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4화 〉124화, 왕국의 정세 (124/177)



〈 124화 〉124화, 왕국의 정세

자줏빛 바이올렛에서의 일이 있고 나서부터 수도에서 밀크가 생활하는 곳은 에스타 상단의 지점에서 자줏빛 바이올렛으로 변경되었다. 비올라가 퍼슨에게 밀크를 성심성의껏 모시겠다고 하니 그 역시 흔쾌히 따른 것이다.

그렇게 2일간 그곳에 머물며 그녀가  첼슨 왕국에 얼마나 깊숙한 곳의 사정까지 알고 있는지, 그리고 이 집창촌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2 왕자와 함께하시려고 하는 대족장님의 생각에는  역시 찬성입니다. 그는 일단 자신과 한배를 탄 대상을 여간해서는 먼저 배신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다만 그를 따르는 왕국의 대신들, 그들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할 거예요. 알아본 바에 의하면 좋은 생각만 가지고 왕자를 따르는 무리는 몇 없으니까요.”

“뭔가 권력이나 기타 이익을 약속받았다는 말이지?”

“그래요. 상단의 이권, 정략결혼, 그리고 이후에 권력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협조하는 형태지요. 물론 그렇다고 아예 의리가 없거나 위험한 인물들인 것은 아니지만, 특정 인물의 경우에는 아인 멸시 사상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에스타 상단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인물들도 몇 확인되었어요.”

“2 왕자가 알아서 처리해 주지 않을까? 지금까지 우릴 견제한 것은 1 왕자 파인지 2 왕자 파인지 분명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같은데? 후원금도 주고 2왕자 파를 지지한다고 했으니 아마 다들 생각을 달리 하겠지.”

“상단을 운영하는 자들의 경우잠시 에스타 상단이 1 왕자 파의 공격으로 잠적했을 때 적잖이 많은 이익을 얻은 자들입니다. 에스타 상단이 다시 돌아옴에 따라 그들이 얻고 있던 막대한 이득을 다시 에스타에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노심초사하고 있으니까요. 2 왕자가 우리를 아군이라 명시한다 해도 상단의 견제는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 최악의 경우 그들이 상단을 움직여 단합을 통해 에스타를 몰아내려는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상단끼리의 싸움이니 주인인 귀족은 나랏일에 바빠 관리가 소홀했다고 둘러대면 끝이니 말이죠.”

“알만한 내용이네. 구정물 싸움을 일으키고 자신들을 발을 쏙 빼두겠다는 말이잖아. 그래서 에스타가 쫓겨나면 그것으로 최고의 결과고 쫓겨나지 않아도 상단끼리의 싸움이었으니 원만하게 해결하자는 걸로 결론지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귀족들이 생각할만한 싸움법이죠. 2 왕자가 아무리 자기들 사람들 잘 통솔한다 하여도 그런 사사로운 일까지는 어떻게 도움을 주기 힘들 겁니다. 그에 따라 에스타 상단이 다른 상단의 단합 공격이나 귀족 알력 싸움에서 자신의 몸을 지킬 방도가 필요하니.  구상을 해 두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 일은 퍼슨과 상의해 보도록 하지.”

3일이라는 시간 동안 바이올렛에 있으면서 그녀가 해주는 성대한 대접을 받았다. 그렇다고 살과 뼈가 녹아내리도록 놀기만  것은 아니고 이렇게 그녀를 통해 첼슨 왕국의 사정을 낱낱이 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집창촌은 첼슨 왕국의 어두운 부분에 속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둠도 잘만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금광이라고 해도 될 만큼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할 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정보라는 무형의 이득이었다.

이곳의 책임자인 비올라는 집창촌 내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할  있는 자줏빛 바이올렛을 경영하고 있다. 이곳은 그저 단순한 음식점이, 창녀의 집이, 여관이 아니었다. 창녀로 위장한 암살자들이, 여관 종업원으로 위장한 정보수집자들이, 요리사로 위장한 실력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들은 모두 비올라가 모은 이들로 이 첼슨 왕국의 집창촌에서 근근이 먹고 살아가는 자들을 불러와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뒷바라지를 해 주면서 키워낸 자들이었다. 그야말로 그녀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으뜸이라   있다.

그런 이들이 지금은 비올라가 따르기로 맹세한 밀크를 위해 일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따르기로 했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고 그녀를 믿고 있기에 밀크 역시 믿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르륵

 모습을 드러낸 비올라의 열 개의 꼬리가 부드럽게 밀크의 몸을 휘감았다. 마법으로 바꾸어 놓았던 인간의 귀도 여우의 길고 날렵한 귀로 쫑긋 솟아올라 있었다. 자줏빛의 머리카락이나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는 그대로였지만, 아인의 모습을 취하면서  농염한 매력은 더 높아져 있었다.

밀크의 허벅지를 베고 누우며 그가 쓰다듬어 주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는 비올라의 귀가 쫑긋거리며 움직였다. 그러자 비올라와 밀크의 방이 되어버린 고급스러운 숙소의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마담 지명이 있었습니다. 손님께서 굳이 마담을 만나야겠다고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남자 종업원, 정확히는 비올라를 따르는 집사 복장을  가면의 남자였다. 두 사람의 사이가 보통은 아니었는지 밀크에게 가장 먼저 소개를 한 남자이기도 했으며 그에게만은 비올라보다 밀크를 우선으로 섬기라고 따로 이야기했을 정도로 믿고 있는 남자라고 이야기했다.

이름은 로크웰, 10대 중반의 남자로 집창촌에서 누군지 모를 어머니에게 태어나 버려진 비운의 사내였다. 갓난아기였을 시절부터 비올라가 돌봐왔으며 그녀가 받아들인 여자들이 어머니 역을 자처하며 업어 키운 남자로 자신의 상황을빨리 받아들여 철이 들었다.

다만 유아 시절 더운여름에 죽기 직전의 상황에 겨우 비올라에게 도움을 받아 구조되어 목숨은 부지했지만, 그때의 충격으로 성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외모를 보아도 어딘지 모르게 왜소해 보이고 여성적으로 생겼으며 얼굴의 선도 날카롭고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얼굴과는 다르게 자신을 받아준 이 창관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노력을 통하여 온몸에 암살 기술을 익힌 상급의 암살자가 되어 활동 중이며 의뢰가 없을 때는 이렇게 창관에 녹아들어 종업원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비록 낳아준 어미는 아니지만, 이곳 창관에 있는 비올라를 비롯한 여자들은 모두 그의 어미나 다름없었다. 밀크가 와서 이곳에 눌러앉아 있었지만, 비올라를 비롯한 여자들에게 함부로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비올라가 그를 믿고 따르니  역시 자연스럽게 밀크에게는 살가운 태도를 보였다.

“후- 어디 작자니?”

“마이올 자작입니다. 제가 손대기 껄끄러워 그냥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잘했어. 마이올 자작이라면 내가 좀 얼굴을 내비쳐야지.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대족장님을  보필해 주겠니?”

“네 마담.”

“그럼 잠시 다녀올 테니 이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계세요.”

“1 왕자 쪽 사람인가?”

“아니요. 그는 2 왕자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냥 돌려보내는 게 어때? 2 왕자에겐 내가 잘 이야기해줄 테니까.”

“우후후훗 그러실 거 없습니다. 그냥 잠시 대화만 몇마다 하고 오면 될 일이니까요.”

“대화만 나누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너만큼은 내 여자이니 이제부터는 남자를 상대하는 일은 접었으면 하는데”

“어, 어머…. 대족장님도 참…. 우후후훗 정말 대화만 나누고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앞으로 대족장님 말고는 절대 다른 남자를 안지 않을 거예요.”

“…….”

비올라는 밀크의 말에 기분이 좋은지 웃으면서 문을 열었고  사람의 대화 사이에 낀 로크웰은 볼을 붉히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비올라는 밀크의 입에 입을 맞추고 로크웰에게도 짧게 볼에 키스해준 뒤 밖으로 나갔다.

“마이올 자작은 누구야?”

밀크의 물음에 로크웰은 고개를 살짝 수그리며 그에게 전했다.

“2 왕자 파 귀족으로 마이올 상단을 운영하는 자입니다. 자금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귀족으로서의 위명은 대단합니다.  전대의 가문의 주인인 마이올 남작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남작에서 자작으로 승격한 인물로 지금 가문의 주인인 마이올 자작은 그런 할아버지의 영광을 물려받은 자손입니다.”

“전형적인 선대의 권세만 믿고 날뛰는 자인가?”

“예, 현 마이올 자작의 성격은 유난히 흥분을 잘 하고여자를 밝히기로 유명합니다. 다만 마이올 자작가에서 물려받은 무인으로서의 피가 있어 검술에 능한 자이죠. 상단의 일은 고문으로만 있고 상단주로 고용한 자가 대부분 운영을 합니다. 마이올 자작이 상단에  관심이 없으니 상단주가 조용히 뒤로 돈을 챙기고 있어 이익은 소소한 편이지요.”

“뭐 무가의 귀족들이 거의 그렇지 뭐,  그런 사람 찾는 것이 더 손에 꼽을 거야…. 알려줘서 고마워. 비올라만큼이나 너도 정보가 풍부하구나.”

“과, 과찬이십니다…. 의부님.”

비올라가 모시는 상황이기에 그는 밀크를 칭하는 말을 의부로 정리했다. 대족장이라 불러도 무방하겠지만, 비올라가 그를 특히나 잘 따르라고 하여  더 가까운 느낌이 들도록 그를 아비로 여기려 한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별로 차이도 나지 않는 남자에게 아버지 소리 듣는 것도  이상한 기분이 드는지라 밀크는 손사래를 치면서 바로 그에게 이야기했다.

“어휴…. 의부님 말고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그냥 편하게 형, 아니면 형님하고 불러, 난 그게  좋으니까.”

“그, 그럴 수는…. 마담께서 절대 무례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허락한  무례가 아니지. 그러니까 어서 형이라고 불러.”

“……. 혀, 형……. 님”

“훨씬 낫다.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도록 해.”

“네….”

로크웰은 밀크에게 형이라고 한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이렇게만 보고 있으면  아이가 암살자라고 전혀 생각지 못할법하지만, 의뢰를 받으면 그 대상이 누구라도 잔혹하게 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 또 한  간직한 로크웰이었다.

로크웰의 반응을 웃으면서 받아준 밀크, 그러면서 조금 시간이 지나니 비올라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옷매무새가 많이 헝클어져 있었고 입술에  바른 화장품이 다른 것과 섞인 모습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은  그래?”

“후- 말로 안 돌아가서 조금 시간이 걸리고 말았네요. 큰 문제는 없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친 곳은 없지?”

“전혀요. 그 여자가 성격이 괄괄하고 흥분을 잘 하는 편이지만, 여자를 때리거나 학대하는 편은 아니라서요. 아니 오히려 여자를 너무 잘 알아서 탈이지만요.”

“여, 자?”

 거기서 여자가 나오냐는 듯한 밀크의 표정에 비올라는 자기가 설명이 부족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로크웰은 밀크를 바라보면서 자기가 여자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현 마이올 자작가의 주인이자 마이올 상단을 운영하는 클레어 마이올은 여자입니다. 2 왕자 파의 무력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싸움에 나서면 물러서지 않는 독종이지요. 그렇기에 성격도 괄괄하고 잘 흥분합니다. 마이올 자작가에 무남독녀라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무던히도 시달리면서 자란 탓에 그런 성격이 되었지요. 그리고 남자가 아닌 여자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 아비인 전대 마이올 자작의 훈육 덕분입니다. 아비 때문에 남자를 극도로 싫어하는 엇나간 어른으로 크게 되었지요. 참고로 전대 마이올 자작은 2 왕자의 몸을 지키다가 암살자의 검에 대신 죽었고 지금의 클레어가 자작위를 물려받은 겁니다.”

“흠…. 그렇다면 여자랑 한바탕 뒹굴고 온 거야?”

“뭐…. 굳이 설명하자면 그렇게  게겠지만…. 흠흠 그저 술 몇  따라주고 입술 몇  맞춰주기만 했어요. 어휴…. 워낙 이미 취해 있어서  정도만 해도 반쯤 몽롱해진 상태여서 그냥 돌아갔지만요.”

참….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는 밀크였다.

“뭐, 마냥 놀아주고 온 것은 아니에요. 이번에 클레어 자작이 술을 질펀하게 마신 이유가 따로 있더군요. 2 왕자 파의 두뇌 역할을 하는 카프리온 공작이 클레어 자작을 이용해 1 왕자 파의 무력을 담당하는  귀족과의 정략결혼을 통하여 자신들의 일원으로 만들려는 계략을 세웠다고 해요. 2 왕자 모르게 말이죠.”

“또 복잡한 이야기가 나오겠군. 그래서 2 왕자 모르게 진행되는 그 작전에 클레어 자작은 반대했겠지만. 대국적으로 상황을 보라는 말로 일축했고 뭐 그런 거 아닌가?”

“정확해요. 밀크님. 카프리온 공작이 이번에 2 왕자 파에서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좀 강경한 술수를 부리고 있는 거예요. 사실 지낭이라고 이야기가 많은 그의 작전 대부분이  효과를 보지 못하였고 실책만 범하여서 2 왕자 파가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던 차에 그것을 구원해준 것이 바로 밀크님이예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다급해진 카프리온 공작은 이번 한 수로 그것을 역전 시키고 1 왕자 파와 2 왕자 파의 대립 구도를 완전히 승기로잡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겁니다.”

카프리온 공작이 밀크를 알진 못하지만 에스타 상단의 새로운 주인이 2 왕자를 후원한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새로이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형국이라 카프리온 공작이 다급해진 것이다.

대충 이야기를 이해한 밀크는 다시 비올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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