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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whos your papa(4) (9/429)



〈 9화 〉whos your pap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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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서력 768년 3월.

테세트 황무지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환경변화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절대로 정화할 수 없다고 여겼던 마법 오염 지대가 비옥한 옥토로 바뀌어버렸다는 충격적인 소식.


토지조사 결과. 이 땅에서 생산할 수 있는 식량의 산출량은 유레시아 대륙 전체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었으며, 보유량이 국력과 직결된다는 마나타이트 매장지까지 발견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소식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대륙의 수많은 나라들이 저마다 마도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면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도 대륙을 양분하는 두 강대국, 테르할 제국과 앵커리지 공화국은 오팔 왕국 국경에 군대를 증강하며 긴장 수위를 높여나갔다.

 국가의 치열한 눈치싸움으로 전쟁의 기운이 고조되자, 테세트 황무지의 개발 이권을 조금이라고 차지하고 싶은 나라들이 양쪽으로 편을나눠서 가담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대륙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만한 세계대전의 구도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끝없이 가속할 것처럼 보였던 긴장 상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개입으로 예상하지 못한 전개를 맞이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데피리스 교단의 교황 루크레스 3세.

“유레시아 대륙의 모든 빛의 자손들은 들어라! 그대들이 하찮은 야욕에 사로잡혀서 서로를 물어뜯으려고 하는 것은 데피리스님의 목자로서 내버려 둘 수가 없노라! 따라서 짐은그대들을 영도하여 분쟁으로부터 구원하고자 하노라! 만약에 이 중재 협상에 응하지 않고 천부의 땅을 탐하여 평화를 깨려는 자들이 있다면 데피리스님의 이름으로 파문하여 영원한 죄인으로 낙인찍을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갑작스럽게 폭탄 발언을 해버리는 바람에 전쟁을 준비하던 모든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그가 정신세계의 지도자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상징에 불과한존재.

종말의 마수를 토벌하기 위해서 신탁을 받아서 대륙의 국가들이연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실재 권력은 없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그는 피에 물든 교황이라고 불리며 사제들로부터 신임을 잃어 현재의 입지마저도 위태로운 상태.


아무리 종말의 마수를 토벌하는 성공해서 대중들로부터 잠시 인기가 올라갔다고는 해도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 소리라고 여겼다.

실제로 앵커리지 공확국은 곧바로 반대 성명을 내며 현실정치에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 시기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세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전투 국가라고 불리는 테르할 제국이 교황을 지지하면서 모든 병력을 후퇴시켜버린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영토를 둘러싼 외부 세력의 압력에 덜덜 떨던 오팔 왕국까지 루크레스 3세를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자, 국제여론이 갑자기 뒤집히면서 테세트 황무지를 탐하는 앵커리지 공화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탈을 쓰고 있는 더러운 전쟁광!]


주변국들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비난도 비난이었지만 공화국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국내의 반대 여론이었다.

애초부터 민중을 탄압하는 사악한 귀족국가를 토벌하고 모든 국민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한 나라였기에 이런 사항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평화주의자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 반전 시위를 시작했고 거기에 데피리스 신도들까지 가담하면서 정치인들을 압박해 오자, 명분이 없는 주전론은 급격하게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판세를 읽은 동맹국들까지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가면서 마침내 항복.

뒤늦게 불리한 패널티를 짊어지고 중재 협상에 참여해서 교황에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협상이 이루어지는 동안에 유레시아 대륙은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총성 없는 전쟁.

이런 결과를 두고 호사가들은 1차 테세트 전쟁의 승자가 루크레스 3세라고 이야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레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참가하는 협상 회장에서 유일한 중재자이자 심판으로서의 지위를 있는대로 누렸던 것이다.

이 시기에 세계에 있는 수많은 데피리스 교단의 신전으로는 기부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뇌물이 쏟아져 들어왔으며, 세계 각국으로부터 자유로운 포교 활동과 혜택을 보장받으면서 엄청난 속도로 자신들의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진 성직자들의 타락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 정점에 있는 사람을 꼽아보라면 다른 누구도 아닌 루크레스 3세.

교단의 역사 이래. 가장 강력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그는 종교재판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몰아내려고 하는 혁명파 세력들을 거침없이 처단해 나갔다.

하늘을 다스리는 것은 데피리스지만 지상을 지배하는 것은 피에 물든 교황이라는 말이 흘러나올만한 잔인한 대학살이었다.

이런 결과를 두고 음모론자들은 교황이 신탁을 조작하여 종말의 마수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유일하게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맹목의 성녀는 아무런 대답 없이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해를 넘어서 신서력 769년 1월.

데피리스 교단의 수도. 아론바이츠 시국.


유례없는 폭설이 쏟아져 내린 새벽 아침에 초로의 노인이 교황의 처소를 찾았다.

그의 이름은 파르텔로.


앵커리지 공화국의 수도 론데니움의 교구장이자 이름 높은 성인으로 한때는 혁명파들의 손에 의해서  하나의 교황으로 추대되었던 인물이다.


두꺼운 모피코트를 입고 마루에 앉아서 화롯불을 쬐는 루크레스 3세와 대조적으로 그는 죄인이 입는 넝마 한 장만을 걸친 체 차가운 눈 위에 엎드려 있었다.

벌써 2시간.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없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석고대죄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는 신앙심으로도 감내하기 어렵다.


수염이 얼어서 뻣뻣해지고 콧물과 눈물마저 고드름으로 맺혔다.


동상에 걸린 피부는 푸르다 못해 검은색으로 괴사해버렸고, 느려지는 심장 박동이 위태로워져서 당장에라도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그것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교황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리 오시오. 파르텔로 대주교.”


“교, 교황 성하!”

감격했는지, 울부짖었는지 스스로도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어지는 요구는 조금 더 잔혹했다.


“걸어서 오라고 하지는 않았소.”

“!!”


차가운 시선.


거기에  치의 자비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파르텔로는 이를 악물고 차가운 눈밭을 기어가야만 했다.

조금씩 조금씩.


힘겹게 거리를 좁혀나갈 때마다 차가운 눈이 가시처럼 변하여 살점을 물어뜯었다.

무릎에서 흘러내린 새빨간 피가 융단처럼 이어졌지만 마지막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광도, 환영의 메시지도 아니었다.


“추워 보이는구려. 대주교.”

루크레스 3세가 화로를 집어 뜨거운 숯을 바닥으로 쏟아버렸다.

치이이이익!

아주 잠시 열기를 뿜어내다가 허무하게 사그라지는 불씨.

“이런, 이런. 이러면 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혜는 양손으로 받아내야지. 종으로서의 자세가 되어 먹지를 못했구려. 대주교.”

“용서해주십시오. 성하! 제발 용서하여주십시오!”

교황이 웃음을 터트리자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군. 우리는 모두 죄인이오. 죄인을 용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데피리스님밖에 없지. 나처럼 하찮은 종이 어떻게 다른 이의 죄를 사할 수 있겠소.”


구역질이 올라오는 말이었지만다시 한번 머리를 숙이면서 외쳤다.

“종교재판에 회부당한 어린 사제들을 풀어주십시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스승인 제가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후후후후.”


루크레스 3세가 즐거워했다.


“개인적으로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의 처지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교황인 내가 어떻게 이단 심문에 손을 대겠소? 죄가 없다면 어련히 풀려날 테니 너무 염려하지마시오. 어서 일어나시구려. 이러다가 몸 상하겠소.”

‘거짓말!’


뱉어내는 단어 하나하나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가증스러웠다.

겉으로 하는 말은 번지르르 하지만 교단을 장악한 교황이 이단 심문관들을 자신의 개인 충견으로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작과 날조, 협박, 고문으로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기본이었고 신의 심판이라는 명목으로 누구든지 재판장에 끌고 가서 잡아 죽이는 인간 백정들.

교황이 즉위한 후에 그들의 손에 죽어 나간 무고한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제대로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교황 성하! 부디 승자로서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제가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종이 되라면 종이 될 테고, 개가 되라면 개가 될 테니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후후후후. 참으로 얄궂은 일이 아니오? 대주교.”

자리에서 일어선 교황이 그에게 다가오며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른 심복들이 죽어 나갈 때는꼼짝도 하지 않던 양반이 숨겨놓은 자식이 위험해지니까 이렇게 간절해지는 꼴이 말이오. 옛말에 틀린 게 없지.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니까? 그렇게 소중했다면 곁에 두지 말고 누구도 찾을 수 없게 숨겨놨어야지!”


“!!”

파르텔로의 손이 격렬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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