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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블러드 머니(7) (17/429)



〈 17화 〉블러드 머니(7)

마치 바퀴벌레처럼 질긴 생명력이라고 할까.


게다가 왼쪽 눈에 있는 불꽃 흉터를 제외하면 어떤 상처를 입어도 금방 나아버렸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이상적인 일꾼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다만 워낙에 힘과 체력이 약하고 지적능력이 떨어져서 복잡한 일을 시킬 수가 없다는 치명적인 하자가 존재했지만.

한스는 이것이 정박이가 귀족이라는 특별한 존재로 태어났기에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당황하지 말자. 제까짓 놈이 무슨 재주로 도련님의 정체를 알아내겠어? 앞머리에 가려져 있는 불꽃 흉터를 제외하면 어떤 식으로도 연관 지을 수 없다고. 우리 가족밖에 모르는 비밀이란 말씀이야.’


이런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순식간에 씻겨져 내려갔다.


“허허허. 그렇게 대단한 집안의 도련님께서 실종되다니 세상에  흉흉한 일도  있군요.”

“이를 말입니까?”


마커스가 맞장구를 쳤다.


“듣자 하니까 3년 전에도 죽었다고 생각해서 수색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섭정 마르텔님이 요구해서 재개했다더군요. 죽기 전에 손주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소원이라는데 이룰  없는 꿈이니까 안타까울 뿐이죠.”


“호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처음 듣는 내막에 한스의 귀가 솔깃해졌다.

“그런데 이룰 수 없는 꿈이라니 말씀입니까? 혹시 어디에서 시체라도 발견되었는지…”

살짝 걱정스러워져서 물었다.

“하하하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여기에서만 하는 이야기인데 시체를 가져오면 상금을  배로 주겠다고 하더군요. 소위 말하는 후계자 다툼이라는 거겠죠.”


“!!”

한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두, 두배라면 2마아아악?! 대체 누가 그런 돈을…”


“알 필요 있습니까?”


이 말을 뱉어낸 순간 모래시계에 남아있던 마지막 모래가 떨어져 내렸다.


“어차피 여기에서 죽을 녀석이 말이야.”

마커스의 눈초리가 삽시간에 차갑게 변했다.

“!!”

당황한 한스가 일어서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다가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여보…”

“매기?”


현기증에 시달리며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시선을 향하자 쓰러져 있는 아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살려주세요. 여보. 우으으으윽!”


“제기랄. 대체…커헉!”


두 사람이 동시에 피를 게워내었다.

“후후후.  번이나 사용하는 약물이지만 자로 잰 듯이 정확한 타이밍이 예술이란 말이야.”


“우, 우리한테 무슨 짓을  거냐?!”

“아까도 이야기했잖아. 독이라고, 독. 사람이 이래서 욕심을 부리면 안 돼. 우리 귀하신 후계자님처럼 얌전하게 주는 것만 받아먹었으면 아무런 탈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화르르륵.

본색을 드러낸 마커스가 부지깽이로 숯덩이로 변한 장작을 부서트렸다.

“후계자님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흥! 여전히 시치미를 떼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저기 말이야. 나름대로는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고? 내가 어디서부터 너희를 의심하고 따라왔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다, 당신이야말로 착각하고 있어! 쟤는 그냥 머저리 백치일 뿐이야! 지금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 거야. 우리 뒤에 누가 있는지 알, 큭!”

마지막 오기로 허풍을 떨었지만 가까이 다가온 그가 한스의 손을 사뿐히 즈려밟았다.

“처음부터라고.”


“…뭣?”


“바운티 헌터를 오래 하다 보면 말이야. 반드시 수배서가 처음 붙는 마을에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하거든. 도둑이 제 발을 저린다는 말이 괜히 나와? 꼭 켕기는 구석이 있는 녀석들은 알기 쉽게 돌발 행동을 일으키더라고.”


“서, 설마!”


“맞아. 네놈이 광장 한복판에서 놀라서 자빠지려고 할 때부터 이미 뒤를 밟고 있었다는 거야. 누가 몰래 엿듣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모르고 가족들에게 나불나불 털어놓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알아? 게다가 이렇게 기막힌 타이밍에 나타나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의심해보려고 하지는 않았던 거야? 세상 순진한 녀석 같으니라고.”


“!!”


처음부터 완전히 마커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사실은 깨달은 한스는그제야 자신이 완전한 외통수에 몰려버렸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나리! 상금은 모두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하다못해 저 하나만이라도…”

곧바로 태도를 바꿔서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새빨갛게 달구어진 부지깽이를 들어 올렸다.


치이이이익!

“으아아아아아악!”

살을 태우는 냄새가 매캐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미안하지만 말이야. 나는 그냥 네놈이 처음부터 아주 싫더라고.”

“나리!!”


빠각!


부러진 목이 힘없이 늘어져버렸다.

뒤이어서 매기까지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마커스는 두 사람의 시신을 적당히 치워버리고 세상 물정 모르고 잠들어 있는 오리나에게 다가갔다.


“후후후후. 고년 참 보면 볼수록 깜찍하게 생겼단 말이야. 일부러 수고를 들여서 살려놓은 보람이 있어.”


수면제를 먹은 그녀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덮어준 담요를 다시 한 번 무방비하게 걷어차 버리고는 치마까지 밀려 올라가면서 드러난 미끈한 다리.


그 모습에 마커스는 입맛을 다셨다.


아마도 밤새도록 무슨 짓을 당해도 일어나지 못할 터.


아랫도리가 부풀어 오른 그는 허겁지겁 벨트를 풀어헤치려고 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움직임을 멈췄다.


“아- 아, 아!”

한스 부부가 살해당하는 모습에 겁을 먹고 몸부림치는 정박이.


“어이쿠, 이런! 메인요리를 뒷전으로 하고 디저트에 정신이 팔려버리다니 나도 아직 멀었군. 일단은 일부터 끝내놓고 즐길 것도 마저 즐겨야지.”


일가를 미행하면서 알아낸 정보만으로 소년이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라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바운티 헌터로 활동하면서 다져온 직감으로 판단하기에는 굉장히 예감이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원래 이런 일을 하면서 너무 기대해서는 안 되지만…’

대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흥분으로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위이이이이잉!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에 근처에 있던 벌레들이 얼굴 주위로 날아오르면서 그를 귀찮게 했다.

“젠장! 중요한 순간에 이게 뭐야?”

“아- 아- 아-”


신경질적으로 손사래를 치는 마커스를 본 정박이가 기겁하면서 물러섰지만 목줄이 나무에 묶여있어서 얼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라. 요놈. 지금부터 네놈의 정체를 백일하에 드러내 주마!”

발버둥 치는 소년을 붙잡은 그가 품속에서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클리닝!”

촤아아아악!

허공에서 생겨난 물이 신체를 감싸면서 생김새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지저분했던 모습이 순식간에 씻겨져 내려갔다.

머리끄덩이를 잡아챈 마커스는 품속에서 현상 수배서를 꺼내서 두 얼굴을 꼼꼼하게 대조했다.


살이 너무 빠져서 수척하기는 했지만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인상 특징.

결정적으로 왼쪽 눈의 흉터가 그대로 복사해서 옮겨놓은 것처럼 똑같았다.


“후후후후.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마커스는 얼굴을 감싸 쥐면서 미친 듯이 웃음을터트렸다.


“정말이군. 정말이야! 3년 동안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던 백작 가문의 귀하신 후계자님이 이런 촌구석에서 백치로 썩고 있었어. 대체 누가 알았겠는가! 드디어 나에게도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짓는구나! 감사합니다!도련님. 덕분에 지긋지긋한 떠돌이 생활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겠군요.”


“응아아악!”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정박이를 끌어안았지만 순식간에 이빨을 드러내서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콰직!

“아악! 이 녀석이 감히.”

살점이 뜯어져 나가자 분노한 마커스가 주먹을 휘둘렀다.

퍽!

쿵!


힘없이 나가떨어진 소년.

주르르륵.

돌부리에 머리를 부딪쳐서 피를 흘렸다.

“네놈이 어서 빨리 죽여달라고 용을 쓰는구나. 오냐! 원하는 대로 모가지 아래쪽을 가볍게 만들어 주마.”


챙!


그렇게 외치고는 허리에 있는 단검을 뽑아 들었다.

“캬아아아아!”


상처를 입은 소년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사납게 위협했지만 체격 차이로 가소로워보일 뿐이었다.


“잘 가라. 후계자!”


후우우웅!

퉁!


하지만 순조롭게 호선을 그리며 나아가던 단검이 갑작스럽게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멈춰버리고 말았다.

“뭐, 뭐지?”


강하게 힘을 줘서 흔들어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황당한 사태에 당황해서 자루를 놓아버리자 아예 허공에 못이 박힌 것처럼 고정되어버리는 모습.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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