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156화 사신단이 오다.
“제기랄…. 길도 참 더럽게 구불구불하군. 무슨 미로같이 생겨서 아차 하는 순간 길을 잃을 거 같잖아?”
“원래 램톤으로 가는 길이 죄다 이리 험준합니다. 자작님렘톤 마을에는 이렇다 할 특산품도 없고 인원도 적은 변방의 작은 마을이니까요. 개발은 물론 세금도 거의 걷지 않고 내버려 두다시피 한 곳이니 당연히 오고 가는 길 역시 이렇게 험준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 그렇지 마차조차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숲이 우거지고 말도 이렇게 천천히 이동할 정도라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그간 렘톤에 백성들을 어떻게 버틴 거지?”
“길이 험준한 만큼 이곳에는 자생하는 먹거리가 넘쳐납니다. 그리고 산지도 꽤 있어서 화전을 일구면 꽤 쏠쏠하게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뭐…. 성국 놈들이 렘톤을 철저하게 파괴해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성국 놈들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마라. 전하를 옥좌에 올린 공이 높다곤 하지만, 결국 타국의 군세다. 우리가 왜 1 왕자와 2 왕자 놈들에게 매국노라고 손가락질받는 줄 너도 잘 알지 않느냐.”
“실언했습니다. 길버트 자작님.”
“알면 되었다. 그나저나…. 렘톤을 2 왕자에게 할애받은 게 아인연합 녀석들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좀 잘 되었으면 하는데…. 성국 놈들의 그 빌어먹을 아인 멸시 사상이 우리 첼슨 왕국을 너무 좀먹어 가고 있어. 아니 아인들이 그렇게 차별을 받고 무시를 받는데 이를 드러내지 않는 게 말이나 되냔 말이야? 자기들이 먼저 그렇게 노예, 가축 취급을 먼저 해놓고 인제 와서 협상하고 오라니 에이 제기랄….”
“우욱! 무슨 말이 그리 많나! 빨리빨리 가란 말이네! 길이 구불구불해서 멀미가 나 미치겠어.”
“저 양반이 또….”
기사와 대화를 나누며 길을 나아가던 길버트 자작, 그는 프레드릭이 아인 연합과 협상을 하기 위해 보낸 사자였다.
길버트 자작은 그리 큰 평지풍파 없이 조용하고 그렇지만 견실하게 자신의 실적을 올리던 제법 유망한 귀족 중 하나였다.
다만 성격이 꼼꼼하다 보니 옳다고 여긴 일을 할 때 모든 것을 끝까지 냉정하게 처리하여 윗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했다.
하여 그는 자작위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일선이 아닌 후방에서 가장 독한 실무만 배정받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의 돌아가신 아비 전 자작의 유언으로 인해 프레드릭의 심복인 반돌프 공작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4 왕자파에 속했고 그대로 프레드릭이 옥좌를 찬탈함에 따라 그대로 왕국 군에 편입되었다.
그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만든 것은 바로 뒤에서 마차를 타고 유유히 그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존재인 이스텐 백작이었다.
아까 길버트가 말했다시피 렘톤으로 향하는 길은 험준하고 산으로 올라가는 오르막이라 마차가 들어가기 힘들다.
그곳을 꿋꿋하게 우겨서 마차를 타고 진입한 주제에 멀미가 나서 못 참겠으니 어서 빨리 가자고 소리치는 것이 바로 이 이스텐이라는 백작이다.
아비의 후광을 물려받아 백작이 된 전형적인 금수저로 그는 4 왕자 프레드릭을 처음부터 따른 골수 아인 멸시 사상을 가진 자다.
이런 자를 아인 연합과 협상하는 자리에 보낸 것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길버트였으나 위에서 하라면 해야 하는 것이 대귀족이 아닌 자들의 숙명이라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저 대귀족 반열에 든 그가 있는 것만으로도 아인들이 주눅 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동시킨 거 같은데 솔직히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사신 행렬에는 민폐 수준이었다.
마차가 너무 딱딱하니, 길이 험준하니, 먹는 것이 부실하니, 또 그 부실한 걸 꾸역꾸역 다 처먹고는 이젠 멀미가 난다느니 아주 난리가 났다.
자작과 백작의 작위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처럼 큰 왕국의 귀족으로서는 저런 갑질을 받고도 힘있게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심사가 뒤틀리는 것까진 막을 수 없는 법이다.
‘남작, 자작 사이거나 같은 자작이었으면 넌 내 손에 지금 이빨 다섯 개는 나갔을 거다.’
물론 호리호리한 그가 뒤룩뒤룩 살찐 이스텐 백작을 쉬이 이기긴 힘들겠지만, 그는 전형적으로 실무형으로 키워진 귀족이라 호리호리함 안에 숨은 근육들이 제법 있었다.
자기 몸 하나 지킬 전투 훈련은 귀족들의 소양이다. 이스텐은 그런 간단한 소양조차 없는 듯 보여 길버트의 눈엔 더욱 한심하게 보일 뿐이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저곳이 바로 렘…. 어?”
“이봐 버크, 저곳이 지금 렘톤이라고 말하려 한 건 아니겠지?”
“그, 그게 맞습니다만…. 그것이 그게…. 저건 뭘까요?”
“지금 자네가 나한테 물어볼 입장인가?!”
“죄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저도 렘톤에 와보는 것이 정말 오랜만입니다. 세금을 거두기 위해 2년 전에 한 번 방문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군. 예전 렘톤의 모습을 모르는 내가 봐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야. 산속에 성벽? 그리고 저 거대한 크기와 엄청난 길이는 뭐지? 아인들은 무슨 요새라도 지은 것인가?”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아인들의 새로운 영역, 신도시 렘톤이 드러났다.
드워프들과 밀크가 합작한 드높고 넓고 긴 성벽이 도시를 완벽하게 방어하고 산지라는 이점을 이용해 언덕으로 오르내릴 사다리도 걸어 방어도 철저해 보였다.
들어가는 성문에는 무려 지키는 인원만 여섯이었으니 각각 홀스타우로스가 둘 미노타우로스가 둘 그리고 호인족이 둘이었다.
성문을 지키는 이들 위로는 엘프들이 성벽에 서서 주변을 살피며 성벽으로 다가오는 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중이었다.
그리고 일순 성벽 위가 부산스러워지는 것을 보니 길버트 일행의 접근을 알아챈 모양인 듯했다.
“이, 일단…. 저들을 너무 자극하지 말고 가까이 가도록 하세.”
“예…. 자작님. 그게 좋을 거 같습니다.”
사신으로 왔으니 응당 적의 군세나 위용을 보고 절대 내색을 하거나 주눅이 들면 안 되지만, 길버트는 지금 이 순간 그런 거 다 때려치우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잘못하면 오늘 몸에서 목이 떨어진다. 긴장해라 길버트, 이건 정말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거야.’
그러나
“더러운 아인 놈들은 잘 들어라! 난 대 첼슨 왕국의 사자로 온 이스텐 백작님이시다. 고귀한 첼슨의 대 귀족이 너희 수괴를 보러 왔으니 어서 성문을 열고 우릴 영접하거라.”
‘저 미친 작자가 기어코!!!’
아무리 아인 멸시 사상이 골수에 뻗쳐 있는 자라지만, 이건 정말 도를 넘은 듯했다.
뻔히 저들의 기세가 분기탱천해 기름을 끼얹은 상황인데 그곳에 불덩어리는 던지다 못해 한 바가지들이 부은 격이 아닌가.
“배, 백작님! 속도 안 좋으신 분이 왜 나오셨습니까. 하하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쉬고 계시지요.”
“그럴 수야 있나. 전하께서 내리신 일을 완벽하게 완수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야 하지 않겠나. 으잉…. 이렇게 말을 했는데도 못 알아듣다니 역시 아인 놈들은 미개하고 천한 존재로군. 협상이 제대로 될는지 모르겠구먼.”
‘당신 때문이라고 당신 때문! 아이고 이런 짐 덩어리를 왜 같이 보낸 거야 위엔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인가….’
“다시 한번 왕국의 위대함을 알려 줘 보아야겠군. 네 이놈들!!!”
‘제발 좀 가만히 좀 있어 이 양반아 그게 도와주는 거라고!!!’
직위가 깡패인지라 속으로 그를 한 다발 욕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길버트였다.
이스텐 백작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성벽, 그리고 성문을 지키는 아인들은 그저 귀가 아픈지 귀를 막고 모르쇠로 일관을 했다.
그러다 성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성문을 지키는 인원이 이스텐과 그 일당들을 향해 조용히 들어오라 손짓을 했다.
“이거 보게. 역시 아인놈들을 강하게 나가주면 알아서 긴다네 잘 기억하라고 자작.”
“즐…. 그윽흐즈….”
웃는 얼굴로 잘 기억한다는 말을 이를 악물고 말한 길버트가 먼저 앞서가는 이스텐의 마차를 따라 성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성문을 막아선 아인 인원들이 가까이 다가와 그들의 무기를 가리키며 위험한 물건은 이곳에 맡겨두고 나갈 때 찾아가라고 정중하게 요구했다.
그 요구에 따라 병사들과 기사들은 몸을 지킬 수 있는 간단한 무장 정도는 봐달라 고 하며 살상력이 높은 장검이나 창 등은 맡기려고 하니 아인들도 간단한 무장까지는 빼앗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스텐이 딴지를 걸고 나서자 상황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감히 대 첼슨 왕국의 백작이 이끄는 사신단의 무장을 해제하다니! 세상이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혹시 네놈들 나에게 뭔가 흉수를 꾸미기 위해 그러는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라면 당장 그만두어라! 내 몸을 지킬 병사들의 무장을 빼앗다니 이는 충분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만두지 않으면 난 이 길로 당장 돌아가서 작금의 상황을 낱낱이 고하고 네놈들의 터전을 향해 대 첼슨 왕국의 병사를 끌고 돌아올 것이다!!!”
사신단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사도, 그리고 그 휘하의 병사들도, 거기에 같이 따라온 대부분의 사신단 일원도 이스텐 자작이 왜 갑자기 저리 흥분하는지 당최 이해를 못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스텐은 자신이 잘 하고 있다는 듯 아주 당당하게 아인들을 하대하며 자신의 요구를 밀어붙였다.
“무기를 다시 돌려 드려라.”
“저, 하지만….”
“괜찮다. 내부에 자경단이 처리할 수 있는 수준들이다. 흥”
“하. 인간이 검 하나 더 든다고 문제는 없겠죠. 받으시오. 안에서 사고 치면 정말 큰일 날 테니 조심들 하시고.”
“고 고맙소.”
“절대 사고 치지 않겠소. 그리고 미안하오.”
“아니요. 당신들이 뭔 죄요. 그저 윗사람 잘못 만난 죄지.”
“뭘 그리 떠드는 것이냐! 당장 무장을 회수해라. 너희들은 그리고 돌아가면 이 일을 내 낱낱이 고하고 벌을 주라 명할 것이다. 감히 호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자들이 먼저 무기를 건네다니 고얀 놈들!!!”
그렇게 고압적인 자세로 성문을 통과한 이스텐 백작은 웃는 얼굴로 다시 길버트에게 다가와 어떠냐고 자신이 이렇게 당당히 나가니 저들이 순순히 따르지 않느냐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가더니 아인 수괴 놈과 만나는 자리에 도착하면 부르라고 하며 그대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미친 작자 같으니…. 어휴….”
“자신이 잘해서 일이 성사되고 있는 거라 착각하고 있군요.”
“누가 아니라고 하나…. 그보다 어떤가? 저들의 수준은”
“싸우면 저희가 집니다.”
“6대 30인데 진다는 말인가?”
“아니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1대 30으로 싸워도 저희가 집니다.”
“하아…. 자네가 같이 싸워도 말인가?”
“병사들과 함께 포위 전투를 하면 한 명에게 큰 상처를 줄 자신은 있습니다. 다만 제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이스텐 백작, 이 쓰레기 같은….”
“목소리가 좀 크셨습니다. 쓰레기가 듣겠습니다.”
“어차피 저 돼지 같은 양반은 앉으면 대체로 바로 잠들어 지금도 보게나. 코 고는 소리 들리지?”
“이런 상황에 참 태평하군요.”
“살쪄서 기면증이 오나 보지.”
“이해가 가는군요.”
“천천히 움직이세 가는 도중에 마을…. 아니 이젠 도시하고 불러야겠군. 렘톤 도시의 모습을 눈으로 봐두어야겠어.”
“알겠습니다. 천천히 이동한다! 지친 사신분들을 안전하게 호위하라.”
“예!!!”
그렇게 렘톤으로 온 사신단은 작은 코고는 쓰레기의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렘톤의 모습을 눈에 담아 갔다.
다만 그들의 행보가 중요 시설로 향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위도레빗으로 구성된 자경단이 나타나 그들에게 대족장이 기거하는 건물의 위치를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노골적으로 막는 것을 보니 우리가 사신을 가장해 첩자 역할을 하는 것을 경계하는구나. 이런데 아인이 미개하고 무식하다고? 말도 안나오는군.’
거기다 어디선가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듯한 시선이 느껴져서 아까부터 뒤가 따끔거리던 참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거리의 공중에는 서큐버스 일족들이 제 세상 만난 듯 자유로이 활공하며 불 가시의 날개를 몸에두르고 렘톤의 CCTV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일상과 같은 행동이 렘톤에는 큰 도움을 주는 행동이니 렘톤에게도 좋고 서큐버스에게도 천직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다가 사랑을 나누는 연인, 또는 아침이나 점심 할 거 없이 불끈불끈하는 부부, 등등이 뿜어내는 성욕을 받아먹으면서 배도 채우니 그녀들에게는 최고의 일거리였다.
사생활을 침범하는 행위, 즉 건물 내부 안까지는 그녀들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조항이 걸려 있지만, 어차피 그녀들은 성욕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알아서 느낄 수 있으니 그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서큐버스들의 먹잇감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로 감시를 당하며 그들은 힘겹게 밀크가 기거하는 대족장 관저에 도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