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지도자의 조건(2) (41/429)



〈 41화 〉지도자의 조건(2)

“큭! 네놈이 정녕…”


하인즈의 최후통첩을 들은 돌로레스는 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차마 어떻게 하지는 못하며 부들부들 주먹만 떨었다.

한동안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붉으락푸르락하다가 어쩔 수 없이 물러서는 그녀.

“좋아! 그놈의 잘난 위세가 어디까지  수 있을지 한 번 두고 보자꾸나. 하지만 똑똑히 기억해 두거라.  오늘의 수모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야! 과연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그 잘난 애쉬님께서 너희를 지켜주실 것 같으냐?!”


“…나가시는 방향은 저쪽입니다.”

“흥!”

세차게 콧방귀를 뀌고측근들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하인즈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절레절레 한숨을 쉬었다.


“어렵구나, 어려워. 그동안 오만한 귀족은 질릴 대로 봐왔다고 생각했지만 내 평생 저렇게 지랄 맞은 년은 처음이로다. 천년 가문에 어쩌다가 저런 애물단지가 굴러들어왔을꼬. 쯧쯧쯧.”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고 조용히 병실 문을 열었다.


환자가 누워있는 방.


붉은색 계열의 화려한 침대 주변에는 치유의 마법진이 은은한 녹색의 빛무리를 뿜어내고 있었다.

언제 꺼져버릴지 모르는 창백한 안색의 노인이 뱉어내는 조용한 숨소리.


곁에 앉아있는 사람은 앙상한 손을 가만히 붙잡고 있었다.

“대모님이 깨지는 않으셨습니까? 애쉬님.”


“아무런 문제도 없다. 저 여성체가 별택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의 주변에 기막氣膜을 펼쳐놓았으니까 말이야.”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구분할  없는 인물에게서 외모만큼이나 중성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나마 다행이로군요. 그래도  시간 전에 일어난 발작은 위험했습니다. 간신히 고비를 넘기셨는데 저 독사 같은 여자가 쳐들어와서 난리를 쳤다면 용태가 어떻게 되셨을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


하인즈가 슬그머니 속을 떠보려고 했지만 애쉬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마치 감정이 없는  같은 무표정한 얼굴.


‘마르텔님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만은 틀림없는데 말이야.’


오십 평생 아슈킬 가문의 노블 마크를 달고 살아온 그였지만 눈앞에 있는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십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는 외모.


나이, 종족, 연령, 심지어는 성별마저도 모든 것이 수수께끼에 휩싸여있는 존재.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평온의 기사라고 불리는 그가 제니아의 모든 무장과 단독으로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소름 끼치게 강하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마르텔님이 돌아가시면 아슈킬 백작 가문을 떠날 생각입니까?”


“이미 대답하지 않았느냐? 선대와 맺은 계약은 거기까지다. 내 임무는 그녀가 천수를 누릴 때까지 지켜주는 것이지 가문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어.”


“알고 있습니다.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정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부디 예전을 떠올려주십시오. 세상의 모든 일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당신도 졸졸 따라오는 리한 도련님의 손만은 꼭 잡아주시질 않았습니까? 만약에 그분께서 지금 죽지 않고 살아 계신다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끄응.”

고집불통처럼 완강한 반응에 하인즈의 속만 타들어갈 뿐이었다.


애초에 애쉬가 작정하고 아슈킬 가문을 위해서 일해주었다면 리한이 테세트 평야에서 실종되는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처럼 날뛰는 돌로레스마저 무서워하는 유일한 인물.

마르텔 대모가 야월에게 암살당하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도 전부 애쉬의 힘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아쉽구나. 정말로 아쉬워. 아무리 감정의 문을 닫아버린다고 해도 세상을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인데. 어째서 모든 것을 밀어내기만 하는지.’

현재 상황에서 차기 가주로 가장 유력한 래리는 본성이 사악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줏대가 없었고 이리저리 쉽게 흔들리는 우유부단한 성격에 돌로레스에게 잡혀 사는 공처가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문과영지민들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그야말로 최악의 궁합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들이 아슈킬 가분을 차지한다면?

자신의 운명은 둘째 치더라도 너무나도 암담한 미래밖에 떠오르지 않았기에 하인즈의 미간에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섬겨온 아슈킬 가문이 이렇게 몰락해버리는 것인가?’

우울한생각에 잠겨 들었지만 머리를 흔들어서 모든 잡념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자신의 임무는 그런 시기가 조금이라도 늦게 찾아오도록 마르텔 대모의 임종을 조금이라도 오래 늦추는 것.

하지만 그녀의 숨소리가 잦아들수록 희망의 불씨가 점점 사그라지는 기분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



제니아 근방의 라프텔 호수.

맑게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답게 비추는 물가에서 발가벗은 근육질의 남자가 거대한 기둥 하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범선의 돛대처럼 생긴 커다란 막대기.

차이가 있다면 기다란 줄이 도르레 장치와 연결되어서 물속으로 드리워지고 있다는 정도.

만약에 누군가가 그것을 [낚시]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기묘한 광경이었다.

“어기~여차♪ 헬브레스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비탄의 바닷가에서 에헤야 디야♪ 낚아 올리는 문어 아가씨의 속옷 저고리를 허이짜!”


테르할 제국의 남부 연안 지대의 풍어가를 제멋대로 흥얼거리며 그루브에 취하는 남자.

하지만 장난스러운 행동과는 다르게 반짝거리는 눈동자는 자신이 노리를 목표에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어둡고 깊은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겠다는 듯한 강렬한 시선.

쿵. 쿵! 쿵!!

그런 기다림이 마침내 결실을 맺으려는 것처럼 찌가 점점 세차게 떨려오며 동심원이 퍼져 나갔다.

“오오오오! 좋아, 좋아. 드디어 입질이 오고 있어!”


쾅!!!

그런 말을 뱉어내기가 무섭게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면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머금고 있는 물을 뱉어내었다.


“바늘꽂이에 성공했습니다. 주군! 지금 쏜살같이 올라오고 있으니까 준비하십시오!!”

“하하하하하하! 잘했다. 버질! 오늘 낚시의 일등 공신은 너닷!!”

휘이이이익!


우드드드드득!


물속에서 강하게 잡아당기는 힘에 낚싯줄과 찌가 순식간에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흡!”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버텨내는 남자.


혈관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풀어 오른 팔근육이 낚시대를 으스러트리며 파고들었고  발이 습한 땅속으로 점점 깊게 잠겨들어갔다.

“으하하하하하! 좋구나, 아주 좋아!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낚시라고 할 수가 있지.  발버둥 쳐라! 더, 더, 더!! 네놈이 뱉어내는 마지막 숨결과 몸부림을 마지막까지 음미해주마!!”

투콰아아아아앙!


한참이나 힘겨루기를 하며 실랑이를 벌인 끝에 압력을 버티지 못한 상대방이 물기둥과 함께 솟구쳐 올랐다.

크오오오오오!!!

쏴아아아아아!

엄청난 충격파에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물줄기.

격렬한 몸부림으로 호수 전체에 평지풍파를 만들어내는 괴물이 분노에 가득한 포효를 뱉어내었다.

“흐하하하하하! 아주~아름답구나!!”


자신을 한입에 삼킬 정도로  보이는 상대를 보면서도 오히려 기뻐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남자.


그의 말처럼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성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 놀라운 생물은 뱀처럼 기다란 몸이 영롱하게 빛나는 푸른 비늘에 덮여있었고, 머리에는 투구처럼 생긴 갑각의뿔이 위엄을 과시해오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수호룡 엑케라곤.


한때는 라프텔 호수 인근의 주민들에게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던 신성한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은 비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검은 기둥이 박혀버린 목덜미에서는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고 상처를 중심으로 피부가 썩어들어가면서 아름다운 푸른 비늘의 빛이 바래져 가고 있었다.

조그마한 필멸자에게 벗어나지 못해서 쩔쩔매는 신세.

크오오오오오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인간.감히 200년 동안 잠들어있던 나를 깨우고 라프텔 호수를 더럽히다니. 그 짧은 세월에 과거의 맹약을 모조리 잊어버린 것이냐?!]


분노한 그가 물어왔지만 인간들은 오히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감탄을 했다.

“오호? 이 녀석 좀 봐라. 이 새끼. 말도 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머릿속에서 징징 울려대는 것이 아무래도 텔레파시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주군!”


“하하하하!보면 볼수록 용한 녀석이로군. 캬~. 이놈을 잡아서 어탁으로만 찍어내기에는 뭔가 아쉽단 말이야. 아무래도 유능한 박제사한테 부탁해서 박물관에다가 영구보관을 해야겠어. 다른 귀족들이 보면 놀라서 까무러치겠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