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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promotion(3) (20/429)



〈 20화 〉promotion(3)

“서, 설마. 엄마하고 아빠인 거야?”


“보지 마. 오리나!  사람은 이미 틀렸어. 소란을 피워서 다른 녀석들까지 불러들이기 전에달아나야 해!”


“하지만 두 사람을 이렇게 내버려 두고 어떻게 …”

“정신 차려! 이미 죽어서 언데드가 되어버린 사람들이야. 너까지 저렇게 변하고 싶어?”

“그래도, 그래도…”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그녀를 보다 못한 리한이 억지로 고개를 잡아 돌렸다.

“?!!”

숨이 닿을 듯이 가까운 거리.

“원망하고 싶으면 원망해도 좋아. 하지만 지금은 나만 믿고 따라와!”


“네엣!!”


얼빠진 표정으로 대답하는 오리나의 손을 붙잡고 정신없이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에 동쪽 하늘에서 아침 해가 밝아오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간신히 언데드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작은 연극이 막을 내렸을 뿐이지만.

“허억, 허억, 허억. 이제는 쫓아오지 않겠지.”

“저, 저기요!”


오리나가 그를 불렀다.

“왜 그러지?”


“손이…”


‘손?’

“아,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까 계속 잡고 있었군. 미안하다.”

“앗! 그, 그게 아닌데. 아아.”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놓아주었는데 어째서인지 상당히 아쉬워 보이는 탄성을 뱉어내었다.

‘이걸 성공했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


퍼스트 선이이런 연극을 꾸며낸 데는 2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녀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것.

자고 일어났더니 마커스와 부모님까지 죽어버린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언데드 무리의 습격이라는 그럴듯한 이벤트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도 또 하나는 그런 역경을 함께 헤치고 나오면서 백치에서 멀쩡해진 자신에 대한 신뢰도를 올리려는 속셈도 있었지만, 효과가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에는 보여주는 반응이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이런 반응이 나와야 정상 아닌가? 왜 이렇게 어려워하는 거지? 설마 연극이라는 것을 알아챈 건가?’


실제로는 효과가 너무 지나쳐서 나타난 부작용이었지만 그런 미묘한 심정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인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퍼스트 선이었다.


‘한스와 매기의 시체를 좀비로 위장해버린 것이 실수였을까? 어쩌면 혈육이라서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위화감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폐하.]


맹렬하게 사고를 회전시키고 있을 때 네비로스가 사념파를 통해서 그를 호출했다.

[무슨 일이냐?]


[인간들이 사는 도시에 근접했습니다.]


‘마침내 벡워스에 도착한 건가?’

너무 깊이 생각하느라 해가 중천에 도달할 때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여기부터는 저의 무리가 호위해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을 사과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평범한 벌레처럼 보여도 이렇게 많은 무리가 접근한다면 인간들도 알아차리겠지. 여기까지 고마웠다. 이만 근거지로 돌아가도록 해라.]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도 폐하께서 위험한 인간 사회로 들어가시는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속담 중에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라는 말이 있더군. 믿어라. 네비로스. 나는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더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하다 못해서 저의 최정예 측근들만이라도 데려가 주십시오.]

이 대답과 함께 12마리의 블랙하드비틀이 퍼스트 선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들은 임페리얼 가드가 아니냐? 너의 무리에서도 가장 강력한 전사들을 호위로 붙여주다니. 괜찮겠느냐?]


[폐하의 안위를 생각하면 오히려 모자랄 지경입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원의 모든 백성이 당신이 무사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명심하겠다. 네비로스.]


아쉬운 작별인사를 마친 퍼스트 선은 자신의 밑으로 배속된 임페리얼가드의 전입신고를 받았다.

[앞으로는 저희가지켜드리겠습니다. 폐하!]

[그래. 잘 부탁한다. 그리고 전입하자마자 미안하지만 너희들 중에서 절반이 맡아줘야 하는 임무가 있다.]


[사양하지 말고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좋아. 너희들이 해야 하는 일은 먼저 벡워스에 들어가서 ‘어떤’ 소문을 조사해오는 것이다. 사소한 정보라도 좋아. 시중에 떠도는 소문이나 풍문, 마을아낙네들의수다라도 상관없다. ‘어떤’것에 관련되어 있다면 닥치는 대로 수집해서 나에게 가지고 와라.]

[네, 알겠습니다!]

리한의 명령을 받은 6마리의 임페리얼 가드가 벡워스로 향했다.

[나머지 인원은 비활성 모드로 대기하고 있도록.]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그렇게 대답하고는 오리나가 알아채지 못하게 날아와서 리한이 펼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야생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거의 10년 동안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비활성 모드.

물론,그렇게까지 대기시키는 일은 없을 테지만 만약에 사태에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무력이 있다는 것은 든든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리한…님! 저기를 보세요. 드디어 도시가보여요! 벡워스에 도착했어요!”


지칠대로 지쳐있던 오리나는 도시를 발견하고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퍼스트 선의 감상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여기가 생과 사를 나누는 경계선인가?”

“네?”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일단은 간단하게 식사부터 해서 허기를 채우고 난 후에 머무를 곳을 결정하도록 하지.”


“으, 응. 아니. 네!”


퍼스트 선은 인간의 영역에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더 원의 지배자라는 과거를 버리고, 리한 폰 아슈킬이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과 사.

과거를 무덤에 묻고 새로운 삶과 미래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그 첫 번째 스텝으로 그는 과거의 기억을 뒤져서 벡워스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었다.

한스 일가의 고향이었던 아레스터와 마찬가지 휴크 남작령에 소속되어 있는 항구도시.


지방의 도시들부터 오팔 왕국의수도 로즈풀까지 이어지는 베르디강에 위치한 포구 중에 하나로서, 세금을 실어나르는 징수선과 상인들이 왕래하는 중계지로 상공업이 발전한 중소도시였다.

‘모든 도시는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어. 떠돌이나 부랑자, 주정뱅이와 범죄자들이 우글거리는 무법지대가 레드 벨트. 서민 대다수와 주민들이 생활하는 구역인 옐로우 벨트. 그리고 부르주아들이 차지한 번화가 그린 벨트. 마지막으로 귀족 특구 로얄 벨트.’

리한의 원래 신분을 생각하면 로얄 벨트로향하는 것이 마땅했지만정체를 숨겨도 모자랄 판에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구역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지역은 그린 벨트까지가 한계다.

이 지역은 경비병들이 24시간 순찰을 돌아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은 편에 속했다.

‘쓸데없는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일단은 그린 벨트로 향해야겠군.’


도시의 입구에 걸려있는 지도를 확인한 리한은 오리나와함께 신시가지로 향했다.

꼬르르륵-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반나절을 걷고 뛰어다니는 바람에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식사시간을 알렸다.

“일단은 영양보급, 아니 요기부터 때우도록 하지.”

“하지만 가지고 있는 돈이  푼도 없는데…”


“내가 챙겨왔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리한이 돈주머니를 꺼내서 흔들어 보이자 오리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대체 어디에서  거예요?”

“마커스씨가 언데드로 변하기 전에 받아왔지.”

“귀족도 도둑질을 해요?”

순진한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릴 뻔했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한테는 쓸모가 없을  같아서 말이야. 그리고 제니아까지 무일푼으로 갈 수도 없지 않으냐?”

“그건 그렇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살짝 실망한 눈치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사람은 음식을 파는 노점의 가게로 들어갔다.

자신들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가게 주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엄청난양을 주문하고 요리값을 선불로 내자 태도를 180도 바꾸어서 음식을 내왔다.


“주문하신 음식나왔습니다!!”

쿵!


리한의 앞으로 산더미처럼 쌓여서 올라가는 음식들.

“꺅?! 서, 설마 그것들을 전부 혼자서 드실 생각이세요?”


“그럴 작정이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냐?”


“진짜로 먹을 수 있어요? 성인 남자 열 명이 달려들어도 어림없을 것 같은데.”

“어떤 집안에서 3년 동안 지독하게 굶주려지는 바람에 말이야. 적어도 이 정도는 먹어줘야 잃어버린 세월을 만회할 수가 있을 것 같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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