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whos your papa(3)
쿵!
장내는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에휴. 한심하게 후배에게 가지고 놀아지다니 멍청한 녀석.”
“하하하하. 퍼큘리어를 다루는 솜씨가 많이 늘었구나. 레베카.”
“과찬입니다. 단장 대리님.”
발터가 손뼉을 치면서 웃음을 터트리자 그녀는 새로운 마술을 선보인 마술사처럼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그래. 쓸데없이 입이 가벼운 녀석도 잠재우셨겠다. 다시 한번 물어보도록 하지. 여기는 무슨 일이냐? 은요호대는 원래 단장님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의 말처럼 은요호대는 천공 기사단 내부에서도 이질적인 집단이었다.
첩보, 공작, 암살, 내부인원의 비밀감찰 등, 대외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지저분한 음지의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
하지만 그 힘은 단일 조직이 보유하기에는 경악할만한수준으로 제국의 정보기관 전체와 필적한다고 일컬어지고 있었다.
이것은창공 기사단이라는 조직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장 집단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제국 정쟁의 한가운데 있는 조직이라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긴밀하게 대처할 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를 중시하는 대다수 기사단원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
“조심하십시오. 이번에는 또 어떤 흉계를 꾸미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레미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충고를 했다.
“어머? 정말로 너무하시네요. 선배님. 누가 들으면 제가 사람을 홀리는 요년줄 알겠어요. 이래 보여도 자나 깨나 쥬란님만 생각하는 지고지순한 일편단심 민들레인데.”
“차라리 파리지옥이나 암사마귀 같은 거겠지.모두가 쉬쉬하는 은요호대를 자진해서 떠맡은 주제에.”
“후후후. 누군가는 불쌍한 아이들을 돌봐줘야 하니까 말이죠.”
입가를 가리면서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자신의 가슴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서류 뭉치를 하나 꺼내 들었다.
“이게 뭐지?”
“일단 한 번 읽어보시죠.”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은밀한 부위에서 나온 물건을 보고 잠시 망설일 만도 했지만 발터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었다.
사악- 사악-
내용을 확인하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깊어져 가는 미간의 골.
시종일관 여유를 잃어버리지 않았던 그가 점점 진지한 표정으로 변해가는가 싶더니 이내 식은땀까지 주르르 흘리며“끄응.”하는 신음을 터트려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적혀있는 것들이 사실이냐?”
“후후후. 이런 내용을 거짓으로 꾸며낼 수 있다면 한 수 배우고 싶을 정도네요.”
“이런빌어먹을 자식들!”
쾅!
분노한발터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왜 그러십니까? 단장 대리님.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황제가 우리를 배신했다!”
갑작스러운 폭탄선언.
시끌벅적하던 클럽 내부가 삽시간에 조용해져 버리고 말았다.
“진정하십시오. 단장 대리님. 보는 눈이 많습니다!”
당황한 제레미가 직원들을 의식하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선배. 여기에서 주고받은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갈 염려는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
“후후후.”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 로티나가 곰방대에 연초를 갈아 넣었다.
딱!
손가락을 튕겨서 신호를 보내자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가져와서 불을 붙여주는 도우미.
“이 가게가 도대체 누구의 소유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담배 연기를 뿜어낸 그녀가[폭스 테일]이라고 쓰여있는 가게의 간판을 가리켜 보였다.
“설마 여기가?”
“맞아요. 은요호대의 지부아홉 개의 꼬리 중에 하나죠. 그리고 기사단원들이 회식을 위해서 여기를 찾아오신것도 우연이 아니었을 테죠. 제 말이 틀렸나요? 단장 대리님.”
“크흠.같은 기사단원이니까 조금은 싸게 해줬으면 좋겠군.”
“후후후. 어림도 없어요. 여기 매상이 하루에 얼만데…”
태평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에 제레미는 기가 막힌 듯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휴. 뭐, 좋습니다. 그나저나 황제가 우리를 배신했다는 것은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죠. 선배님도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은 어떠세요?”
로티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가 서류를 받아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종말의마수들이 차지하고 있던 테세트 황무지에 대한 토지 조사 보고서였다.
아득히 먼 옛날.
유레시아 대륙전체를 통일한 마도 제국의 수도가 존재했다는 불모의 땅.
전해지는 이야기에따르면 그들은 인간이 범해서는 안 되는 신의 금기에 손을 대었다가 천사들의 분노로 멸망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되어버렸다는 마도 제국.
테세트 황무지는 그 천벌의 위력이 얼마나 가공할만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있는 트롤조차 단숨에 녹여버릴 정도로 강한 산성을 가지고 있는 녹색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고, 사시사철 벼락과 우박, 폭풍우가 끝없이 몰아치면서 대지를 할퀴어 댔다.
무엇보다도 지역 전체가 심각한 마법 오염으로 더럽혀져 있어서 마나를 가진 생명체는 절대로 접근할 수가 없다고 일컬어지던 금역.
하지만 그 땅에 종말의 마수가 나타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이건…”
“세상살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죠? 언제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나타났다고 기를 쓰고 토벌해야 한다고 악을 쓰더니 이제는 그들이 정화한 땅을 둘러싸고 다툼이 일어나려고하고 있으니까말이에요.”
그녀의 말처럼 테세트 황무지는 이제 누구도 황무지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장소로 변해버렸다.
기름지고 넓은 평야. 야생동물이 뛰어놀고 새들이 지저귀는 풍요로운 땅에는화창한 햇살이 스며들어오는 울창한 산림이 가득했고, 맑고 투명한 강과 호수에는 두툼하게 살이 오른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헤엄친다고 한다.
거기에 무수한 천연자원과 마나타이트의 매장지까지.
이 지역의 크기가 무려 테르할 제국의 절반에 이른다는 내용이 토지 조사 보고서에 쓰여져 있었다.
하지만 이 서류에서 주목할 대목은 거기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황제 녀석! 이건 단순한 토지 조사가 아니잖아.완전히 군사 목적으로 작성한 전략 로드맵이야. 감히 제국회의에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런것을 몰래 조사하다니 제정신이야?!!”
“후후후후. 친절한 설명 수고하셨어요. 선배.”
“뭐? 아앗?! 크흠.”
제레미는 그제야 모든 기사단원이 자신을 쳐다보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테세트 황무지에서 일어난 변화는 지금 국제적으로도 가장 뜨거운 감자 중에 감자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 땅의 소유권이 도대체 누구에게 있느냐는 거죠.”
현재 테세트 황무지를 명목상으로나마 영토에 편입하고 있는 나라는 오팔 왕국이었다.
한때는 대륙을 호령하던 패자였지만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로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중소 규모의국가.
게다가 신의 분노를 샀다고 해도 대륙을 통일한 강대국이었던 마도 제국을 흠모하며 후계자를 자처하는 나라는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에, 누가 이영유권에 시비를 걸고 군대를 일으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렇게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역일수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거야. 다짜고짜 깃발부터 꽂아보겠다고 성급하게 달려들면 대륙의 모든 나라로부터 집중포화를 얻어맞을 텐데. 이런 기본적인 사고도 못하는 건가?”
“그만큼 황제가 궁지에 몰려있다는 거다. 제레미.”
발터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녀석이다. 너희들도 그 혼잣말을 들었을 테지만 군사적인 성과를 내지 못해서 안달이 나버린 게지. 십중팔구 제국회의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할 테니 3군단을 통솔하는 장인 오울 후작으로부터 군대를 동원하려고 했을 거다. 빌어먹을 녀석!”
쿵!
주먹을 내리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단장 대리님.”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당장 제국회의의 원로위원들을 만나서 이번 일을 상의해야지. 그자들의 엉덩이가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이번 일을 넘어가지는 못할 테니까.”
“어머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시겠어요?”
곰방대를 길게 빨아들인 로티나가 질문해 왔다.
“무슨 소리냐?”
“뭐처럼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겨우 그 정도 성과만으로도 괜찮으시냐는 거예요.”
이 말에 발터의 움직임이 멈췄다.
“좋은 책략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냐?”
“물론이죠. 후후후.”
자신만만하게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재떨이에 곰방대를 두드려 털었다.
“사실은 제가 이 사건을 조사하다가 배후에 있는 굉장히 흥미로운 분을 하나 발견해 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