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선언(3)
터무니없이 무모한 행동.
사방에서 위험한 흉기를 들고 도사리는 용병들이 가득한 장소에서 발설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내용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아토스였다.
“정말로 미쳤습니까?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
“왜? 자신만만하게 떠들어놓고 이제와서 무서워진 것이냐?”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네가 겨우 그까짓 푼돈으로 만족한다면 기회를 주려고 했을 뿐이다만?”
‘푼돈?’
모두의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떠올랐다.
“듣자 하니 감히 나의 자리를 탐내는 어리석은 자가 겨우 2만 은화로 내 목을 사려고 했더군. 거기에 대해서 나의 입장 표명은 다음과 같다.”
잠시 숨을 들이쉰 그가 난간을 내리치면서 외쳤다.
쿵!
“깔보지 마라! 어리석은 녀석들!! 감히 제니아 전체를 다스리는 대 백작 가문의 후계자라는 지위가 그렇게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분노에 가득한 목소리로 일갈한 그가 하늘을 향해서 검지를 들어 올렸다.
“10만 은화다.”
사위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 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나를 도와서 역당들을 쓸어내게협력하는 자들에게는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이 돈을 지불하도록 하지! 뿐만 아니라, 공적에 걸맞은 무훈을 올리는 자에게는 기사의 지위를 내려서 나의 가신으로 받아들이겠다!!”
우오오오오오오오!!!
파격적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는 조건에 용병들이 전율에 가득한 함성을 토해내었다.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리한! 리한! 리한! 리한! 리한!]
그야말로 열광이 도가니.
짝!
하지만 리한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손바닥을 강하게 쳐서 장내의 소란을 가라앉혔다.
“그래도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지.”
천천히 올라간 그의 손가락이 아토스를 향했다.
“내 목을 가져가겠다고 선언한 저 건방진 용병부터 먼저 처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뭐, 뭣이라고라?!”
난데없는 지명에 당황한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리한의 검지가 다시 한번 위로 올라갔다.
“선착순이다.”
“각오해랏! 아토스!!!”
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병 하나가 그의 등 뒤에서 철퇴를 내리쳤다.
예상하지 못한 불의의 일격.
쾅!
“위, 위험하잖아. 새끼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내어서 애꿎은 테이블만 부숴버리고 말았다.
“젠장! 살아남았나?”
“살아남았다니…이게 무슨 짓이냐. 크랑?”
“지금 하시는 말씀 듣지 못했어? 걱정하지 마. 저항하지 않으면 고통없이 보내줄게! 너라면 뚝배기 하나, 둘쯤은 깨져나가도 상관없잖아!”
“그럴 리가 있겠냐. 멍청아!!”
투쾅!
다시한번 날아오는 철퇴를 고함을 내지르며 주먹으로 뚫어버렸다.
꽈드득!
단순하게 무기만 부수는데 그치지 않고 일격으로 턱까지 부숴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력.
하지만한 명을 처리하기가 무섭게 은색의 실타래가 그를 휘감아버렸다.
“강철도 잘라내는 은잠사다. 성불해라. 아토스!”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어쌔신이 그렇게 외치면서 양쪽으로 줄을 잡아당겼다.
우드드드득!
하지만 팽팽하게 조여진 실은 피부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뜨거운 용광로에 닿은 것처럼새빨갛게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감히 누구를 성불시키겠다는 거야?!”
팅! 팅! 팅!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면서 은잠사가 하나씩 끊어져 나갔다.
“젠장, 금강투합체인가? 지원을 요청한다. 누가 이 녀석을 끝장내버려!”
“내가 간다. 아르미스!”
“나도 가세하겠다.”
“흐읍!”
창을 들고 있는 용병 두 명이 달려들었지만 숨을 크게 내쉬며 창끝을 복부로 유도한 그가 양쪽 팔꿈치를 들어 올렸다 세차게 내리쳤다.
투쾅!
창끝이 부러지는 것과 동시에 은잠사도 모조리 찢겨나갔다.
포박에서 풀려난 사나운 짐승.
“후욱! 후욱! 이것들이 진짜로 보자 보자 하니까…”
씩씩거리면서 노려봤지만 용병들의 공격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아직 멀었다. 아토스! 다음에는 내 차례다!”
“쉴 틈을 주지 마. 먼저 쓰러트리는 놈이 임자다!”
“공격! 공격!!”
“으아아아아악! 이 개새끼들아!!”
히스테릭한 비명을 질러대며 아토스가 달려드는 용병들을 상대하고 있을 때, 리한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홍차를 마시며 그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후후후. 제법 잘 싸우는군.”
“손님! 이런 식으로 용병들을 자극하시면 곤란합니다. 아아! 길드가, 길드가…”
용병들의 난투에 말려들어서 박살 나는 건물을 보며 캐논이 동동 발을 굴렀다.
“형태가 있는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이지 않느냐?.”
“손님?!”
“농담이다. 후계자 자리를 찾고 나면 수리비를 보내주도록 하지. 생각나면 말이야. 하지만 우선은 시답잖은 일을 도모하는 녀석들부터 처리해야 하겠군.”
“네?”
“오리나! 다치지 않게 옆으로 가까이 와라.”
“네, 넷! 주인님.”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살벌한 난투에 넋이 나가 있던 그녀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리한의 곁으로 왔다.
“슬슬 나오지 그래? 너희들은 약속보다 눈앞의 이익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
“젠장, 은형 상태가 들켜버렸어!”
“죽어라. 후계자!!”
“네놈의 목을 내놓아라!”
그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자 모습을 드러낸 암살자들이 기습을 시도해 왔다.
“꺅?!”
[임페리얼 가드]
[네, 폐하!]
피유우우우우!
투쾅!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조그마한 무엇인가가 달려드는 무리와 충돌했다.
“크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암살자들.
지이이잉!
가볍게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조그마한 정육면체의 금속 상자들이 리한 일행을 호위하는 것처럼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마, 마나타이트 큐브?”
“설마 배틀 메이지였다는 건가?”
“젠장! 빌어먹을 아토스 녀석이 뭐가 100일 내공밖에 없는 가짜 귀족이라는 거야! 싸이코키네시스를 저렇게 자유자재로 사용하다니 터무니없는 대마법사잖아!”
당황하는 암살자들과는 다르게 그는 피크닉을 즐기는 것처럼 여유로운 모습으로 차의 향기를 음미했다.
“좋은 다즐링 차로군. 네가 타온 것이냐? 캐논.”
“네,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자신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말하자 이를 악물며 뒷걸음질을 쳤다.
“큭!”
“아쉽지만 배틀 메이지를 상대로는 승산이 없어. 일단은 여기에서 물러…헉?!”
물러서던 암살자 하나가 바위처럼 단단한 무언가 부딪혀버리자 당황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후우우우우웅!
촤아아아악!
체인을 휘감은 거대한 참마도가 휘둘러지자 기습을 시도한 3명의 암살자의 목이 단숨에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엄청난 괴력과 깔끔한 솜씨.
족히 2m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체구에 아름드리나무처럼 두껍고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붉은 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여성 용병이 그의 앞으로 접근해 왔다.
“틀림없이 네가 적안거검의 브리카겠군.”
“헷! 단번에 알아봐 주시니까 영광이외다.”
리한의 말에 가볍게 콧등을 훔치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너는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 내게 충성을 바치겠느냐, 아니면 녀석들처럼 내 목을 노려보겠느냐?”
“하하하하! 섭섭한 소리 마십쇼. 후계자님. 2만 대륙 은화도 물론 적은 돈은 아닙니다만 어떻게 일생일대의 기회와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 엉덩이가 썩어가는 와중이었습니다. 충성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쿵!
무릎을 꿇은 그녀가 참마도를 바닥으로 꽂으면서 충성맹세를 했다.
“너희들은 어떻지?”
이 질문에 브리카를 따라온 두 명의 용병도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후계자님!”
두 사람의 이름은 푸른 수염의 가이슨과 철완준족의 브롱크.
모두 캐논이 가장 먼저 추천했던 자들로 아토스를 제외하면 벡워스 길드에서 탑 3안에 들어가는 실력자들이었다.
이들의 합류로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지던 주도권은 리한에게 완전히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허억!허억! 허억! 허억! 이런 비열한 자식들아. 그래도 우리가 같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동료인데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돌아설 수가 있어!”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씩씩거리는 그가 이를 갈며 물었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팀플레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새끼가. 네 녀석이 얌체처럼 돈 되는 의뢰만 독식해버리는 바람에 우리가 얼마나 큰 손해를 입은 줄 알아?”
“맞아, 맞아! 그렇지 않아도 언제 한 번 밟아줘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걸렸어!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