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160화 분열의 조짐
1 왕자의 사신이 신도시 렘톤에 다녀간 일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같은 사신이 왔다 갔지만, 그 결과가 매우 달랐던 두 세력의 모습에 혹자들은 능력은 부족하고 자기 잘난 줄만 아는 1 왕자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인다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반대로 허울 좋은 왕좌를 차지한 프레드릭은 왕으로서의 위엄을 보이려고만 할 뿐 그 실속은 없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또 한 명 혹자들의 평가를 받은 자는 2 왕자였다. 포용력이 있고 자신을 따르는 휘하를 전적으로 믿어 가장 지지자가 많았던 그가 이번에는 그 지지력을 크게 잃어버린 것이다.
톨메오의 방법은 평화로웠던 시기, 즉 전대 첼슨 국왕이 살아 있어 왕권이 어느 정도 강한 상태에서는 빛을 발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어지러운 형국에서는 빛이 바랬다.
전적으로 휘하들은 신임하고 그들에게 발언권을 강하게 주는 한편 좋은 의견이 나오도록 경쟁을 시키고 여기에 자신은 무한한 신뢰가 담긴 행동으로 아랫사람들을 관리한다.
하나 그 신뢰가 너무 주어졌던 것일까? 2 왕자 세력은 세력을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뒷주머니를 차거나 윗선에 아첨하는 것으로 자리를 꿰찬 자들이 더러 생겨 있었다.
1 왕자, 2 왕자, 그리고 자칭 국왕이 된 프레드릭, 이렇게 3파전이 되어 있는데도 그들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고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그들의 분열이 점점 심화하고 있었다.
뒷주머니를 차고 윗선에 아첨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 귀족들의 수장은 당연 카프리온 공작이었다.
저번 정변에 휩쓸리지 않아 큰 세력을 유지 중이었던 그는 이제 당당히 2 왕자의 한쪽 팔을 자처할 정도로 막강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간의 행적으로 인해 톨메오의 신임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중앙 왕도 세력들의 쿠데타가 다시 그에게 힘을 되찾을 기회를 준 것이다.
성국이 쉽사리 왕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관문으로서의 성질도 가진 카프리온 공작가의 영지는 톨메오의 주둔지이기도 했기에 더욱이 그의 위세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높아지고 있었다.
다른 한 편은 철저하게 2 왕자를 따르는 무리로 이는 리그릿 후작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었다.
한 세력이 두 파로 갈라져 싸우는 상황, 그리고 2 왕자는 그들이 화합을 이룰 것이란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행동을 했기에 더더욱이 상황은 악화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대 족장님. 작슨 자작입니다. 전에 좋지 못한 모습으로 한 번 만나 뵌 기억이 나는군요.”
정변 이전 만찬장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분노한 작슨 자작이 그때 당시 백작 신분이었던 필립 반돌프의 멱살을 잡은 일이 있었다.
혼란의 와중에 그를 다독인 제니리스 후작의 존재로 인해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았으나 그 일로 본의 아니게 좋지 못한 꼴을 보여 괜히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중립 귀족령에 속해 있던 작슨 자작은 리그릿 후작의 부탁을 받고 이곳에 왔다.
중립 귀족들은 현재 어지러운 왕국의 사정상 어딘가에 몸을 의탁하려는 움직임들을 보였으며 작슨의 경우는 2 왕자 세력과 잠시 함께하고 있었다.
“제니리스 후작님 밑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작슨 영지는 카프리온 공작령과 가까운 곳에 있어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군. 하여튼 잘 왔어요. 자작, 그런데 리그릿 후작이 보내서 왔다고요?”
“그렇습니다. 지금 2 왕자 파 내부에서는 공교롭게도 두 개의 파벌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판국에 파벌 싸움이라니…. 리그릿이나 2 왕자는 뭘 어떻게 했길래 일이 그렇게 된 겁니까?”
“왕자님이 리그릿 후작령이 아닌 카프리온 공작령으로 피신하며 그에게 힘을 실어준 격이 되었고 이번 정변을 겪으며 이상하게 카프리온 공작 쪽으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상황은 팽팽하여 어느 곳 하나가 우세하지 않은 상태라 살얼음판 같더군요. 아, 딱히 저는 어떤 세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봐서 그쪽과는 관계를 정리하고 제니리스 후작님께 몸을 의탁할 겁니다.”
“뭐…. 2 왕자 측 소식은 잘 들었고 그럼 이제 리그릿 후작이 무슨 내용을 가지고 당신을 보냈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예. 대족장님. 이번에 대 족장님께서 1 왕자와 모종의 거래를 하여 그것을 빌미로 카프리온 공작이 2 왕자님과 대 족장님 사이의 동맹을 깨자는 의견을 내고 그곳에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음…. 카프리온 공작이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거 같아. 그렇지 않나요?”
“그는 단순하고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인사입니다. 그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다들 2 왕자 세력에 속해 있지만, 자기 잇속만 챙기기에 급급한 인사들로 예전부터 대 족장님의 에스타 상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세력에서 에스타 상단의 기세를 줄이고 목줄을 하나 걸어두려는 속셈이 역력합니다.”
“쫓아낼 생각이었으면 멍청하다고 하려 했지만, 그런 속셈이라면 경계할 필요가 있겠네요.”
사실 2 왕자 쪽에서 에스타 상단이 막대한 부를 얻고 있긴 하지만, 딱히 2 왕자 세력이 아니어도 돈을 벌 수단은 많았다.
제니리스 후작령에서 큰돈을 벌어들이는 에스타 상단의 지점이 있었으며 중립 귀족 중에도 제니리스 후작을 따르는 몇몇 귀족들이 에스타 상단 지부를 열어 달라 청해 왔다.
2 왕자 측에서 에스타 상단을 철수시키면 잠깐의 피해가 있긴 하겠지만, 그것은 아주 빠르게 정상화 될 것이다.
물론 최악의 경우 철수를 하겠다는 것이지 아직 결정된 사항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상단을 빼버리는 무식한 짓은 하책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1 왕자와 거래를 성사한 아인 연합을 믿을 수 없으니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줄 에스타 상단에 세금을 좀 더 높게 먹이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병력의 상주, 그리고 금지 품목을 만들어 백성들을 현혹할 수단을 억제할 것과 동맹인 아인 연합의 대 족장께서 카프리온 공작령에 상주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1 왕자와 했던 거래를 무효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염치없는 작자들이군. 그간 내가 저들을 위해 2 왕자에게 후원한 금액이 얼마인데 날 이렇게 대접하다니…. 후. 정치하는 작자들은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군요. 혹시 2 왕자님도 같은 의견입니까?”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리그릿 후작은 대 족장님은 경계하는 듯하지만, 지금은 이 관계를 깨선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보였고 왕자님 역시 카프리온을 달래고 있지만, 워낙 상황이 팽팽하여 쉽지 않습니다.”
“2 왕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와 왕자의 동맹은 서로의 살길을 찾기 위한 동맹이었습니다. 내가 먼저 왕자를 배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나 이 경우는 아랫사람들을 잘 단속하지 못한 그의 잘못이니 나 역시 하는 수가 없네요.”
“리그릿 후작은 최대한 대 족장님을 설득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곳의 문제는 자신들이 잘 봉합하겠다고 말입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내용을 먼저 알린 것은 리그릿 후작과 2 왕자님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대 족장님이 잘 알아주십사 하는 마음이라 합니다.”
“편지를 하나 적어줄 테니 리그릿과 2 왕자에게 전달하세요. 카프리온 공작과 그 세력이 감히 날 물어뜯으려고 하니 나 역시 그들에게 경고를 좀 해야겠습니다. 물론 2 왕자 세력 전체가 휘청하겠지만, 카프리온들의 행동이 얼마나 자신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지 확실히 알려줘야겠습니다.”
밀크의 합류로 1 왕자 세력과 대등한 싸움을 벌여 오던 2 왕자 세력
하지만 인간들은 대등하게 싸운 것은 그저 자신들의 힘으로 생각할 뿐 뒤에서 조력하는 아인 연합의 힘을 깎아내렸다.
이것이 밀크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다. 아인 멸시 사상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프레드릭들과 하나 다른 바 없는 행동들이었다.
그들은 알아야 했다. 난세에서 행동을 한번 잘못하면 패가망신 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말이다.
작슨 자작은 빠르게 말을 달려 밀크가 적어준 편지를 들고 한달음에 카프리온 공작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탁상공론이 한창들이었다.
이럴 시간에 차라리 솔선수범 움직인다면 뭔가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작슨이었지만,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회의 중인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
“작슨 자작입니다. 리그릿 후작님의 명을 받아 아인 연합의 지도자 밀크 대 족장님을 뵙고 오는 길입니다.”
작슨의 등장에 카프리온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표했고 왕자는 얼굴이 밝아져 구세주와 같은 자작을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오 왔군. 이리 오시게 자작. 그래 밀크 대 족장은 무슨 말을 하던가?”
“큰 유감을 표하셨습니다.”
“유감?! 유감이라고 했나! 감히 아인 주제에 우리에게 유감을 표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공작! 동맹 관계인 대 족장에게 그 무슨 무례한 언사인가! 다른 건 몰라도 그를 아인이라는 이유로 헐뜯는 것은 내가 용서할 수 없네!”
“왕자님. 하지만, 말은 바른말이지 않습니까? 겨우 아인입니다. 그런 자가 감히 왕가의 일에 유감을 표하다니 이건 죽어 마땅한 대죄입니다.”
“어허!!!”
작슨이 들어오면서 조용해진 회의장은 다시 개판으로 변할 낌새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회의장에 리그릿이 나서며 조금 분위기가 안정되는가 싶었지만, 카프리온 공작은 무능한 자가 자신감과 자존심이 높아지면 어떻게 변하는지 철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애초에 말입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밀크, 밀크! 그자가 없으면 우리 2 왕자 파가 무너지기라도 하듯 그에게 철저히 의지하고 있는 형국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나서서 우리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지 않으면 이 어지러운 정국을 이긴다 해도 그건 우리의 승리가 아닐 겁니다!”
그가 유식해진 것이 아니라 그를 보필하는 자들이 유식한 것이다. 지금 내용은 모두 회의 전에 그를 따르는 귀족들이 그에게 주입한 내용이었다. 그는 그저 공작가의 위세를 힘입어 그것을 강력하게 어필할 뿐이다.
“예. 공작님의 의견은 충분히 이해하고 또 공감합니다. 밀크 대 족장님께 언제까지 의지할 수는 없으니 우리가 주도하여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 시국에 우리 힘으로 가능한 것이 뭐가 있는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질문을 하겠다는 겁니까 후작?”
“현재 저희는 성국을 뒤에 두고 있습니다. 현 패륜 국왕 프레드릭의 뒤를 봐주고 있는 주 세력입니다. 우리가 왕도에 군을 이끌고 들어가면 분명 비어있는 우리의 뒤를 노릴 겁니다. 이미 싸움은 2대 1인 상황입니다. 여기에 1 왕자와 지금은 같은 적이 두고 있으나 우리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는 이빨을 드러내고 저희를 공격할 겁니다. 자 그럼 묻겠습니다. 밀크 대 족장의 아인 연합 없이 이 상황에 이 많은 적 세력을 모두 물리치고 왕도를 점령할 방법이 공작님께는 있습니까?”
“으음….”
“리그릿 후작님 저희는 밀크 대 족장의 아인 연합과 동맹을 깨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다만 이번 1 왕자와 거래를 하여 저희를 배신한 행위에 대한 철저한 제재를 가하자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 제재 대상은 그들의 주 수입원인 에스타 상당에 적절한 왕국 법령으로 가능한 세금, 그리고 금지 품목을 지정하자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배신행위를 먼저 저지른 것은 밀크 대 족장입니다. 저희는 배신행위에 대한 적절한 제재를 가할 뿐이지요.”
혼란한 와중에 기용되어 카프리온의 옆을 꿰찬 바온 백작이 깔끔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며 나타났다.
그의 말은 일견 타당해 보이긴 했으나. 밀크가 1 왕자와 거래를 한 것이 배신행위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그를 공격하고 있었다.
밀크가 1 왕자와 거래를 진행하며 그들에게 허가한 것은 상단의 지점 건설이다. 적합한 세금은 내지만, 그 어떠한 할인이나 우대 대우는 없었다.
1 왕자가 구할 수 없던 아인들의 부산물과 에스타 상단이 유통하는 수많은 신비한 물건들이 1 왕자 세력에 풀리게 되겠지만, 상단은 상단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바, 이것을 굳이 배신행위라 꼬집어 말하긴 모호했다.
밀크가 대 놓고 1 왕자를 지지하며 그들에게 후원금을 보냄과 동시에 2 왕자와 관련된 모든 관계를 청산했다 하면 모를까. 그 어떠한 것도 변하지 않고 그저 1 왕자가 제안한 합당한 거래를 흔쾌히 받아들였을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꼬투리도 크게 부풀리면 더없이 부풀려지는 것인 정치판이었다.
그들은 아니꼽고 눈엣가시 같던 밀크의 행보를 조금 밟아주지 않으면 속이 시원치 않을 모양이다.
감히 아인 주제에 잘나가는 것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일까? 적어도 카프리온 공작을 따르는 자들은 대부분 그런 성향이 강한 듯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밀크 대 족장님의 편지를 받아 왔으니 우선 이것을 본 뒤에 다시 회의하심이 어떠실까요?”
“편지?”
궁금해하는 왕자의 앞으로 작슨 자작이 편지를 내밀었다.
왕자는 그것을 받아 들고는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