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155화, 안전한 구출
평화로운 도시 에멜튼 말에 어폐가 조금 있는 듯하니 조금 더 설명을 보태 보자면 인간들에게 평화로운 도시라 할 수 있다.
도시 주변에 물줄기가 깨끗한 개울가가 있으며 산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작은 물고기가 자주 낚이는 곳이다.
하여 작게나마 어업을 하거나 산지에서 각종 과일이나 산나물을 채집하여 그것만으로도 도시의 인간들이 풍족하게 먹을 정도가 되는 축복받은 구역이다.
반돌프 공작가에 속한 이 도시는 영주가 직접 관리하지는 않는 반돌프 공작가 직할지에 속하며 반돌프 공작이 선임한 도시 관리자가 상주하며 도시를 경영한다.
위치는 렘톤에 가까이 있으나 렘톤에서 이곳으로 이동하는 길목이 매우 험준하고 자칫 잘못 발을 들이면 헤매기에 십상인 숲까지 있어서 거리는 가까워도 그다지 왕래가 없는 그런 사이였다.
그런 이 에멜튼에는 반돌프 공작이 직접 명령을 내려 설치한 아인 공장이 있다.
주변 경계를 철저히 명한 밀크의 말에 따라 휘하 아인들이 열심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염탐을 시도한 결과와 탈출한 셰이프 시프터들이 알려온 정보였다.
왕도에서 잡아 온 아인들은 그대로 4 왕자를 따르는 휘하 귀족들에게 적절한 수준으로 배분을 했고 가장 많은 수를 배분받은 반돌프 공작은 수많은 공장 중 하나를 이곳 에멜튼에 설치한 것이었다.
정보를 받은 밀크는 빠르게 그들의 구출 작전을 머릿속으로 그려 나갔다.
그리고 발돌프 공작이 비어버린 왕도를 수비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이동했다는 소식을 듣고 때는 지금이라 판단 아인 연합의 인원을 이끌고 몸소 구출 작전을 시작했다.
“에멜튼에는 두 개의 성문이 있어. 그중에 서큐버스들이 돌입한 곳은 경계가 취약한 동문이고 우리가 살피는 곳은 경계가 삼엄한 서쪽 문이지.”
“삼엄…. 하다고 해야 하는 겁니까? 저 꼴을 보면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만?”
밀크의 설명을 들으며 반론을 펼치는 린다, 확실히 그녀의 말마따나 성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의 수가 서문 쪽이 좀 더 많다뿐이지 경계가 삼엄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뭐,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드나들 수 있는 입구의 폭이 좁다, 넓다, 의 차이도 있기는 했다.
정석으로 보자면 드나들 수 있는 성문 입구가 크고 넓은 곳이 지키는 병사의 수가 많아도 오합지졸로 이루어진 저들의 병력을 생각하면 서문을 공격해 빠르게 치고 빠지는 쪽이 유리하다.
정석적인 기습 공격의 측면에서 보자면 말이다.
지금 아인 연합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격 후 약탈과 동시에 이곳을 이탈하는 기습 공격이 아닌 아인 연합의 눈속임 공격에 적들의 눈이 쏠린 사이를 틈타 에멜튼에 사로잡혀 있는 아인들을 구조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었다.
그래서 밀크가 생각한 작전은 바로 성동격서였다.
물론 뜻풀이를 하자면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공격한다는 내용이 되어 지금의 상황과는 반대가 되어 버리지만, 어차피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다.
어쨌든 이 병법을 주 작전으로 삼아 서문에서 공격을 취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적들의 눈을 잡아둠과 동시에 조용히 점거한 동문으로 구출한 아인들을 빼돌린다는 작전이었다.
이에 따라 밀크가 위치한 곳에는 기동성은 느리지만, 그 존재만으로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한 아인들, 워 타이거 일족과 오우거, 그리고 홀스타우로스 전사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자, 우리가 신호를 보내면 동문도 움직일 거야. 동문쪽에 전혀 신경조차 쓰지 못하게 해야 안전하게 구출을 할 수 있어. 준비는 어떻지?”
“네 대 족장, 워 타이거 일족은 적들에게 포효를 통해 두려움을 심어줄 예정이며 우리 오우거들이 바위를 집어 던져 성벽에 타격을 주어 적들을 혼란스럽게 할 겁니다. 홀스타우로스 전사들은 비살상을 위해 만든 투창을 들고 적들을 기절시킬 겁니다.”
“좋아. 이건 어디까지나 구출 작전이라는 것을 잘 기억해야 해. 인간에게 필요 이상의 해를 끼치면 성국 놈들이 내건 ‘아인이 무식하고 잔혹한 파괴자’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서 증명해주는 꼴이 되어버려. 검과 활,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전장에서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민가에 피해가 가서는 절대 안 돼, 첼슨에서 성국을 물러나게 한 뒤에 우리와 첼슨 왕국은 땔 수 없는 동맹 관계가 될 테니 그때 가서 문제가 일어날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해.”
“알고 있습니다. 이미 돌입 조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었으니 분노에 몸을 맡기고 행동하는 이들은 없을 겁니다.”
“부탁한다 린다. 그럼 린다는 어서 돌입 조로 돌아가서 구출 준비에 들어가 줘.”
“예!”
밀크의 말에 린다가 자신있는 대답과 함께 빠른 몸놀림으로 숲을 지나쳐 동문 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린다가 자리를 비우자 그곳을 차지한 것은 칸젤라였다.
밀크의 부족에 완전히 터를 잡고 다시 찾은 오우거 일족들과 생활을 하니 걱정이 많이 사라진 건지 불그스름했던 피부가 더욱 좋아졌고 몸에도 다시 살이 올라왔다.
한동안 못 로봇 사이에 머리카락도 길게 길러 뒤로 질끈 묶었으며 문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해 옷을 걸친 그녀는 이제 좀 봐줄 만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구석기보다 더 떨어져 보이는 나체주의에 야만적인 모습이 역력했던 그녀였으나 점점 그녀 역시 머리에서부터 변화를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그래도 과거의 영향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건은 힘든 모양인지 과거 지구에서 보았던 탱크탑과 핫팬츠를 연상시키는 복장에는 제아무리 옷을 입고 있다 해도 시선을 두기가 민망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워낙 키도 크고 몸도 좋고 건강한 몸짱 미녀다 보니 오히려 더 그런 듯하다.
특히나 홀스타우로스 여인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올라가 있는 거구라 그런지 물씬 올라온 아름다움이 위압감을 타고 전해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준비되었으면 시작할까?”
“좋습니다. 대 족장, 지금부터 제가 대신 지휘를 하면 되는 겁니까?”
“그래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사령탑의 역할을 하기 힘들어서 오히려 명령체계에 이상만 생길 확률이 높아 난 전장의 상황을 뒤에서 보면서 작전 지시 깃발을 움직일 테니 깃발의 색깔에 따라 현장 지휘는 칸젤라가 해줘.”
“음…. 이것이 인간의 방식인 겁니까…. 하긴 대 족장님은 저희 모두의 중심이니 함부로 앞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방식을 계속 따라 한다는 건 조금 거부감이 드는군요.”
“앞으로 이런 거부감이 드는 일을 계속해야만 해, 저들은 우릴 알아가려 하지 않고 그저 노예나 가축으로 취급하고 있어. 하지만 우린 인간을 공부하고 그들의 것을 받아들이고 더욱 나아가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문물을 만들고 진화시켜야만 인간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고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어.”
“이해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대 족장님.”
“칸젤라가 인간들에게 당한 것을 아직 마음에 담아 두고 있어서 더 그럴 거야. 분노를 잠시 접어두고 시간이 지나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겠지.”
“에이 전 전투가 좋은 뇌까지 근육인 년일 뿐이에요. 그런 건 다 대 족장님에게 맡기고 전 대 족장님을 보필하면서 어려운 건 생각하지 말렵니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 누구보다 먼저 인간들의 방법을 깨우치고 더 넓게 생각하는 아인으로 나아가는 것은 바로 칸젤라가 된다. 좀 더 나중의 일이지만….
칸젤라는 밀크와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숲을 가로질러 나왔다.
그 뒤를 따라 오우거를 비롯한 아인 연합의 거대 종족들이 모습을 드러내니 그야말로 장관이란 말이 절로 나올 상황이 연출 되었다.
귀찮음에 절어 하품이 절로 나오는 서문의 경계 병력들은 군기가 빠져도 너무 빠져 있었고 칸젤라가 좀 더 가까이 접근해서 손에 들고 있던 통나무를 던져 그들의 시선을 끌 때까지 나태함을 연신 보여주고 있었다.
후웅!!!
퍼어어!!!
성문으로 들어가는 입구 정 가운데에 정확히 박혀 들어간 통나무가 부르르 떨렸고 그 바로 주변에 서서 통나무가 조금만 비껴갔어도 그대로 생을 마감했을 병사들도 부르르 떨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짐과 동시에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의 시선이 칸젤라를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아인 연합을 향해 차례대로 데구르르 움직인다.
“저, 적이다아아앗!!!”
“으아아아!!! 아인들이다!!!”
“지원바람!!! 지원바람!!!!!!”
혼비백산 성문의 위로 성문의 아래로 그리고 안으로 동시다발적으로 걸음아 나 살리라고 도망을 시작하는 병사들의 모습에 칸젤라는 자신들과 상관도 없는 병사들임에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인들을 핍박하면서 아인에게 공격당할 거라는 일말의 생각도 하지 않은 건가?”
“칸젤라님. 첼슨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평화에 찌들어 있습니다. 미개척지의 마수의 구역에서는 마수들이 자기들 터전에서 쉬이 움직이지 않고 제국은 마수의 구역을 일 점 돌파해서까지 왕국을 공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하하하…. 그 말은 우린 걱정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말이구나?”
“그런 거죠. 조금 화가 나는데 심하게 해도 되겠습니까?”
“성벽을 아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주자. 내가 허락하마.”
“예 칸젤라님!”
범의 피가 섞여 우렁찬 외침으로 적들에게 공포와 정신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워 타이거 일족의 외침에서 움직일 수 있는 인간은 적어도 저 도시에 없었다.
제아무리 성벽 뒤에 위에 숨어서 방어를 두껍게 한다 해도 원초적인 공포에서부터 오는 혼란까지는 막아줄 수 없다는 뜻이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 중에는 창을 던져버리며 도시의 안으로 도주하는 이탈자들까지 생겨났으며 뒤늦게 자리로 돌아온 지휘관은 통제가 되지 않는 병사들, 그리고 성벽을 때리는 통나무와 바위 공격에 이중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아, 아니 도망치지 마라! 성문을 방어해라! 아니 도시를 방어…. 으어어어!!! 어쨌든 방어하란 말이다!!!”
열심히 서문에서 위장 공격이 시작되고 있을 무렵 본 작전의 핵심인 동문에서도 밑 작업을 해둔 토대로 안전하게 구출 작전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일반 시민들은 이미 대피령이 떨어졌습니다. 아인 공장에는 아인들만 방치되어 있고 지키는 병사들은 모조리 성벽으로 투입되어 그곳의 관리인 몇몇만 남아 있고요.”
린다가 돌입조와 함께 도시의 중앙까지 빠르게 진입하자 그녀의 옆에서 공중을 찢고 나타난 듯한 느낌으로 불 가시성 날개를 정리한 서큐버스 하나가 보고를 전해 왔다.
그녀들은 마치 현대의 전선이 이리저리 퍼져 있듯이 서로 소통이 가능한 부분마다 배치되어 보이지 않는 몸을 이용해 인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미리 살피고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능력을 사용해 도시의 주요 인사로 변신해 있던 셰이프 시프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 아인 공장까지의 길을 안내했다.
마차를 타고 빠르게 공장으로 진입한 린다는 관계자들을 모조리 기절시킨 뒤 그곳에서 착취당하고 있던 아인들을 모조리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감사합니다.”
“아아... 당신들이 바로 밀크님을 따르는 아인 연합이군요. 저도 아인 연합에 동참하겠습니다.”
“저도 따라가겠어요! 저의 일족은 이미 멸망해 여기에 잡혀 온 일부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말석이라도 좋으니 제발 저희를 받아 주세요.”
“인간들은 저희를 핍박하고 강제로 저희에게서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수탈했습니다!”
“저! 저 안에는 불쌍한 미노타우로스 분들이 약에 절여져서 종마로 키워지고 있어요. 약효가 떨어지면 힘이 약해지지만, 아직 힘이 넘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위험하겠지만, 그분들도 구해주세요!”
아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켄타우로스들이 끄는 마차에 하나 둘 오르기 시작했다.
갑옷으로 무장한 홀스타우로스와 미노타우로스니 세 명 밖에 못 타는 거지 일반적인 아인들이라면 마차 하나에 스물 까지는 수용할 수 있었다.
켄타우로스 네 명이 이끄는 마차의 힘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리라.
전차 부대는 빠르게 전열을 정비해 아인들을 구출해 나갈 구조선으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그렇게 켄타우로스가 이끄는 구조 마차가 도심을 가로질러 아무런 위협 없이 동문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런 뒤 그 뒤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지만, 약에 절어 쓰러진 미노타우로스를 단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안전하게 구출한 린다와 전차 부대들이 이동했다.
그들이 성문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전선처럼 퍼져 있던 서큐버스 연락망이 삽시간에 도시 위로 날아올라 박쥐의 대이동과 같은 장관을 보이며 후퇴를 시작했고 성문과 각 부분에서 몸을 변신해 적들의 눈을 속이던 셰이프 시프터들도 안전히 몸을 피했다.
마지막으로 코볼트와 다이어울프들이 무거워진 바퀴에 팬 자국 앞에 조용히 나타났다.
그들은 빠르게 그곳을 마구 짓이기거나 쓸어서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린 뒤 다시금 조용히 숲 안으로 사라졌다.
“성공이군.”
휙!
린다의 신호를 받은 밀크는 바로 퇴각을 알리는 푸른 깃발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한 오우거가 그것을 확인하고 칸젤라에게 보고, 그 보고를 받은 칸젤라가 전열을 유지하며 천천히 후퇴를 시작했다.
“도, 돌아간다!”
“적들이 돌아간다!!!”
“우아아아아!!! 아인 놈들 주제에 감히 인간의 영역을 넘보다니 백년은 이르다!!!”
“당장 꺼져! 꺼지라고!!!”
공포에 절어 있던 병사들이 공포에서 벗어나자 시작한 것은 야유였다. 지휘관 역시 그런 병사들과 합세 하여 퇴각하는 칸젤라를 야유했다.
그러나 그들의 야유는 얼마 뒤 성벽 위에 효수된 지휘관의 목으로 종결이 나게 된다.
그들이 열심히 퇴각 중인 칸젤라들을 욕하는 동안 린다의 돌입 부대는 유유히 아인들을 구출하여 아인 공장은 이제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밀크와 아인 연합의 상쾌한 첫 승리가 도시 에멜튼에서 이루어진 날이다.
그것도 양측 아무런 피해 없이 말이다.
실책으로 인해 흘려진 인간의 피는 밀크의 의도는 아니었으니 조용히 넘어가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