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패전(4)
두두두두두-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이에 뒤늦게 나타난 기병대가 가까이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니엘레경. 오오오오! 벌써 도망치던 괴물을 사로잡으셨군요. 과연 창공 기사단의 감탄할만한 활약 앞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정말로 대단한 무용이십니다. 하하하하하!”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공적을 치하했지만 자신의 이름이 누설되어버린 다니엘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거리를 유지하시오. 젝슨 경. 이 녀석은 요사스러운 말로 사람을 현혹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소. 앞으로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지금 기회에 끝장을 내버리겠소!”
“퉤!”
그 순간 퍼스트 선이 침을 뱉었다.
“이 녀석이 감히…”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분비물에 다니엘레가 인상을 썼다.
그 자신은 가볍게 물러서면서 피해냈지만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와이번은 더러워지고 말았다.
“하하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우습지? 겁에 질린 나머지 이제는 실성해버린 것이냐.”
“아니. 다른 자들에게는 조심하라는 주제에 본인은 의기양양한 네놈의 꼴이 우스워서 말이야.”
“흥! 마지막까지 입만 살아있는 녀석이군.”
“글쎄? 쓸데없이 혓바닥이 길어 보이는 것은 오히려 네 쪽인데. 다니엘레.”
“뭐라고?”
크오오오오오오!!
그 순간. 와이번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부르르르르-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이냐? 카루크. 진정해라. 진정해!”
“무슨 일입니까? 다니엘레 경.”
“나도 잘 모르겠소. 일단은 위험하니 물러서시오!”
쿵! 쿵! 쿵! 쿵!
폭주하는 안장 위에서 다니엘레가 급하게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와이번을 진정시키는 사이에, 꼬리에서 풀려난 퍼스트 선이 바닥으로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
“큭. 녀석을 놓치지 마시오. 젝슨 경!”
“맡겨 주십시오. 전원 발도!”
쳉!
기병대가 일제히 세이버를 뽑아 들었다.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있는 퍼스트 선도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서 느릿하게나마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온몸이 너덜너덜했고 출혈을 막기 위해서 양소 모두가 무용지물인 상태였다.
‘이거야말로 땅을 짚고 헤엄치는 꼴이군.’
승리를 확신한 젝슨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다니엘레가 다 잡은 괴물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것이 다소 비겁해 보이기는 했지만, 전과는 전과고 공적은 공적이었다.
“죽어라. 더러운 괴물 녀석!”
단숨에 퍼스트 선의 눈앞까지 쇄도해 들어가는 기병대.
촤아아아아악!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시야를 덮어버렸다.
‘해치웠나?’
퍼스트 선을 지나친 젝슨이 그런 생각을 했다.
세이버는 확실하게 목표를 향해서 휘둘러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감촉이 없었다.
여전히 비틀거리면서도 검림劍林을 헤치고 나온 퍼스트 선에게는 새롭게 생긴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량으로 뿜어져 나온 피는 어디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파지지지직!
“크크크큭. 쓸데없이 떠들어서 체력을 회복할 여유를 줘서 고맙구나. 다니엘레.”
입가에 떠오르는 비웃음과함께 허공에서 활짝 펼쳐져 있는 오른쪽 손바닥이 젝슨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제야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당했다. 녀석은 일부러…커헉!”
“끄아아아아악!!”
동공이 급격하게 팽창되는가 싶더니 외마디 비명을 질러대면서 낙마해버리는 병사들.
히히히히히힝!
사람과 짐승이예외 없이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다.
“살려줘. 숨을, 숨을 쉴 수가 없어!”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으아아아악!!”
“시끄러워. 시끄러! 누가 저 소리를 멈춰. 제발!”
안구가 빨간색으로 물들어버린 병사들은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환상과 환청에 사로잡혀서 비명을 질러대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공포를 느낀 추격대가 주춤거리면서 물러서고 있을 때, 눈썰미가 좋은 병사 하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독이다. 녀석의 체액에 독이 들어있습니다. 모두 조심하십시오!”
“뭐라고? 그렇다면 설마 카루크가 날뛰는 것도 네놈의 짓이란 말이냐!”
“흥!”
다니엘레의 물음에 퍼스트 선은 콧방귀를 꼈다.
“감히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와이번에게 독을 사용하다니. 절대로 네놈을 용서하지 않겠다!”
후우우우웅!
안장을 박차고 뛰어내린 그가 할버드를 휘둘러왔다.
커다란 도끼날에서 흉흉항 기운이 뿜어져 나왔지만 퍼스트 선은 당황하지 않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기병대 병사를 인질로 잡아서 뒤로 숨어버렸다.
“아아아아?”
완전히 탈진해버려서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상태.
“젠장!”
이 모습에 다니엘레는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쓸모없는 아군이 걸리적거리다니!’
주위에 보는 눈만 없다면 주저하지 않고 한꺼번에 베어버렸을 테지만 추격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데 같은 편을 죽여버릴 수는 없었다.
“비겁하게 굴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촤아아아아악!
“윽?!”
대답 대신에 날아오는 대량의 피를 보고 늘란 그가 할버드를 방패처럼 회전시키면서 급하게 물러섰다.
“무서워서 가까이 오지도 못하는 주제에 잘도 지껄이는구나. 다니엘레!”
“이놈이 감히…”
촤아아아악!
발끈하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뿌려지는 피에 놀라서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었다.
퍼스트 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와이번 위로 올라탔다.
“이 친구는 받아가도록 하지.”
“뭐라고?”
어처구니없는 선언에 다니엘레는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멀쩡한 상태로 돌아와 있는 와이번.
주제도 모르고 용족의 등에 오르려고 하는 괴물을 용서 없이 내동댕이쳐버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퍼스트 선이 쉽게 올라탈 수 있도록 상체를 납작 엎드려주면서 복종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가자.”
크오오오오오!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날개를 활짝 펼쳤다.
“머, 멈춰라. 카루크!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녀석을 떨어트려라. 어서!”
당황해버린 나머지 말까지 더듬어버리고 말았지만 주인의 외침을 가볍게 무시해버리고는 하늘을 향해서 단숨에 솟구쳐 올랐다.
“괴물들이 도망친다. 어서 공격해라. 어서!!”
처처처처척!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추격대의 장교가 호령하자 병사들이 일제히 석궁을꺼내 들었다.
하지만 다니엘레가 그들을 막아섰다.
“멈춰라! 도대체 지금 무슨 짓들을 하려는 것이냐? 감히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번스타인 가문의 비룡을 공격하려고 하다니 바보 같은 녀석들!”
“하지만 다니엘레 경. 녀석을 이대로 놓쳐버리면 제국군과 창공 기사단의 체면이…”
“걱정하지 않아도 이 오명은 언젠가 내 손으로 씻어낼 것이다. 듣고 있느냐? 네놈이 이 세상 어디에 숨어있다해도 반드시찾아내서 복수해주마.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너와, 네 족속들을 모조리 씹어먹을 거이야아아아아!!”
분노에 가득한 포효를 뒤로하면서, 하늘에 오른 와이번은 힘차게 속도를 내어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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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종이 한 장의 차이로 간신히 살았군.”
파지지지직!
불안정한 융합 상태 때문에 신체에서는 계속해서 전기 스파크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의 위기를 무사히 넘겨낼 수 있었던 이유도 절반은 마스터 코어의 활약 덕분이었다.
꼼짝없이 최후를 맞이한다고 생각한 순간에 생존본능에 영향을 받기라도 했는지 자가치유능력이 활성화되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종잡을 수가 없는 힘이란 말이지.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은 원래 융합 단계에서 가장 먼저 발휘되었어야 하는데.”
살짝 투덜거렸지만 마스터 코어가 답변해줄 리는 없었다.
잘려나간 팔이 욱신거려왔다.
“다니엘레라고 했지? 여러 가지로 터무니없는 녀석이었어. 감히 여왕 폐하에게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저렇게 연약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말도 안 되는 전투능력을 발휘하다니…”
처음부터 패널티를 가진 상태로 싸웠다고는 했지만 마스터 코어와 완전히 융합한 상태로 다시 정면으로 맞붙는다고 해도 승패를 장담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강자.
선천적으로 나약하기 이를 데가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인간과 비교하면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강함은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퍼스트 선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