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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패전(1) (1/429)



〈 1화 〉패전(1)

콰콰콰쾅!

쿠오오오오오!

폭발이 터질 때마다 둥지 고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수비군은 전멸. 인간의 군대가 부화장까지 밀려들어서 어린 유충과 알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렸다.

[무리의 지휘관들에게 알린다. 적들이 본진을 공격하고 있다. 지금 즉시 귀환하라! 반복한다. 적들이…]

통신수들이 분주하게 더듬이를 움직이며 사념파를 발산했지만 적들이 펼친 결계에 가로막혀서 어떤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혼란에 빠진 군대는 우왕좌왕했고 전세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적들이 우리의 수비 체계를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어. 도대체 어떻게? 젠장, 시간이 없어. 하다못해 여왕 폐하만이라도 피신시켜야 해.’

전장의 상황을 분석하던 퍼스트 선이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을 때, 가까이에서 굉음이 터졌다.


쾅!

[중앙 통로가 돌파당했습니다. 어서 피하십시, 아아아악!]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사념파.


이제는 한 시도 지체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라. 내가 선봉을 이끌 테니 친위대는 여왕 폐하를 안전한 장소까지 모셔라!”


[그 작전은 승인할  없다.]


순식간에 반대에 부딪혔다.

“폐하?”

[저들의 목적은 나다. 도망치려고 하면 발목을 잡게 될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무래도 네가 나의 자리를 물려받을 때가 온 모양이구나. 아들아.]

“!”


당황한 퍼스트 선이 다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부디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아직 더 원을 이끌 자격이없습니다! 게다가 마스터 코어까지 가져간다면 폐하는…”


[누구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단다. 하나씩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가는 법이지.]


그녀의 손이 아들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번에 마주친 적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자들과는 다르더구나. 아들아. 가혹하고 어려운 시대가 찾아오겠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말거라.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거야.  손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지켜내 다오.]


“폐하!”

유언이라고밖에 생각할  없는 충고에 여기저기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지이이잉!

그녀가 자신의 품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을 꺼내 들었다.


영원히 타오르는 생명의 등화.  원의 지배자들이 만 년을 이어온 지보至寶에 신하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조아렸지만, 퍼스트 선은 두려워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역시 이럴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부디 소자와 함께…”


쾅!


하지만 간청을 끝내기도 전에 마스터 코어가 날아들어서 충돌해버리고 말았다.

파지지직!

기절해버린 퍼스트 선.


스파크가 튀어 오를 때마다 신체가 경련을 일으켰지만 바이탈 사인에는 문제가 없었고 마스터 코어도 순조롭게 흡수되어서 융합해가고 있었다.

[너라면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자랑스럽구나.]

다시 한번 사랑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은 그녀가 부하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친위대장!]


“네, 여왕 폐하!”

[저는 여기에 남아서 적들의 시선을 끌겠습니다. 포위가 느슨해지는 틈을 노려서 새로운 왕을 모시고 빠져나가십시오.  원의 운명이 그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지켜내셔야 합니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지금까지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영광이었습니다!!”


쿵!

전사들이 믿음직스러운 대답을 남기고 떠나갈 때, 그녀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마지막에는 어머니라고 불러줬나요?]

기억할 수도 없는 옛날. 애벌레에서 탈피해 여왕으로 독립한 이래, 수많은 자식의 희생으로 왕국을 건설했지만 누군가에게 어머니라고불려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일 터.


[설마 어머니로 죽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용기라는 건가요?]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소중한 감정을 주먹으로 꼬옥 쥐었다.

하지만 심판의 순간은 그런 감상을 오랫동안 허락해주지 않았다.


쾅!

불을 뿜는 용의 형상을 한 파성추가 최후의 문을 부수고 사나운 어금니를 드러냈다.

“승리가 눈앞에 있다. 전군 돌격하라!!”


“우아아아아아아아-!!”

기치창검을 앞세우며쏟아져 들어오는 적들.

[오너라 침략자들아! 하나이자 모든 이들의 어머니. 나 오르피아가 그대들을 상대하겠노라. 감히 나의 분노에 맞설 수 있다면 어디 한  맞서보거라!]


크오오오오오오오오!!

포효를 내지른 그녀가 적진의 한복판으로 뛰어 들어갔다.

“으아아아아악!!”


“괴, 괴물이다! 괴물!!”

무시무시한 피어에 겁을 먹은 병사들이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두두두두둑!

12개의 다리가 춤을 추며 호선을 그릴 때마다 창과 방패가 부서져 나가면서 하늘을 날았고, 피와 살이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중과부적.

순식간에 돌입한 인간 군대의 태반이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쓸려져 나갔다.


그 지옥도에서 간신히 살아서 빠져나온 기사장 그리커스는 바위 뒤로 몸을 숨기면서 거칠게 헐떡거렸다.

“허억, 허억! 젠장, 젠장!!”


“정신 차리시오. 라이온즈 하트!”

정신계 치유마법이 따스하게 몸을 감싸자 공포로 쪼그라들었던 뇌가 활동을 재개했다.


“휴우. 살았습니다. 아론 대사제님! 제 평생 이렇게 무시무시한 피어는 처음입니다. 아직도 손이 덜덜 떨리는군요.”

“나도 마찬가지오. 기사장.”


여왕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크기는 약 7m에서 8m사이.


회색 피부의 상반신은 인간의 여성과 다름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하체는 흉측하게 이를 데가 없는 거미 같은 외형에 가시들이 돋아나 있었다.


강철처럼 날카로운 다리는 금강투합체를 수련한 중장기사들을 단숨에 두 동강 내어버렸고, 짐승을 떠올리게 하는 털투성이 팔이 휘둘러질 때마다 병사들의 육체가 찢어 발겨져서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대관절 어디에서 저런 악마가 기어 올라온 것입니까?”

“나도 모르오. 하지만 이 괴물이야말로 맹목의 성녀가 신탁으로 예언한 종말의 여왕이 틀림없소. 그러니 여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오. 전열을가다듬고 원군을 부르시오. 기사장. 빛의 승리를 위하여!”

“빛의 승리를 위하여!!”


부우우우우우우-

지원군을 부르는 뿔나팔의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




파지지직- 파지지직-


몸에서 스파크를 내며 계속해서 들썩거리던 퍼스트 선이 간신히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어디지?”

목덜미를 스치는 차가운 바람.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서 밤이 되어 있었다.

“쿨럭, 쿨럭. 이제야 정신이 드십니까? 폐하.”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쓰러져 있는 친위대장이 보였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성한 곳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처참한 상태. 가슴에는 팔이 하나 들어갈 만한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어서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친위대장, 여왕 폐하는 어디에 계시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뭐라고?!”

“쿨럭, 그분께서는 아군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혼자서 남아 싸워주셨습니다. 덕분에 포위망을 벗어나기는 했습니다만 쿨럭, 적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모두 죽고 저마저도 이렇게 으윽, 죄송합니다.”

털썩!

믿어지지 않는 비보였기에 퍼스트 선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모두 죽었다고? 여왕 폐하마저도이렇게 허무하게…”

그에게 오르피아는 단순한 어머니 이상이었다.

고향을 잃어버린 더 원이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서 오랜 여정을 해오는 동안에 자신들을 이끌어 주었던 희망의 별빛 같았던 지도자.

차가운 우주의 냉혹함 속에서 수많은 동족이 죽어 나갔고 모두가 지쳐 쓰러져 포기하려는 순간에도, 그녀는 한결같이 자신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다그치면서 새로운 세계까지 이끌어 주었다.


그런 그녀를 더 원의 어느 아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도  돼. 어째서 나 따위를 위해서 그분이 돌아가셔야 한다는 말이냐! 우리들의 어머니가 아니냐? 마스터 코어가 아니라 그분을 지켜냈어야 한다. 내가 대신했어야 했다. 내 힘이 모자라서 그분이 이런 선택을 제기랄, 제기랄!!”

쿵! 쿵! 쿵!


지면을 내리치는 주먹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쿨럭, 일어서십시오. 폐하. 그분을 사랑한다면 유지를 헛되이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퍼스트 선으로서부여받은 사명을 완수하십시오! 자, 가셔야만 합니다. 적의 포위를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언제 추격대가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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