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173. 전면전의 시작을 알리다.
* * *
“크윽!!!”
“전선 유지가 힘듭니다!”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적들의 반항이 상상 이상입니다!”
“장군!!!”
“에잇!!! 조용히들 하지 못해! 여기서 전선을 뒤로 물리면 전하를 볼 낯이 없다 이 말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전선을 유지해야 한다!”
렘톤 인근의 야산 초입에 길게 늘어선 프레드릭 군세의 주둔지, 산지에서 그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철저한 감시와 포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따금 벌어지는 산발적인 전투에서 항상 손실을 내면서 근근이 버티는 중이었다.
렘톤 수비에 한 축을 담당하는 숲과 나무가 우거진 아주 험악한 지형의 야산, 일부 아인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지형이면서 이동에 제약조차 없지만, 인간들에게는 확실히 매우 위험한 지형이었다.
프레드릭 측에서 렘톤을 공격하고자 하면 이 길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다른 길목은 밀크가 미리 선수를 쳐서 군세가 이동하기 힘들게 막아두거나 강이 흐르는 지역이라 배가 없으면 넘어가기 힘들었고 또 다른 지역은 중립 귀족들이 단단히 틀어쥐고 있기에 프레드릭의 군세는 그 길을 빌릴 수가 없었다.
중립 귀족이 왜 중립 귀족인가. 그 어떤 곳과도 싸우지 않지만 그렇다고 돕지도 않고 자신들만의 길을 가기에 중립 귀족이다. 1 왕자든, 2 왕자든, 4 왕자든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왕국이 다시 재정립되어 이들을 부른다면 왕국을 위해 일할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그 누구에게도 손을 뻗지 않는 아주 신중한 이들이었다.
다만, 아인 연합이라 칭하는 그들의 지도자 밀크와는 그리 나쁘지 않은 관계에 있다는 소문이 돌아 선뜩 그들에게 길을 빌릴 수가 없다. 괜히 그들에게 길을 빌렸다가 이 소문이 아인 연합에 들어간다면 그곳을 또 집중적으로 방어할 테니 빌리지 않는 것만 못했다.
하여 원래 있던 길을 좀 더 손쉽게 통과하고자 산불을 내 야산을 모두 태워버리는 작전을 시행했으나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지금, 이 군세의 지휘관은 프레드릭이 도착할 때까지 전선이 밀리지 않는 선에서 단단히 아인들의 이동을 봉쇄하라는 지령을 시행하는 중이었다.
주변과 아인들의 연합을 확실하게 봉쇄하겠다는 그의 뜻은 참으로 그럴듯하긴 했다. 이곳을 지키는 군세에겐 전혀 아니었지만 말이다.
“으악!!!”
“으아 하늘에서 온다!!!”
“피해라!!!”
공중은 이미 아인 연합의 차지였다. 바토리의 명을 받은 하피 일족과 버드맨들이 공중 병력에 합류하자 서큐버스와 함께하며 무시무시한 공대지 능력을 자랑했다.
그에 반하여 인간들에게는 지대공 공격을 할 만한 수단이 활뿐이었는데 이 활만 가지고는 높이 올라서 주먹보다 큰 돌덩이를 던지거나 밀크가 제작한 투창을 던져대는 아인 연합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활을 쏘았다간 적을 맞추지도 못하고 그대로 낙하하는 화살에 아군이 상하기도하여 함부로 사용하기도 껄끄러웠다.
“방패병은 뭐하나! 막아!!!”
방패병들이 든든한 방패를 들어 올려 아군을 방어하자 방패에 떨어지는 돌덩이가 쿵! 쿵 소리를 내며 엄청난 충격을 선사한다.
거기에 아인 연합의 투창은 인간들의 투창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뾰족하게 만들어졌으며 무게 중심까지 잘 잡힌 투창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그 공격에 방패는 속절없이 뚫려버린다.
“크악!!!”
“아악!!!”
“안돼 살려줘!!!”
“죽기 싫어!!!”
“제기랄! 적들이 던진 투창이다! 그걸 주워서 적들에게 던져라!!!”
물론 당연하게도 이 투창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과거 에스타 상단에서도 이 투창을 전격적으로 판매한 사례가 있었고 이것이 인간들의 투창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사실이 판명되어 가볍고 휴대하기도 좋아 다섯 자루 내지 열 자루를 등에 메고 다니는 자들도 등장하곤 했다.
프레드릭 쪽 인사들도 이 투창은 갖춰두자고 미리 신신당부해 두었지만, 잘나신 프레드릭이 아인들의 배를 부르게 해줄 수 없다고 구매를 거부해서 이들에게는 이 투창이 보급되지 못했었다.
없으면 나라님도 욕한다고 하지 않던가. 지휘관은 속으로 프레드릭의 욕을 마음껏 하며 병사들에게 투창을 들고 그것을 사용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투창이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투창을 맞아 죽은 아군의 시체에서 그 투창을 빼서 써야 하는데 이것이 전투중에, 혼란스러운 와중에 가능한 행동이 절대 아니었다.
“으으... 케얄….”
“마크….”
“젠장 큐곤이….”
아군, 그것도 방금까지 옆에서 싸우던 전우의 시체에 깁숙하게 박혀 있는 투창을 잡아 뽑아서 자신이 사용하는 행동은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다 심장이 강철로 이루어진 이들이 적의 시체에서 무기를 빼앗거나 화살을 뽑아 다시 사용하는 무용을 뽐내기도 하지만, 아군의 시체, 그것도 난전 속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돼는 일이었다.
퍽!
퍼퍽!!!
퍽!!!
“칵!!!”
“끄억!!!”
“안돼!!! 정지! 정지!!!”
“창 뽑지 마! 그 순간 목표물이 된다!”
“으아아!!!”
“으아 멈춰!!!”
그리고 창을 뽑으려 행동하는 그 순간은 그야말로 움직이지 않는 과녁이 될 뿐이었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창은 유한하긴 해도 이들은 공격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아래를 향해 투창을 던지기만 할 뿐이다. 이런 자유로운 상황에 창을 뽑기 위해 낑낑거리며 힘쓰고 집중한 사람이 보인다? 그야말로 먹잇감이 날 잡아 잡숴. 하는 꼴이다.
거기에 이들은 숲속에서 투창을 보급해 안전지대에 옮겨 놓은 켄타우로스들의 도움을 받고 있기에, 들고 있는 투창은 유한하되 보급되는 투창이 무한한 상태였다.
한 개의 조는 투창, 또 한 개의 조는 후방으로 이동해 투창을 보급 남은 한 개의 조는 보급을 받고 다시 전방으로 이동, 적들에게 그야말로 지옥의 공포를 선사하는 공대지 무한 투창 공격이라 할 수 있었다.
“제기랄! 선두는 어떻게 해서는 숲속으로 들어가라! 그 안이라면 공중 공격은 나무들이 막아줄 거다! 어서 서둘러!!!”
지휘관이 다시 명령을 내리지만, 병사들의 발은 얼어 붙어서 섵불리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저 무시무시한 공격은 산의 초입 그러니까 이 인간들의 주둔지 바로 앞까지만 행해지고 있었다.
공중 병력의 안전을 위해 마법사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주둔지까지는 공격하지 말라는 하피 지휘관의 말에 그들의 공격 지역은 딱 그 부분에서만 이뤄지고 있었다.
하여 주둔지 바로 앞에 있는 이들은 앞에서 죽어 나가는 아군을 보면서도 이곳으로는 공격이 오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빠져 지휘관의 명령에 빠른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멀뚱거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간 군세의 지휘관이 두고만 보고 있을리 없었다. 그는 바로 독전관들을 불러 병사들의 뒤를 공격케 했다.
“명령 불복종은 곧 죽음이다! 돌격해!!!”
“으아악!!!”
“도, 돌격!!!”
“아아악!!!”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자 그들은 거대한 함성을 지르며 숲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야산의 초입은 숲,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서 인간들도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나무의 보호를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과연 아인들이 모르고 있을까?
“욱!!!”
“켁…. 켁!!!”
“하…. 함….”
숲에 들어오자마자 그들의 목에 걸리는 얇지만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 엘프들이 주로 사용하는 활의 끈이었다.
엘프원목의 주변에서 자라는 야생 덩굴을 가공해 만든 이 끈은 끊어지지 않고 탄성이 좋아 활의 끈으로 사용되곤 하는데 윈디아와 밀크의 아들 윈델은 이 끈을 손에 쥐고 적을 사냥하는 조금 잔인하지만 확실한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죽어.”
뚜둑!
밀크의 피를 타고나서 엘프치고 근력이 상당히 높은 그는 줄을 한번 당기는 것으로 목이 매달린 인간의 목뼈를 그대로 부수며 그야말로 순식간에 병사 하나를 처리했다.
“더 힘차게 당겨.”
“네, 넷!”
뚜둑!!!
뚜둑!!!
그가 이끄는 엘프 레인저 부대. 레인저라기에는 하는 행동들이 어쎄신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레인저 부대였다.
숲에서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은밀하며 또 색적에 밝은 이 부대는 렘톤 야산의 터주대감들이었다.
“이동.”
적들을 처리한 그와 그녀들은 또 다시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무 위를 은밀하게 이동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도 인간들이 무수히 죽어 나가며 수난을 겪고 있었다.
“숲에 들어오면 우리야 좋지.”
퓻!
퓻! 퓻! 퓻!
바람 총을 든 위도레빗들이 다이어울프도 한 방에 잠재워 버리는 맹독성 바늘을 날리자 인간들은 버티지 못하고 하나 둘 쓰러지고 있었다.
나무와 숲이 자신들을 숨겨주고 있다 믿고 있지만, 그것은 되돌려 말하면 아인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이곳은 그들보다 아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지형이다. 어디서 어떻게 공격을 하면….
“컥!!!”
“도…. 도글….”
“욱….”
이렇게 확실하게 타격을 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숲속에서 들려오는 야생의 울음소리가 인간들의 고막을 강타했다.
스산한 기운을 뚫고 엄청난 속도로 등장하는 것은 아인 연합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파괴력이 대단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존재들 오크와 라이칸슬로프였다.
아직 성국과의 전투에서 크게 잃어버린 인구와 전투 인원을 다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보살핌만 받으며 가만히 있는 것은 너무 죄송하다는 족장들의 발언에 힘입어 회복이 다 끝난 전투 인원만 일단 전투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성국과의 전투가 아니기에 마족의 피가 반응하지 않아 더욱 힘차게 날뛰는 중인 이들, 역시 반 아인이라 흉포함이 남달랐지만, 다른 아인들의 작전 구역에 크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날뛰고 있었다.
“나가!!! 숲에서 나가야 해!!!”
“으으! 악마야 악마!!! 저들은 악마라고!!!”
“살려줘!!!”
결국, 숲으로 들어갔던 돌격 인원들은 그 수가 반 채 되지 않는 수만 겨우 살아남아서 패주하기 시작했다.
“으으…. 이럴 리가 없다…. 이럴 리가…. 아인 주제에 감히. 감히!”
지휘관은 부들부들 떨며 자신이 내린 명령의 결과를 바라보며 이리 말할 뿐이었다.
그렇게 방화 사건 이후 인간과 아인의 첫 전면 전쟁의 결과는 아인들의 압승으로 그 막을 내렸다.
촤악!!!
그리고 그날 밤, 열심히 인간들을 지휘해 반절의 군세를 시원하게 말아 먹어버린 지휘관은 서슬 퍼런 칼날에 목이 베어져 군영 중앙에 효수되었다.
죄는 당연히 프레드릭이 도착할 때까지 제대로 된 전선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죄명이었으며, 프레드릭에게 향하는 인간 군세의 분노를 다른 대상에게 옴기려는 다른 뜻도 숨어 있었다.
“들어라!!!”
프레드릭의 위엄이 군영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사기가 낮아져 있던 인간들의 눈에 아주 약간이지만 의지가 되돌아 왔다.
“내가 온 이상 우리에겐 승리만이 존재한다!!! 우린 내일 저 산을 넘어 더러운 아인들에게 함락된 렘톤을 되찾아 인간들의 위상을 드높일 것이다!”
차가운 눈이 렘톤의 야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레드릭의 눈이 조용히 푸르른 불꽃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여자를 빼앗아간 그 저주스러운 아인이 저곳에 있다.
렘톤에 적이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