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패전(2)
“하지만 나는…”
우드드득!
친위대장이 상처를 입은 몸을 무리하게 일으켜서 걸음을 내딛자 무릎이 으스러져버리고 말았다.
“지, 지금 뭐 하는 건가?! 움직이면 상처가…”
깜짝 놀란 퍼스트 선이 부축해주려고 했지만 주먹이 날아와서얼굴을 때렸다.
퍽!
“큭!”
“이따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 원을 이끌어가야 하는 폐하께서 그렇게 나약한 마음으로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자비는 사치일 뿐. 소신의 시체를 밟고 가십시오. 필요하다면 더 많은 시체 수렁이라도 거침없이 헤쳐나가십시오! 그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이요, 대의입니다! 쿨럭, 새로운 국왕 폐하 만세! 더, 더 원에게 영광이 있으라--”
친위대장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며 하늘을 향해서 외쳤다.
이미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몸으로 무리하게 뻗어 올린 주먹. 그런데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의지로 자신의 죽음을 선체로 받아들였다.
마치, 절대로 꺾여나가지 않는 더 원의 정신을 대변해주는 것처럼.
퍼스트 선은 핏발선 눈으로 지면을 움켜잡았다.
“인간…”
짝!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는 스스로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미안하다. 친위대장. 그리고 고맙다!”
그의 유언처럼 여왕인 오르피아가 전사한 지금. 더 원을 이끌어가야 하는 자는 자신밖에 없었다.
‘앞으로 100년. 적어도 마스터 코어가 완전히 융합되어서 후계자에게 물려줄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되기 전까지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은 좋지 못했다.
고립무원.
사방에서 전투의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모두가 아군이 뱉어내는 단말마로 사그라지고 있었다.
얼마남지 않은 희망의 불씨가 빠르게 꺼져들어 간다.
‘사령부에서 마지막으로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리사엘과 네비로스. 그리고 루스탐의 군대는 건재했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과 합류해야 해. 여기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것은 리사엘인가?’
주변의 지형지물을 통해서 현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한시가 다르게변화하고 있는전황이었다.
‘통신 방해 때문에 퇴각지를 설정하지 못했어. 아마도 적들이 쳐들어온 방향과는 반대 방향. 서쪽으로도망치고 있을 테지만 얼마나 이동했을지가 관건이야. 섣부르게 합류하려고 했다가는 추격하는 적들에게 둘러싸여서 고립당할 수도 있어.’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컹컹! 컹컹!
아니나 다를까 퍼스트 선의 냄새를 맡은 추격대의 사냥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었다.
“마수의 흔적을 찾았다. 스틸 도그를 풀어라!”
“기병대는 뒤를 쫓아라. 한 마리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젠장!”
어쩔 수 없이 숨어서 이동하는 것을 포기하고 달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저기에 있다!”
타다다다다다닷!
‘빨라!’
스틸 도그들이 바람처럼 빠르게 접근해 왔다.
크아아아앙!
사나운 울음소리와 함께 뛰어오른 짐승의 날카로운 강철 클로가 뺨을 그으며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깡!
“큭!”
손등의 사출 부위에서 가시검을 뽑아내어 받아쳤지만 갑주를 뚫지 못하고 퉁겨져 버렸다.
‘저렇게 두꺼운 장비를 입고 움직이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신체 능력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퍼스트 선인 자신의 속도를 하나씩 따라잡아서 숫자를 늘려나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주위를완벽하게 포위해버린 스틸 도그들.
벌려진 간격을 천천히 좁혀오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해오고 있었다.
‘전형적인 무리 사냥이야. 어떻게 해서라도 발을 묶어보려는 수작이군.’
적들의 노림수를 간파한 퍼스트 선은 운신의 폭이 줄어들기 전에 서둘러서 치고 나갔다.
쿵!
크아아아앙!
정면 돌파를 시도하자 뒤쪽에서 공격해 왔다.
‘걸렸군.’
일부러 드러낸 빈틈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반격을 준비하며 상대방을 조준했다.
‘갑옷의 틈새로 단숨에 관통해주마.’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방해가 들어왔다.
컹컹!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하면서 곧추세우더니 갑작스럽게 속도를 늦춰버리는 녀석.
‘설마! 내가 노리는 것을 알아차리고 지시를 내린 거야?’
이해할 수 없는 간파능력에 당황하는 사이에 다른 스틸 도그가 공격해 들어왔다.
까가가가강!
강철 클로와 가시검이 충돌며 불꽃을 튀겼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정신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파상 공세.
크아아아아앙!
투카카카캉! 캉! 쾅!
‘젠장,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해!’
정신없이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퍼스트 선의 손속이 점점 어지러워져 갔다.
스틸 도그들은 축차 투입을 반복하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경이로운 신체 능력에 비하면 공격 자체는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와 물량의 우위로 기계장치처럼 정교하게 공수후퇴를 반복하는 연계능력이 이만저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가신 문제는 자신의 움직임을 완전히 꿰뚫어보고 있는 녀석이 있다는 것이었다.
컹컹!
‘틀림없어. 지시를 내리는 녀석이 무리를 이끄는 리더야. 도대체 어디에서 명령을 내리고 있는 거지?’
짖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위치를 파악하려고 애를 썼지만, 부하들 사이에서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 번번이 허탕을 치고 말았다.
결국, 먼저 실수를 저지른 쪽은 초조해진 퍼스트 선이었다.
크르르르르르!
“큭!”
어깨를 물고 늘어지면서 고개를 거칠게 흔들어대는 스틸 도그를 떨쳐내기가 무섭게 다른 녀석이 몸통박치기를 해왔다.
쿵!
주르르르륵-
균형을 잃고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바닥으로 미끄러져서 지면이 패여 나갔다.
결국에는 멈추어버린 다리.
크르르르-
사냥감의 기동력을 제로로만들어버린 스틸 도그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보내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사방을 포위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휴우-.”
완전히 당해버렸다는 생각에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도망치는 일만 생각하다 보니까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못했군. 일단은 차분하게 머리를 식히자.’
다행스럽게도 스틸 도그들의 주인이 곧바로 들이닥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퍼스트 선은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솔직히 어려운 상대는 아니야. 승리조건은 단순해. 리더만 제거하면 나머지는 송사리들이나 다름이 없어.’
적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에는 유능한 리더의 지휘능력이 핵심에 있었다.
녀석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필사적으로 존재를 숨기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략하지 못할 상대는 아니었다.
‘녀석의 약점은 파악했어. 부하들을 희생시키지 못하는 다정함. 처음부터 피해를 감수하고 공격해 들어왔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지를 않았어. 동료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리더는 때에 따라서 비정해져야 하지. 친위대장이 했던 말처럼…’
시체의 수렁을 헤치고 나아가라는 그의 외침이 머릿속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의 충고 덕분에 타개책을 떠올려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으르르르르!
아무리 능숙한 사냥 집단이라고는 해도 신출내기는 존재하기 마련.
공격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추격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서 들썩거리는 혈기왕성한 스틸 도그 한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녀석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들켜서는 안 돼.’
호흡을 가다듬은 퍼스트 선은 벽력처럼 빠르게 가시검을 조준했다.
슈파아아아앗!
켕?!
갑작스럽게 발사되어서 날아오는 공격에 당황해서 굳어버리는 스틸 도그들.
지금까지 모든 공격을 꿰뚫어 보았던 리더도 이번에는 예상 밖이었는지 늦게서야 반응을 했다.
컹컹!
하지만 부하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버린 나머지 너무나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
“거기냐!!”
쿵!
목표를 포착한 퍼스트 선이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컹컹! 컹컹!
그제야 자신의 위치가 탄로 나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리더가 허겁지겁 부하들을 불러들였지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버린 시점에서 승패는 이미 정해진 거나 머찬가지였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
파지지지지지직!
이를 악물며 마스터 코어의 힘을 끌어올린 퍼스트 선이 자신의 생체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멕시멈 부스트!”
투콰아아앙!
세상이 정지하는 것처럼 느려지면서 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신체의 모든 세포가 활성화되며 아드레날린이 미칠 듯이 끓어올랐고 퍼스트 선은 한 줄기 번개가 되어서 스틸 도그 무리를 돌파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