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6화 〉146화, 만찬장의 소동 (146/177)



〈 146화 〉146화, 만찬장의 소동

“하하하 남작분의 자제가 이리도 훤칠하게 컷을 줄은 내 미처 몰랐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자작님, 자작 영예야말로 아름다운 미녀가 되셨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희 아들은 그저 치기 어린 애송이일 뿐이지요.”

“원 말씀도, 우리 아이는 겉으로 이리 보여도 천방지축인 말괄량이입니다. 하하하.”

회의장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만찬장, 입에 창과 칼을 걸고 싸우던 그곳과는 다르게 이곳은 화기애애하기만 하였다.
각 가문이 사교하기 위한 귀족들의 자리, 이곳은 회의장에서 생긴 서로 간의 앙금을 풀고 왕국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담합을 이루어 가는 자리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해도 파벌 간의 담합까지는 이룰  없으나 각 파벌끼리는 확실한 담합을 이루니 자기 사람을 관리하는 자리는 되었다.

“제니리스 후작님이 입장 하십니다.”

회의의 태풍의 눈과 같았던 제니리스 후작이 만찬장에 입장하자 그것을 시종장이 만찬장 내부에 고하였다.
그에 무미건조한 얼굴로 자리만 지키고 있던 왕비 류드밀라 첼슨이 얼굴을 피며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까지 마중을 나섰다.
이윽고 만찬장 입구의 문이 열리자 회의장에서는 기사 정복을 입고 있던 제니리스 후작이 드레스로 갈아입은 모습으로  있었다.
밀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등장하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는 왕비 류드밀라 그녀는 반가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미레뉴에게 다가와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그에 미레뉴 역시 반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대하니 밀크는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 궁금해 졌다.
시종들이 주변으로 몰려 들어 왕비와 미레뉴 일행을 상석으로 안전하게 유도하니 그제야 왕비는 미레뉴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다.

“왔다는 소식은 들었단다. 그간 잘 지냈니?”

“예. 왕비님. 별일 없었습니다.”

“딱딱하게 왜 그러니 어차피 다른 귀족이나대신들은 이곳에 신경도 안 쓰는데. 편하게 부르려무나.”

“귀족이나 대신 말고 다른 사람의 눈도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그렇구나.”

마지못해 눈을 돌리는 왕비의 시선 끝에는 안 그런 척을 하고 있지만 계속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1 왕자의 시선이 닿아 있었다.
자신의 어미를 바라보는 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1 왕자의 눈동자.
사실 지금 여기 있는 왕비 류드밀라는 1 왕자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친아들은 2 왕자뿐이고 1 왕자와 3 왕자, 그리고 4 왕자는 다른 첩들의 소생이다.
장자 승계의 원칙이 없지만, 서열은 확실히 존재하는 첼슨 왕국이라 가장 먼저 태어난 첩의 아들인 1 왕자가 첫째 자리를 차지했고 그보다 조금 늦어 둘째를 생산한 류드밀라 왕비의 아들 톨메오가 2 왕자가 되었다.
왕의 부인인 류드밀라와 두 첩, 아니 후실 부인들은 딱히 나쁜 사이는 아니지만, 이번에 왕권 다툼을 겪으면서 점점 멀어진 상황이었다.
과거에는 그래도 자신에게 어머니라 부르며 귀여운 어리광을 부리던 아이가 이렇게 바뀌어 버린 모습에 그녀 역시 애석할 따름이었다.
왕비는 천천히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는 다시 미레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결혼을 했다고 들었는데 이쪽이 바로 그 남편인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첼슨 왕국 인근의 아인들을 모두 연합해 그곳의 대 족장을 맡고 있음과 동시에 왕국에서 가장 큰 부를 가진 에스타 상단의 새로운 상단주인 밀크입니다. 밀크 인사 드려. 이분은 첼슨 왕국의 어머니인 류드밀라 제니리스 첼슨 왕비 님이야. 항렬상  고모님이고. 난 이분의 질녀지.”

“아! 그렇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밀크라고 합니다. 전 왕국에 속해 있지 않으니 고모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어머! 그렇게 해주면  고마울 따름이죠. 이런 높은 자리에 운 좋게 오르다 보니 우리 귀여운 조카딸에게 매일 왕비님이라고만 불려서 속이 이만저만 상한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귀여운 조차 사위를 얻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어요.”

류드밀라 제니리스. 그녀는 미레뉴 제니리스의 아비인 전대 제니리스 후작의 여동생이다.
빼어난 미모, 그리고 학식을 갖추었으며 제니리스의 피를 물려받아 결코 몸을쓰는 일도 약하지 않은 그녀는 버밀리온 첼슨의 눈에 들어 왕비가 되었다.
왕권 강화와 동시에 후작가의 충성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한 정치적인 일환이기도 하였지만, 부부 금실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른 왕국에서는 열 이상도 가지는 첩을 겨우  명만 거느린 것도 보면 부부 사이에 소원함이 거의 없고 후세의 좋은 핏줄을만들기 위한 정치적 입장 때문에 구색 맞추기로 첩을 들였을 뿐이었다.
첼슨 국왕과 혼인을 하면서 그녀가 몸담은 본가인 제니리스의 성은 미들네임으로 들어갔고 그녀의 성은 첼슨으로 바뀌었다.
제니리스 후작가에서는 늦둥이라 오빠인 전대 후작과는 스무 살이나 나이 차가 나는 어린 여동생이었으며 후작의 나이 스물다섯에 탄생한 딸, 즉 미레뉴와는다섯 살 차이가 나는 가까운 나이의 고모였다.
열다섯, 미레뉴가   되던 해에 왕가와 후작가의 정략결혼으로 다음 대 국왕이 될 가장 확실한 버밀리온과 약혼을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1년 뒤 왕권을 물려받아 다음 대의 국왕이  버밀리온의 부름과 동시에 혼인하여 그때부터는 왕가의 일원이 되게 된다.
그 후 전대 후작의 죽음으로 인해 미레뉴가 후작가를 물려받은 뒤에는 남은 핏줄끼리 끈끈하게 연락을 유지하였다.
사실 그녀가 1년에 한  꼭 회의에 참여하는 이유도 그녀를 알현하기 위함이라 했다.
 더러운 정치판에 정말 오긴 싫지만, 오지 않으면 고모인 그녀를 만난수 없기에 하는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2 왕자의 어머니시니 2 왕자와 미레뉴는 친척이 되는 거네?”

“그렇지…. 어린 남동생이나 다름없긴 하지만, 우리 후작가는 왕가의 일에 크게 나서면 안 돼서 핏줄이라 해도 도울 수는 없어.”

“그 말은 미레뉴의 말이 맞아요 조카사위.”

“저….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고모님.”

“괜찮아요. 제아무리 제가 왕비라곤 해도 전하께서 승하하시면 바로 뒷방 늙은이가  허수아비인데요. 뭐. 저보다는 한 상단을 책임지면서 아인들을 연합한 대족장인 조카사위야말로 높은 자리에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아! 그리고 이젠 후작가의 데릴사위죠?”

“표면적으로는 그렇죠.”

“어머?! 그렇다면 뭔가 숨은 내용이 더 있다는 뜻인가요?”

“흠흠…. 왕비님 사실…. 데릴사위가 아니고 제가 대족장인 밀크의 아내가 된 겁니다. 항렬을 따지면 약 121번째 부인이 되고요.”

“세상에! 우리 조카딸이 그런 결정을 내릴 정도로 우리 조카사위가 대단하다는 거라 받아들이면되는 거니?”

“예.  정도로 밀크는 대단합니다. 여러모로….”

뒷말을 숨기면서 조용히 고개를 돌리는 미레뉴의 행동에 류드밀라는 소녀처럼 까르르 웃으며 입을 살며시 가렸다.
그리고는 유쾌한 표정으로 변하여 미레뉴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녀를 다독였다.

“원 얘도 참 그런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게 넘기면 이 고모가 모를 줄 아니? 밤사이에 껌벅 넘어간 게로구나.”

“으…. 아니…. 놀리지 마세요….”

“음- 음- 이건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어 봐야 겠는걸? 우리 조카사위-”

“예 고모님.”

“조카딸하고 진득하게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 잠시 자리  비켜 주겠어요? 후후후”

“당연한 말씀입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고모, 질녀 사이에 편안하게 말씀 나누세요. 조금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눈치가 좋아서 더 마음에 드네요. 앞으로도 우리 미레뉴 잘 부탁드려요. 조카사위.”

“예 고모님.”

화기애애한 두 친척 사이를 방해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던 밀크는 시종들이 열어 주는 길을 통해 인간으로 이루어진 벽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톰과 벨, 유크와 합류해 인간 장막의 가까운 곳에서 앉아 만찬장의 요리를 조금 즐기기 시작했다.

“정말 왕비님이 막내의 고모님이세요?”

“그래. 왜? 막내라고  대했는데  후회돼?”

워낙에 친근함을 잘 표현하고 털털한 성격인 유크는 밀크의 부인이  후작과  만날 때 대뜸 이름을 부르거나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안아주는 등 너무 심하게 친밀함을 어필하였다.
미레뉴가 좋게좋게 넘어가면서 오히려 그녀와 죽이 맞아서 받아 주고 언니- 하고 부르니 유커는 더더욱 미레뉴를 편하게 대하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더 엄청난 신분으로 바뀌니 당연히 조금 혼란스러울 법도 하다.
하지만 유크는 밀크의 말에 고개를 완강히 저으면서 대꾸 했다.

“아니 막대하다뇨. 제가 그럴 리가 있나요. 대족장님.”

“있지”

“응 있어.”

“족장님?! 아니 언니까지 이러기예요?!”

“네 평소 행실을  생각해 봐봐.”

“우우….”

살짝 풀이 죽어 버리는 유크를 보며 밀크가 장난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고 벨 역시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안주인님! 그대로 계십시오!”

그때 톰이 득달같이 달려와 밀크의 머리 위로 쏟아지려는 뭔가를 낚아채고는 몸을 비틀어서 그대로 테이블 위에 안전하게 올려둔 뒤 우당탕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톰?!”

“아이고 허리야…. 괜찮습니다. 안주인님. 균형이 좀 깨져서 쓰러진 거뿐이니까요.”

다행히 톰은 그리 큰 상처가 없었다. 톰이 재빠르게 낚아챈 것은 맛은 좋지만, 소스가 많아 잘못 튀면  망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요리 파스타였다.
접시를 안전하게 받은 뒤 내용물이 넘치지 않게 몸을 비틀어 탁자에 올려둔 톰은 정작 자신의  균형을 신경 쓰지 못해 쓰러진 것이었다.

“칫.”

아쉽다는 듯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 밀크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귀티가 흐르는 남자가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죄송하지만, 누구십니까? 전 제니리스 후작의 남편 자격으로 온 밀크 제니리스라 합니다.”

왕국 내의 신분으로는 밀크는 제니리스 후작의 남편이라 그 역시 제니리스라는 성을 사용할 수 있었다.
상대가 신분이 높을 경우, 또는 권의 의식에 꽉  귀족의 경우는 밀크의 숨기기 힘든 멋들어진 뿔과 꼬리 때문에 시비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한 미레뉴가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미리 자신의 신분을 밝히라면서 알려준 지식이다.
신분이 높은 자라면 제니리스 후작가와 대립해 봐야 손해라는 것을 알기에 적당히 사과하고 넘어간다.
신분이 낮은자라면 제니리스 후작 가의 명성과 힘을 두려워해 알아서 사죄하고 물러날 것이다.
미레뉴의 판단은 아주 훌륭하다   있었다. 다만 세상에는 꼭 A 그리고 B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A에도 B에도 속하지 않는 C라는 존재, 그리고 눈앞의 존재인 4 왕자가 바로 이 C였다.

“놈! 감히 너 따위 아인이 감히 왕국 후작의 남편이라 사칭하는 것이냐!!!”

안 그래도 미레뉴의 혼인 소식 때문에 반쯤 눈이 돌아가 있던 그였다.
그런데 남편이라고 등장하는 자가 고작 아인 나부랭이라니 그의 눈이 완전히 돌아가는 것도 인간 우월사상, 그리고 아인 멸시 사상이 만연한 세상에서는 이해도  법한 상황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 우월사상과 아인 멸시 사상이 골수의 사무친 사람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평범한 인간의 사고였다면 ‘응? 후작 가의 데릴사위가 아인? 그것참 별난 일이군.’ 정도로 넘어갈 부분이다.

“저, 누구신지 모르지만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십니다. 이분은 법적으로 확실한 후작 가의 안주인인 입니다.”

“시종은 빠져라! 감히 아인 따위를 주인이라 칭하는 네놈 역시 천박하기 그지없는 놈이로구나! 후작 가가 어찌 이리 천박해진 것이냐!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모두가 영웅이고 왕국의 수호자였느니라! 그런데 어찌! 주인의 옆에 이런 더러운 아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았단 말인가! 어찌!!!”

도를 넘기 시작하는 4 왕자의 행동에 아차 싶었는지 3 왕자가 급하게 달려왔다.
만찬장의 분위기에 취해서 뭐 별일이 있겠느냐?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4 왕자를 혼자  것이 큰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이놈!  하는 거냐! 당장 물러나라! 후작 가와 마찰을 빚으면 어쩌자고 이러는 거야!”

“말리지 마십시오. 형님! 이것은 첫째 형님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더러운 아인 따위 우리 왕국에서 완전히 목줄을 틀어쥐고 노예로 삼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야말로 위대하며 아인은 그저 가축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놈이 진짜!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놈이 이거 술이 많이 취해서 그런 듯하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에…. 제니리스 후작 남편”

“놓으십시오! 이거 놓으란 말입니다! 네 이놈!!! 더러운아인놈!!! 당장에 그 멱을 따기 전에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거라!  따위 놈이 차지할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결국, 일은 큰불로 번지고 말았다. 진압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불길을 일으키면서….
그리고 이 거대한 소란을 인간 장막 안에 있다고 해도 인간을 초월한 후작과 그에는 못 미치지만 제니리스의 피를 이어받은 왕비가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인간 장막이 열리면서  사람이 등장했다. 그때까지도 4 왕자는 머리에 피가 쏠려서 시야가 좁아진  바락바락 악을 쓰며 밀크를 성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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