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whos your papa(1)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스승님”
제자들이 일제히 외치며 새로운 마법진을 만들고 주문을 영창했다.
동시에 조용한 밤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드는가 싶더니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그 속도를 점점 높여 나갔다.
쿠구구궁
하늘에서 들려오는 뇌성에 퍼스트 선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기상상태가 변하고 있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설마, 인간들을 날씨마저도 자신들의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가 있는 건가?’
마스터 코어도 마음만 먹으면대기 환경을 바꿀 수 있지만 이렇게 빠른 변화는 불가능하고 엄청난 시간 투자와 노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그것을 이렇게 쉽게 조종하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
초현실적인 상황과 마주한 퍼스트 선은 악몽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금방 고개를 흔들어서 정신을 다잡았다.
“고도를 낮춰. 카루크. 하늘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어. 최대한 낮은 곳까지 내려가야만 해.”
크르르르르-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것은 와이번도 마찬가지였는지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쾅!!
가까운 위치에 벼락이 떨어지면서 순간적으로 주변이 환하게 밝혀졌다.
동시에 지상의 수목에 가려져 있었던 시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리사엘과 싸운 인간들의 흔적인가?’
찰나에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새로운 정보로 뭔가를 떠올려 내기에는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나 급박했다.
지이이이잉-
폭풍의 중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커다란 눈동자.
마치 눈물이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검은 점들이 이어져 내려오더니 한 자루의 창으로 형태를 갖췄다.
그것이 서서히 각도를 바꿔서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퍼스트 선이 와이번을 재촉했다.
“최대 속도로 날아. 카루크. 서둘러!!”
크오오오오!!
힘차게 포효한 와이번이 날개를 활짝 펼쳤지만 마법사들의 주문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발로 퓌라]
[타나토스 롱케]
허공에서 나타난 조그마한 불씨가 순식간에 거대한 화염 폭풍으로 변하여 눈앞에 있는 아군들을 집어 삼켜버렸다.
“리사에에에에에에에엘---!!!”
뒤이어서 날아온 죽음의 창이 퍼스트 선과 와이번을 꿰뚫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
짝!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때린 사람과 맞은 사람이 바뀌어버린 것 같은 표정.
쥬란은 담담했지만 오히려 따귀를 때린 디아도 3세가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쳤다.
“이런 개…”
“참아. 아이크!”
상관이 당한 수모에 분노한 거구의 기사가 검집에 손을 댔지만 곁에 있던 동료가 재빠르게 그것을 말렸다.
다행스럽게도 워낙에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그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
“겨, 경은 짐을 능멸하는 것이냐? 어찌하여 천하의 제국 기사가부하 관리 하나를 똑바로 하지 못해서 제국의 위신을 떨어트린다는 말이냐!”
“송구합니다.”
“에에잇! 꼴도 보기 싫으니까 썩 물러가라! 다시 부를 때까지는 자택 밖으로 얼씬도 하지 말거라.”
“존명.”
짧게 대답하며 일어서자 부하들이 우르르 뒤를 따랐다.
크게 한숨을 뱉으면 옥좌에 주저앉아버리는 황제. 불안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훔치는 궁정 내관들. 황실을 지키는친위대조차 살벌하기 이를 데가 없는 기사단원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기에 급급했다.
푸른 정복을 휘날리면서 퇴청하는 창공 기사단의 보무는 징계를 받고 나온다기에는 너무나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황제는, 테르할 제국의 황제는 짐이란 말이다. 젠장.”
그런 그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시기 섞인 목소리.
‘가지가지 하는군. 패배자 녀석.’
‘제국의 지존이라는 자가 저런 꼬락서니니…’
딴에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을 테지만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청각을 가지고 있는 기사단원들에게는 메가폰 마법으로 떠들어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쥬란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것처럼 담담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기사단의 지휘는 당분간 발터 부단장에게 이양하겠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냐?”
“다니엘레에 대한 처분은 어떻게 할까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당사자가 흠칫 놀라며 안절부절못했다.
“3개월의 근신 처분을 명한다. 자신의 오명은 자신의 손으로 씻어내겠다고 했으니 기회를 주지. 기사단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라.”
“감사합니다! 절대로 실망하시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관대한 처분이 떨어지자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외쳤다.
하지만그런 그를 쳐다보는 다른 기사단원들의 눈초리는 곱지가 않았다.
“나는 폐하께서 부르실 때까지 자숙하며 폐관 수련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임무에 충실해라. 이상이다.”
“자택까지 모시겠습니다. 단장님!”
“아닙니다. 제가 모시게 해주십시오!”
해산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단원들이 앞다퉈서 쥬란에게 몰려들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자숙하겠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냐? 물러서라.”
“죄, 죄송합니다.”
부하들이 물러서면서 길이 열리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리고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기사단원 네 명을 거구의 사내가 한꺼번에 양팔로 감싸 안았다.
으드드드득-
“아, 아이크 대장님?”
“이런 눈치 없는 녀석들 같으니라고! 단장님의 심정을 헤아려 드리란 말이야. 언제나 제국을 위해서 불철주야 애쓰는 분인데, 저런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를 양아치 황제에게 수모를 당하는 게 말이 되냐고. 이게 나라냐? 아앙? 다니엘레!”
“네, 네!”
“뭘 멍청하게 서 있어. 대가리 박어. 새끼야!!”
쿵!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이크 대장님. 용서해주십시오!”
이마에서 피가 나도록 땅바닥을찧었지만 아이크는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발을 들어 올렸다.
쿵!
“커윽!”
“사과는 내가 아니라 단장님에게 해야지. 저분은 말이야. 감히 너 같은 녀석 때문에 이런 치욕을 감수해도 되는 분이 아니란 말이다!!”
그의 말처럼 쥬란 신은 제국무장들의 자존심이라고까지 불리는 인물이었다.
불과 20대 후반의 나이로 세계 최강의 검사라는 호칭을 얻어서 역대 최강의 무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자 중의 강자.
출신, 나이, 성별, 학연, 지연 중에서도 강함이라는 것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는 제국에서는 군인들만 아니라 온 백성이 흠모하는 아이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에 공작 가문의 후계자라는 지위와 실적이면 실적, 인품이면 인품, 강력한 카리스마까지 모두 겸비한 초인.
그를 흠모하고 따르는 창공 기사단원들에게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만해. 아이크.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끼어들지 마라. 제레미! 이 멍청한 새끼 때문에 지난 100년 동안 지켜온 창공 기사단의 자존심이 쓰레기통에 처박혀 버렸다. 비룡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죽었어야지.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살아서돌아온 거냐. 아앙?!”
분노한 그가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리자 2m가 넘는 근육질의 다니엘레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허공에 떠올라 버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주르르륵-
겁을 먹어서 오줌까지 지려버리는 다니엘레.
제레미는 이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다시 한번 끼어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중간에서 마음대로 처벌을 하면 하극상이다. 단장님이 이미 근신 명령을 내리셨는데 훼방을 놔서 규율을 깨버릴 셈이냐?”
“그, 그건. 끄응.”
쥬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마지못해서 그를 놓아주었다.
“너는 어서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라. 단원들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으면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죽은 것처럼 조용히지내야 할 거다. 그리고 지금 일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려라. 무슨 뜻인지 알겠지?”
“물론입니다. 제레미 대장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죽음 문턱에서 살아난 것처럼 몇 번이나 고마움을 표시하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이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인물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하하. 네가 인복 하나는 타고났구나. 아이크. 아무리 실수를 저질러도 이렇게 열심히 덮어주는 친구가 있으니까 말이야.”
흠칫!
소스라치게 놀라는 두 사람.
“보, 보고 계셨습니까? 발터 부단장님.”
“단장 대리야. 단장 대리. 기간 한정이라고는 하지만만년 부단장이라는 지위에서 뭐처럼 해방되었는데 조금은 신경을 써주셔야지.”
너스레를 떨어오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추태가 모두 발각당했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독사 앞에 생쥐들처럼 안절부절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