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5화 〉145화 회의의 끝. (145/177)



〈 145화 〉145화 회의의 끝.

“다시 말하죠. 이상한 곳에다가 화살 조준하지 말고 사건의 본질을 확실히 생각합시다. 이번에 생긴 불미스러운 일들은 나와 죽은 무핀 사이에 생긴 일입니다. 추천해준 것도 2 왕자가 아닌 카프리온 공작가죠.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라면 추천을 해줬다는 이유만으로 공작님을 성토해야 한다는 건데, 만약 이 일을 반면교사 삼아서 앞으로도 남편감 추천을 받은 귀족들이 남편 쪽에 있는 문제를 이유 삼아 추천한 귀족을 공격하면 어쩌려고 이런 선례를 남기려 하는 겁니까?”

“그, 그것은…. 에…. 그 내용은 이번 일과는 좀 다른….”

“전혀 다르지 않은데…. 그보다 자네는 아까부터 말이 좀 많은 거 같군. 한 번 만  내 말을 끊으면 그땐 나도 좋게좋게 넘어갈 생각이 없으니 주의를 좀 하게.”

“죄, 죄송합니다. 후작님.”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심판자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는 사실 1 왕자 쪽에 한 발을 걸친 상태라 의도적으로 이 자리를 1 왕자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야 하는 모종의 임무를 띠고 있었다.
심판자는 대대로 백작이 맡아 왔다. 공, 후, 백, 자, 남 오등 작의  중앙을 차지한 위치이기에 중간에서 조율하라는 왕국의 생각이 만들어낸 위치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왕권을 가지기 위한 싸움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국이다. 발 한쪽을 어딘가에 걸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조율을 하며 1 왕자를 돕는다 해도 그 대상이 대상인지라 그도 불가항력이란 것이 있었다.
한 단계 차이가 나는 귀족의 작위, 하지만 상대는 변방의 모든 병권을 가진 변경 후작이다. 따지자면 첼슨 왕국의 세 번째 공작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백작의 입이 다물어지자 미레뉴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부터 새처럼 짹짹거리기나 하고  말하는데 아주 기분이 나쁘단 말이지…. 아무튼 죽은 나에게 무례를 범한 무핀은 이미 죽었고 남은 죄는 그의 집안에서 적절하게 보상하는 것으로 끝을 내면 됩니다. 이미 이 일에 대하여 2 왕자 전하의 사죄 인사도 들었고 카프리온 공작님은 무관하니 이쯤 해서 끝을 내지요.”

“후작은 그걸로 정말 괜찮은 거요?”

“1 왕자님,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데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그것도 그렇군. 그럼 이번 사건은 이렇게 정리하는 것으로 하지.”

“아,  됩니다!”

그때 회의장 중앙으로 나서는 남자가 있었다. 무핀 세런의 아비인, 알도 세런 남작이었다.

“저희 가문은 한미하고정말 가난한 가문입니다. 힘도 없고 뒷배도 없는데 후작님께 어떻게 보상을 한단 말입니까! 제발 조금만 조율을 더 해주십시오. 저희 가문을 살려 주십시오. 왕자님! 아들의 일은 정말 백번, 천번! 사죄를 드리겠으나 이 이상의 보상은 정말 불가능합니다!”

“알도 세런 남작이로군. 후작, 이렇게 말하는데 후작의 생각은 어떠신가?”

“보상은 꼭 받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후작가에 도전하는 무리는 어떤 벌을 받는지 확실히 알려 줄  있을 테니까요. 다만 가문의 힘이 부족하다고 하니 이 일은 2 왕자 전하와 말을 나눠서 그분에게 보상을 받아내면 어떨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그때 2 왕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세런이 움찔하더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아. 후작님. 죄송한 말이지만, 당시는 세런 남작이 제 사람이었기에 사과를 드렸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 남작은 제 사람이 아닙니다. 제 사람도 아닌데 제가 보상을  드릴 의리는 없다고 생각되는군요.”

“호? 그렇다면 세런 남작의 현 뒷배는 어딥니까?”

“…….”

2 왕자와 리그릿 후작, 그리고 세런 남작을 더불어 그의 뒷배를 아는 자들의 눈이 일제히 어딘가를 향해 움직였다.
눈동자들이 돌아가는 소리를 찬찬히 들으며 미레뉴 역시 시선을 돌렸고  끝에 있는 자는 바로 1 왕자였다.

“이거 참. 1 왕자님이 세런 남작의 뒷배입니까?”

“그렇소.”

“아까 제가 말한 대로 하겠습니다. 무핀의 잘못에 관한 사죄 금을 세런 남작이 배상하기 힘드니 뒷배로 계신 1 왕자님이 대신 배상하시지요.”

“얼마를 원하는 게요?”

“첼슨 왕국 통화로 이백 골드.”

“그, 그런!”

“아니 무슨!!!”

“후작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이백 골드라니! 그건 너무 과합니다!”

“뭐가 과한가? 공작의 체면을 망가트린 죄인에게 내리는 벌금이 사백 골드다! 그렇다면 후작인 난 그 절반은 받아야 공평하지 않은가! 왕국 법은 한 번이라도 보고 정치를 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무부라고 그런 기본적인 지식도 없으리라 생각하고 날 무시한 것인가!!!”

후작의 살기가 넘실넘실 흘러나와 회의장에 있는 귀족들에게 넘실넘실 나아가기 시작했다.
숨이 막혀오는 거대하고 위압감이 넘치는 살기에 귀족들은 안색이 하얗게 되더니 일부는  자리에 무릎까지 꿇었다.

“후작! 그만하게. 말실수를 좀 한 거뿐인데 너무 심하군!”

“흠…. 말실수라. 그렇다면 1 왕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배상하겠네. 물론 내 사람이 된 사람이니까. 당연한 일이지.”

“아….”

왕자 뒤에서 그를 지원하던 이밀 공작이 한숨을 쉬었다.
이번 일로 결국 손해를 본 것은 1 왕자 측이 된 것이다.
자신의 아랫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2 왕자의 성격을 이용하려 한 것인데 그가 이렇게  빠르게 세런 남작을쫓아낼 줄은 예상 밖이었다.
비올라와 밀크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2 왕자는 하는 수 없이 세런 남작을 자신들의 세력에서 배제했다.
첩자라는 이유도 확실했고 이번 일을 통한 명분도 있으니 2 왕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2 왕자 파의 동요는 거의 없었다.
겸사겸사 카프리온에게 환심을 사서 이번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남자인 팔몬 자작까지 쳐내었고 그간 바이올렛에서 모인 정보를 토대로 해 첩자로 잠입해 있던 자들 대부분을 쳐내 내부 단속을 확실히 했다.
2 왕자 파는 이번 일로 그 귀족들이 쳐내 지거나 숙청을 당해 그 힘이 줄어들었지만, 1 왕자 측이 배상해야 하는 금액을 들으니 자신들은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백 골드, 한 영지의 반년 수입이다. 그것도 괜찮은 발전 도를 보이는 영지의 반년 짜리 수입이었다.
엄청난 배상금이지만, 왕국 법에도 나와 있는 귀족을 모욕한 자에게 내리는 벌금이기에 더는 반박도   없었다.
다들 침음성을 흘리는 와중 이밀 공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미레뉴를 응시했다.

“제니리스 후작.”

“말씀하세요. 공작님.”

“배상금을 조금 줄여 줄 수는 없겠는가? 물론 왕국 법에도 명시는 되어있으나 공작과 후작의 차이는 확연하네. 공작의 절반이 꼭 후작이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어떤가. 내 섭섭지 않게  골드를 벌금으로 배상하지.”

공작의 말은 결국 배상금이 과하니 조금 깎아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상대방의 혼을 빼놓는 화술을 구사해 후작이 말대답하기 힘들게 하고 자기 뜻을 관철하겠다는 의도였다.

“음. 공작님의 말대로 공작의 절반이 꼭 후작이라 할 수는 없겠군요. 좋습니다.”

“고맙네.”

“고맙긴요. 저는 삼백 골드를 달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요?”

“뭐, 뭣이?!”

“공작님이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공작의 절반이 꼭 후작이라 할 수는 없다고요. 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라면 공작의 4분의 3 정도라 할 수 있겠네요.  미레뉴 제니리스가 말입니다.”

“이, 이보게 후작!”

“귀  먹었습니다. 공작님. 그러니 왜 나서서 이런 상황을 만드십니까? 그냥 한 번에 배상금 주고 끝냈으면 이럴 일도 없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셨군요.”

다만 그의 생각보다 미레뉴가 영악한 여자라는 점이 문제였다.
또 하나 혹자들은 무인들이 무식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미레뉴는 달랐다.

[“군사를 다루는 지휘관이 글을 모르고 병법을 모르면 어찌 지휘관이란 말이냐! 무예 실력이 느는 만큼 학식이 늘지 않으면 매일 벌줄 것이니 그리 알 거라!!!”]

전대 제니리스 후작, 즉 미레뉴의 아버지가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었다.
그런 엄격한 아버지의 밑에서 큰 미레뉴가 반쪽짜리 무식한 무인일 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밀 공작은 하지 않아도 될 한마디를 더 해 1 왕자 측에 혹을 하나 더 달아 주었다는 뜻이다.

‘낭패로군. 너무 쉽게 보았어. 이대로 더 대화를 나누어 봐야 내가 필패다. 물러날 때인가.’

“죄송합니다. 왕자님 제 불찰입니다.”

“죄송할 거 없네. 이밀 공작도 실수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딴은 옳은 말이기도 했어. 공작의 반이 후작일 수는 없지. 누군가는  멍청해서 절반도 할 수 없는 자가 있고 누군가는 뛰어난 실력으로 공작보다 나을 수도 있으니까.”

“흠흠….”

“커험….”

“허흠….”

몇몇 귀족들이 뼈 있는 1 왕자의 말에 그대로 헛기침을 시작했다. 특히나 카프리온 후작의 헛기침이 가장 강했다.

“알았네. 삼백 골드를 배상하지. 그럼 되었나?”

“예. 이 일은 그렇게 마무리하죠. 뭐하나? 끝났으니 판결 내리게.”

“아…. 네네!  그러니까…. 이번 일은 이것으로 종료되었으니 앞으로 이 일은 다른 귀족분들이 왈가왈부하시면 아니 됩니다. 그리 알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렇게 2 왕자 측을 무리하게 몰아붙이던 1 왕자 측이 카운터 펀치를 맞고 침몰하였다.
물론 완전한 침몰은 아니라 다시 배를 수리해 수면 위로 올라올 테지만, 삼백 골드의 피해는 대단할 테니 아마 한동안은 크게 움직이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지루한 내용만 이어지는 왕국 정기 회의는 그 막바지에 다다랐다.
심판관의 회의 종료 선언과 함께 썰물이 지듯 대전에서 빠져나가는 귀족들
그런 귀족들의 틈에서 미레뉴에게 접근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 정체는 2 왕자 톨메오였다.

“후 무섭군. 챙길 것은 확실히 챙기는 군요 후작.”

“여기까지 왔는데 맨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요. 만약 2 왕자님이 계속 그를 떠안고 있었으면 이 화살은 2 왕자님을 향했을 겁니다.”

“하하하…. 나와 당신의 남편은 굳건한 동맹입니다. 너무 겁주지 마십시오.”

“나와 남편이 일심동체지만, 남편의 동맹이 꼭 나와 동맹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알았소.  주의하지요.”

“만찬장에는 저와 남편, 그리고 남편의 아내이자 저의 두 언니가 함께 참여할 겁니다. 무례한 자가 나타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아실 거라 믿고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푹 쉬고 잠시 후에 봅시다.”

“왕자님도 푹 쉬시길.”

몸을 돌려 회의장을 나서는 미레뉴, 아직 만찬장이 아니라 지금은 군의 정복을 입고 있지만, 이제 곧 그녀 역시 여인의 매력을 한껏 올려줄 드레스로 바꿔 입을 예정이었다.
터질 듯이 튀어나온 그녀의 엉덩이 쪽에 잠시 눈이 갔다가 이내 흥미를 버리고 다시 눈을 돌리는 톨메오.
그런 그의 뒤에서는 눈에서 빔이 튀어나올 정도로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집중한 남자가 한  있었으니 바로 4 왕자였다.

‘젠장…. 젠장! 그녀는 내 것이라고. 내 것이란 말이야! 도대체 어떤 개 같은 자식의 그녀를 취한 거지?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냐고!!! 으아!!!’

속 안에서 길길이 날뛰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은 불안정해 보였다.
마침 당장 눈앞에 닥쳐있는 일 때문에 1 왕자도, 3 왕자도 그를 통제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거대한 증오를 키워 나갔다.

“저녁에는 만찬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족 내외 분이나 회의에참여하지 못한 다른 귀족 여러분도 만찬에 참여하니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옥체가 편치 못하신 국왕 전하를 대신하여 왕비 마마께서 만찬을 주관 하실 예정이니. 많은 참여 바라고 푹 쉬시기 바랍니다!”

심판자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오늘 세상 다 살아본 경험을 한 것을 나름 값진 경험이라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는 앞으로 1 왕자의 관계를 끊고 심판자의 위치에서 내려오는 그 날까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을 지키리라 마음먹었다.
값진 경험이라 해도 두 번 다시 해보고 싶은 경험은 절대 아니었으니 말이다.
회의장을 나선 미레뉴는 바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잠시 내부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의 목소리가 한창 들려오다가 얼마 뒤 다 같이 그 방문을 나서서 하인들의 안내를 받아 만찬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미레뉴는 아까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매력적인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되어있었고 그 옆에는 밀크가 당당한 모습으로 미레뉴를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항렬 상 위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항렬보다는 사람 자체의 위치가 더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라 그것을 숙지한 벨과 유크가 미레뉴의 드레스 뒤쪽의 장식용 천을 살며시 잡아 올리며 그녀를 보조하듯이 발걸음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다만 유크와 벨 역시 톰의 수준 높은 실력으로 인해 미레뉴와 견주어도 절대 미모가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의 이 밀크 내외의 이동은 마치 그림 한 폭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회자하며 이를 본 하인들은 눈 이 호강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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