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121화, 2왕자와 연합
2 왕자 톨메오, 좋게 말하자면 사람이 호탕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숨기는 것이 없으며 살가운 성격이라 친해지기에 전혀 무리가 없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그에 관하여 나쁘게 말하자면 너무 사람을 잘 믿는 성격이라 권모술수에 능한 주변 인물이 없으면 자칫 그 성격이 발목을 잡을 상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랬다. 톨메오가 밀크를 접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이 바이올렛을 통해 몇 가지 정보를 조사하긴 하였지만, 그마저도 철저하게 밀크의 신분을 숨겨온 에스타 상단의 노력으로 인해 많은 정보는 없었다.
대뜸 눈앞에 밀크에게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톨메오의 행동은 그리 탐탁 다고 할 수 없었다. 주의력이 너무 부족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행동에 따른 결과가 기대한 것보다 높은 것은 그의 운이랄까? 아니면 사람이 호탕하고 친해지기 쉬운 성격이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것일까. 대뜸 도와달라고 말하는 톨메오의 요청이 그리 나쁘게만 들리지 않는 밀크였다.
남들이 들으면 거지 근성이라고 한 소리 듣기 딱 좋아 보이는 그의 행동 그러나 그에게서는 전혀 비굴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도와줄 동료를 찾았다는 확신에 찬 표정과 진지한 얼굴이 그런 기분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다짜고짜 도와달라고 하시니 좀 당황스럽군요. 저를 만나보시는 건 처음이신데, 거기에다 첼슨 왕국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자국 영토를 마음대로 탈취한 천한 아인이 아닙니까? 그런 저에게 도와달라고 하시다니 그 말씀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네요.”
뼈가 있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밀크의 말을 들은 톨메오는 싱긋 미소를 지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주변을 감싸는가 싶더니 바이올렛이 딸각 소리를 내며 찻잔을 내려놓았고 그때 톨메오의 말이 이어졌다.
“첼슨 왕국이 성국 헤베나의 영향을 받아 아인 멸시 사상이 지나치게 많이 분포되어 있긴 하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내 주변 인물 중에는 그런 사상에 몸을 담은 자들이 거의 없다네. 인간보다 우월한 점이 많은 아인들이네. 그런 아인들을 멸시하는 것은 장차 이 왕국에 하등 쓸모없는 사상이야. 만약 내가 다음 대 왕위를 물려받는다면 이 쓸데없는 사상을 왕국에서 싹 몰아내고 성국과 국교를 단절토록 하지. 필요하다면 같이 성국에 맞서 싸울 의향도 있다네. 어떤가? 이 정도면 날 도와줄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나쁜 조건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왕자님이 다음 대 왕위를 물려받았을 때의 이야기고 제가 뭘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었습니다.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저도 거절을 해야 하니 제대로 된 답을 주시겠습니까?”
“좋네. 일단 왕국의 사정을 먼저 알려주겠네. 내 형님이신 1 왕자 루크렌은 이번 잘못으로 인하여 힘이 많이 빠진 상태이지만, 성국과 연계를 하면서 성국에 입김이 닫아 있는 귀족들 대부분을 자신 쪽으로 끌어들였다네. 원래는 중립을 표명하고 있던 귀족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성국측에 가담한 매국노가 꽤 많았던 모양이야. 여기에 3 왕자와 4 왕자의 연합이 1왕자와 손을 잡으면서 왕권 다툼이 나와 형님의 싸움으로 좁혀졌지, 그 대신 백중지세를 이루고 있다가 이번 사건으로 조금 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내 입지가 세 왕자의 합심으로 인해 형님에게 넘어가고 말았지. 그런데 말이네. 밀크 자네가 에스타 상단을 부활시키면서 나에게 넘겨준 자료와 수많은 돈, 그리고 무기를 비롯한 후원 품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다네. 중립을 표방하고 있던 남은 귀족들을 우리 쪽으로 불러드릴 수도 있었고 병사들을 보다 강하게 무장시킬 수도 있었어. 여기에 자금적으로 그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어서 다시금 입지싸움에서 백중지세를 이루었지. 정기적인 원조까지는 아니어도 최대한 우리 2 왕자파에게 지원을 해주지 않겠나?”
“에스타 상단이 왕국에서 벌어들이는 금액이 상당하니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거래하기 위해서는 왕국에 일정 부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2 왕자파를 개인적으로 원조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좋으나 싫으나 이 진흙탕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2 왕자파가 에스타 상단을 잘 지켜줄 수 있을지부터가 관건이라 생각됩니다만?”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네. 군부의 절반이상을 내가 장악한 상태네 형님이 거느린 군세는 우리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왕궁에 상주하고 있어야 하니 대부분 다른 곳에서 돈을 뿌려 공작을 시도할 텐데 그 정도야 우리 정예 병사들이 충분히 보호해줄 수 있네. 그뿐만 아니라 1 왕자 파가 더러운 술수를 부린다 해도 전부 내가 책임지고 막아준다 약속하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후원만 할 수는 없습니다. 보호 외에도 저희에게 특권을 하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 조건이 아니라면 1 왕자파에게 공격을 당하면서까지 이 진흙탕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좋지 내가 가능한 선에서라면 무엇이든 하나 원하는 특권을 줄 수 있지. 어디 바라는 게 있으면 뭐든 먼저 말해보게나. 다만 내가 가능한 선에서만일세.”
톨메오의 말에 밀크는 고민해 볼 것도 없다는 듯 생각해 두었던 것을 그에게 이야기하였다.
“제가 대족장으로 있는 아인 연합을 첼슨 왕국의 동맹으로 선포해 주시지요. 이 정도 조건이 아니라면 2 왕자님을 밀어드리기 힘듭니다.”
“동맹이라…. 당장에 성국에서 반발이 심하리라 생각하지만, 이미 형님과 대적하기로 한 이상 어느 정도 성국과 마찰은 필연적이지 좋아. 지금 당장은 내가 왕권을 가지지 않았으니 우리 2 왕자파와 대족장의 아인 연합을 동맹으로 선포하지, 그 뒤 내가 왕권을 가지게 되면 첼슨 왕국과 아인 연합을 대대적으로 동맹이라 선포해 주기로 하지. 그것으로 괜찮겠나?”
“예 가능한 선에서 힘을 써주신다는데 그 이상 바랄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저희 측도 왕자님이 말씀하시는 귀족가, 떠나서 유력 위인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혹시 1 왕자의 세력에서 포섭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의 포섭 또한 여기 있는 퍼슨에게 일임하여 처리하겠습니다.”
“흠…. 돈으로 움직이는 자를 받아들이라는 건 조금 꺼려지는 이야기로군.”
“일단 이 싸움에서 이긴 다음 나중에 적당히 쳐내버리면 될 일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는 일에 설마 그런 잔인함도 없이 움직이시려는 겁니까?”
밀크의 뼈가 있는 말에 왕자는 잠시 멍해진 얼굴로 있다가 유쾌하게 웃으면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역시 대족장이라는 칭호를 그냥 차지한 것이 아니로군. 알았네. 이제부터 대족장과 피를 나눈 동맹이라 선포하지. 퍼슨 행수와 여기 있는 마담 바이올렛이 그것을 증명할 것이네. 만약 이 동맹을 아무런 이유 없이 먼저 저버리는 이가 있다면 목을 내놓는 조건을 넣도록 하지.”
나는 당당하니 너 역시 당당하냐는 물음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어차피 1 왕자와 완전히 돌아선 지금 첼슨 왕국과의 연계를 위해 2 왕자와의 동맹을 필연적이고 밀크가 그를 먼저 배반할 이유 또한 없으니 자기 역시 당당했다. 밀크는 왕자의 손을 마주 잡았다.
“좋습니다. 오늘 이후로 이유 없이 먼저 동맹을 저버리는 이는 목을 내놓아야 합니다. 베라밀프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요.”
밀크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베라밀프의 이름까지 걸었다. 그러자 미증유의 힘이 주변으로 뿜어져 나갔다. 두 사람은 모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베라밀프의 이름으로 두 사람의 동맹 관계를 보증하고 있는 것이었다.
짝짝짝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고 약속을 체결하자 바이올렛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는 두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이런 자리에 보증인으로 함께하여 참으로 영광입니다. 남자들의 약속에 술이 없을 수는 없지요. 자 두 분 다 잔을 내밀어 주시겠습니까? 방금 납품받은 질 좋은 홀스타우로스주를 대접하겠습니다. 우후후훗 물론 대족장님께서는 매일 드시겠지만 말이죠.”
바이올렛의 말에 밀크는 고개를 돌려 퍼슨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퍼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마담과의 관계까지 고려하여 퍼슨이 이미 손을 써둔 모양이었다.
바이올렛의 신호가 있자. 가면을 쓴 종업원이 항아리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두고 간 항아리에는 걸쭉한 홀스타우로스주가 가득 들어 있었다.
앞으로 내민 두 술잔에 가득 따라진 술을 하나씩 주고받은 밀크와 톨메오 두 사람이 동시에 술잔을 들고 중간에서 부딪친 다음 입으로 가져가니 긴장한 듯 보고 있던 퍼슨은 피곤한 듯 고개를 저었다.
“자 이것으로 두 분의 관계를 저, 그리고 퍼슨 대행수께서 증명하겠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이후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니 시 자리는 여기서 파해야겠지만, 손님으로 오신 대족장님과 퍼슨대행수는 저희가 책임지고 최고의 서비스로 대접하겠습니다. 그것으로 괜찮으시겠지요. 왕자님?”
“물론이네. 내 마담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지. 자 대족장, 그리고 대행수 부디 좋은 시간 가지길 바라며 난 이만 다음 약속이 있어 일어나도록 하겠네.”
“살펴 가십시오 왕자님. 앞으로도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뵙겠습니다.”
“물론 저 역시, 대족장님께서 움직이기 힘든 동안에는 제가 모든 일을 책임지고 처리할 테니 언제나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기대하도록 하지. 내 형님께서 걷어 차버린 진주를 찾아낸 기분이라 즐겁구먼. 으하하”
그렇게 톨메오와의 만남은 끝이 났다. 그를 마중하기 위해 바이올렛과 밀크 그리고 퍼슨이 밖으로 나가자 이미 그가 타고 갈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다시 찾아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겠습니다. 레오니스님.”
“내 이른 시일 안에 다시 오도록 하지 마담. 그럼 잘 있으시게. 대족장과 대행수도 잘 놀다가 가시게나.”
“예 레오니스님.”
“알겠습니다. 레오니스님.”
톨메오가 떠나고 퍼슨, 밀크는 다시 바이올렛의 안내를 받아 가게의 안으로 인도되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융단이 깔린 공간으로 안내받은 두 사람은 다시 각자 떨어져서 방으로 인도되었다.
“퍼슨 대행수님은 저 아이를 따라가 주시면 됩니다. 필요한 것은 모두 저 아이에게 말씀하시고 오늘 밤 충분히 푹 쉬시지요.”
“네? 아…. 예…. 그럼 대족장님.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오늘 마담이 대족장님을 모실 예정이니 그냥 편히 즐기고 오시면 됩니다.”
“우후후훗 얘야. 저분은 귀한 손님이니까 허술히 대접하면 절대 안 된단다. 알았니?”
“예. 마담 바이올렛. 성심성의껏 모실게요.”
그렇게 가면을 쓴 한 종업원에게 안내되어 떠나가는 퍼슨의 등을 잠시 바라보던 밀크, 그는 뒤에서 자신의 팔을 감아 들어오며 이끌어 가는 바이올렛에게 이끌려 어딘가 으슥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색정적인 붉은색을 띠고 있는 고급스러운 침대 그리고 자줏빛의 등이 방을 그윽하게 비추어 들어가기만 해도 음란한 기분이 저절로 드는 방이었다. 이미 방 안에 목욕할 수 있는 작은 욕조까지 준비되어 있었으며 분명 좋은 의미로 사용될 거라 생각되지 않은 푹신한 융단이 깔린 공간 등등 보기만 해도 어떤 공간인지 절로 알 수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성적인 공간 만큼은 어딘지 모르게 내가 원래 살던 곳과 비슷하단 말이지.’
[ ‘자줏빛의 바이올렛은 이 대륙에서 손꼽을 정도로 잘 발달한 창관입니다. 여성 종업원의 관리까지 수준급인 곳은 아무 데서나 찾을 수 없죠.’]
‘확실히 그래 보이는군. 그래서 어때? 내가 보기에 저 바이올렌이라는 여자 인간은 아닌 거 같은데.’
스스로 음란한 기운을 뿜어내기도 하다가 기운을 갈무리하는 것도 자유자재였다. 밀크가 느끼기에 바이올렛은 인간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직감은 정확했다.
[‘비슷한 유형의 아인들을 조사해본 결과 바이올렛과 유사한 아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인간으로 둔갑할 수 있는 종족으로 스스로 남성을 홀리는 음기를 발산하는 존재, 바로 매직폭스 종족입니다.’]
‘매직폭스?’
[‘예 마법에 능한 여우종족입니다. 밀크님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구미호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꼬리가 최대 열 개까지 자란다는 것이 틀리 달까요? 종족을 간단히 설명하면 꼬리가 3개일 때부터 인간으로 변할 수 있게 되고 6개에 마법을 그리고 10개에 달하면 마법적인 능력이 대폭 증가하고 극강의 미모를 가진 여성이 되며 음기를 발산하게 됩니다. 종족 전체가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아하! 정말 알기 쉬운 설명이네. 그렇단 말이지.’
[‘뭐 바이올렛에게서 밀크님에게 딱히 안 좋은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성국을 이겼다는 점에서 높게 보고 있는 듯하고. 호감도도 이미 60을 넘어서고 있으니 조금만 잘 해보시면 충분히 아군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점괘에서도 절대로 잡으라는 내용이 나왔으니 오늘 밤 힘 좀 써봐야지.’
[‘후훗- 적당히 하셔도 됩니다. 지금의 밀크가 온 힘을 다하면 상대방이 먼저 졸도할걸요?’]
‘농담이지?’
[‘상상에 맞기지요.’]
예전보다 부쩍 감정이 풍부해진 루의 목소리를 들으며 밀크는 천천히 욕조 앞으로 걸어갔다. 가면을 뺀 나머지 옷을 전부 벗어 전라가 된 바이올렛이 그곳에서 밀크를 기다리며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