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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블러드 머니(6) (16/429)



〈 16화 〉블러드 머니(6)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처음에는 따듯한 국물만으로도 나쁘지 않았지만, 싱거워도 너무나 싱거운 간에 숟가락을 뜨는 속도는 느려져만 갔다.


사정이 비슷하기는 매기나 오리나도 마찬가지.

결국, 한 그릇도 제대로 비우지 못하고 내려놓으려고 했지만 마커스가 자신의 스튜에 뭔가를 뿌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무엇을 넣어서 드시는 것입니까? 나리.”

“암염하고 후춧가루 같은 것들을 섞어놓은 조미료입니다. 혹시 필요하십니까?”

이 말을 듣고 대번에 빈정이 상했다.

‘젠장, 그렇게 좋은 것이 있었으면 진작 나눠줄 것이지. 치사하게 그걸 혼자서 독차지하고 있냐?’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쏟아냈지만 겉으로는 비굴한 웃음을 띄우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아이고. 나눠주시기만 한다면야 저야 황송합습죠!”


“혹시 여유가 있으시면 저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유? 날씨가 건조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넘어가지를 않네유.”

“저도요, 아저씨!”

“하하하. 알겠습니다. 제가 원래 심심하게 요리를 하는 편이라서 미처 여러분들을 신경 써드리지 못했군요.”

쏟아지는 요청에 멋쩍은 웃음을 터트린 마커스는 여러 가지 주머니를 꺼내서 사람마다 다른 조미료를 뿌려 주기 시작했다.


“왜 하나로 통일하시지 않고…”

“드셔보시면 알 겁니다.”


이상한 행동에 살짝 의구심이 드는 한스였지만, 식욕을 자극하는 향기와 딸과 아내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유혹을 참지 못하고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떠서 입으로 가져간 순간.

“캬! 짭짤하고 매콤한 간의 배합이 아주 기가 막히는군요. 몸이 후끈해지는 것이 아주 끝내줍니다!”


“진짜? 내가 먹은 것은 짭짤하기만 하던데.”


터져 나오는 탄성에 오리나가 억울하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남자한테 참 좋은, 정말로 좋은 자양강장제 성분이 들어있어서 말이야. 아가씨는 먹어봤자 소용없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이 말에 귀가 솔깃해진 한스는 조심스럽게 맛을 보려고 다가오는 오리나에게 자신의 그릇을 홱하고 감춰버렸다.

“아하, 과연 그래서. 어쩐지 열기가 후끈거리면서 올라와서 신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살짝 알싸한 맛이 느껴지는 데 이건 대체 뭡니까?”

“독입니다.”

“…”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장내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따님이 드시는 조미료에는 수면제를 넣었어요. 조금 있으면 픽!하고 쓰러져서 잠들어버릴 겁니다.”

한스 일가가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풉!”

“하하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호호호호호. 정말로 농담도 잘하시네유!”


터져 나오는 실소와 함께 전염되어가는 웃음소리.

분위기를 읽지 못한 오리나의 표정은 여전히 얼어있었지만 한스 부부와 마커스는 서로의 표정을 보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포복절도를 했다.


“크크크큭, 푸흡! 어떠십니까? 이제는 조금 긴장이 풀리셨습니까?”

“어휴, 깜짝이야. 갑자기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시니까 진짜로 그러신 줄 알고 당황했잖아요.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미안, 미안. 작은 서프라이즈였으니까 용서해주면 좋겠구나. 그래도 재미는 있었지?”

“약간은요.”

오리나의 표정이 그제야 풀어졌다.

마커스는 품속에서 모래시계를 꺼내 바위에 올려놓았다.

“다들 피곤하고 지치셨을 테지만 여기에 있는 모래가 떨어지기 전까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주고받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쩌면 이번 만남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흐음. 뭐, 그러십시다.”

야코프 영감을 생각하면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애써 여기까지 쫓아올 정도로 많은 돈을 떼먹고 도망친 것도 아니었기에 한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이 관심이 없는 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자 오리나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하품을 하며 침남으로 들어가버렸다.

“드르렁, 피유~”

순식간에 곯아떨어져서 담요를 걷어차 버리고는 배꼽 주변을 긁적거리는 그녀.

“하여간에 칠칠치 못하기는…”

한스는 혀를 차면서 민망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정돈해줬다.


“하하하. 또래답게 발랄하고 귀엽지 않습니까? 따님이 미인이신데요.”

“얼굴은 예쁘게 생겼어도 너무 천방지축이라서 변변한 남자를 데려오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어휴! 그나저나 조미료 덕분에 몸이 계속 후끈거리는군요. 나리는 괜찮으십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떠돌아다니면서 독수공방하는 처지다 보니…”


“크흠. 제가 실례되는 말을 했군요. 흠흠.”

괜스레 무안해져서 헛기침을 했다.

마커스는 부지깽이로 모닥불을 뒤집어엎었다.


화르르륵!


매기가 먹은 음식에도 자양강장제가 들어있었는지 더위를 참지 못하고 샘으로 떠나버렸고, 정박이는 배가 고팠는지 싱거운 스튜 냄비를 통째로 가져가서 조미료도 뿌리지 않고 바닥까지 박박 긁어먹고 있었다.


덕분에 중년의 남자 둘만 남아서 어색한 분위가 흐르자 한스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대화할만한 화제를 떠올려 내었다.


“참! 그러고 보니 아까 직업에 대해서 뭔가 말씀해주시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리.”

“하하하. 직업이라고 해봤자 대단할 것은 없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냥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치고는 카빙위즐을 사냥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시던데…”


“후후. 겸사겸사 바운티 헌터로 활동하다 보니까 관록이 붙은 모양입니다.”

툭!

한스는 괜스레 만지작거리고 있던 빈 그릇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혀, 현상금 사냥꾼?”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닙니다! 갑자기 벌레가 달려들어서 말이죠. 하이고, 뭔 놈의 벌레가 이렇게 하루종일 사람을 귀찮게 쫓아다닌다냐. 하하하하.”


누가 봐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웃음소리.


한스의 심장이 미칠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젠장, 어쩐지 지나치게 친절한 게 의심스럽더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하필이면 바운티 헌터라니. 돈이 되는 일이라면 탐욕스러운 고블린마냥 달려드는 녀석들이잖아. 으으으으. 도련님의 정체를 들켰다가는 모든 게 끝장이야!’

그의 머릿속에서 마커스가 조그마한 비도를 날려서 카빙위즐들을 백발백중으로 쏘아 죽이던 모습이 플래시백 되었다.

이번에는 그 과녁이 자신의 머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훗. 아무래도 놀라신 모양입니다. 워낙에 흉흉한 소문이 많은 직업이다보니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여주시더군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현상 수배된 상대만 쫓아다니거든요. 아니면, 혹시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그럴 리가 있습니까. 하하하하하!”

재미없는 농담에나름대로 호탕하게 웃어 보이려고했지만 표정은 완전히 경직되어 있었다.

기분 탓인지 더위도 심해지는 것만 같았다.

‘조미료를 너무 많이 뿌렸나?’

불편한 대화를 멈추고 아내처럼 샘으로 떠나고 싶은 한스였지만 마커스는 한 번 입이 열리자 투머치 토커처럼 놓아주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제분을 보고 있으니까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수배 전단이 떠오르는군요. 아슈킬 백작 가문에서 실종된 후계자를 찾고 있다고 하던데. 당시에 16살이었다니까 저 정도 또래였을 겁니다. ”


“커흑! 쿨럭, 쿨럭, 쿨럭!”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물을 마시다가 뿜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괜찮으십니까?”


“커윽. 크흠!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리.”

겉으로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새끼. 혹시 알면서 이러는 거 아니야?’


마커스의 말대로 지금의 정박이는 청소년으로 보였다.

실제 나이는 19살이지만 3년 전부터 키가 자라지 않아서 다 큰 어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


어째서 성장이 멈춰버렸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었지만, 아마도 거의 굶기다시피 밥을주지 않아서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빠져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한스 일가가 정박이에게 주었던 음식은 하루에 빵  조각.

그마저도 식량이 모자랄 때는 아예 며칠이고 굶겨버린 적이 허다했고 대부분이 곰팡이가 슬거나 자신들이 먹다가 남은 찌꺼기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면서도 하루종일 성인 남자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시켜서 혹사했기 때문에 지쳐서 쓰러질 때마다 ‘오늘은 죽겠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신기하게도 잠만 자고 일어나면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서 한스 일가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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