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132화, 잠시 귀환.
“팔몬 자작이라…. 이 자는 카프리온 공작을 따르는 자 중에 그나마 쓸모가 있는 자로군요. 뭐 다들 도긴개긴이지만, 그중에서 좀 나은 수준이란 뜻이지요.”
리그릿 후작은 팔몬 자작이라는 자에 대해 이렇게 신랄하게 평가하며 문서에 계속 집중했다. 이미 먼저 내용을 읽은 비올라와 밀크는 그가 문서를 모두 읽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이윽고 밀크가 찻잔의 차를 모두 마셔서 로크웰이 그 차를 다시 따라 주었을 즈음 그가 문서에서 눈을 뗐다.
“흥미로운 내용이군요.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너무도 낮은 아주 도박성이 높은 내용입니다. 정말로 이 팔몬 자작이 이 내용을 회의 중에 꺼냈습니까?”
“그럼요. 저희 아이들은 정보 기억 능력이 아주 탁월해요. 그것이 남자를 즐겁게 해주는 성교 중일지라도 말이지요. 후훗~ 사실 우리 아이들이 진짜로 느끼게 할 수 있는 남자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정신은 또렷하게 차리고 남자에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모조리 뽑아내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특기니까요.”
“알겠습니다. 시험하는 듯한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리지요. 그렇다면 이 내용을 사실이라 판단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카프리온 공작은 왕국 변경을 지키는 제리니스 후작가를 저희 2 왕자 측으로 끌어들일 생각인 듯한데…. 너무도 위험한 계획이군요.”
리그릿 후작의 말에 비올라가 그에게 질문했다.
“제니리스 후작은 왕권 다툼에 끼어들지 않고 중립을 표방한 분이 아니었던가요? 1 왕자 측 인사를 빼 오는 것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큰 작전이라 생각이 되는데요?”
“뭐…. 겉으로 보면 그렇긴 하지만, 제니리스 후작은 지금의 국왕폐하께 충성하는 인물입니다. 2 왕자님이 왕권 다툼에서 승리하시어 정통을 이어 국왕의 자리를 물려받게 되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을 사람이지요. 거기다 중립을 표방하는 많은 귀족의 대표 격 인물이기에 잘 되면 모를까 잘못되면 저희는 카프리온 공작 때문에 큰 공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정기적인 왕실 회의에서 제니리스 후작이 카프리온 공작의 회유 건을 터트린다면 정치적으로 큰 망신이 될 뿐만 아니라 1 왕자 측에게 빌미 제공이 되겠지요. 제니리스 후작을 따르는 중립 귀족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것이 저희 왕자님과 1 왕자의 약속이었는데 그것을 어기는 것과 동시에 그 대표 격인 사람을 건드린 것이 되니까요.”
“카프리온 그 돼지는 스스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건가? 애초에 이런 의견을 제시한 그 팔몬 자작이라는 자도 참 의아하군….”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지낭이라는 별명이 있는 그 돼지는 원체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가만히 공작이라는 자리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거 같으니 참 어이가 없는 양반이었다.
밀크의 말이 끝나자 비올라는 조용히 하나의 문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내용이 내용인지라 조심스러운 물건이었다.
“그 팔몬 자작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입니다만…. 확인이 더 필요하긴 해요. 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일이 없으니 한 번 확인해 보시죠.”
밀크는 이미 확인이 끝났고 다시 리그릿 후작은 그 문서를 들고 내용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리 긴 문장은 아니기에 확인하는 시간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짧은 내용이긴 하지만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은 아주 충격적이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아주 가능성이 없진 않군요. 이것은 카프리온 공작의 아둔함을 이용하여 우리 2 왕자 측을 공격하려는 1 왕자 측의 작전입니다.”
“아직 더 확인은 해야 하겠지만…. 나 역시 그렇게 느껴져.”
문서의 내용, 그것은 팔몬 자작의 수중으로 알 수 없는 금액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보고였다.
꼬리를 잡기는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그의 주변 인사들을 공략해 들어간 비올라의 수완으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팔몬 자작이 왕국에서 받는 녹봉과 2 왕자 측에서 일하면서 받는 지원금을 넘어서는 재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차를 시작으로 그 부인되는 사람이 파티를 여러 번 열었던 정황도 포착되었고 요즘 부쩍 팔몬 자작이 자신의 친구들을 고급 술집으로 데려가 대접한 것도 확인했다.
이렇게 돈을 헤프게 사용하고 있는데도 그의 자금이 마르지 않고 있으니 그것이 참 이상했다. 즉 어디선가 다른 루트로 돈을 원조받고 있다는 뜻이 되었고 그것이 1 왕자 측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는 내용의 문서
물론 아직 그가 1 왕자 측 인물과 같이하는 것도, 그리고 돈을 원조받았다는 물증은 포착하지 못하였지만, 이 정도면 심증은 확실했다.
그리고 리그릿 후작은 머릿속으로 경종이 울려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카프리온 공작을 움직여 2 왕자 측을 무너트리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제아무리 도움이 1도 되지 않는 돼지 공작이라 할지라도 그의 위치는 한 나라의 공작이다. 정치적으로 큰 힘이 되는 자리이며 공격을 당하면 가장 뼈아프게 맞을 수도 있는 자리였다.
리그릿 후작이 2 왕자의 오른팔 이자면 카프리온 공작은 왼팔이었다. 쓸모없을지라도 귀족 회의에서 남작의 발언권이 1이라면 자작은 10 백작이 25에 후작이 50 그리고 왕자가 75에 공작이 100이었다. 왕은 특별한 위치이니 이런 발언권을 따로 명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 왕자와 2 왕자의 싸움으로 형국이 좁혀진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공작이 있다. 없다였다. 다른 3 왕자나 4 왕자는 후작이나 백작이 따를지언정 바로 이 공작이라는 존재가 없어서 결국 두 왕자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즉 무능한 카프리온 공작도 발언권이 아주 강력한 자리이니 여기서 만약 흠을 잡혀 귀족 회의에서 축출이라도 당하면 당장 2 왕자 측의 피해가 너무 컸다.
만약 여기서 팔몬이 1 왕자 측 인물이라고 가정하여 이야기를 진행해 보면 그가 카프리온 공작을 움직여 제니리스 후작을 건드릴 이유가 가장 타당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구나 다 무모한 짓임을 알고 있는 이러한 작전을 그에게 고해 올릴 리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카프리온 공작이 아무리 멍청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작전을 허락할 리가 없지 않나요?”
“팔몬 자작이 요즘 부쩍이나 카프리온 공작의 신임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별문제 없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그가 지속해서 카프리온에게 이 작전을 고한다면 공적에 목이 마른 공작이 행동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후…. 이건 일단 2 왕자 전하께 고하여 결정을 기다려 봐야겠군요.”
“음…. 그렇다면 다음에 다시 시간을 정해서 왕자님까지 함께 뵙도록 할까?”
“그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럼 전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리그릿 후작이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바이올렛의 뒷문을 통해 은밀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밀크는 두 문서를 들여다보면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확실히 팔몬이라는 저자에게서 구린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심증만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털어 봐야 할 인물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우리가 먼저 털어볼까?”
“만약 그렇게 했다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2 왕자와 관계가 조금 틀어질 거예요. 괜히 우리가 먼저 움직이면 긁어 부스럼이 나올 상황이에요.”
“그렇겠지….”
“조금 기다려 보시죠. 왕자가 결정을 내린다면 저희가 움직일 명분이 생기니까요.”
“그렇게 하지. 아! 그럼 난 잠시 마을에 다녀올게. 가서 처리할 일이 몇 가지 있어서 말이야.”
“그럼 왕자님께 만나는 날짜를 5일 후 정도로 말씀드릴게요.”
“그 정도면 충분해.”
밀크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에스타 상단의 교통편을 타고 부족의 마을로 이동했다. 부족의 마을을 책임지고 있는 밀리의 연락에 있었던 새로이 합류한 종족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임시로 마을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이참에 마을에 가서 다 처리를 한 뒤 다시 왕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왕도에서의 일이 좀 길어지고 있어서 참 걱정이네. 내가 없어도 될 정도라면 상관없지만, 퍼슨이나 비올라의 이야기를 좀 더 가까이서 들어야 그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테니 마냥 떠나 있을 수가 없다 이 말이지.”
그러자 옆에서 밀크의 말을 듣고 있던 벨이 그에게 말했다.
“마을의 일은 이제 대족장님이 멀리서 지시만 하는 거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가신 김에 확실히 밀리님께 힘을 실어 드리고 오시죠?”
“그럴까? 그녀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생각하긴 해 뷰렌이나 다른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마차를 통해 빠르게 마을로 돌아온 밀크, 그는 족장의 집으로 이동하여 그의 앞에 불려와 무릎을 꿇고 있는 세 명의 남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산 드워프들을 이끌고 합류한 드워프 족의 족장인 벌컨이라는 남자 드워프였다, 키가 작은 난쟁이 종족으로만 생각했지만, 드워프들의 키는 그리 작지 않았다. 옆으로 조금 떡 벌어진 체격이라 작아 보이는 느낌인 거지 오히려 키는 밀크와 거의 대등했다.
온몸이 강철같은 근육질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턱과 입이 전부 수염으로 뒤덮여 있는 종족으로 꽤 멋들어지게 수염을 관리했는지 무작정 자란 더러운 수염은 아니었다.
“벌컨이 인사드립니다. 대족장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군요. 저희는 산에서 광석을 캐고 살던 아주 순한 종족입니다. 저 간악한 신성 왕국이 저희를 공격해 터전을 짓밟아 놓아 이렇게 쫓겨 왔습니다. 여기 있는 두 종족 모두 저희와 같은 터전을 공유하던 이들이오니 부디 가엽게 여기시어 저희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벌컨의 목소리에서는 힘이 없었다. 종족의 수가 약 50명이라는 점을 들으니 아마 신성 왕국에 공격으로 많이 죽어 나간 모양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와일드 엘프의 족장인 칼리그란 남성 와일드 엘프가 인사를 올렸다.
“와일드 엘프를 이끌고 온 칼리그입니다. 이렇게 뵈어 영광입니다. 대족장님. 이하 저희 역시 신성 왕국의 그 개자식들에게 쫓겨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연이 닿아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저희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전투라면 저흰 이골이 나 있습니다. 다만 저희가 반마족이다 보니 신성 왕국에는 역시 어렵더군요….”
와일드 엘프의 조상은 엘프와 오크다. 이 중에 오크가 반마족이라 그들 역시 반마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칼리그의 말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늑대 같은 귀와 꼬리를 가진 코볼트 여성 에실이 인사를 올렸다.
“여, 영광입니다. 전 에실입니다! 대족장님의 존안을 뵈어 너무도 영광, 영광입니다! 저희 역시…. 마을에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대족장님. 전투 능력은 별 볼 일 없지만, 탐색과 물건 찾기 그리고 다이어 울프들을 조련하는 것은 저희 특기예요!”
“다이어 울프?”
“예! 저희와 통하는 점이 많아서 조련해서 저희 아군으로 만들 수 있어요. 물론 탑승도 가능할 정도로 말을 잘 듣게 할 수 있답니다!”
다이어 울프, 전날 밀크가 위도레빗들의 마을로 가는 길 중간에 습격해 와서 애를 먹인 마수들이다.
본디 다이어 울프의 크기는 잘 큰 황소와 비슷하다 그렇다 보니 코볼트들은 조련한 다이어 울프를 타고 다니며 자신들의 전투력이 낮은 점을 보완하곤 했다.
코볼트들의 속도가 느리진 않아도 전속력으로 달리는 다이어 울프와 비교하면 역시 다이어 울프 쪽이 더 빠르기도 하고 전투력에서는 상대해 봤던 만큼 집단전과 개인전에서 모두 괜찮은 녀석들이기에 코볼트들의 생명줄 연장에 큰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다.
에실의 말이 끝나자 벌컨과 칼리그가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저희는 이 코볼트 분들의 도움으로 살아난 거지요. 그 많은 다이어 울프들이 목숨을 걸고 신성 왕국을 막아 주었기에 도망칠 수 있었으니까요….”
“예 이분들의 능력은 저 역시 인정합니다. 정말…. 다이어 울프들이 아니었으면 저흰 모두 죽었을 겁니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아직 신성 왕국의 마수는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자기들 주변의 아인들을 죽여 가며 점점 세력을 펼쳐 나오는 중이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며 거기다 같은 아인이니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밀크는 한 명씩 손을 잡아 주며 고생했을 이들을 위로해 준 뒤 마을의 정식 일원으로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밀리를 불러 이들이 기거할 공간을 배정함과 동시에 그녀를 데리고 루피카를 찾아갔다.
제사장 루피카의 공증을 얻어 밀크가 없을 때 밀리가 이 마을의 최종 결정자이며 타 종족 아인을 받아들이거나 크고 작은 마을의 일을 밀크에게 선조치 후보고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