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144화, 회의 시작.
“회의가 곧 시작됩니다. 귀족 여러분께서는 바로 대전으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안을 위해 앞으로 15분 후 대전 입구를 봉할 예정이니 어서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시종들의 외침에 따라 준비를 위해 대전 밖으로 나가있던 귀족들이 하나둘 안으로 입장해 들어갔다.
1 왕자파, 그리고 1 왕자와 함께하기로 한 3 왕자, 4 왕자의 얼마 없는 끄나풀 세력, 2 왕자 파와 중립 귀족들, 그리고 그 중립 귀족들 대부분을 아래에 거느리고 있는 대표인 제니리스 후작이 입장했다.
“제니리스 후작입니다.”
“음…. 언제 봐도 당당하고 아름다운 분이로군.”
“이례적인 일이군요. 저분이 회의에 참여하다니.”
“저번에 있던 그 일 때문 아니겠습니까?”
“흐흐흐 2 왕자 파는 지금쯤 불지옥 경험을 하고 있겠군요.”
“불지옥이라. 그거참 이 상황에 걸맞은 단어 선택이군.”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미레뉴가 온 이유는 다른 2 왕자 파와 그 어떠한 마찰도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지만, 그걸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귀족의 관심사는 아무래도 2 왕자와 후작 사이에 있던 일보다는 조용히 치러진 그녀의 결혼 소식일 것이다.
어느 귀족이나 자신 가문의 힘이 양분되어 버리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정략결혼, 즉 약한 가문은 강한 가문에게 빌붙어 그 힘에 편승하여 자신의 입지를 늘리거나 강한 가문끼리 연계하여 좀 더 서로의 힘을 점진적으로 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정략결혼이 자주 이루어진다.
사랑? 물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100중 70은 자신의 사랑과는 전혀 무관하게 결혼을 하게 되고 약한 가문에서는 볼모로, 강한 가문에서는 그 볼모의 대가로 힘을 주고 강한 가문과 강한 가문끼리는 서로 확실한 문서로 내용을 남겨 서로 불필요한 경쟁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제니리스 후작 가문의 경우는 변경의 모든 수비를 책임지는지라 군대를 합법적으로 통솔하고 움직일 재량권이 있기에 더더욱 가문의 힘이 다른 가문에게 흡수당하거나 빼앗기는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후작 가문의 결혼은 왕국에서도 또 수많은 귀족 가문에서도신경을 곤두세우는 큰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힘이 약한 한미한 가문, 또는 평민이나 몰락 귀족, 기사 가문 같이 후작 가문의 힘에 짓눌릴 약한 가문이라면 전혀 신경 쓸 필요도 없지만, 그것이 대 가문을 이룬 귀족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니 말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녀가 결혼한 사람이 평민이라고 하니 크게 걱정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 중 단 한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까드득.
옆에서 들려오는 이빨 가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는 3 왕자의 눈에는 분노로 일그러진 4 왕자 프레드릭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가 향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제니리스 후작이었다. 깜짝 놀란 3 왕자는 제니리스 후작의 시선이 4 왕자에게 가지 못하게 앞을 막고는 그를 다급하게 타일렀다.
“벌써 5년도 더 된 일인데 왜 그래! 얼굴 풀어 지금 여기가 어떤 자리인지 몰라?”
1 왕자가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냉정하고 감정을 숨길 줄 알며 무예가 출중하다.
2 왕자는 문과 무에 통달해 모두 뛰어난 실력이 있으며 아랫사람을 믿고 일을 잘 맡기지만 사람을 너무 쉽게 믿으며 사람이 너무 좋았다.
3 왕자는 성정이 포악하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지만, 역시나 무에 소질이 있으며 눈치가 빨라 논쟁거리가 될만한 거대한 악행은 저지르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 왕자는 위 세 형에게 너무도 눌려 왕권을 물려받을 확률도 적고 언제나 형들에게 비교당하는 생활만 하기에 마음이 심하게 삐뚤어져 있다.
딱 하나 장점이 있다면 평소에는 그 삐뚤어진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 다는 점이었고 단점이 있다면….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스스로 자신의 것이라 마음먹은 것을 빼앗겼을 때 심각한 분노를 느낀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아버지인 국왕이 정정했고 당시 왕권 싸움이 격화되지 않아서 왕자끼리 화기애애했을 때는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별로 없었다만, 제동해줄 부분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니 이젠 물불 안 가리는 희대의 상놈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처음부터 행동을 같이한 3 왕자가 그를 잘 다독이며 같이 해오긴 했으나 1 왕자, 2 왕자를 지지하면서 의견 충돌이 잦아졌고 멀어지니 이젠 3 왕자도 그를 어떻게 통제할 수가 없었다.
5 년전, 그러니까 왕권 다툼이 전혀 없었던 때의 일이다. 그때 4 왕자는 앞선 형들도 모두 그랬듯이 지휘관으로서의 공부를 하기 위해 제니리스 후작 령에서 생활을 했다.
미레뉴의 부관이라는 신분으로 지휘관으로 병사를 직접 움직이고 조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군사를 움직이는 방법을 배우는 이른바 왕자 수업이었다.
짝!
“무례한 놈 같으니.”
“죄, 죄송합니다!!!”
뺨을 맞자마자 왕자라는 것도 다 잊어버리는 강렬한 충격을 받으며 프레드릭은 눈 앞의 존재에게 고개를 숙였다.
왕자든 뭐든 다 씹어서 죽여버릴 듯 흉흉한 눈빛을 하는 존재는 바로 미레뉴였다.
5년 전 그는 이런 미레뉴의 강한 기상에 반해 자신의 신분이 왕자라는 것을 이용해 미레뉴에게 뜬금없는 청혼을 했고 이렇게 뺨을 맞았다.
“젊은 혈기는 어떻게 사용해야 좋은지 아직 모르는 애송이로군. 가서 몸이나 굴리고 와라. 장교 특별 훈련 메뉴 10세트다.”
“허, 헉!”
“죽고 싶나!!!”
“가, 갑니다!!!”
명백한 거절이었지만, 프레드릭은 포기하지 않았다. 교육 과정이 끝나는 날까지도 그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떠나는 날 정식으로 그녀에게 다시 청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묵묵부답 왕실과 후작가가 연결이 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명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란 답변을 주었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포기하지 않고 왕도로 돌아왔다. 아버지를 움직이면 후작과 혼인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그러나….
“안될 말이다.”
“아, 아버지!”
“물론 후작가와 왕가가 결합하는 것은 절대 나쁜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네가 그 대상이라는 것은 안 된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넌 왕가의 넷째다. 다음 왕권에서 밀려나 있는 네게 후작 가라는 날개를 달아 준다면 그 뒤는 왕권 다툼이 더 극심하게 이루어질 터! 안 그래도 요즘 네 위 세 형이 알게 모르게 다투고 있는데 너까지 이 아비의 속을 썩일 작정이더냐!!!”
“저, 저는 절대로 왕권에 눈독 들이지 않을...”
“맛을 알아 버리면 아비 어미도, 또 형제자매도 몰라보게 만드는 비정한 것이 바로 권력이다! 치기 어린 네놈의 말을 듣고 그 거대한 검을 네게 쥐여줄 줄 알았더냐? 그만 물러가거라.”
“아버지!!!”
“물러가라 하였느니!!!”
이렇게 그의 위치상 후작과의 결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왕의 극심한 반대의 벽에 부딛친 그는 그때부터 점점 더 심하게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향락에는 빠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나름대로 그녀를기리는 마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왜 모든 것이 일그러졌다. 첼슨 국왕의 생각보다 더욱….
그는 앓아눕기 전까지 이 왕권 다툼은 세 왕자의 삼파전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싸움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두 사람보다는 좀 떨어지는 3 왕자를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다.
죽인다는 것은 아니고 그를 불러내 타일러서 다른 곳에 자리를 만들어 주고 왕권 다툼에서 빠지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가 눕고 나서 일어난 왕권 다툼은 4 왕자까지 참여한 사파전이 되었다.
첼슨의 선택이 4 왕자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비록 세력이 약해 지금은 1 왕자에 합류해 있지만, 야심으로 보자면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할 프레드릭
한 여자를 기리면서 왕이 된 후 그녀를 왕비로 드리려는 그의 야심이 그를 채찍질하여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한 축을 이끄는 당당한 왕자가 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여자는 이제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나아가 있었다.
‘어째서! 도대체 왜! 왜 난안 되고 더러운 평민은 된단 말인가! 왜!!!’
사랑은 미움으로 미움은 증오로, 증오는 살심으로 변하여 갔다.
이제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없다. 눈앞의 존재는 이제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동생아”
그때 프레드릭의 귀에 1 왕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역시 프레드릭이 미레뉴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프레드릭의 어깨를 누르며 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불필요한 행동은 자제해라. 그렇다면 내가 약속하마.”
“뭘 말입니까.”
“내가 왕이 되면 저년을 네 아내로 주마. 왕명으로 말이다.”
“…. 그딴 동정 필요….”
“동생아.”
“….”
“내가 부탁하는 거 같더냐?”
“….”
“명령이다. 따라라.”
“예…. 형님….”
프레드릭의 대답과 함께 그의 어깨에서 손이 내려왔다. 그는 어깨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제아무리 4 왕자라 해도 지금은 1 왕자의 휘하에 있으니 그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까드득
그러나 이를 가는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3 왕자는 이 엄청난 혼란 속에서 회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하필이면 후작이 직접 오다니…. 결혼했어도 그냥 거기 처박혀 있었으면 이놈이 이럴 일도 없잖아. 제기랄….’
눈앞에서 사랑했던 대상을, 유부녀가 된 그녀를보는 프레드릭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지금은 시기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제발 그가 돌발 행동을 해주지 않길 바라는 3 왕자의바람과 함께 대전의 문이 봉해졌고 그렇게 회의는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안건들이 올라오고 필요에 따라 내용을 쳐내거나 아예 묵시, 또는 찬반을 따져 안건을 처리해 나아갔다.
오늘 처리한 안건만 총 300건이 넘어간다. 그만큼 서로의 이권을 위해 왕국이 법으로 지정한 테두리 안에서 펜과 펜으로 이루어진 고요한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닙니다! 이건 꼭 필요합니다. 백성들을 위해섭니다!”
“백성을 위해서라고요? 하하하. 그거참 좋은 이유입니다. 아니 핑계지요!”
“뭐라?!”
“적어도 백성들보다는 자신들 이권이 더 크다는것은 왜 숨기는 겁니까? 그것도 당당히 밝히고 안건에 찬동하는 사람들을 찾아보세요. 진실을 왜곡하지 말고요.”
“으음….”
분위기는 고조되어댔다. 그리고 그것이결국 등장했다. 사실 이미 후작이 용서한 이상 더 다룰 필요도 없지만, 1 왕자 측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물고 놔주지 않을 생각으로 안건을 추진했다.
중립 귀족의 필두인 제니리스 후작에게 범한 2 왕자 파의 무례를 성토하는 내용의 안건 말이다.
하는 수 없이 제니리스 후작이 직접 입을 열었다. 회의 참석 후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그녀의 첫 대답이었다.
“본인은 그 안건에 대하여 이리 대답을 하지요. 그날 본인이 느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모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2 왕자 파에 소속되어 있는 자라 해서 무조건 2 왕자 파 전체에 사과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 그러니까 후작님은이 일이 충분히 모욕적이었다 그런 말씀이신가요?”
“아직 내 말이 좀 남아 있는데 벌써 결론부터 지어 버리다니. 자네는 중립을 지켜서 귀족들의 화합을 이끌어야 하는 심판자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선 것이 아니었나? 왜 1 왕자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내 말을 해석하는 거지?”
“그, 그럴 리가 있습니까! 오해이십니다. 후작님!”
“조용히 내 말이 끝나길 기다려라. 음…. 하려는 말 대부분을 잊어버렸군. 이래서 문관들은 마음에 안 들어 말 하나에 오만가지 이유를 가져다가 뜻을 왜곡하고 또 이상한 쪽으로 만들어서 종극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말로 변화시키지. 왜 순수한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지?”
“죄송합니다….”
“너희들이 매장해 버린 과거의 무장들, 적어도 난 그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 이 왕성과 중앙 수도에만 들어오면 모두가 정치에 빠져서 사람이 망가진다고. 그리고 왕가에 충성만 외치는 우리 무인들은네놈들 문인들에게 아주 골치가 아프겠지. 그러니 말 한마디 잘못한 것을 끝까지 꼬투리 잡아 대역 죄인으로 만들지. 그런 뒤 파직시키고 죽이고! 사형시키고 자결시키고 난리였어. 왜? 나 역시 그렇게 해보지 그러나?”
“어…. 그…. 그것이…. 그게….”
“후작.”
“뭡니까 1 왕자님.”
“지금 하는 말은 이번 안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네만?”
“애초에 저자가 중간에 끊지만 않았어도 나오지 않았을 내용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죠.”
“음…. 알겠네.”
잠시 숨을 가다듬은 미레뉴가 아까의 내용에 이어서 그녀가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