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137화 눈길을 끌다.
“나, 나오셨습니까?!”
밀크의 모습을 본 상단 행수가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상황이상황이라 밀크의 명령 없이 무력 충돌을 자제하고 있던 그였는데 때마침 밀크가 등장하자 이제 되었다는 생각에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은 밀크에게 향했고 거리에 포진하고 상단 인원들의 출근마저 방해하고 있던 무뢰한들의 시선도 밀크를 향하게 되었다.
“어이. 저쪽 좀 봐라.”
“음 뿔난 아인? 정보에 따르면 놈이 이 가게 주인이라고 했지?”
“하! 어제 멍청한 발마 패거리들이 여기서 좀 깨졌다지? 우리도 그놈들 꼴 안돼가려면 긴장 좀 하자고.”
“흥! 우린 발마 녀석들하고 다르다고.”
각양각색의 둔기를 들고 있는 그들, 날붙이를 사용하면 유혈 사태가 일어나고 최악의 경우 거리 치안대가 출동하기 때문에 용의주도하게 둔기류만 들고 나타난 그들이었다.
머리를 노리지 않고 팔이나 다리를 노려 불구로 만드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기를 죽여 버리는 일이 잦은 이들은 어제 밀크의 가게를 습격한 자들과 다른 곳에서 온 이들이었다. 발마와 함께 호시탐탐 이 거리로 진출을 노리고 있는 뒷골목 패거리 빅터파의 조무래기들이었다.
보라색의 머리끈으로 표식을 하고 있던 발마파와 다르게 빅터파는 노란색 머리끈을 표식으로 쓰고 있었다. 평소에는 치안대나 병사들의 눈을 피하고자 착용하지 않지만, 이러한 작업이 있을 때는 피아 식별을 빠르게 하려고 자주 착용하는 뒷골목 패거리들의 패션이었다.
“대족장님. 물러나 계십시오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담담한 목소리의 벨이 앞으로 나섰지만, 수가 수인지라 밀크는 걱정이 앞섰다. 어제와 다르게 몰려온 숫자가 스물이 넘어가고 모두 성인 장정들이다. 벨이 이기리란 것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지만, 눈먼 둔기에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혼자는 위험하니 상단 호위들과 같이 싸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전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제가 저들을 상대하는 동안 대 족장님의 안위를 위해 남겨두고 저들은 제가 혼자 상대하지요.”
“그렇다면야…. 하지만 내가 보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상단 호위들을 투입할 테니 그리 알아.”
“예!”
크게 대답을 한 그녀는 주먹을 말아 쥐며 스물이 넘는 장정들 틈으로 천천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놈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제의 발마 패거리와는 질적으로 조금 다른 느낌이었는데 우선 여자 혼자 다가오고 있음에도 놈들은 긴장한 듯 무기를 꼬나 쥐고 먼저 달려들거나 흥분해서 날뛰지 않았다.
“어제 그년이지?”
“그래. 발마 놈들 곤죽으로 만들어 버린 그 아인년이야.”
“휘유…. 가까이서 보니까 몸집이 엄청나잖아? 그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년한테 생각 없이 덤빈 건지.”
“시끄럽고! 다들 준비해. 사면에서감싸고 사인 일조로 덤빈다. 한 조가 쓰러지면 다른 조가 나서고 점점 갉아 먹어서 체력적으로 우위를 점해라. 최대한 급소를 방어하고 저년에게 심하게 당한 놈은 뒤로 물러나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달려들어!”
“알았다고!”
소위 행동대장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빅터 패거리의 행동대장이 둘이나 포진해 있었다.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는 이들이라 싸움에서 수가 많은 것만 믿고 힘으로 압살하는 것이 아니라 적에 따라 상대하는 법을 달리하는 방법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들이 있는 자들이다.
힘만 믿고 날뛰는 흔히 말하는 약소 패거리인 발마파와 다르게 빅터파는 기플파에 대항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패거리였고 움직일 수 있는 가용인력도 많았다. 이들 말고도 조금 멀리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제2파까지 준비되어 있으니 준비가 탄탄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인력이 한꺼번에 투입되면 소란스러워지게 될 테고 그렇다면 분명 치안대가 출동할 것이다. 그것까지 고려한 인력 투입이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싸움이 난항이 펼쳐지리라.
벨도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알아채고는 어쭙잖은 도발을 하기보다는 주변의 남자들을 주시하며 누가 먼저 공격해 들어올지 가늠하였다. 뒤를 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녀는 쏜살같이 주먹을 휘두르며 몸을 뒤로 날렸고 덕분에 놈들은 그녀를 감싸 안으려는 시도에 실패하고 말았다.
“제길…. 쉽게 당해주지 않는군.”
“작전을 바꾸자고. 후면까지 감싸는 건 도저히 무리고 측면까지만 펼쳐지자고.”
“그렇게 해. 다들 움직여! 삼 면을 삼 싼다! 후면은 버려!”
그러자 남자들은 작전을 바꾸어 후면을 포기하고 정면과 양쪽 측면까지만 넓게 펴지며 그녀를 서서히 좁혀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후면에 적이 없는 것에 부담이 덜해진 벨은 이쯤이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에 서서히 자세를 잡으며 놈들을 맞이할 준비에 들어갔다.
정말 최악의 순간이 아니면 무기를꺼내 들어 유혈 사태가 일어나는 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물론 둔기도 잘못 맞으면 치명상이 분명하지만, 날붙이보다는 목숨을 앗아갈 확률이 적기에 적들의 무기가 둔기라는 것도 용의주도 했다.
대부분 이 둔기로 위협을 가하거나 적의 방어를 무너트리는 것에 사용하고 실질적으로 적을 타격하는 것은 주먹이나 발차기였다. 둔기로 적을 타격할 경우는 정말 적의 반항이 거셀 경우에 한하거나 적들의 사업체를 습격하는 경우였다.
이런 대로변의 그것도 아침부터 둔기를 대 놓고 휘둘렀다간 분명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테니 이들도 둔기 사용은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다.
벨은 그것을 대충 예상하며 허리춤의 검을 빼 들지 않았다. 대신 다리와 팔에 감은 각반을 좀 더 단단히 조이며 혹시나 적들의 둔기에 당할 때를 대비했다.
이윽고 완전히 준비가 끝난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적들을 살폈다. 그리고는 이윽고 약하게 짜인 스크럼을 발견하여 그곳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막아!!!”
“물러서지 말고 막아내!!!”
비교적 약해 보이는 곳에 배치되어 있던 남자들은 온 힘을 다하여 벨의 공격에 대항했지만, 조금 역부족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팔로 그리고 다리로 벨의 공격을 막아낸 그들은 힘에 부쳐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러나 그 백업이 순식간에 이루어졌으니 벨을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둘러 오는 적들의 행동에 벨은 확실하게 적들은 기절시키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야 했다.
한 바퀴 공중에서 회전하며 뒤로 멀리 물러난 벨은 이번엔 공격했던 곳의 반대쪽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백업이들어가서 어수선해진 곳은 교대가 이루어지는 도중이라 그녀의 행동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고 결과는 그곳도 벨의 공격으로 남자들이 수수깡처럼 쓰러지게 되었다.
“음…. 장난이 아니군.”
“제길…. 두목한테 한 소리 듣겠어.”
벨과 남자들의싸움을 보고 있던 두 행동 대장은 부하들을 조금씩 뒤로 물리며 벨의 맹공에서 서서히 벗어나려 했다.
“어딜!”
그 움직임을 포착한 벨이 바로튀어 올라 적들의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놀란 행동 대장은 스스로 중앙으로 들어온 그녀의 어리석은 선택에 조소를 지으며 부하들에게 그녀를 둘러싸라고 하려 했다.
그러나 얼굴 앞에 확대되어 가는 주먹을 보고는 의아함을 품게 되었고 행동 대장 둘 중 한 사람은 그렇게 주먹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앗!!!”
행동 대장 한 명이 당하자 그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전선 한쪽이 와르르 무너졌다. 머리가 있으면 유동적으로 전투를 이어 나갈 수 있으나 이 머리가 없으니 그만큼 빠르게 무너진 것이다. 뒷골목 패싸움 꾼들의 한계였다.
“뭐해! 감싸라고!”
“대, 대장이….”
“아니 말을 들어!!! 감…. 헉!”
자신들을 이끌던 대장이 아닌 다른행동 대장의 명령을 받으며 우물쭈물하는 부하들의 모습에 답답하지 다시 소리를 높이려던 다른 행동 대장은 다로 눈앞까지 다가와 씩 미소 짓고 있는 벨을보았고 다음 순간 그도 턱이 걷어차여서 공중에 떠올랐다.
두 명의 머리가 처리되자 다음은 일사천리로 정리가 되었다. 열심히 날뛰며 싸우는 벨의 활약에 남자들을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이윽고 서 있는 것은 쓰러진 남자들 사이에서 당당한 모습의 벨 혼자였다.
짝짝짝!
어디선가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밀크가 한 것이 아니었다. 손뼉을 치는 주인공은 사람들 틈에 숨어 있다가 소란스러워지는 사람들 틈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변경 기사단 정복을 입고 있는 단정한 차림의 여성이었다.
“멋지군. 아주 멋져. 내 이 변경에서 오랜 시간 있었는데 이렇게 무예가 뛰어난 아인은 또 처음이군. 실례가 안 된다면 내 인사를 받아 주면 고맙겠어.”
손을 내밀어 오는 그녀의 행동에 벨은 그녀를 경계하였지만, 밀크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상황을 정리했다.
“호의를가지신 분이니 너무 경계하지 말고 인사를 받아들여.”
“네. 밀크님.”
벨이 그녀의 손을 마주 붙잡아 주자 그녀 또한 기쁜 얼굴이 되었다. 그때 그녀의 뒤로 누군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각하. 저들의 처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어볼 필요도없지. 오랜만에 시찰을 나왔는데 내 눈에 소란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니 다들 끌고 가서 뒤를 캐내라. 요즘 들어 거리에 조직적인 움직임들이 이리 많으니 상인들이 어디 안심을 할 수 있겠느냐?”
“예 각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여성의 존재. 입고 있는 기사 정복도 그렇고 사자의 갈기처럼 야성적으로 자라 황금으로 빛나는 머리카락과 그리고 강직해 보이는 적안의 눈동자, 희고 백옥 같은피부와는 다르게 잘 단련된 몸이 기사 정복 밖으로 윤곽이 드러날 정도의 무인이었다.
허리춤에는 레이피어 하나를 차고 있었는데 흘러나오는 분위기만 봐서도 예사 실력이 아닌 듯 밀크 역시 긴장을 할 정도로 기운이 강한 여성이었다.
아닐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강한 기운을 품은 여성이 어디 둘이나 있을까? 적어도 이 후작령에 이만한 기운을 가진 여성은 그녀 하나일 터였다.
밀크는 고개를 짧게 숙였다. 공손하지 못한 행위였으나 밀크의 위치가 있으니 이 정도의 행동도 충분히 그녀에게 예의를 차린 것이다.
“밀크라고 합니다. 제니리스 후작. 이곳 에스타 상단을 책임지고 있으며 좀 더 크게는 첼슨 왕국 한 편에 새로이 건설 중인 아인 연합의 대 족장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호!”
그녀 역시 밀크의 존재를 범상치 않게 보고 있었는데 먼저 소개를 해오는 그의 정체를 듣자 바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크게 두드러지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담담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많이 변한 걸 봐선 그녀로서 가장 크게 반응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에스타 상단이 이곳에 진출한 것은 내 듣고 있었지만, 이렇게 귀한 손님이 방문했을 줄은 몰랐군. 그렇다면 이 에스타 상단 지부뿐 아니라 에스타의 새로운 숨은 주인이 바로 당신이었나?”
“그렇습니다. 후작. 아무래도 변경에 진출하는 상황이라 결정 권한이 가장 큰 내가 직접 오게 되었지요. 아무쪼록 이후 잘 부탁드리지요. 그리고 내 부하를 좋게 봐주어서 고맙군요.”
“아아 그건 따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 이 정도로 강한 여인은 나도 오랜만에 보거든. 시간이 좀 괜찮다면 나중에 자리나같이하는 게 어떤가? 호승심이 일어나서 몸 참겠는데.”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사자의 눈빛을 하며 벨을 바라보고 있는 제니리스 후작, 팔짱을 끼고 있는 그녀의 오른손이 계속 팔목을 건드리고 있었다. 주체할 수없는 투기 때문에 손이 멋대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러던 그녀는 그대로 시선을 이동해 밀크를 바라보았다. 먹인 감을 노리는 사자의 눈빛은 그대로였다.
“이곳에 아무 이유 없이 진출할 리가 없지? 특히나 에스타 같은 대 상단이 무기나 팔자고 이런 촌구석에 온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이 일도 설명해야 할 거야. 그러니 내일 아침 후작관저로 오게. 기다리고 있지.”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바로 가지요. 후작.”
“후후후. 배포가 참 마음에 드는군. 적어도 남자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럼 기대하고 있겠다. 밀크 대 족장.”
제니리스 후작의 말이 끝나자 포박당한 빅터 패거리 남자들이 줄줄이 엮여서 병사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 후위를 따라 제니리스 후작도 말에 올라서 이동하였다.
“뒷골목 깡패들이 도움이 되었군.”
전화위복이라고 했다. 그들 거리의 손님들이 뜸해져서 오늘 장사는 공쳤지만, 그 덕분에 만나려고 노력을 하고 있던 제니리스 후작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녀석들이 밀크의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준비할까?”
“네?”
“후작은 나뿐 아니라 벨 너도 같이 오라고 했어. 귀족가에 가는데 드레스까지는 아니어도 점잖은 옷은 입어야지.”
“그, 그런!”
“자자 따라와 상단에 재단사들이 참 일을 잘한단 말이지. 걱정마 멋들어진 기사 정복으로 입혀 줄 테니까”
“미, 밀크님!!!”
본디 편한 복장으로 생활을 하던 홀스타우로스 였기에 지금 입고있는 경 갑옷도 탐탁지 않은데 저 쫀쫀해 보이는 기사 정복을 입어야 한다니 벌써 눈앞에 고생이 훤한 벨의 심정을 누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