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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블러드 머니(4) (14/429)



〈 14화 〉블러드 머니(4)

한스 일가는 그제야 간신히 한숨을 돌리며 답답한 두건을 벗어 던졌다.

“하아. 일단은 여기까지 왔으니까 괜찮을 거야. 도련님은 잘 따라오고 계시지?”


“아- 아- 아-”

“괜찮은 것 같아유.”

목줄을 잡고 있던 매기가 대답했다.


“일단은 불부터 켜자. 도대체 뭐가 보여야 말이지. 지팡이로 더듬거리면서 걸어오려니 장님도 아니고 답답해서 원.”

탁! 탁! 탁!


화르르륵!

랜턴의 심지에 부싯돌을 튀겨서 불을 붙였다.


“저, 저게 뭐야?”


“꺄아아아악!”

시야가 밝아지기가 무섭게 오리나는 비명을 질렀다.


수많은 벌레가 뭉쳐서 우글거리는 소름 끼치는 모습.

소년의 몸에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달라붙어서는 머리카락 한 올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묻어버리고 있었다.

둥그스름한 형태에 붉은 눈.

미끈거리고 광택이 나는 키틴질로 덮여있는 날개가 펄럭여질 때마다 식구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보는 것처럼 혐오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서 털어내. 빨리!”

“아, 알았어유!”

파샤아아아앗!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한스가 먼저 앞장서면서 외치자 모녀도 뒤따라서 손과지팡이를 흔들어서 사방으로 쫓아버렸다.

“쟤들 아까 집에서도 봤던 녀석들이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설마, 도련님을 쫓아서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아무래도 그런가 보네유. 지가 보기에는 오리나가 호숫가로 데리고 갔을 때 이상한 수액이라도 묻혀서 데리고 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크흠! 아니, 그런데 얘는 벌레들이 그렇게 달라붙는데도 꼼짝을 하지를 않는데?”

매기의 지적에 오리나가 헛기침을 하면서 다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비범한 면모가 있으니까 더 귀족다우시다는  아니냐?어쨌든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벡워스까지 가려면 시간이 없어. 오리나! 네가 도련님한테 달라붙어서 벌레들이 꼬이지 않게보살펴드려.”

“어째서 내가 저렇게 징그러운 녀석들을…아, 알았어.”

부당한(?)처우에 항변하려고 하다가 한스의 눈썹이역팔자로 올라가 버리는 것을 보고는 얌전하게 목줄을 건네받았다.


랜턴으로 시야를 확보한 일가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여서 벡워스로 향했다.


낮 동안 한숨도 잠들지 못하고 소란을 떨어대느라 심신이 지치고 피로했지만, 적막한 밤의 고요함 속에서 혹시라도 누군가 쫓아올지 모른다는 긴장감까지 더해지면서 정신만은 또렷또렷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아빠.”

오리나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왜?”

“정박이를 조금 살펴봤는데 말이야. 일단은 얘를 물가로 데려가서 씻겨야 할 것 같아. 얼굴이 너무 지저분해서 도저히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를 모르겠어. 일단 3년 전과 비교하면 신기할 정도로 이목구비가 반듯해지기는 했는데…”


소년의 앞머리를 들어올리면서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그녀.


“이 년이! 도련님의 얼굴에 함부로 손대지 말라니까?”


대번에 질책했지만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때는 가더라도 얘 정체는 확실하게 해두고 가야지. 사기꾼들이 목이 잘려나갔다며? 명색이 백작 가문의 도련님이라면 당연히 거기에 합당한 외모를 지니고 있어야 하잖아. 그리고 데리고  때는데리고 가더라도사람 꼴은 제대로 만들어 놔야지. 이렇게 데려갔다가는 상금은커녕 곤장만 맞겠다.”


“듣고 보니까 오리나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네유.”

“그렇다니까. 얘가지금 정상적인 상태로 보여? 뼈다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게 살아있는 송강이따로 없잖아. 하도 먹이지를 않아서그런지 키도 전혀 자라지 않았고. 세상에 누가 얘를 열아홉살로 보겠어?”


“허, 참.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제니아에 도착하면 그렇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를 말아라. 나라고 생각이 없어서 이러는 줄 아니? 이게 다 도련님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데려가기 위한 작전이라고. 생각을 해봐라! 세상에 누가 이렇게 꾀죄죄한 모습을 보고 이분의정체를 알아보겠니? 전부 자잘한 시시비비를 피해가기 위해서…잠깐!”

구구절절 늘어놓던 한스가 갑작스럽게 외쳤다.

경계하는 눈초리.


자세를 낮추며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이자 모녀도 덩달아서 숨을 죽이고 가장의 등 뒤로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에유?”

“앞쪽에서 조그마한 녀석들이 빠르게 지나갔어. 혹시 모르니까 주위를 살펴. 뭔가 수상한 것을 발견하면 곧바로 말하고.”

“호, 혹시 몬스터야?”

“걱정하지 마. 오크처럼 커다란 녀석들은 작년에 영주님께서 씨를 말려버리셨으니까. 하지만 작아도 몰려다니는 녀석들은 제법 사나우니까 조심해. 잘못했다가는 상당히 성가신 일에 말려들지도 모르니까 긴장을 늦춰선 안 돼.”


나름대로는 안심시키려고 꺼낸 말이었지만 두 사람은 오히려  겁을 먹고 말았다.

그렇게 다급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박이는 태평한 표정으로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한스가 목줄을 잡아당기자 짐승처럼 끌려오며 넘어져 버리고말았다.

“아악!!”

“죄송합니다. 도련님! 하지만 위험하니까 제 뒤에 바짝 붙어주십시오.”


“이야기해봤자 뭐해?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이년아! 그래도 그러는 아니야.”

사아아아악-

스산한 바람이 들판을 쓸고 지나갔다.

조용한 사위.

“혹시당신이 잘못 본 건…”

너무 조용해서 매기가 입을 열었지만 곧바로 딸의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악!!”

다각다각다각

갈대밭의 능선으로 떠오르는 호박색의 눈동자들.


목각인형들이 부딪쳐서 달그락거리는 것 같은 요란한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면서 주먹보다 작은 체구의 몬스터가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카빙 위즐들이잖아!”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크게 위험한 녀석들은 아니니까 정신만 똑바로 차려. 혹시 달려들려고 하면 두드려 패서 냅다 날려버리면 돼!”

그렇게 대답한 한스는 잽싸게 랜턴 뚜껑을 열어서 지팡이 끝에 불을 붙였다.

화르르르륵!

캬아아아아아악!


횃불을 만들어서 휘둘러대자 비명을 내지르면서물러섰다.

“이거나 받아라!”

펑!

메마른 갈대밭에 랜턴을 집어 던지자 사나운 불길이 일어나면서 카빙 위즐들을 쫓아버렸다.

효과는 발군.

조그마한 괴물들이 주춤거리면서 물러서는 것을 보고 안심한 모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들이 들고 있던 나머지 랜턴들까지집어 던졌다.

펑! 펑!

“썩 물러서라 이놈들! 조그마한 녀석들이 주제도 모르고 까불고 말이야. 오늘아주 제대로 혼쭐을 내주마!!”


이리저리도망치는 모습에 신이 난 한스가 기고만장해서 외쳤지만, 이상하게도 녀석들은 쉽사리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않았다.

오히려 도망치는가 싶더니 일정한 거리까지 물러나서 재집결.

대열을 회복하며 포위를 풀지 않고 불길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스 일가가 랜턴을 집어던진 곳에는 그렇게 많은 갈대가 밀집되어 있지 않았다.


캬아아아아아악!

카빙 위즐들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면서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었다.

“아빠! 쟤들 지금 엄청나게 화가 나버린 모양인데 어쩌면 좋아?”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마주친 한스가 사색이 되어서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영문이었는지 격렬하게 증오심을 드러내면서 도저히 물러서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젠장! 아무래도 달려들려는 모양이야. 두 사람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도련님을 지켜드려!”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도 가족보다 돈을챙기는 거유?”

“당연하잖아.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는 건데. 온다!”

샤아아아악!


푸슉!

불길을 뛰어넘은 카빙 위즐 한 마리가 날카로운 손날을 휘둘러서 한스의 목덜미 근처에 상처를 입혔다.


“이런 망할 녀석이!”


퍽!


키에에엑!

분노해서 휘두른 지팡이에 그대로 적중하는 녀석.

땅바닥에 떨어져서 잠시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부르르 떨다가 픽하고 쓰러져서  번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몬스터치고 다소 싱거운 최후라고 할 수가 있었지만 집단의 공격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각다각다각다각


샤아아아아악!

첫 주자의 죽음을 신호탄으로 우르르 불길을 뛰어넘는 카빙 위즐들.

“꺄아아악! 제발 저리로 가. 저리로 가버리란 말이야!”

“어버버버, 어, 어쩌면 좋아유? 여보!”

패닉에 빠진 모녀가 사방에서 달려드는 녀석들에게 막무가내로 지팡이를 휘둘러대며 외쳤지만, 태어나서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것은 가장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호사다마라더니 오늘따라 어째서 이러는 거야?’

틀림없이 겁쟁이 몬스터로 유명한 카빙 위즐이었다.


자기보다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는 웬만해서는 달려들지도 않고 불을 무서워해서 모닥불만 발견해도 도망쳐버리는 약체 중에서 약체.

그로서는지금 일어나는 일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아아악-!”

푸슉!


급기야 가족들 사이에서 웅크리고 덜덜 떨고만 있던 정박이까지 상처를 입자 한스의 눈이 완전히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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