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119화, 왕국의 어두운 곳
첼슨 왕국의 수도 리헬튼 인근의 가도
잘 닦여진 가도를 켄타우로스들이 이끄는 마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워낙 속도가 빠른 그들이라 마차의 이동 속도는 폭주라도 하는 듯 아주 빠르게 가도를 주파하는 중이다.
그러나 마법이 걸려 있는 마차에 안쪽 상황은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마차가 흔들리거나 약간 공중으로 떴다가 땅으로 내려오는 정도로는 내부에 큰 충격이 전해지지 않는 충격 완화 마법이 걸린 고급 마차였다.
물론 마차가 전복되거나 바퀴가 고장 나서 급정거를 하는 정도로 심한 상황이라면 내부에도 그 충격이 전해지겠지만, 여간한 충격은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이 마차, 안쪽에는 밀크를 비롯한 그의 호위로 따라온 유크와 벨, 그리고 안내역인 퍼슨이 함께하고 있었다.
“마차가 꽤나 안락하네.”
“예. 특별히 고위층이 움직일 일이 있으면 사용하기 위해 제작을 의뢰했지요. 마음에 드신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흠흠- 이거 나중에 사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사업적으로요?”
“뭐…. 아인들에 대한 인간들의 감정이 희석되면 이지만 말이지. 적어도 이첼슨 왕국에서만큼은 아인 멸시 사상이 사라졌으면 하는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업을 한번 일으켜 봐도 괜찮을 거로 생각하거든.”
켄타우로스들이 끌고 다니는 마차를 사용하여 지구에서 보았던 택시 사업을 생각해본 밀크였다. 뭐 이 경우에는 켄타우로스들이 마차를 끌기 때문에 마력거(馬力車)라고 불러야 정상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좋은 사업 아이템이지만, 아인 멸시 사상이 조금씩 옮아 있는 작금의 첼슨 왕국 사정으로는 성공하기 힘들어 보여 일단은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한 밀크였고 퍼슨 또 한 그가 구태여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니 궁금하긴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다.
“혹시 누가 알겠습니까? 이번에 2 왕자와 연계가 잘 되어 첼슨 왕국과 저희 아인 연합 부족이 동맹 관계 정도로 깊게 된다면 머지않아 대족장님께서 생각하신 사업을펼칠 수 있을지도요.”
“말처럼 쉽게 된다면 다 좋겠지만…. 아인은 몰라도 인간은 내면에 숨긴 게 너무 많잖아. 물론 모든 인간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지만, 열 명의 아인 중에 꿍꿍이가 있는 아인이 두세 명 정도라면 10명의 인간 중에 꿍꿍이가 있는 인간은 다 여섯 명정도라고 볼 수 있겠어.”
“저도 깨끗한 편은 아니지만, 역시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인간을 상대할 때는 확실히 좀 더 영악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분은 몰라도 이제 대족장님은 거느리는 사람도 많고 자리가 자리이니 속에 능구렁이 열 마리 정도는 키워야 한다 생각합니다.”
“열 마리는 조금….”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제가 여 덞 마리는 키우고 있으니 남은 두 마리는 대족장님께서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퍼슨의 말에 피식 웃은 밀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마차는드디어 첼슨 왕국의 수도인 리헬튼에 당도했다. 간단하게 차린 짐을 풀고유크와 벨을 앞세워 리헬튼에 세워진 에스타 상단의 지부로 입장하자 그를 향해 종업원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대족장님을 뵙습니다!!!
아인 인간 할 거 없이 모든 종업원이 깍듯하게 그를 향하여 인사를 하였고 밀크 또한 자연스럽게 그 인사를 받아 주었다. 밀크가 일들 보라고 하니 그들은 방금 깍듯했던 자세를 바로 풀고 자신들의 일로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엘리트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직원들이 참 교육을 잘 받았네. 특히나 우리 아인들이 이런 단순 노동이 아니라 좀 더 체계적인 작업을 하게 만드는 것은 좀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밀크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저가형 목걸이의 재료가 되는 각종 아기자기한 재료들을 모아 분유하고 있는 덩치가 산만 한 미노타우로스 남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큼직한 손으로 그는 조심스럽게 작은 물건들을 분류하여 능숙하게 정리하였다.
또 다른 곳에는 힘은 강하지만 머리가 부족하다는 평이 자자한 오거가 엘프들 틈에 끼어서지부의 순이익을 계산하는 중이었다. 무려 그 오거가 다른 엘프들 보다 상관인 자리에 있었는지 그녀가 계산을 끝내면 그것을 나누어 가지면 다른 엘프들이 빠르게 보조를 하는 장면이었다.
밀크의 물음에 환하게 웃는 퍼슨의 설명이 이어졌다.
“오거가 멍청하다느니 미노타우로스가 힘만 강하느니 이런 말들은 모두 신성 왕국 헤베나가 아인들을 멸시하기 위해 퍼트린 내용입니다. 물론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특성을 잘 살려 그 외에 다른 것에는 특출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그런 이들 중에서도 보석은 숨어 있기 마련이지요. 전 단지 궁금한 표정으로 다른 일거리를 바라보는 아인들에게 기회를 열어준 거뿐입니다. 잠시 일을 경험해 본다면 스스로가 자신에게 맞는지 아니면 맞지 않는지 알아서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
“역시 퍼슨 자네에게 맡긴 것이 옳았던 거였어. 앞으로도 우리 아인들이 인간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새삼스럽게….”
지부의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역시 말로 들었을 때보다 모든 것이 생동감 있게 전해져 오고 있어서 뜻깊었다.앞으로는 자주 지부에 들러서 종업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의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고 생각한 밀크였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내고 약속 시각인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퍼슨은 휘하에 거느린 귀족가에서 그만두거나 쫓겨난 하녀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밀크에게 맞는 옷을 찾아 그를 단장 하였고 그는 그렇게 인형 취급을 당하다가 겨우 해방될 수 있었다.
‘음….하긴 그 거적때기만 입고 귀족가에 들어가는 건 좀 무례한 일이지.’
몸이 좀 고생하긴 했어도 인간들이 입는 옷이 이젠 좀 불편한 감이 있어도 어느 정도 허용은 해야 했다.
‘와…. 20년 정도 옷 없이 생활했다고 옷이 이렇게 불편하다니…. 나도 이젠 아인 다 됐구나.’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아인으로 생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어서 제가 빠르게 변화를 시키다 보니 이런 문제도 발생했군요. 바라신다면 조금은 인간 시절 감각을 살릴 수 있습니다만….’]
‘아니 그럴 건 없어. 이것도 다 적응하다 보면괜찮아지겠지. 지금도 조금씩이지만 옷을 입고 있는 것도 괜찮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더운 것만 빼고.’
가을에도 거적때기 하나만 입고 생활이 가능할 건강한 몸 때문에 오히려 옷이 그의 온도를 너무 올려 더울 지경이었다.
[‘그럼 제가 내부 온도 조절일 진행하겠습니다. 옷을 입고 있는 동안 더위가 조금이나마 저하될 겁니다.’]
‘오! 그건 정말 고맙군. 그렇게 해줘.’
밀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딘지 모르게 시원한 기분이 들어왔다. 이마에 송골송골 맽혀가던 땀방울도 어느 순간부터는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 가실까요?”
퍼슨의 안내를 받아 수행원들과 함께 수도의 밤거리를 거닐면서 2왕자가 초대한 곳으로 향하는 밀크.
해가 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골목 사이사이로 비렁뱅이들이 판을 치고 있었으며 휘황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거리에서는 거의 나체나 다름없는 여인들이 거리를 지나는 남자들에게 자신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흔들어 보이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도련님- 여기 좀 봐주세요-”
“잘생긴 귀족님- 제가 오늘 모실 영광을 주세요!”
“아아- 몸이 뜨거워요- 어서 절 마음대로 해주세요.”
몇몇은 약에 취한 듯 제정신이 아니었다. 풀린 눈으로 남자의 앞에서 달콤한 목소리를 뽐내며 춤을 추거나 심하면 스스로 보지를 문지르는 여자들도 있었다.
“쯧…. 하필이면 집창촌에서 보자고 하다니…. 2 왕자가 은밀하게 만나고 싶은 모양입니다.”
“아? 여기가 그런 곳이야?”
“예. 밤에만 열리는 수도의 집창촌입니다. 아내에 질린 남성, 여자가 필요한 남성, 자신의 부를 주체하지 못하는 부자들이나 귀족들의 모임 장소입니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실질적인 정체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고 입장하는 그 순간부터 돈만 있다면 누구나 다 귀족이 되고 돈이 없다면 그냥 비렁뱅이가 될 뿐입니다. 다만 신분이 높은 분들과의 트러블 까지는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자신의 권력, 그리고 부가 허용되는 한 살인까지도 묵과해주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야말로 첼슨 왕국의 어두운 부분이지요.”
“첼슨만 이런 건 아니지 않을까?”
“뭐. 다른 곳의 수도에도 이런 어두운 부분이 있긴 하겠지만, 첼슨 왕국은 좀 더 문란한 편입니다. 왕권이 강했던 시절에도 이곳만큼은 칼을 대지 못하였으니 말이지요. 그만큼 귀족들의 욕구 배출의 장소이자 더러운 모든 것을 시행하는 적절한 장소로 애용됐습니다.”
“이곳의 관리자도 따로 있나?”
“여러 범죄조직이 서로의 구역을 지키는 처지라 누구 하나가 관리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왕국의 제재가 있으니 서로 견제는 할지언정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첼슨 왕국도 범죄자들을 따로 관리하지 않고 이곳에 모두 몰아넣어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지요. 다만 이곳에서 벗어나는 순간 범죄자의 죄가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대부분 이곳에 들어오면 어딘가 조직에 몸담아서 평생을 보냅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야기였다. 뭐, 밝은 부분이 있으면 어두운 부분이 있기 마련 아닌가. 달의 이면과도 같은 곳, 첼슨 왕국이라고 뭐 좋다고 이런 곳을 만들어 두었겠는가. 권력과 부가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둠이 생기고 결국에는 손대기 힘들어 적당한 필요악으로 내버려 뒀으리라.
추가로 집창촌의 시스템을 조금 더 설명을 들으며 여인들의 추파를 뿌리치고 걸으니 하나의 큰 건물이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오늘 2 왕자와 만나기로 한 음식점인 모양이다.
“비밀스러운 만남을 가지기에는 이곳이 안성맞춤이지요. 집창촌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세 개 꼽으라고 하면 가장 으뜸으로 거론되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음식점, 여관, 그리고 창관까지 모두 운영하는 바이올렛이라는 곳입니다.”
“음….”
제비꽃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은 자줏빛이 건물 외벽에 가득한 몽환적인 장소였다. 다른 휘황찬란한 거리와는 다르게 이곳은 어딘가 칙칙한 분위기도 보이긴 했으나, 밖에서 호객하는 여성도 없고 고급스러운 느낌도 강하게 남아 약간 동떨어진 느낌도 있었다.
“들어가시죠 대족장님.”
퍼슨이 앞장을 서고 밀크가 그 뒤를 따랐다. 무기를 든 사람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기에 유크와 벨은 밖에서 대기하기로 하였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지금의 밀크도 충분히 몸을 피할 수 있으니 두 사람을 부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또 한 벨이 밀크의 무기인 궁니르를 대신 들고 있었으니 여차하면 밖에 있는 무기를 원거리에서 부르면 될 일이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궁니르도 충분히 밀크의 명령에 응할 수 있었다.
대충 준비가 끝난 밀크가 안으로 들어서니 입구를 가득 메운 여성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하나 모두 자줏빛을 띤 가면으로 눈을가리고 있었고 요염하게 살결이 비치는 영업용 드래스 차림을 하고 있었다.
중간에 딱 한 명 서 있는 집사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역시 자줏빛을 띤 가면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으며, 그는 여자들이 일제히 손님인 밀크와 퍼슨을 향해 인사를 하자 그녀들을 지나 앞으로 나서며 손님을 받았다.
“어서 오시지요. 예약이 되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 주시고 간단한 식사, 또는 숙소 이용이나 다른 내용의 서비스가 필요하시면 안으로 안내해 드린 후에 다른 종업원을 찾으시면 됩니다.”
입구에서 예약한 손님을 중점으로 맞이하는 자였다. 밀크가 나설 것도 없이 퍼슨이 예약된 내용과 2 왕자가 알려 주었을 암호를 말하니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은 안내하였다.
안내받은 방에 도착하니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는지 음식도 차려지지 않은 흰색 테이블만 존재하고 있었다. 방음이 잘 되어 아까까지 들려오던 홀의 음악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밀크가 자리에 앉으니 남자 종업원이 고개를 숙이며 안내를 하였다.
“다른 분들은 곧 도착하실 겁니다. 잠시 후 마담께서 오실 예정이니 나머지 설명은 그분께 들으시면 됩니다. 필요한 것이 더 있으시면 여기있는 아니에게 말씀하십시오. 그럼.”
그렇게 두 사람과 여 종업원을 자리에 두고 남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니 문이 열리며 남자가 말한 마담이라 생각되는 여자가 안으로 들어와 다소곳하게 인사를 올렸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희 가게의 단골이신 레오니스님의 손님분들이시군요.”
“레오니스?”
밀크의 작은 반문에 옆에 있는 퍼슨이 조용히 대답했다.
“2 왕자 톨메오 첼슨의 가명입니다. 이곳에서는 뒤가 구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대부분 가명을 사용합니다. 뭐. 대족장님께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따로 생각하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아 그렇군.”
마담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여성 종업원을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처했다. 다른 종업원들처럼 자줏빛을 띤 가면으로 눈을 가린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눈이 보이지 않아도 매력적인 여성임에는 이견이 전혀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