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블러드 머니(5)
“이런 빌어먹을 녀석들이 감히 도련님에게 손을 대다니!!”
후우우웅!
사납게 횃불을 휘둘러 보았지만 물러서는 것은 잠시뿐이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
그는 입술을 깨물며 비정한 결과를 감수하기로 했다.
키에에에엑!
“이대로는 버티지 못해. 살고 싶으면 내가 뛰는 방향으로 죽기 살기로 따라와!”
“하지만아빠!”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뛰라고!!”
딸의 외침을 일갈해버린 그는 막무가내로 소년을 들쳐메고 달려나갔다.
후우우우우웅!
“저리 비켜, 개자식들!”
불이 붙은 지팡이를 마구잡이로 휘둘러대서 일시적으로 길을 열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르게 달려나가는 바람에 발이 늦어서 뒤처져버린 오리나가 어둠 속에서 허둥대다가 발을 헛디뎌버리고 말았다.
“꺄악!”
쿵!
바닥에 넘어진 그녀.
“아빠! 아빠아아아아!!”
“여보! 우리 딸, 우리 딸을 놓고왔시유. 어쩌면 좋아유!”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매기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물어봤지만 그는 매정하게 자신을 붙잡을 손을 뿌리쳐 버렸다.
“이거 놔!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냥 내버려 둬!”
“뭐, 뭐유?”
지나치게 흥분한 모습으로 거칠게 대답했지만 잠시 숨을 몰아쉬고는 약간은 가라앉은 모습으로 다시 대답했다.
“도우러 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하지만 이미 늦었어. 저기에 말려들고 싶지 않으면 어서 여기에서 벗어나야 해.”
“아니. 아버지라는 작자가 어떻게 그런 매정한 말을 할 수가 있슈? 아이고, 어쩌면 좋아. 우리 딸을 어떡해…”
너무나 끔찍한 상황에 양손으로 입을 감싸며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오리나에게 카빙 위즐들이 달려들었다.
캬아아아아아아!!
푸슉! 푸슉! 푸슉!
“꺄아아아아악! 아파, 아파! 엄마, 아빠! 아아아아악!!”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처절한 비명.
손날에 작고 날카로운 이빨까지 동원하면서 살점을 물어뜯고 찢고 베어대는바람에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해 나갔다.
팔이며 다리, 온몸 구석구석에 달라붙어서 완전히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기세.
하지만 한스는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일이 잘 풀렸어.역시나 미끼에 정신이 팔려서 쫓아오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군. 오리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나는 나쁘지 않아. 나는…’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면 할수록 눈과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어깨에 짊어지고 온 것이 딸이 아니라서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에 누군가가 시간을 돌려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해도 절대로 주저하지 않고 다시 고를 수 있는 선택과 결과.
그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매기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하지만 미련 없이 떠나려고 할 때 수풀 속에서 누군가가 달려 나왔다.
“움직이지 마!”
화르르르륵!
캬아아아아아악!!
회색 로브를 입은 중년의 남자.
발버둥 치는 오리나에게 경고하는 것과 동시에 횃불을 휘둘러서 달라붙은 녀석들을 훑어내듯이 쫓아버렸다.
“팔은 움직일 수 있나?”
“네, 네…”
“좋아. 그러면 어서 귀를 막아라!”
기진맥진해서 대답하는 그녀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서 무리 사이로 집어 던졌다.
.
파치이이이잉-!
엄청난 폭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한스 부부마저도 인상을 찌푸리면서 귀를 막았다.
크캬아아아악?!
그리고 직격으로 당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카빙 위즐의 무리.
슈슈슈슉!
중년의 남자는 그렇게 무방비해진 녀석들을향해서 조그마한 비도를 꺼내 집어 던졌다.
캭! 캭! 캭! 캬아아악!
일중필살.
재빠른 손놀림이 바람을 가를 때마다 카빙 위즐들이 여지없이 쓰러져 나갔다.
순식간에 주변에 있는 열댓 마리를 모조리 처리해버리고는 이번에는 기름 주머니를 꺼내 드는 남자.
화르르르륵!
죽어가는불씨를 다시 살려서 불의 장벽을 만들어내자 주춤거리던 나머지 녀석들이 결국 줄행랑을 쳐버리고 말았다.
놀라운 솜씨로 단숨에 상황을 정리해버린 중년의 남자.
“걸을 수 있나?”
“훌쩍, 아, 아니요.”
“쳇, 어쩔 수 없군.”
성가시다는 듯이투덜거린 남자가 오리나를 업어서 한스 부부에게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어른들과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표정을 바꿔서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야심한 밤중에 지독한 일을 당하셨군요. 근처에 녀석들의 둥지가 있었습니다. 번식기가 끝나고 새끼들이 태어날 시기라서 다들 예민해져 있었죠. 그래서 여러분에게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던 겁니다.”
“아이고 그랬군요. 정말로 커다란 은혜를 입었습니다. 나으리!!”
“하하하. 괜찮습니다. 같은 데피리스 신도끼리 서로 도우며 살아야죠.”
“네?”
“순례 여행을 하시는 분들이 아니었습니까? 이런 시간에 그런 차림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아, 예. 맞습니다. 물론이죠! 다를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정말로 오늘은 데피리스님의 가호가 없었다면 큰일을 치를 뻔 했군요.”
남자의 지적에 빠르게 눈치를 살핀 한스가 과장스럽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맞장구를 쳤다.
“찬란한 빛은 어둠 속에서도 자취를 남기는 법이니까요. 이것도 인연인데 잠시 근처에서 쉬어가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따님도 많이 다치신 모양이니까 치료도 해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그러고 보니까 우리 딸. 괜찮니? 무사한 거냐!”
이 말을 듣고 나서야 간신히 오리나에게 호들갑을 떨면서 걱정하는 척을 했지만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버린 그녀는입술을 씰룩거리다가 울음을 터트려버리고 말았다.
“몰라! 진짜로 죽는 줄 알고 무서웠단 말이야. 아빠도 엄마도 너무 못됐어.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 버리고 갈 수가 있어? 너무해. 너무하다고! 으아아아아아아앙!!”
“아니, 이 녀석이…크흠.”
찔리는 구석이 너무나 많았던 한스는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해했다.
“하하하하. 아무래도 많이 놀란 모양이니까 천천히 달래주십시오. 마침상처에 좋은 약도 가지고 있으니까 어머님이 발라주시죠.”
“정말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유.”
과분할 정도로 친절한 배려에 연거푸 허리를 숙이면서 감사를 표한 한스 일가는 권유대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모닥불을 피워서 쉼터를 마련한 일행.
매기는 근처에 있는 샘으로 오리나를 데려가서 상처를 씻기고 약을 발라주었고 남자들은 자리에 남아서 요기를 때울 스튜를 준비했다.
“아드님입니까?”
딱딱한 육포를 나이프로 먹기 좋게 썰어나가던 남자가 나무에 묶여있는 소년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네. 그렇습니다요. 나으리.”
“저렇게 창창한 나이에 백치라니 딱하게 되었군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허허.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크흠.”
“이런.제가 너무 민감한 질문을 했나 봅니다.”
불편한심기를 드러내자 잽싸게 사과를 해왔다.
“어휴! 아닙니다요. 나으리. 다만 아직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만.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까 여태까지 자기소개를 하지 못했군요.제 이름은 마커스라고 합니다. 직업은…”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 매기가 훌쩍거리는 오리나를 데리고 돌아왔다.
“벌써 끝났어? 상처는 어때.”
“다행스럽게도 워낙에 쬐까만 녀석들이라서 그런지 크게 다치지는 않았구만유. 나으리께서 주신 약이 용해서 흉이 지지도 않을 것 같구유. 그런데 이년이 어찌나 아프다고 엄살을 피워대던지.”
“뭐?! 지, 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기가 막혀서 정말.두 사람 진짜로 친엄마, 친아빠 맞아? 믿을 수가 없다 정말.”
서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말하자 한스는 뜨끔하면서도 오히려 역정을 냈다.
“아니 이년이 지금 목숨을 구해주신 생명의 은인 앞에서 창피스럽게 뭐 하는 거야! 투정은 나중에 부려!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나리. 딸내미가 아직 철이 없어서…”
“하하하하. 괜찮습니다. 워낙에 큰일을 겪으셨으니까 그러실 수도 있죠. 일단은 다들 앉아주십시오.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우고 나면 진정하실 수가 있을 겁니다.”
이 말에 가족들의 시선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의 스튜로 향했다.
식욕을 자극해오는 구수한 냄새.
뽀얀 살갗을 드러내면서 떠오르는 밀가루 건더기들과 선홍빛으로 번들거리는 고기 육포가 어우러지며 유혹해오자 한스 일가의 입속으로 저절로 침이 고였다.
꿀꺽.
누가 먼저 그런 소리를 냈을까.
“그, 그러면 호의를 받아들여서…”
“하하하. 양은 충분하니까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며 푸짐하게 국자로 떠서 나눠주자 서둘러서 받아가서는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먹음직스러웠던 비주얼과는 다르게 형편없는 맛이었다.
‘물을 너무 많이 넣었어. 완전히 맹탕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