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2화 〉142화, 왕도 정기 회의 (142/177)



〈 142화 〉142화, 왕도 정기 회의

얼마 뒤 첼슨 왕국에서는 중앙 왕도 정기회의에 참여하기 위해서 지방의 영주와 귀족을 대표하는 이른바 유력 귀족들이 모두 모여들기 시작했다.
왕국의 중요한 일을 거론하는 자리이므로 1달에 한 번은 꼭 열리는 회의이다.
원래라면 회의실로 사용되는 대전의 상석, 그러니까 왕좌에는 첼슨 왕국의 국왕이 앉아서 귀족들의 회의를 주관하며 조율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국왕은 병마에 시달려 의식까지 잃은 상태라 하는 수 없이 1 왕자와 2 왕자가 각자가 이끄는 귀족들을 대동하여 회의를 주관하게 되었다.
왕국에는 장자승계의 원칙이 없다. 현 첼슨의 국왕도 선대의 다섯째 아들이었다. 장자승계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는 나라였다면 왕자끼리의 골육상쟁이 일어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점만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왕자끼리 경쟁을 하여 더욱 나은 자가 왕이 된다. 나라의 입장에서는 폭군이건 성군이건 일단 능력이 뛰어난 자가 왕의 자리에 앉게 되니 전망이 밝을  있다는 희망 정도는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피를 흘리고 잘못하면 방계의 왕족까지 끼어들어 자신의 능력을 뽐내려  위험도 적잖이 있었다.
그에 반해 장자승계의 원칙을 지키면 자신의 왕좌가 다른 잡음과 피비린내를 풍기지 않고 첫 핏줄에게 제대로 전달이 된다는 안전함이 있다.
방계, 또는 첩의 자식이 제멋대로 날뛰거나 권력을 휘두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대를 이을 첫째 왕자의 상태에 따라 나라가 휘청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거의 도박과도 같았다.
뭐가 더 좋은지 더 나은지는 그 나라를 책임지는 귀족, 그리고 왕, 백성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 우린 왈가왈부를 하기보다는 이곳은 이 방법을 채택하였다는 것을 그저 상기만 하고 있으면  것이다.
회의실에 모여드는 귀족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사람이 앉아 있지 않은 빈 왕좌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1 왕자, 그리고 2 왕자가 왕좌를 호위하듯이 서고 1 왕자의 뒤에는 3, 4 왕자가 함께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막내인 4 왕자가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2 왕자를 불렀다.

“형님, 요즘 혈색이 아주 좋아지셨소? 뭐 좋은 거라도 드시나 봅니다? 이를태면 좋은 여자라도 드시는 거요?”

성격이 포학하고 자기 잘난 맛에만 사는 막내 왕자, 검술 실력은 수준급이지만, 인성이 못돼먹어서 자신의 스승으로 내정된 자들을 스물이나 갈아 치운 경력이 있는 왕자였다.
갈아 치운다고 순화해 표현했지만, 그의 검술 스승들은 하나같이 어디 하나가 병신이 되어서 나가기 일쑤였다.
그리고선 그는 자신에게 가르쳐준 검술로 스승을 꺾는 것이 제자가 스승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도리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그만큼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겼다.
주변에서는 망나니, 또는 미친 멧돼지 등으로 부르면서 그와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성격만큼이나 말투도 천박하기 그지 없는 그의 말에 2 왕자는 싸늘한 눈초리를 잠시 보냈지만, 이내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우리 동생이 날 이렇게 살펴보고 있었던  몰랐구나. 그래 요즘 좋은 일이 많아 형님 표정이  좋더냐? 하하하.”

“돈 들어오는 곳이 있으니 얼마나 좋소? 이거 동생 무시하지 마시고  나눠 쓰면 어떻겠소. 형님?”

“그럼, 그럼  형이 돼서 동생 용돈도 못 줄까 봐 그러느냐? 언제  번 찾아오너라.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뭐 좋은 대화가 오고 가면  한  고려해 보마.”

“아, 아니 그게….”

왕국에 피해를(자기들 딴에는 피해를 줬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준 에스타 상단과 붙어먹은 2 왕자를 몰아세우기 위한 4 왕자의 행동, 그러나 2 왕자의 대답 때문에 모양이  이상하게 변했다.
다시  편에 붙으면 후원금이야 얼마든지 나누어 주겠다는 뜻이었다.
1 왕자 앞에서 서슴없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성격이 자신보다 더 포악한 그가 어찌 나올지 모르기에 4 왕자도 긴장해야 했다.
4 왕자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 잘난 줄만 알지만 그래도 최소한 눈치 정도는 있었다.
그래서 막 나가는 것 같아도 적절한 순간에 끊을 줄 알기에 왕자 자리는 잘 지키고 있다.
그러나 옆에 있는 1 왕자는 다르다. 포악한 성격인데 눈치도 없다. 그리고 생각도 모자라다.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지만, 성격이 너무도 냉정하다. 그래서 더 포악하다 할 수 있었다.
사람 목숨 하나, 아니 4 왕자도 마음만 먹으면 정리해 버릴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것이 바로 1 왕자였다.
굳이 해봐야 자신들 전력이 위험하니 살려두는 것이고 말을  들으니 놔두는 것이다.
왕자가 정권을 잡은 뒤에도 절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그는 자신을 방해하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는 성격이니까.
식은땀까지 흘리며 옆에 선 1 왕자의 표정을 살피는 4 왕자.
다행히 1 왕자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어차피 2 왕자가 한 작은 도발이었으니 괜히 응해봐야 자신이 손해였으니 말이다.

“아우가 장난이 좀 심했구나. 내 대신 사과 하마.”

“아닙니다. 형님…. 저야말로 나잇값도 못하고 아우랑 티격태격했으니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후후후 그래 네 녀석 성격이 워낙 모나지 않으니 참 다행이구나.”

“감사합니다.”

“그래. 회의 준비는 잘 된 것이냐? 이번에 카프리온 공작이 추천한 자가 제니리스 변경 후작에게 큰 결례를 범했다 하던데. 그 때문에 제니리스 후작이 유감을 표했다 하더구나.”

“예…. 그런 일이 있었지요. 어째 형님은 저희 쪽 소식을 훤하게 알고 계십니다?”

“아하 하하. 그야 전쟁에서 정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냐.  눈과 귀가 왕도 이곳저곳에 깔렸단다.”

“그렇군요. 하지만 걱정하실 것은 전혀 없습니다. 후작과는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으니까요. 적당한 선에서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해줬습니다.”

2 왕자의 말에 1 왕자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소식은 아직 듣기 전이었다.
그야 왕도 이곳저곳에 깔린 1 왕자의 눈과 귀가 왕도를 벗어난 곳에는 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위치가 중립 귀족들의 수장인 제니리스 후작의 후작령이라면? 더더욱 눈과 귀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자줏빛 바이올렛이 정보를 차단하고 에스타 상단이 은밀히 움직여 합작하니 1 왕자가 후작령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낼 재량이 없던 것이다,
찌푸린 미간을 핀 1 왕자는 2 왕자를 향해 별거 아니라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호? 그건 또 처음 듣는 소식이군. 내 눈과 귀를 피해서 일을 거기까지 진행했는가?”

“예. 제니리스 후작이 직접 이곳에 참가해 말을 해준다 하더군요.”

“그렇군. 알았네.”

“그럼 회의가 시작될 때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저희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오늘 내보일 안건들을 점검하지요.”

“그렇게 하도록.”

2 왕자가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그곳에서 모습을 감추자 1 왕자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공작”

“예 왕자님.”

그의 부름에 1 왕자 파의 2인자 이밀 공작이 그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은밀히 움직일 자들이 있나?”

“준비된 살수들이 있습니다.”

“죽이게.”

“왕자님. 그건 악수가  겁니다. 제니리스 후작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살수들이 때 몰살을 당할 겁니다.”

“희생양으로 삼을 자는 없나? 무예는 좋지만, 집안이 한미하여 버리는 패로 좋은 자 말이네.”

“없습니다. 있다 하여도 그런 자를 내세워 후작을 암살한다손 쳐도 그것은 왕국 전체에 불이익입니다. 그녀를 배제하는 것은 돼지만 죽이는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정말 거대한 손해가 왕국을 강타할 겁니다.”

“후….”

“왕자님”

“어쩔 수 없는가….”

“2 왕자에게 운이 따라주었을 뿐입니다. 다음 계획도 차차 진행되어 가고 있으니 어느것 하나만 걸리는 순간 그들에게 단단한 올가미 줄을 걸 수 있습니다.”

“알았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뒷 처리는 어떻게 했지?”

“이미 후작에게 목이 날아간 남작은 비밀 유지를 위해 그 가족을 모조리 주살한 뒤 재산을 국고에 환원했고 2 왕자 파에 스파이로  있던 팔몬 자작은 다시 부르려 드렸습니다. 그에게는 큰 잘못이 없지요. 우리가 지시한 사항을 제대로 이행 한 것이니까요.”

“좀 부족하지 않은가?”

“이정도가 좋습니다. 더 심하면 다른 귀족들이 반발하게 됩니다.”

“반돌프는?”

“고민이 많을 겁니다. 이번에 1 왕자 님의 손을 잡지 않으면 아인 멸시 사상을 가진 자신의 뜻을 자신이 거스르게 되니까요. 중립을 유지하자니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겁니다. 에스타와 연계하고 있는 딸이 계속 가다가는 2 왕자와 손을 잡을 테니까요.”

“걱정할 거 없겠군.”

“그럼 가시죠. 저희쪽 인사들을 점검해야 합니다.”

“아. 아니야 그런 건 공작이 알아서 하라고. 내가 들어봐야 뭐 알아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있나?”

“아닙니다. 왕자님이 참여 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

“두 분 왕자님들도 함께 하시지요. 와서 형님이신 1왕자께 힘을 보태 드려야지요.”

“음….”

“그, 그러지요”

공작에게 반말하는 1 왕자와 다르게 3, 4 왕자는 공작에게 존대하고 있었다.
그야 1 왕자를 다음  왕으로 모시는 중인 공작이니 3, 4, 왕자가 함부로 그에게 반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왕국 회의가 시작되기 전 최종 점검의 시간, 그 시간 미레뉴가 탄 고급 마차를 함께 타고 왕도로 들어오던 밀크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눈앞에 보이는 왕도를 바라보았다.

“저 아름다운 왕도에서 추악한 싸움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니 아이러니해.”

“그런가. 뭐, 왕권 다툼을 위한 왕자들의 싸움은 과거에서부터도 왕왕 있었다고 하더군, 우리 아버님. 아니지 어머님도 그런 왕자들의 싸움에 자주 휘말려서 적잖이 화가 치민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하더군.”

“어머님?”

“전대 제니리스 후작,  내 어머님은 겉으로는 남자로 행동을 하셨거든. 후에 정식으로 여성임을 밝히긴 했지만, 하여튼 그것 때문에 사건 사고가 참 많았어. 우리 아버님. 아…. 그러니까 진짜 아버님 말씀이야. 그분과 연애를 할 때는 아무리 자유주의의 왕국에서도 말들이 많았지. 동성끼리 사귄다고 말이야. 후에 어머님의 배가 불러오는 바람에 어머님의 성별, 그리고 후작가의 비밀 등등 밝혀진 일들이 많지만, 머리가 아프니  이야기는 그만하자.”

“두 분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지?”

“어머님은 전쟁의 상처가 골수에 미치는 바람에 돌아가신  오래고 아버님은 어머님을 사랑한 나머지 그 혼을 기린다고 나에게 후작가를 물려준 다음 작은 신전을 짓고 그곳에서 어머님의 시신을 묻어 같이 생활하고 계셔. 건강은 하신데…. 뭐랄까 점점 혼이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다음에 같이 가서 아버님께  소개해야 할 텐데.”

“정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차가 왕도 정문에 도착했다. 신원 확인을 위해 경비병이 다가오고 있었다.

“실례하지요. 어디서 오신 어느 분이신…. 헉! 후작 각하!!!”

후작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함께 창을 땅에 턱! 하고 살짝 찍으며 완벽한 부동 자세에 들어가는 경비병을 보며 미레뉴는 밀크의 어깨에 기댄 자세 그대로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아. 그래, 그래 알았다. 쉬어. 우리 들어가도 되지?”

“예! 그, 그런데 같이 오신 분들은….”

미레뉴가 친근함을 보이며 어깨까지 빌리고 있어서 어안이벙벙한지 질문하는 목소리에 음 이탈까지 보이는 경비병.
그를 향해 미레뉴는 더 귀찮다는 음색으로 짧게 이야기했다.

“여긴 내 남편. 그리고 이 앞에 있는 사람은 우리 남편 아내이자 내 언니, 됐지?”

“예! 신원 확인됐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수고해라. 아 너 이름 뭐지?”

“백인 장 홀거입니다!!!”

“그래 홀거. 목소리 좋군. 그런데도 절차는 확실히 진행하는 것도 마음에 드는 군 앞으로도 열심히 해라. 천인 장.”

“예!”

마차의 창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후작가의 행렬.
자신이 후작을 보았다는 생각에 흥분해 있던 홀거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뭔가 이상함이 있어 생각에 잠겼다.

“잠깐…. 난 분명 백인 장이라 설명해 드렸는데?”

그때 들어가던 마차가 잠시 멈추었고 안에서 뛰어나온  멋들어진 갑옷의 장군이 그 마차 창문을 향해 거의 90도에 가까운 인사를 하며 송구한 듯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상태로 대화를 나누던 그 장군은 마차가 다시 출발하고 나서 2분이 지날 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있다가 입구 밖으로 나왔다.

“홀거! 홀거!!!”

“예 장군!”

“오늘부터  인장 직에 오른다. 후작 각하의 기대가 크니 앞으로도 열심히 임무에 임하도록.”

“헉!!!”

그날은 홀거에게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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