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블러드 머니(2) (12/429)



〈 12화 〉블러드 머니(2)

바닥에 폴짝 엎드린 알렉스가 충격적인 본심을 털어놓자 오리나는 기가 차서  말을 잃어버렸다.

“으르르르르-”


“흐이이이이익!”

하지만 한스의 입속에서 대답 대신에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오자 혼비백산해서 줄행랑을 쳐버리는 남자.


“야! 나 혼자 내버려 두고 어디로 도망가는 거야? 이 나쁜 새끼가.”


터무니없는 배신으로 치를 떠는 것도 잠시.

아버지가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다가오자 겁을 먹은 오리나는 자신의 상의를 움켜잡으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아, 아빠.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내가 전부 설명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진정해. 원래 세상 일이라는 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우선은 숨부터 크게 들이마시고…”

“…이는 어디에 있어?”

“내쉬고, 뭐?”


“정박이는 어디에 있냐고!”


윽박지르자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저, 저쪽 나무에다가 눈을 가리고 묶어놨어. 진짜로 딴청 피우려고 했던  아니라 서둘러서 영감탱이한테 가려고 했는데 중간에 그만…아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달려가고 있었다.

잠시 후에 터져 나오는 환호성.

“좋으으으으았어! 해냈다. 해냈다고! 아이고, 데피리스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한참 동안 만세를 부르면서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린 그는 왜소한 청년의 목줄을 질질 잡아끌어서 오리나에게 돌아왔다.

“와! 세상에 진짜로 간 떨어지는 줄로만 알았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야. 크흑!”


“정박이를 파는 일이 그렇게 급했어? 혹시 야코프 영감탱이가 노발대발해서 찾아온 거야? 아직 열려있을 텐데 지금이라도 데려가 볼까?”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거야? 우리 정박이. 아니, 소중한 도련님을 감히 누구한테데려가? 어쨌든 잘했다. 우리 딸! 네가 성실하지 않아서 우리 집안을 살린 거야!!”


“…응?”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칭찬을 듣고 고개가 기울어졌다.

잠시 후.

기나긴 악전고투 끝에 당당한 개선장군처럼 돌아온 한스는 가족들에게 오늘 겪은 사건에 대한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종으로 부리던 정박이가 사실은 귀족이라는 거야?”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들며 벌을 서고 있던 오리나가 질문해왔다.

“어허! 이년이. 도련님이라고 고쳐 부르지못해? 아슈킬 백작 가문이시라잖아. 제니아 전체를 다스리는 대귀족님이라고! 그렇게 대단한 집안의 후계자님을 너 같은 잡년이 어떻게 함부로 불러?”


짝!


“아얏! 자기들도 지금까지 실컷 정박이라고 불러놓고는…칫!”


등짝을 얻어맞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두 뺨을 부풀렸다.

“아-. 아-. 아-.”


“하지만 아빠. 솔직히 나는 도저히 믿지를 못하겠는데? 이렇게 칠칠맞은 애가 귀족 집안의 도련님이라니…”


화제의 중심에 있는 당사자는 어째서인지 허공을 날아다니는 특이한 검은 벌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헤벌쭉 벌려져 있는 입가에서 더럽게 침까지 흘러내려오자 오리나의 표정은 한층  처참하게 일그러져버리고 말았다.


“이게?”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어보자 한스는 덥수룩하게 자라있는 소년의 앞머리를 들어올렸다.

“여기를  봐라. 왼쪽 눈에 있는 불꽃 흉터가 보이지? 이 독특한 생김새가 수배서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어. 이거야말로 도련님께서 백작 가문의 후계자시라는 움직이지 못할 증거란 말이야!”

“어쩌다가 우연히 비슷한 상처가 생겼을지도 모르잖아.”


“하이고. 이년이 의심도 많네. 비슷한 나인데, 상처까지 똑같은 전부  우연이라고? 게다가 임자! 자네도 기억나지? 이 아이를 어디에서 주워왔는지 말이야.”


이 말에 어째서인지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던 아내, 매기가 깜짝 놀라서 대답을 했다.

“음? 아, 그랬지유. 확실히 이리두 강가에 떠내려온 것을 데리고 왔어유.”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건데?”

“지금 말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가만히 있어봐, 이년아! 그곳의 상류가 테세트 평야의 강으로 이어진다는 거지. 거기에서 도련님을 주운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맞네유! 얼추 3년이 되었쥬.”

아내가 맞장구를 쳐주자 한스는 지원사격을 받은 것처럼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그렇지, 그렇지! 그리고 우리 도련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가 이것뿐인 줄 아니? 너는 그때 없었으니까 모를 테지만 두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신기한 일을 경험했었다는 말씀이야.”


“신기한 일이라니?”


“강가에 알몸으로 떠내려온 도련님에게 물고기 떼거리가 달라붙어 있었어. 마치 물속에 빠진 사람을 구해서 건져 올리기라도  것처럼 말이야. 가까이 다가갔더니 우르르 도망쳐버렸는데 그렇게 이상한 일을 경험하고 나니까 도저히 두고 올 수가 있었어야지.”


“아항~. 그래서 그렇게 밥도 안 주고 부려먹으셨구나.”


짝!

다시 한번 등짝을 얻어맞았다.

하지만 한스가 하는 이야기가 아예 신빙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고기 떼거리가 구해줬다는 신화에서나 나올만한 이야기는 걸러 듣는다고 하더라도 실종된 지역과 나이, 특징까지 일치한다는 것은 간과할 수가 없는 사실.


‘정박이가 정말로 백작 가문의 후계자라고?’

평범한 시골 소녀인 오리나에게 귀족이란 상상 속의 동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니, 그녀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평민들이 마찬가지였다.


태어날 때부터 살아가는 세계의 차원이 다른 존재들.

농담이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태중양생술로 벌모세수와 격체전공의 효과를 동시에 누리기 때문에 일반인과는 비교되지 않는 우월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엘리트 교육을 받으면서 점점 커진다.


4~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일반인이 평생을 수련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경지에 도달해버리는 괴물들.

게다가 철저하기 이를 데가 없는 신분제도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분리해놓고 살아가기 때문에, 직접 관계되는사이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평생 마주치는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이 세계에 존재하는 영웅담과 로맨스, 음유시인의 노래 구절은 대부분 귀족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악한 드래곤이나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 리치의 손아귀에서 공주를 구해내는 용맹한 기사, 화려한 무도회에서 비밀스럽게 낭만적인프로포즈를 해오는 가면의 신사, 등등.


꿈이 많은 시골 소녀들에게 그들의 삶이란 상상만으로도 황홀해지는 동화 속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태중양생술로 태어난 귀족들은 미남 미녀가 많다.

아니, 정확하게는 못생긴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박이는 어떨까?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한스가 그를 데리고 왔을 때. 오리나는 눈살을 찌푸렸었다.

얼굴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 전에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퉁퉁 부어버려서 차마  뜨고 볼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한동안 붕대를 감고 돌아다니게 했지만, 꿈에라도 나올까 무서워져서 아예 앞머리를 내려서 가리고 돌아다니도록 했다.


그리고 3년 만에 한스가 앞머리를 들어올려서 보여준 모습은.


‘어떻게 생겼었더라?’


강렬한 불꽃 흉터의 인상 때문에 직접 보고도 생각이 나지 않는 오리나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그녀가 다시 손을 뻗어서 확인하려고 했지만 한스가 그것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어허! 어디서 감히 도련님의 귀한 얼굴에 손을 대려고 그래?”


“왜?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닳아. 이년아! 특히나 너는 채신머리가 없어서 안심할 수가 없어. 자택까지 안전하게 모셔드려야 하니까 옥구슬처럼 귀중하게 대접해드리란 말이야.”

“자택? 우리가 직접 제니아까지 가려는 거유?”


“물론이지. 1만 대륙은화야. 1만 대륙 은화! 이렇게 큰 상금을누구를 믿고 위탁하려고 그래? 당연히 찾아가서 우리 손으로 받아내야지.”


“그래도 일단은 촌장님한테라도 상담을 해보시는 게…”


“아이고. 답답하기는 사람아! 큰일 날 소리는 하지도 말아.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겠다고 하지.대체 그 양반의 어디를 믿고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야?”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손사래를  그가 식구들은 닥달했다.

“아무튼,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지 말고 짐이나 싸! 내일 아침이 밝는 대로 이곳에서 영영 떠나버릴 생각이니까.”


“뭐야, 상금만 받고 돌아올 걸 아니었어?”

“흥! 이런 시골에 무슨 미련이 남아있다고 그래? 아빠는 다 계획이 있으니까걱정하지 마. 예전에 알레프에 봐 놓은 땅이 있어. 소 다섯 마리를 끌고 갈아도 한참을 갈아야 하는 넓고 기름진 땅이 겨우 2천 은화밖에 하지 않았지. 거기에 벤 같은 놈은 꿈도 꾸지 못할 으리으리한 장원을 세워줄 테니까 두고 보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