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지도자의 조건(1)
똑똑똑!
“누구냐?”
[죄송합니다. 마님! 급한 전갈이 날아오는 바람에 송구스럽게 방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그렇지이렇게 야심한 시간에 정숙한 귀부인의 침실을 찾아오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잘못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셨던 최우선 사항과 관련되어 있는 내용이라서…]
이 말에 주먹을 쥐었다 펴던 돌로레스의 손이 멈췄다.
‘최우선 사항이라고?’
불길하기 이를 데 없는 소리에 노예들에게 손짓해서 가져오는 실크가운을 외투로 걸쳐 입었다.
“보여봐라.”
“여기에 있습니다. 마님!”
무릎을 꿇고 내미는 전갈을 테이블 위에 펼쳐서 살펴보았다.
그것은 조금 전에 꾸었던 악몽이 다시 한번 재현되는 것 같은 섬뜩한 내용이었다.
믿을 수 없는 내용에 파르르 입술을떠는 돌로레스.
“리한이…그 빌어먹을 훼방꾼 녀석이 살아있다고? 그것도 멀쩡하게??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이건, 으아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악!!
마치 시조새처럼 히스테릭한 비명을내지르며 양피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돌로레스는 두려움에 덜덜 떠는 자매들을 지나쳐서 마법의 종을 세차게 흔들어 대었다.
“칼리우스! 칼리우스! 이 빌어먹을 녀석아. 어서 튀어나오지 못하겠느냐!!”
후우우우웅-!
그녀의 외침에 베란다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서 커텐을 휘날리는가 싶더니 잠잠해지는 것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검은 인영이 무릎을 꿇었다.
“부르셨습니까? 마스터.”
짜악!
성큼성큼 다가간 그녀가 고개가 꺾여나갈 정도로세차게 뺨을 후려쳐 올렸다.
“…퉷. 무슨 이유로 이런.”
이빨을 하나 뱉어낸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이유냐고? 완벽한 일 처리를 자랑한다고 하던 새끼들이 지금 그것을 말이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진정하시고 이유를 말씀해 주시지요.”
“오냐! 그렇게 듣고 싶다면 똑똑히 알려주도록 하마. 네놈들이 3년전에 테세트 평야에서 확실하게 처리했다고 장담했던 후계자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구나? 그것도 어디에서 배워왔는지 배틀 메이지의 기술까지 배워서 벌써 벡워스까지 오셨다고 하더군. 이런 꼴을 보고도 내가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고? 너희처럼 무능한새끼들을 믿은 내가 머저리였지!”
“!!!”
뺨을 맞을 때도 보이지 않았던 격렬한 동요가 검은 인영에게서 나타났다.
“사, 살아있다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마스터! 후계자는 저희가 보는 앞에서 단전을 파괴당했고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만에 하나 살아났다고 해도 주화입마에 빠져서 폐인을 면하지 못할 터…”
“오호라? 그래? 그렇다면 내가 헛소리를 들은 모양이구나. 이 대단한 후계자님께서 벡워스의 용병 길드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불꽃 흉터를 드러내 보이시고는 반역자를 처단하겠다고 선언하셨다는데 말이야. 내 목이 떨어져 나가야현실을 받아들일 셈이냐!!”
“!!!”
충격적인 내용에 칼리우스가 다급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저희야월의 실책입니다. 이번 일은 반드시 저희 손으로 만회를 해 보이겠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과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썩 꺼져! 다음에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녀석의 목을 직접 가지고 와라. 그러지 못하겠으면 바깥에서 버려진 들개처럼 비참하게 죽어!!”
“…존명.”
잔인한 명령에 이를 악물며 대답한 그는 어둠 속에서 그림자로 녹아 들어가며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렇게 화풀이를 하고 나서도 분을 삭이지 못해서 씩씩거리던 돌로레스는, 와인을 물처럼 들이마시다가 유리관이 씌워져 있는 용담꽃을 집어던져 버렸다.
쨍그랑!
“꺄아아아악!!”
자신들의 바로 옆에서 깨져나가는 파편에 비명을 지르면서 서로를 부둥켜안는 카티와 아티.
하지만 자매가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쓰면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던 그녀가 뭔가를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외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저따위 녀석들을 믿고 가만히 있었다가는 악몽이 현실로 변해버릴 거야! 겨우 이따위 일도 맡기지 못하는 빌어먹을 한심한 새끼들 같으니라고. 역시 내가 직접 움직여야만 해!”
돌로레스는 다시 한번 노예들의 시중을 받아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자는 시종을 깨워서 측근들을 불러모으며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
“부군은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
“직속 부하들과 함께 야간 낚시를 가셨습니다.”
“이런 중요한 시국에 낚시라고? 하여튼 세상 속 편하고 미련한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제니아의 중대사가 달린 시기에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거이냐!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가문을 이어나갈 장자를 생산해 드렸는데?!”
“죄, 죄송합니다. 마님!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서 불러올까요?”
터무니없는 소리에도 아랫사람들은 벌벌 떨면서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아니. 일단은 내버려 두시거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찾아갈 수가있도록확실하게 위치를 조사해 오너라!”
“알겠습니다.”
돌로레스가 측근들을 끌고 도착한 장소는 제니아의 섭정 마르텔 대모가 요양하고 있는 별택이었다.
이미 사위를구분할 수가 없는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병사가 대낮처럼 불을 밝혀놓고 철통처럼 경계를 서는 장소.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를 알아본 경비대장이 허리를 직각으로굽히며 큰 소리로 외쳤다.
“어서 오십시오! 마님! 여기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다. 별택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겠지?”
“당부하신 대로 쥐새끼 한 마리도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마법에 대한 대비도 완벽하게 사방에 알람과 트랩, 보호결계까지 빈틈없이 펼쳐놓고 있으니 세상에 감히 누구도 숨어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아주 좋아.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심각해졌으니 더 열심히 일해줘야겠다. 섭정 마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경비 인원을 두 배로 늘려라.검문 절차를 강화해서출입 절차도 완벽하게 통제하고! 만에 하나라도 외부의 소식이 자유롭게 전달되는 일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우리 모두의 운명이 걸려있어. 알아들었느냐?!”
“네, 마님!”
힘차게 대답한 경비대장은 돌로레스에게 옆으로 비켜서 길을 열어주었다.
아무런 제지도 없이 당당하게 별택으로 들어섰지만 하늘이 높은 줄 모르던 그녀의 영향력도 거기까지였다.
내부는 아직 마르텔의 지배권에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마님.”
“흥!”
집사 로니와 뒤에서 도열하고 있는 수십 명의 하인과 하녀들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에서 두려움과 경계심, 그리고 적개심 비스무리한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문의 주인을 몰라보는 무례하고 천박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내가 아슈킬 가문의 백작 부인으로 군림하는 날에는 한 년놈도 남겨두지 않고 소금광산으로 보내버릴 테다!’
그렇게 잔인한 처분을 생각하며 안내를 받아서 마틸다가 있는 병실 앞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출입이 가능한 곳은 거기까지였다.
“죄송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주치의 하인즈님의 허가가 없으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뭐라고?!”
‘이 자식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성질 같아서는 막아서거나 말거나 무작정 쳐들어가서 모조리 엎어버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 나갈 수는 없었다.
“나는 아슈킬 가문의 며느리이자 장차 백작 부인이 될 사람이다! 그런 내가 어머님의 병문안을 하겠다는데 어째서 일개 의사 따위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거지?”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것에 관련한 사항은 모두 주치의님의 지시를 따르라는 대모님의 말씀인지라…”
끼익!
집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응대를 하고 있을 때 병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환자가 계시는 곳에서 대체 무슨 소란을 피우시는 겁니까? ”
50대 후반의 피곤한 눈매를 찌푸려보이는 남자.
“오호라! 호랑이가 제 말을 하니까 나오시는군. 길을 비켜라. 하인즈! 급한 일이 있어서 어머님을 만나봐야겠다!”
“대모님은 지금 막잠드셨습니다. 일단은 돌아가셨다가 내일 오후에 찾아오시지요. 지금은 시간도 너무 늦었습니다.”
“닥치고 어서 비키라고 하지 않았느냐! 감히 하찮은 하급 귀족 나부랭이가 감히…”
흥분하면서 언성을 높였지만 그는 팔짱을 끼고 버티면서 조금도 기세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신분에 상관없이 안 되는 것은 안되는 겁니다. 계속 이렇게 나오신다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군요. 애쉬님에게마님께서 대모님의 신변 안전을 위협한다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