 데일아! 어흐흐흐흑!!”


“아니. 여보, 제발 좀. 대체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오는 거야? 일단은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됐어요! 당신이 우리 모자를 버리고 도련님을 선택하셨으니 날이 밝는 대로 제니아를 떠나겠어요. 친정까지는 험난한 구만리 타향이지만 이렇게 수모를 당하고 사느니 조금이라도 고향에서 가까운 곳에서 죽어야 덜 억울할 테죠!!”


“제발 진정 좀 해. 세상에 당신하고 데일이 어떻게 그 먼 코튼 왕국까지 간다고 그래? 당신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데일은 이제 겨우 5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엄마밖에 모르는 어린 자식을 볼모로 잡고 계속해서 인질극을 벌이자 어떻게 해서라도 설득해보려고 하던 래리는 결국 백기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제발 그만 좀 해. 이 일에 대해서는 나는 절대로 간섭하지 않을 테니까 당신이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게 정말이에요? 당신!!”

순식간에 반색하며 기뻐하는 모습에 처음으로 아내에게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휴. 군대든 뭐든 당신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도록 하면 되는 거잖아? 하지만 거기까지야. 아무리 당신이 데일을 붙잡고 협박을 해도  손으로 조카를 죽일 수는 없어. 이 문제는 전적으로 당신이 알아서 해!”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우리 가족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은 조금 매정하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약속드릴게요. 나중에는 저한테 고맙다고 하실 거예요!!”

“…하아.”


전권을 위임받기가 무섭게 신바람이 나서 떠나버리는 돌로레스를 보고 래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어내었다.

잠시 사이에 완전히 진이 빠져버려서 10년은 늙은 것처럼 피로해 보이는 얼굴.

“괜찮으십니까? 주군.”


“너 같으면 조카가 죽게 생겼는데 괜찮겠냐?”

버질의 질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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