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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promotion(7) (24/429)



〈 24화 〉promotion(7)

‘설마 왕도 로즈풀에서 유행하는 옷이 촌스럽다면 테르할 제국에서…?’


그제야 눈앞에 있는 손님이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이유가 설명이 되었다.

“대, 대단한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전부 다시 가지고 올 테니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필요 없다. 어차피 이런 가게에서 제대로 된 차림새로나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야. 그냥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신사복이나 가지고 오도록. 그래야 내가 창피를 당하지 않을  같군.”


“읏, 아, 알겠습니다…”


완전히 깔보는 시선에 주눅이 들어버린 르빌은 어깨를 힘없이 떨어트리면서 물러가 버렸다.

반면에 리한은 리한대로 돌발적인 상황을 대처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휴우. 베르가일 스타일이 이렇게 오래 유행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 다행스럽게도 좋게 해석해줘서 살아난 모양이기는 한데.’

그가 자신만만하게소개했던 옷은 위대한 여행가 톰 베르가일이라는 사람이 플래시 그라운드라는 미탐사 구역에서 가지고 돌아와서 유명해진 패션이었다.


겨울왕국의 왕족들이 입는 옷답게 모피의 따듯하고 풍성한 느낌을 잘 살려내어서 품위와 관능미가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귀족들에게 베스트 셀러로 팔려나간 그의 탐험기와 함께 오랫동안 꾸준하게 사랑을 받았다.


식상하다고 여겨질 무렵에는 커스터마이즈와 리폼으로 재해석되어서 다시 나타나는 좀비 같은 패션.

그래서 사교계에 대한 지식이 3년 전에서 멈춰있는 리한에게도 낯이 익은 스타일이기는 했지만 구태여 무안을 준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왜냐면 이 패션은 우려먹어도 너무나 우려먹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왕도 로즈풀에서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족 10명 중에서 2~3명은 너무봐서 지겹다는 소리부터 튀어나오는 게 현실이었다.

유레시아 대륙의 패션을 선도하는 테르할 제국의 사교계에서는 아예 아예 이 스타일을 금지 품목으로 지정해버렸을 정도.


아무리 유행했기로서니 이미 3년 전부터 이런 소리가 나오고 있는 옷을 선선히 받아줄 수는 없었다.

‘어차피 허풍을 떨려고 왔으니까 가능하면 세게 하는 편이 낫겠지.’

그리고 이 선택은 생각보다 제대로 르빌에게 먹혀들었다.


‘이런 바보 멍청이 같으니라고! 손님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못 알아보고 하필이면 베르가일 스타일을 추천하다니. 젠장, 이럴 바에는 차라리 혹평을 감수하더라도 오리지널 디자인을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쿵! 쿵! 쿵! 쿵!

벽에다가 머리를 박으면서 한참 동안 후회를 쏟아내던 르빌은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여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돌아왔다.


촤르르륵-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내는 거치대의 행렬.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 가게에서 취급하는 가장 좋은 정장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역시나 비싸군.’

슬그머니 가격표를 체크해 보니 역시나 고급품답게 마커스에게 가져온 돈으로 지불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하지만 리한이 무리하게 귀족 행세를 했던 이유 중에서 하나는 이것이었다.


돈이 없다면 외상으로 치르면 그만.

시시콜콜하게 돈을 들고 다니는 귀족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데다가 무전취식을 해도, 약탈하듯이 가지고 나와도 아래 계급은 불만을 토로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사악하기 이를 데가 없는 완전범죄.

신분제도 만만세였다.

하지만 리한은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려나가는 것을 보고서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흠. 그런 소리를 듣고 나서도 이렇게 많은 옷을 가지고 오다니. 보아하니 네놈은 나에게 재단사로서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인 모양이구나?”

“네?! 무, 무슨 소리십니까? 아니, 아닌 것은 아닙디다만 그게 그러니까…”


속내를 들킨 르빌이 당황해서 횡설수설했다.


“후후후후. 재미있군. 재미있어. 좋아! 그렇게 나오신다면 어디 솜씨한 번 구경해 보실까?”

“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내가 지금 한가하게 농담이나 하는 것으로 보이는 거냐?”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쓰자 손사래를 마구 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않을겁니다!”

“그래? 굉장히 자신만만하군.”

재미있다는 듯이 말한 리한은 푹신한 의자에 거만한 자세로 다리를 꼬고 앉았다.


“감히 이런 시골 촌구석에 있는 재단사가 나를 만족시키겠다고 하다니 말이야! 좋아. 어디 한 번 마음대로  봐라. 대신에 실패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만들었다가는 살아있는 것 자체를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단단한 엄포에 르빌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좋아. 그렇다면 시작해라!”

이 말이 떨어지고  2시간이 경과되었다.

종업원들은 점장이 하는작업을 손에 땀을 쥐면서 지켜보았고 어느새 소문이 퍼져나갔는지구경하는 인파가 몰려들어서 가게 주변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르빌은 필생의 역작을 만들어내는 장인처럼 집중했다.

단순하게 옷차림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자잘한 장신구부터 메이크업에 향수까지. 그야말로 전심전력을 다해서 리한의 스타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바꿔나갔다.


‘패션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심오한 구석이 있었군.’


그의 솜씨는 기억 속에 노블 마크의 재단사들과 비교해도 절대로 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마스터 코어의 힘만으로 후계자 시절을 재현하려고 했지만, 어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내서 전문가의손길로 다듬어나가는 과정은 리한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수군수군.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구경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우와. 이 가게에서 저렇게 꾸밀 수도 있었던 거야?]

[특별한 손님이니까 그렇지. 귀족 나리라잖아. 귀족 나리!]

[정말로 대단한 솜씨야.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는데 완전히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어.]


[젠장, 르빌녀석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독차지하다니!]

[굉장해! 너무 굉장한 솜씨야! 오늘부터 나는 존경하는 롤 모델을 점장님으로  거야!]


갤러리 숫자는 갈수록 늘어나서 이제는 르네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감탄과 동경, 시기와 질투까지 다양한 감상을 늘어놓으면서 일희일비하는 사람들.


하지만 리한은 이렇게 쏟아지는 관심이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 근처에 사는 녀석들은  일이 없는 건가?’

그러는 와중에 마침내 작업을 끝낸 르빌이 손바닥을 털어내었다.


“이건, 이건…틀림없이 제 인생 최고의 역작입니다. 도련님 덕분에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열정과 청춘을 되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뭐라는 거야?’


자신이 고맙다고 말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오히려 거꾸로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감사를 표하는 바람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아무리 높은 기준으로 엄격하게 평가를 한다고 해도 충분한 합격점을 받아내었기 때문에 솔직하게 성과를 평가해주기로 했다.


“흐음. 그래. 내 예상이 빗나갔구나. 썩 나쁘지 않은 솜씨였다.”

우오오오오!


이 말을 뱉어내자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르빌의 실력이 귀족에게 인정을 받았다!]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고! 젠장!]

르빌! 르빌! 르빌! 르빌! 르빌!

“???”

일생일대의 승부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쟁취해내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처럼 점장의 이름이 연호했고 그에게 몰려들어서 헹가래를 쳐댔다.


쏟아지는 축하 인사와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르빌.

도무지 이해할 수 광경에 리한은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관리하는 애를 썼다.


‘얘네 대체 왜 이래? 몰라 무서워.’

이런 감상과는 별개로 계획은 대성공이었다.

장인이 평생의 역작이라고 장담했는데 어찌 결과가 나쁘겠는가.

이제는 누구도 그의 겉모습을 보고 귀족이 아니라고 의심하지 못할 터였다.

화사한 붉은 정장 차림을 베이스로 두고 요구한 대로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고 품위와 격식을 모두 갖추는 차림새.


문제는 역시나 가격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가격을 신경 쓰지 않고 작업해버리는 바람에 옷의 원단만으로도 은화 100개의 값어치를 넘어갔으며, 거기에 최고급 가죽으로 만든 벨트며 구두, 금색 수실과 은으로 만든 버튼과 장신구까지 눈이 돌아갈 만한 요금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혹시라도 돈을 내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살짝 불안해져서 그런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금전을 요구해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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