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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화 〉선언(4) (38/429)



〈 38화 〉선언(4)

“아니. 거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빈틈이다!!”

촤아아아악!

뭐라고 항변하려는 그에게 사슬낫이 날아들었다.


“이 자식이 사람이 말을 하는데 비겁하게…”

“야야! 이 새끼 쓸데없이 나불거리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있어. 여유를 주지 말고 공격해! 잠시도 쉴 틈을 주면 안 돼!!”


‘젠장. 들켜버렸나?’

노련한 용병이 지적한 대로 대화로 시간을 끄는 사이에 스테미나를 회복하려고 했지만 수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벌써 20명에 가까운 인원을 쓰러트린 아토스.

사자분신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대활약이었지만 진짜 난관은 지금부터였다.


처음에 달려든 용병들은 대부분이 일확천금에 눈이 먼 삼류들이었다.


대부분이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있거나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공격을 시도한 녀석들이기에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풋내기들을 상대하느라 체력과 내공을 소모하고 나자 진짜로 까다로운 베테랑들이 참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리한의 편으로 넘어가 버린 미스릴 등급의 용병들은 1대1로 붙어도 고전을 면하지 못하는 실력자들.


그야말로사면초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위기 상황이었다.

투타타타타탁!


피유우우우웅!

묵직한 강철곤의 타격으로 연거푸 물러서는 아토스에게 개틀링처럼 생긴 석궁에서 발사되는 쿼렐들이 연속으로 날아들었다.


“크윽!”

금강투합체를 뚫고 들어오는 묵직한 둔통.

‘젠장. 빌어먹을 팀플레이 같으니라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공격만 얍삽하게 해오는 것에 분노한 그는 단전의 내공을 강하게 끌어올려서 폐부를 가득 채웠다.


“으아아아아아악!!”

“커헉?!”

“귀를 막아!”


사자후를 토해내서 주변에 있는 용병들을 무력화시킨 그는 단숨에 포위망을 뚫고 도망쳐서 멀리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푸른 사제복의 여성 클레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살려줘. 클레어! 다른 녀석들이라면 몰라도 너는 내가 처한 사정을 알고 있잖아! 자애의 여신 줄리아님의 힘이 필요해! 일단 체력 회복과 지원 마법을…”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슬그머니 들고있던 프레일을 들어 올렸다.


“…거죠?”

“뭐?”

“아토스님. 도대체 10만 대륙 은화가 얼마가 되는 거죠?”

순식간에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저는조금도 모르겠어요. 아토스님! 10만 대륙 은화래요, 10만 대륙 은화! 줄리아님의 수녀원에서 매일 감사기도를 하며 먹었던 빵과 스튜는 2쿠퍼밖에 되지 않았다고요! 10만 대륙 은화면 그런 감사기도를 몇 개나 살 수가 있는 거죠? 이것이 신인가요? 구원인가요?! 틀림없어요. 이만한 돈이라면 생명도, 윤리도, 천국으로 향하는 티켓마저도 구입할 수가 있을 거라고요! 아아아아! 줄리아 여신님. 저는,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후우우우웅!

“으아아악! 멈춰. 클레어. 혼란에 빠져서 마구잡이로 프레일을 휘둘러대지 마!!”

“괜찮아요. 아토스님! 일단 죽어주시면 제가 소생 마법으로 살려드릴게요!”

“헛소리하지 마. 소생 마법은 성녀님이나 돼야 사용할 수 있잖아!게다가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더니 죽일 생각으로 가득하구만!”

쿵!


“어이쿠, 이런.”

쏟아지는 파상공세에  없이 물러서던 그가 왜소한 체구의 노인과 부딪혀버리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반다크 노공!”

“아닐세. 아니야. 괜찮으이. 아토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허허. 자네도 참,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군.”


갑작스러운 충돌에도 인자한 표정으로 대답한 그는 이렇게 미처 돌아가는분위기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자상한 목소리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마저 들게 해줬다.

“노공! 노공을 믿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비록 현역에서 물러나셨다고 하지만, 우리 길드에서도 손에 꼽히는 백전노장이 아니십니까? 부디 지금 상황을 타개할  있는 지혜를 빌려주십시오.”


이 말에 노인은 난감하다는 듯이 멋쩍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허. 아무래도 자네가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모양일세. 보다시피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뒷방 늙은이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어떻게 당해내겠나? 그저 이렇게 양지바른 곳에서 햇볕이나 쬐고있는 고목나무 같은 신세인데 말일세.”


“끄응!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이만…”


우드드득!

“그런데 말이야. 세상은 역시나 오래 살고 볼 일인가 BOY♂.”


등을 돌리려고 하는데 다시 한번 불길함이 엄습해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자신의 절반도 되지 않는 왜소한 노인의 그림자가 비대하게 부풀어 오르며 태양 빛을 차단해버리는 소름 끼치는 광경.

꿀꺽!

“노, 노공?”


“참으로 미안하이. 하지만 자네도 이해를 해야 해. 10만 대륙 은화라고 하지 않는가? 그 소리를 듣는 순간에 노쇠했던 나의 육체가, 식어버린 차가운 피가, 멈춰가던 심장이 다시 세차게 움직이고 있다네! 오오오오오오!! 이것이 젊음, 이것이 청춘! 끌어올라라 다시 한번. 불타라 나의 영혼! 이것이 바로 회광반조라고 하는 것이닷!!!!”


투콰아아아아아아!!

“이런 미친 새끼들이이이이이이!!!”

모든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돌진해 들어오는 새빨간 폭주 육탄돌격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아토스가 그런 비명을 내지르며 빙글빙글 하늘을 날았다.


‘슬슬 결판이 나겠군.’


다소 어처구니없는 기습에 당하기는 했지만 처음으로그가 얻어맞은 유효타였다.

금강투합체가 무너졌다면 남아있는 것은 연약하기 이를 데가 없는 인간의 육체.


온갖 종류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무적의 방어막이 깨져버렸으니 이제는 쏟아지는 공세를 맨몸으로 버텨내야만 했다.


하지만 아토스는 놀라운 균형감각으로 바닥에 착지한 후에 완전히 부서진 금강투합체를 다시 활성화했다.


지이이이이잉!


“아, 아직도 저런 내공이 남아있다고?”

양손으로 롱소드를 움켜잡으면서 성난 황소처럼 거칠게 씩씩거리는 아토스.


“좋아. 새끼들아. 진짜로 끝장을 내자는 거지? 그래도 나는 한솥밥을 먹는 동료 사이라고 봐줬는데 말이야. 이제는 그딴 거 없어. 모조리 날려버려 주마!!”


후우우우웅!


“읏?!”

마나라는 개념을 전혀 모르는 오리나조차 깜짝 놀랄정도로 사나운 기의 파동이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그만둬. 아토스! 길드 내부에서 무투기를 사용했다가는…”

“닥쳐라. 캐논 이 새끼야! 오늘 일은 전부 다 너 때문이야! 귀족이고 나발이고 네가 중간에서 잘 좀 중개해줬으면 이런 사단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뭐라고?!”

적반하장이 따로 없는 헛소리에 황당해하는 캐논이었지만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우드드드드득!


이를 악물자 시뻘겋게달아오른 육체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졌다.


“야생 개방!”

아토스의 허벅지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바닥이 버텨내지 못하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신체 상태가 변하고 있어?’

처음 보는 변화에 리한이 가늘게 눈을 뜨며 관찰하기 시작했고 오리나는 겁을 먹고 부들부들 떨면서 그를 붙잡았다.

[주군!]

[알고 있다. 대처할  있는 수단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팽팽한 긴장감.


다니엘레보다 한  아래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중압감에 손바닥에서 땀이 스며 나올 정도였다.

“으아아아악! 도, 도망쳐!”

“아니. 그러기에는 이미 늦었어. 무투기를 사용하기 전에 어서 해치워버려!”

“다크 스피어!”

“유성각!!”

“죽어라! 아토스!!”


당황한 용병들이 일제히 퍼부어대는 공격에 얻어맞고도 꿋꿋하게 버텨낸 그는 이마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혓바닥으로 핥으며 입꼬리를 양쪽으로 밀어 올렸다.

“헷!”


“이 자식이…”

쿵!


앞굽이 자세로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맹호-!”

후우우우우웅!

“으아아아아악!”


롱소드를 한 바퀴 회전시키자 아토스에게 달려들었던 용병들이 거대한 힘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선풍파!!”

투와아아아앙!!

엄청난 충격파가 길드 중심에서 터져 나왔다.

폭심지를 중심으로 천장이, 기둥이, 벽이, 주춧돌과 문짝 하나까지도 모두 수천, 수만의 조각으로 산산이 쪼개져서 퍼져나가는 비현실적인 광경.

길드 밖으로 도망치던용병 하나가충격파에 휩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의 허리 아래가 잘려나간 상태로 푸른 하늘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해방감에 해방되어서 쏜살같이 다가오는 지면을 바라보는 것이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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