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과부하(2) (26/429)



〈 26화 〉과부하(2)

“왜 그러는 거냐?”

“몰라요!”

뺨을 부풀리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스테이크를 신경질적으로 난도질했다.

리한은 그런 귀여운 투정을 보고서 자신도 모르게 피식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훗. 뭐, 아무래도 좋아. 그것보다 먼저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논의할 거리가 있는데 말이야.”


‘논의할 일이라고?’

화는 풀리지 않았지만 대번에 귀가 솔깃해졌다.


“크흠. 무슨 일이신데요?”


“내일부터는 어떻게 지낼 셈이냐?”

“네?”

“향후 계획을 물어보는 거다. 이대로 계속 나와 함께 지낼 수는 없지 않느냐? 가족이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의지할만한 친척을 찾아간다거나, 고향으로 내려간다던가, 아니면 여기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고 말이야.”


조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에 그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달그락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지는 주머니.

“마커스씨에게 가져온 돈은 이게 전부다. 여기에서 절반을 주도록 하마.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는 모르겠지만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군.”

자상한 말투였지만 오리나에게는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저, 저보고 지금 떠나라는 말씀이신가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자신이 결정하라는 소리지.”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우리가 어떤 사인데!”


“우리가 어떤 사인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스란히 되물어왔다.

쿵!


“그거야 당연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뭔가를 주장하려고 했지만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하고 거기에서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그러고 보니까 리한과 나는 무슨 사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지?’

여관에 들어올 때 남매라고 소개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짜 관계일 리는 없었다.

비록 3년 동안 같은 지붕 아래서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

오히려 그동안 정박아 취급하면서 학대했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기억을 찾고 나서도 이렇게 대해주는 것은 천사 같은 마음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남아있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백작 가문에서 약속한 현상금의 지분을 주장하는 정도였지만, 아무리 오리나가 철이 없다고 해도 뻔뻔하게 그런 요구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리한이 자신을 경멸해버리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얼어붙어 있는 사이.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머. 저기 좀 봐. 아무래도 말괄량이 하나가 주인님에게 버려지는 모양인데?]

[호호호호. 당연한 일이지. 품위 없는 촌구석 시골뜨기가 어떻게 저런 멋진 신사분을 만족시켜 드릴 수가 있겠어?]

[혹시 새로운 하녀를 구하시지는 않을까? 남은 자리가 있다면 꼭 한번 지원해보고 싶은데.]


이렇게 들려오는 이야기가 리한이 사는 세계가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해주면서 그녀를 주눅 들게 만들어버렸다.

“왜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당당하게  눈을 보고 말해라.”


“그러니까 그게…”

리한이 재촉했지만 대답할 말을 찾아내지 못하고 소심하게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버리고 말았다.

“뭐라고? 전혀  들리는군.”

“읏.”

답답한 모습에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던 그가 한숨을 뱉어내었다.

“좋아.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면 거기까지겠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돈의 절반은 너의 몫이다. 내일 아침에 체크아웃이 끝나면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라.”


“!!”

수치심을 참지 못한 그녀는 테이블에 있는 주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호호호호! 저것 보라지. 뒤뚱거리면서 도망치는 꼬라지가 고삐 풀린 염소 새끼가 따로 없네.]


[그래도 창피한 줄은 아는 모양이지?]


[꼴 좋다. 추저분한 촌년 같으니라고.]

파지지직!

리한은 피곤한 표정으로 자신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마사지했다.

그런 그에게 두 명의 여성이 가까이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혹시 저희와 함께 합석하지 않으시겠어요? 보아 하니까 비천한 계집 하나 때문에 속이 상해버리신 모양인데.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위로해드릴게요.”

“맞아요. 세상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어디 한둘인가요? 이것도 인연인데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면서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봐요.”

화려한 치장과 사치스러운 옷차림.

팔짱을 끼고 노골적으로 가슴을 과시해오며 유혹했지만 리한은 기가 찬다는 듯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려버리고 말았다.

“하하하하. 한스나 매기가 했던 말이 옳았군.”

“네?”

“줄을 서서 청혼해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말이야. 이렇게 주제를 모르는 것들보다도 걔가 훨씬  나아. 도시 여자라는 게 기껏해야 쭈글쭈글한 피부와 못생긴 얼굴을 화장 떡칠로 가려놓은 발정녀들 뿐이라면 말이야.”

“지, 지금 저희에게 하시는 말씀인가요?”

“실례합니다. 레이디 분들.”


리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뭔가 오해가 있으셨던 모양인데. 제가 한숨을 쉬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마스터 코어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지쳐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치면 지칠수록 성욕이 끓어오르더란 말입니다. 마치 인간 여성과의 성교를 요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쏟아내자 살짝 겁을 먹은 여성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제 하녀는 제가 교육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밤이 부디 고요하고 평화로우시기를…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본즈(bobonnes)”

매력적인 목소리로 우아하게 작별인사를 한 그는 여인들의 손등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고 그곳을 떠나갔다.




****



그 무렵.

오리나는 마치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우에에에에엥! 리한은 바보! 멍청이~~”


다 큰 처녀가 뱉어내기에는 너무나 유치하고 저렴한 단어들.

커다란 눈물방울 뚝뚝 흘려대면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마주치는 사람마다 기겁하며 물러서고 있었다.

“괜찮니? 애야?”


“안 괜찮아요! 으아아아아앙!”


“잠시만 기다려! 그쪽으로는 가지 않는 게 좋은데…에잉, 쯧쯧쯧. 젊은 애가 어쩌다가 저렇게.”

친절하게 말을 건넸던 노인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나아가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향하는 장소는 레드 벨트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위험한 슬럼가였다.

평소였다면 주변의 분위기가 살풍경하게 바뀌어나가는 것을 보고 발길을 돌렸을 테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며 나아가다보니 이런 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위험한 분위기를 간신히 인지하고 울음을 멈췄을 때는 이미 부랑자들이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접근해오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었잖아? 어서 여기에서 벗어나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 걷는 속도를 높였지만 따라오는 사람들도 뒤질세라 속도를 높이며 뒤따라 왔다.


완전히 겁에 질려서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막다른 구석에 몰려버린 오리나.

“헤헤헤헤. 귀여운 메이드 아가씨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는 대체 무슨 일이래?”

“여자다. 여자다. 여자다. 여자다!”


“왜 그렇게 울어? 누가 울렸어? 걱정하지 마. 나도 그렇고 우리 아들 녀석도 우는 소리를 굉장히 좋아하거든. 히히히히.”


샛노란 이빨을 드러내면서 소름 끼치게 웃어대던 남자는 자신의 바지에 손을 넣어서 부풀어 오른 물건을 주물러댔다.


“요, 용서해주세요. 아저씨!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어요. 얌전히 돌아갈 테니까 제발  번만 살려주세요!.”


양손을 싹싹 빌면서 용서를 구했지만 서로를 쳐다보면서 웃음만 터트려 댔다.


“살려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가씨. 우리는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냥 조그마한 위로가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일 뿐이지.”

“맞아. 맞아. 히히히히. 그냥 그 꼴릿한 몸을 사용해서 위로해주면 된다고. 싫으면 우리가 밤새도록 위로해줘도 되고 말이야. 흐히히히히.”

“아이, 아이를 낳아라…”


“!!!!!!!”

침이 뚝뚝 떨어지는 더러운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다가오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갑작스럽게 날아온 무언가가 오리나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동시에 들려오는 부랑자들의 당혹스러운 목소리.

“뭐야? 너는.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나서…으아아아악!!”

“페클? 히이이익?! 주, 죽었잖아. 대체 무슨방법으로 설마, 마법 크아아아악!!”


“히에에엑?! 사, 살려주십시오.나으리.제발 불쌍하고 딱한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십으아아악!!”


“모, 모두 도망쳐! 괴물이다. 크아아아악!!”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