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8화 〉168화, 무모한 진군 (168/177)



〈 168화 〉168화, 무모한 진군

“때가 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프레드릭의 말에 주변을 둘러싼 귀족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라온 왕국이  요청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헤메나 신성 왕국 역시 내 뜻에 동참해 주기로 했다. 우린  왕국이 군을 일으키는 동시에 총 공격에 나서  간악한 아인놈들을 몰아 내고 후방을 튼튼하게 정리할 것이다.”

“저, 전하. 하오나 그렇게 되면 아인 우두머리와 혼인을 하신 후작이 저희의 뒤를 노리지 않겠습니까?”

“그럴일은 없다. 불칸 왕국 역시 우리가 군을 일으키는 동시에 국경에서 크게 소란을 피워주기로 이미 약조를 해두었다. 라온이 큰 형님을 견제하고 헤베나가 작은 형님을 견제해주고 미레뉴를 불칸 왕국이 견제하면 우린 아무런 위협 없이 군을 이끌 수 있다. 반돌프 공작!”

“예 전하!”

“그대가 먼저 선봉에 서서 군을 이끌라 먼저 움직여  아인놈들의 본거지를 포위하라. 우린 다른 왕국이 움직이는 순간 군을 이끌고 같이 남하 하겠다.”

“전하의 명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전하가 오시기 전에 저 아인놈들의 본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두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으마!”

그렇게 현자 고블린 파파도가 예견한 대로 라온 왕국이 움직였다.

비록 라온과 첼슨이 동맹 관계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 첼슨의 국왕인 프레드릭의 요청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문제가 될 것이 없었고 일단 왕위를 찬탈하긴 했어도 국외의 시점으로 보면 국왕은 프레드릭이었다.

동맹 왕국의 요청으로 왕국의 골칫거리를 제거하기 위한 도움을 바라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결국, 라온 왕국이 출병을 시작했다.

이미 프레드릭과 선이 닿아 있던 신성왕국 헤베나도 정병을 이끌고 2 왕자의 카프리온 공작령을 향해 출병을 시작했다.

여기에 항상 첼슨과 사이가 좋지 않던 불칸 왕국 역시 프레드릭의 요청을 받은 헤베나의 요청으로국경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프레드릭을 압박해 들어가던 세 개의 세력이 모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어려워진 상황, 그는 이때를 노려 후방의 골칫거리를 제거하려 했다.

바로 밀크가 거느린아인 연합을 말이다.

상황은 빠르게 진행되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반돌프 공작령에서 출병을 위해 군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공작령 깊숙이 잠입해 있던 셰이프 시프터가 알려왔다.

이에 밀크와 그 휘하의 아인 족장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라온왕국이 움직여서 상황은 최악이 되었네. 렘톤의 성벽으로 얼마나 많은 적을 막을 수 있을까?”

“무려 수만의 대군이 온다 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현재 저희 드워프들이 온 힘을 다해 성벽에 각종 병기를 설치하는 중입니다. 투석기는 물론이고 발리스타도 다수 배치하였으니 적들의 대군을 맞아 싸우는데 전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드워프들의 족장이 호언장담하였는데 그의 장담은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성벽마다 수두룩하게 늘어선 투석기와 발리스타의 위용은 정말대단하였다.

이를 익히 알고 있는 밀크도 고개를 끄덕였고 드워프 족장이 자리에 앉으니 이번에는 코볼트 족장이 이어서 말했다.

“인간들이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는 험난한 숲의 오솔길을 지나와야 해요. 공성병기 없이 성을 공격하는 건 무모한 행동이니 아마 해체해서 후방에 지원부대를 두고 후송을 하지 않을까요?”

“맞아. 각 족장의 인간 이해도가 높아진  같아 뜻깊네. 인간들의 공성 병기는 드워프의 것보다 조잡하긴 해도 양산이 가능한 장점이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조잡하긴 해도 단순한 설계이기 때문에 해체와 조립이 아주 쉬워. 험난한 오솔길에 병기를 그대로 들고 오진 않을 테니 철저하게 해체해서 작게 만든 다음 후송할 거야. 하지만 숲은 우리 터전이지.”

밀크가 눈짓을 하자 자리에 앉아 있던 엘프들의 족장이 일어났다.

그녀는 바로 엘프 족장의 딸인 윈디아 였다.

그의 아비인 전 족장은 원로들을 이끌고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새로운 곳에는 새로운 족장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리고 이젠 젊은 피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의 아비는 족장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그 자리를 딸에게 양보했다.

그가 완전히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자리에는 현 족장인 윈디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우리 터전을 불태우려는 자들에게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줘야지. 인간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대륙에 아인에 대한 불편한 인식을 쌓기 때문에 자제했지만, 먼저 공격해 들어온  사악한 자들에게까지 인정을 베풀 필요는 없지. 윈디아”

“예, 대족장님.”

“생명을 소중히 하는 너희 엘프에게 짐이 좀 무겁겠지만, 적의 선봉을 보내고 후열로 따라오는 적의 보급물자와 공성 병기를 모조리 없애줘. 산 어딘가에 숨겨두는 것도 좋고 아니면 절벽으로 떨어트려 다시는 찾지 못하게 만들어.”

“저…. 그냥 다 태워버리는 것이….”

퍼슨의 제안이 인간의 관점으로 확실한 방법이긴 했지만, 숲의 중앙에서 그렇게 큰불을 내면 자칫 큰불로 번질 위험이 있었다.

그리고 작전에 나가는 엘프들은 숲을 보호하는 존재들, 그런 엘프들이 불을 지르는 것은 어쩌면 생명을 취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 수도 있었다.

“퍼슨의 말도 일리는 있어. 불을 적절하게 조절하면 이곳으로 오는 선봉까지 타격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후에 프레드릭이 본대를 이끌고 오면 자칫 더 큰 위협을 초래할 수 있어. 숲이 무성한 오솔길은 그야말로 방어하기 쉬운 곳이지, 그런 곳에 불을 내어 다 태워버리면 우린 방어적 이점도 잃어버리고 그곳에서 얻을 수 있었던 산지의 유용한 먹거리, 약초, 그리고 목재를 자기 손으로 없애 버리는 꼴이 될 거야.”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선봉으로 나서는 저들의 수장인 반돌프 공작이 선수를 쳐서 불을 놓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반돌프 공작이 아예 생각이 없는 멍청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생각해 보면 결국 이 일대도 반돌프 공작의 세력권이야. 렘톤이 그동안은 별볼일 없는 곳이라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들도 이번에 보고 간 것을 서로 상의하였을태니 이 렘톤의 발전은 다들 알고 있을 거야. 반돌프 상단을 운영하는 그로서는 이 주변의 특산품을 비롯한 렘톤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며 손에 넣고 싶을 거야. 이익이 더 많다고 느껴지는 순간최대한의 이익을 뽑아 내려고 하는 것은 상인의 본질이지 않나.”

“그렇군요. 저로서는 정말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반돌프 공작은 최근에 공작이 되었을 뿐 아직도 변방의 백작으로서 상단을 키우는데 급급했던 과거의 성질을 버리지 못했죠. 대족장님 말대로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불을 놓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프레드릭의 본대가 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철저하게 방비는 해두어야지. 엘프들은 먼저 숲에 매복하는 한편 방화를 방비하기 위한 미노타우로스의 젖을 나무에 뿌려두도록 해.”

“예 대족장님.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미노타우로스의 젖은 다른 건 몰라도 불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홀스타우로스의 젖은 지방의 함량이 많아 유광처리된 옷은 불이 붙기 쉬워서 무기와 같은 곳에만 사용하지 옷이나 갑옷에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옷과 갑옷에 유광을 내는 것은 홀스타우로스의 젖이 아닌 지방 함량이 적고 다른 것에 유광 처리하는 순간 그것에 불연성을 부여하는 미노타우로스의 젖이다.

미노타우로스의 젖은 바르는 순간 불연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집이나 벽 같은 곳에 발라 두면 방화를 막을 수 있다.

미노타우로스이 젖을 나무에 뿌려두면 못해도 한 달은 능히 효과를 볼 수 있다. 전쟁은 오랜 시간을 보아야 하기에 장시간 달마다 뿌려 주어야겠지만, 적의 화공을 막을  있다는 것은 장점이 컸다.

“칸젤라는 오거들의 상태를 잘 살펴줘 전면전시 시작되면 성벽 위에서 너희가 확실한 방패 역할을 해줘야 하니까.”

“맡겨만 주십시오. 대 족장님이 내려주신 거대한 방패는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철옹성이  것입니다.”

드워프들의 단단한 성벽이 있다 해도 적의 화살 공격에는 결국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하여 밀크는 지금까지 쌓은 실력을 토대로 오거들이 들 수 있는 거대한 방패를 만들었다.

오거의 몸 절반 이상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방패, 무게는 정말 무겁지만, 오거들은 힘이라면 둘째라 가면 서러워하는 종족, 당연히 그 거대한 방패를 한쪽 팔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손에는 검을, 그리고 한 손에는 거대한 방패를 든 오거의 모습은 마치 검투사와 흡사했다.

옷을 입는 것을 싫어하던 그녀들에게 그나마 급소를 보호하는 속옷과 같은 갑옷(비키니 아머) 까지 입히며 방패와 검을 다루는 훈련을 거듭한 그녀들은 이제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근접전의 최강으로 변모했다.

인간은 두 손으로 쥐어도 빨리 이동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방패, 그리고 그녀들의 손에서는 한 손 검으로 보여도 인간의 양손으로 겨우 휘두를 크기의 거대한   

이런 무장을 한 오거 수십 마리가 인간들의 전열로 들어가 방패로 놈들의 진형을 무너트린  검을 휘둘러 서너 명의 목을 베어버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드워프가 인정할 실력을 갖춘 밀크가 그런 드워프와 협력해 만들어낸 이른바 밀워프제 무구들과 그것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오거의 조합은 소름 돋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공성전을 통해 적들의 실력을 알아본 뒤 선봉의 실력이 형편없다 싶으면 바로 그녀들을 투입에 싹 밀어버릴 계획이었다.

전투의 준비를 알리는 밀크의 호령에 맞춰 족장들이 일어나 자신들의 구역으로 흩어졌다.

아직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종족들은 이곳에 완전히 정착한 선배 아인들을 위해 보급, 그리고 내부에서의 방어 전략에 투입되었고 먼저 정착한 아인들은 지정된 자리를 견고히 다지며 공성 준비에 들어갔다.

“크리스티나”

“예. 대족장님. 저 여기 있어요!”

밀크의 부름에 크리스티나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녀는 자기 친구 윈디아처럼 지금은 켄타우로스들을 이끄는 족장이 되어 있었다.

“켄타우로스들은 일단 휴식을 취하면서 언제든지 달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어 줘, 공성이 끝난 뒤 오거들이 달려나가면 그 뒤를 받쳐져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무장은 핼버드로 할게요?”

“그편이 좋겠지. 드디어 너희 핼버드 난무를 볼 수 있겠는데?”

“아하핫! 적들에게 공포를 확실히 심어주고 오겠습니다!”

켄타우로스들도 단단한 마갑을 입고 손에 손에는 크리스티나가 들고 있는 방천화극을 본따 만든 조금 작고 가벼운 핼버드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오거들이 전열에서 적들의 공격을 뚫어주면  뒤를 받쳐 켄타우로스들이 폭풍과 같이 밀고 들어가 찌르기와 베기, 그리고 당기기가 모두 가능한 방천화극으로 적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것이다.

아인 연합이 적들의 소식을 듣고 빠르게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인들을 깔보는 인간들의 느릿느릿한 진군이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아인들을 깔봐서 진군 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울창한 숲에 있는 작은 오솔길이 대군이 넘기 힘든 구조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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