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169화, 장성하다.
* * *
단단한 렘톤의 성벽은 공성 장비를 가져온다 해도 쉬이 넘을 수 있으리란 보장을 하기 힘들 정도로 크고 웅장하게 설계되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것을 설계한 것은 밀크와 드워프 들이니 호락호락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웅장한 성벽의 위로는 저 멀리에서 엘프들에게 곤욕을 치르고 있을 인간들을 바라보기라도 하듯 숲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는 칸젤라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 뭐해?”
“적이라도 보여?”
“흐아암! 빨리 왔으면 좋겠네. 인간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싸워보고 싶단 말이야.”
그런 칸젤라의 뒤로 다가오는 칸젤라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세 명의 오거의 모습
얼굴 형태가 칸젤라를 닮아 늠름하면서도 쾌활해 보이는 야성미 있는 여성 오거들이었고 무엇보다 아버지인 홀스타우로스 밀크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인지 오거로서 가지기 힘든 매우 거대한 가슴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특수 제작한 아머를 따로 입은 이 세 명의 오거는 밀크와 칸젤라 사이에 난 첫 번째 오거 용사 중에 특히나 강인한 오거로 자란 세 사람이었다.
다른 둘과 두 번째로 태어난 일곱 쌍둥이는 모두 다 오거 용사이긴 했지만, 자신들보다 강한 수컷의 존재로 인해 커가면서 자연히 자지가 퇴화해 버렸으니 그것은 바로 밀크의 존재 때문이었다.
밀크 덕분에 용사 오거가 늘어났지만, 그 덕분에 용사 오거가 줄어들어 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그러나 밀크와 칸젤라가, 그리고 칸젤라의 용사 오거 자식이 있는 한 용사 오거는 얼마든지 태어날 수 있으므로 이후에 밀크가 조심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금 언급하고 있는 이 세 사람, 카이젤, 카이엔, 카이온은 모두 다 밀크에 버금갈 정도로 강인한 남성성을 가지고 있기에 밀크가 있음에도 암컷화가 진행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물론 아버지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얌전하게 변하지만, 그가 없으면 그 누구도 못 말리는 호전성을 가진 훌륭한 오거 전사로 자라 주었다.
오거의 성장이 빠르다곤 해도 둘이서 싸우면 칸젤라와 동급, 셋이라면 칸젤라를 압도하는 실력을 갖춘 이 세 아이에게는 거는 아인 연합의 기대는 사뭇 대단했다.
“엄마가 누누이 말했지? 실전하고 훈련을 전혀 다르다고 말이다. 훈련과 다르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전장이야. 그러니 다들 긴장을 좀 해라.”
“에이…. 엄마도 참.”
“하하하. 긴장이 뭐야. 그런 건 전장에서 필요 없다고.”
“아니…. 긴장은 해야지. 걱정하지 마. 엄마 내가 애들 잘 챙길 테니까.”
천진난만하고 유한 성격의 카이젤, 호전적이고 단순하지만, 세 자매 중에 가장 강한 카이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피를 더 강하게 가졌는지 냉정하고 머리가 가장 좋으며 홀스타우로스의 피가 강한지 다른 두 자매보다 가슴도 가장 거대한 카이온
세 사람이 못 말리겠는지 고개를 저어 보이는 칸젤라는 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느껴지는 숲을 보며 계속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칸젤라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낀 세 자매 역시 조용히 그 어미를 따라 시선을 숲으로 이동시켰다.
그곳에서는 지금 인간들이 후방에서 열심히 그들을 흔드는 엘프들이 맹공을 버티고 있었다.
“막아라!!!”
“제, 제길…. 어디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냐!”
“으아악!!!”
야심 차게 공성 무기들을 해체하여 가져오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아인들을 하찮게 여기며 그들에 관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인간들은 인간을 배우고 받아들이며 그들을 공부한 아인들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숲에 숨어 철저하게 적의 공성 장비를 수송하는 적들을 엘프들이 화살로 꿰뚫었으며 나무 위에서는 위도레빗들이 대롱에 든 독침을 날려 인간들을 사살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후송 부대를 돕기 위해 선봉을 제외한 중간 지점의 본대의 일부가 반전하여 뒤로 이동을 해보지만, 좁고 구불구불한 숲 지대의 길을 그들이 빠르게 주파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으아아!!!”
“바, 바위가!!!”
“통나무다!!!”
“피, 피해!”
“피해랏!!!”
높은 지점에서 바위와 통나무를 굴리는 코볼트들, 그들은 자신들이 타고 다니는 다이어 울프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투를 구사하며 인간들을 괴롭혔다.
“전진! 계속 전진하라!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본대의 총지휘관을 맡은 반돌프 공작은 하는 수 없이 후송 부대를 무시하고 빠르게 숲을 주파해 적의 본진인 렘톤을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선봉 부대가 겨우겨우 숲을 지나 평야에 들어섰을 때 그들의 머리로 날아오는 것은 죽음의 비와 같은 엄청난 수의 투창들이었다.
그것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선봉 부대는 그야말로 엉망으로 진형이 무너져 내렸고 그렇게 무너져 내린 진형을 향해 한때의 군마가 나타나 휩쓸기 시작했다.
“죽어라!”
“이놈들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오느냐!:”
“아인 연합의 켄타우로스 기병 부대의 힘을 보아라!!!”
아인 엽합의 켄타우로스 중 기병 부대가 날렵한 모습으로 등장해 적진을 종횡무진 휩쓸며 핼버드를 휘둘렀다.
“햐앗!!!”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켄타우로스가 있었으니 날렵한 몸으로 적진을 몰아붙이면서 그의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준 조운의 창이라는 이름을 붙인 명작 무기를 들고 그야말로 조자룡 헌 창 쓰듯 한다는 설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젊은 미남자인 켄타우로스였다.
크리스티나의 아들이자, 밀크의 아들인 존재 장차 켄타우로스의 족장이 되어 그들을 이끌어 나갈 존재로 급부상 중인 자, 그의 이름은 바로 크리스티온이다.
하지만, 아직 그는 너무도 앳되어 보였고 그런 만큼 전장에서 활약하면서 생긴 작은 빈틈을 향해 적의 화살이 날아왔다.
팅!
하지만 그런 적의 화살은 누군가의 방패에 막혀 여지없이 튕겨 나았으니 크리스티온에게 향한 공격을 튕겨낸 사람은 오거 세 자매 중 가장 막내이자 가자 냉정한 성격을 가진 카이온 이었다.
“오빠. 주변 잘 살피라고 했는데 그새 잊어버렸지?”
“아 차….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워.”
“뭘 이런 거 가지고.”
“돌아가면 술이나 한잔 사줄게?”
“오빠랑 나랑 나이가 같은 줄 아는데 나 이제 한 살이거든? 뭐…. 사준다면 고맙게 마실 거지만.”
“그래. 일단. 감히 우리 아버지의 영토를 침략한 이것들을 몰아낸 뒤의 이야기지만!!!”
“당연한 말이지!!!”
켄타우로스 부대가 뒤로 빠지기 시작하기 그곳을 메우는 것은 오거 전사들이었다.
그녀들은 거대한 방패와 검으로 무장한 대신 몸을 가벼운 무장으로 가리고는 빠르게 적에게 접근, 그리고 적들의 공격을 받아 내면서 그들을 압살하기 시작했다.
마아아앙!!!
거기에 측면에서 치고 들어오는 또 다른 군세, 홀스타우로스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우리 동생들 활약하고 있네.”
“큰언니?! 작은 언니도?!”
“왜? 그렇게 놀란 눈으로 봐? 나도 스승님(린다)에게 배운 몸이라고. 장차 아빠의 곁을 지킬 몸인데 실전 정도는 배워야지!”
“으억!!! 안돼 누님을 엄호해! 켄타우로스 부대 반전! 반전!!!”
밀푀유, 그리고 밀크림의 등장에 오거 부대와 켄타우로스 부대는 잠시 난리가 벌어지긴 했지만, 두 자매 역시 충분한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었고 적들을 압살하면서 점점 적의 선봉의 예기를 꺾어 가기 시작했다.
“본대를 엄호하라!!! 뭐하는가? 적들은 소수다! 수로 밀어붙여라!!!”
확실히 적은 소수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같이 전투라면 이골이 난 아인들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수가 아무리 많아도 인간은 인간이다. 그들의 몸을 지켜줄 대단한 무장이라도 없는 한 아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을뿐더러, 무장 역시 밀크, 그리고 드워프들의 합자긴 밀워프 제의 무구들이라 더더욱 수가 많아도 그들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다.
“조준”
그때였다. 숲에서 나타난 일단의 무리가 적을 향해 활을 조준했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 죽여”
싸늘한 어조의 엘프가 엘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남자면서 여성보다 아름다운 존재이며, 엘프지만 냉정함이라는 것을 몸에 담고 생명이라는 고귀함을 망설임 없이 취할 수 있는 윈디아의 아들인 윈델이었다.
그는 아름답지만 냉정한 표정을 하며 단검을 들고 스스로 적진으로 들어가 가장 높은 기마에 올라 적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자의 목을 그대로 잘라버렸다.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져 내리는 대장급 기사의 모습을 소름 돋을 정도로 냉정하게 바라본 윈델은 그대로 그의 목을 들고는 크리스티온의 뒤에 날렵하게 타올랐다.
“형! 미안한데 등에 탈 때 말 좀 하라고 했잖아!”
“미안하다. 급했거든. 일단 퇴각하자. 적장의 목이야.”
“그래? 알았어! 퇴각!!! 퇴각의 뿔을 불어라!!!”
부우웅!!!
미노타우로스의 뿔로 만든 뿔피리가 거대한 소리를 내뿜자 아인들이 방어진을 취하며 점점 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 적들이 퇴각한다!”
“이때다! 지금을 놓치지 말고 적들을 섬멸…. 헉!”
반전을 노린 그들의 반격은 대장급 기사들의 말이 끊어진 것처럼 그대로 끊어졌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대한 날개가 달린 여성들의 등장에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들의 발에는 하나같이 거대한 바위들이 들려 있었다.
“투척! 우리 아빠를 건드린 것들을 혼쭐내주자구요!”
장난꾸러기 같은 귀여운 외모를 하고 있지만, 역시나 성인 홀스타우로스 여성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멋진 가슴을 가진 하피, 바토리와 밀크 사이에 태어난 딸로 이번 왕국의 공격 소식을 듣고 한 무리의 하피와 함께 처음으로 아버지와 만나기 위해 쉴 새 없이 날아온 바이카가 아인들을 엄호해 주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빠르게 이동하면서 독침을 불어! 우리도 질 수 없다고!”
“야! 언니가 명령 내리려고 했는데 네가 먼저 하면 어떻게 해!”
“먼저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지!”
“이년이 진짜!”
“뭐! 뭐!!!”
괄괄한 성격을 가졌지만, 일군을 거느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이 잘 자라 준 위도레빗 라파니와 필리아의 딸인 라휘나, 그리고 필레인, 자매처럼 티격태격하면서 자란 엄마가 다른 두 자매는 위도레빗 한 무리를 이끌고 적의 측면을 타고 후퇴를 하면서 독침으로 적을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성벽에 도착해서 이를 살펴보고 있는 밀크, 그런 밀크의 옆에 다가온 한 여성은 그의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는 척하다가 살며시 꼬집었다.
“앗!”
“여보. 씨를 그렇게 퍼트리니 여기저기 다 당신 자식들이네요?”
“아하하…. 미안해. 엄마. 그래도…. 어때? 내가 일궈낸 이 대단한 종족의 화합 말이야.”
“말이라도 못하면 좀 좋을까….”
못 말리겠다는 듯 밀리는 밀크의 품에 고개를 기댔다.
이미 인간들의 군세는 만신창이나 다름없었고 이대로 전투를 지속해 보았자. 이 성벽을 넘을 수는 없을 터, 이젠 퇴각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밀크는 더더욱 여유 있게 이렇게 성벽에 서서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가 이겼어.”
“우리 아들에게 대항했는데 당연한 결과이지 않니. 고마워 우리 아들. 이렇게 장성해 줘서. 엄마가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잘 커줘서.”
“뭘…. 나야말로 엄마가 내조를 잘 해준 덕분에 이렇게 장성한 거지.”
그도, 그의 아이들도
모두 다 장성하여 이렇게 아닌 연합을 아니 아인들의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인간들은 오늘 깨달았다. 이것은 아인들 따위가 만든 나라가 아닌, 위대한 아인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나라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