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6화 〉116화, 아인과 에스타 상단. (116/177)



〈 116화 〉116화, 아인과 에스타 상단.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흘러 밀크가 약속했던 날짜가 다가올 때쯤, 첼슨 왕국의 1 왕자 측은 아직도 갑론을박하느라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림도 없습니다! 아인 따위가 무슨 자격으로 왕국에 그런 협박한단 말입니까! 왕자 전하 이 일은 묵과할 수 없는 중대사입니다. 당장 군을 보내 놈들을 엄하게 벌해야 합니다!”

“그래서는  됩니다! 현재 저희 왕국의 국력은 매우 좋지 못합니다. 다른 왕자를 지지하는 세력과의 힘 싸움을 위해 나라 살림은 뒷전이고 매일같이 왕권 다툼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차라리 에스타 상단을 다시 불러들여 그들에게 소정의 보상을 해주고 상단을 다시 부흥시켜야 합니다! 그들이 벌어들이면서 내는 세금이 왕국 세수의 사 분의 일이나 됩니다. 물론 이번에 그들을 축출하면서 1 왕자파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금의 양이 늘어났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넓게 보면 후에 왕자 전하께서 왕권을 잡았을 때 망가질 때로 망가진왕국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저런! 저런! 감히 남작 따위 하급 귀족이 어디서 말을 높이는 것인가! 여기 모인 귀족이 다 같은 귀족인 거 같나!”

“흥! 그리고 우린 뭐 눈이 옹이구멍으로 보이는가? 그런 것쯤이야 다 생각을 하고 있다  말이네. 왕권을 잡은 후에 대대적으로 세금을 올리면 되는  아닌가. 그래 지금의 세금이 30%이니 50%로 올리면 생각보다 빠르게 왕국을 안정시킬 수 있다네.”

“그, 그래서는 백성이 너무도 힘들….”

“왕국이 이리 위기에 처해 있는데 모두 다 함께 고생을 나누어야지. 백성이라고 무조건 봐주기만 하면 어떻게 나라를 운영한단 말인가. 아니 그렇습니까 전하.”

“옳다. 그리고  가당치 않은 편지를 보낸 아인들에 관하여  할 말은 없는가?”

열심히 의논을 나누는 가운데 다시 입을 연 1 왕자가 질문하니 한 귀족이 나서서 그 질문에 대답했다.

“저번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아예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물론 저들이 협박이 아닌 미친 척하고 저희 왕국에 쳐들어오지는 않겠으나. 저희도 저들을 벌할 군대를 모을 돈도 없거니와 남은 군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성국을 이긴 저들이  기세를 몰아 작은 마을, 아니 다른 도시 하나라도 점령하는 날에는 저희로서도 그들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 이 말입니다.”

“흥! 성국 병사들의 질이 많이 떨어진 게지요. 우리 첼슨이 비록 작은 왕국이지만 병사들 모두 용기백배하여 단련된 정예 중의 정예입니다. 그런 아인들 따위 오백 명만 가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1 왕자 측에서도 그 내부가 결속되지 못하고 서로 자신의 목소리만 키우는 통에 진전이 전혀 없었다.

이때 1 왕자가 중간에서 잘 조율하여 이들의 의견을 잘만 이용할 능력이 있었어도 지금처럼 이리 지지부진하진 않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에겐 그런 능력이 전혀 없었다. 하

는 일이라곤 잘생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중간에 앉아 귀족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자기 의견만 내세우는 하등 귀족과 다른 바 없는 행동뿐이었다.

그렇게 시일이 지나 결국 밀크가 편지로 보낸 내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밀크의 서신을 전하기 위해 릭스가 직접 왕국으로 향하였다. 서신을 2 왕자 측에 확실히 전달했다는 그의 낭보를 받은 뒤 밀크는 행동을 시작했다.

그리도  얼마 뒤

*****

첼슨 왕국의 수도 리헬튼

“저, 저게 뭐야?”

“오거 아니야?”

“에스타 상단이잖아? 그동안 상단을 접고 두문불출하더니 다시 돌아왔나 보네.”

“나, 오거 처음 봐.”

“저기봐 미노타우로스도 있어. 이야…. 상단의 일꾼들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으리으리한 건물을 가지고 있던 에스타 상단의 본점, 그곳과 좀 떨어진 곳이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한 크기의 상점에 새로이 에스타 상단의 지점이 자리했다. 사라진 본점이 아니고 새로운 지점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의아해했지만, 그동안 에스타 상단이 없어 물건을 구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낌,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에스타 상단으로 몰려든 사람들 앞에 지점의 문이 열렸다. 유통이 거의 끊겨버렸던 홀스타우로스의 우유로부터 시작해 위도레빗들이 사냥한 다이어 울프의 부산물, 그리고 데빌배어의 부산물 같은 각종 마수의 부산물들이 가득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예 대놓고 밀크와 그 휘하의 대장장이들이 만든 질 좋은 농기구와 무기, 그리고 방어 구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만물상이라  만한 규모의 물건들이었다.

“어어! 잠깐 거기는 왕국에 납품하는 물건입니다. 손대시면 큰일 나니까 이리로 오시죠.”

“힉!!!”

마차 한편에 가득 실린 물건들이 궁금한지 그곳을 기웃거리던 손님은 가게 종업원의 말을 듣고 기겁을 하며 마차에서 떨어졌다.

“자! 이쪽의 홀스타우로스 우유는 기간이 좀 되어, 질이 떨어지는 물건이지만 대신 가격이  것들입니다. 가격이 비싼 신선한 것들은 귀족가에서 이미  구매를 하였으니 이쪽에서 골라 보시죠!!! 앞으로 3일에서 4일 안으로 소진하지 않으면 상할  있으니 구매 후 바로 드시기 바랍니다.”

“미노타우로스의 우유도 있습니다. 가격이 매우 쌉니다. 골라 보세요!!!”

“이걸로 말씀드리자면, 바위도 슬라임처럼 잘라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명검이올시다!!!”

“비켜라!”

“어서 비키지 못해! 중앙 수비대다! 당장 길에서 비켜라!”

이렇게 성황리에 물건들이 팔려 나가고 있을 때, 역시나 불청객들이 등장했다. 에스타 상단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1 왕자는 바로 중앙 수비대 병사들을 보내 그들의 물건을 빼앗기 위해 움직였다.

물론 모든 병력을 움직일 권한이 그에게 없었지만, 일부 정도는 그의 재량으로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일개 상단 따위 이 정도의 병력이면 지레 겁을 먹도 또 자기들 주머니 사정을 채워주리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상단도 대응이 달랐다.

“웃!!!”

“뭐, 뭐냐!”

쥐죽은 듯이 상단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노타우로스와 오거 전사들이 밖으로 나와 흉흉한 기세를 내보이며 상단의 앞으로 다가오는 병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 그 기세에 밀린 병사들이 주춤주춤 한 걸음씩 물러서는 치태를 보였다.

“우, 우릴 왕국의 명을 받고 정당한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온 것이다! 에스타 상단은 왕국에 해가 되는 물건을 유통한 죄가 있다. 이에 그들의 재산을 압수하고 상단 지부를 해산하라는 1 왕자 전하의 명이다!”

“아- 그렇습니까?”

그때였다. 대치 중인  세력의 중간으로 남자가 끼어들었다. 웃는 얼굴이 서글서글한 표정의 퍼슨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군요. 여러분께서는 분명 왕국의 명으로 이리 오셨다고 하셨습니까?”

“그, 그렇다! 순순히 집행을 받아라!”

“흐음…. 그럼 이걸 한  봐주시죠.”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퍼슨은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돌돌 말려 있는 그 양피지를 펼쳐 병사들이 볼  있도록 살살 흔들었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저 역시 왕국에 허가를 받고 장사하는 중입니다만? 설마 왕국에서 허가를 내린 상단에 다시 법을 집행하라는 얼토당토않은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싶으신 겁니까?”

“뭐, 뭣이!”

“아니면 지금 당장 법의 집행을 당신에게 일임했다는 명령서를 보여 주시지요. 자 저처럼 이런 공문서를 받으셨을 거 아닙니까?”

“그, 그건….”

앞뒤 생각 없이 에스타 상단이 들어오니 옳다구나 이를 드러낸 1 왕자가 그런 걸 생각했을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귀족들의 말에도 그저 자기 이익에 눈이 먼 대부분 귀족의 청을 받아들여 일을 벌인 이들이었다. 적당한 구실을 붙였을 뿐이지 명령서까지 만들었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 명령서라는 것이 함부로 발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후로 벌어지는 모든 책임을 명령서를 발부한 자, 즉 1 왕자가 발부하였으면 그가 진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일개 상단을 털어 오는데 그런 귀중한 명령서를 소비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 반대로 퍼슨이 들고있는 이 상행 허가서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밀크가 릭스를 통하여 2 왕자에게 보낸 서신이 잘 처리되었다는 뜻이었다.

밀크는 렘톤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소상히 적어 2 왕자 측에 보냈다. 그와 동시에 레이나와 릭스의 사연까지 더하여 지금까지 1 왕자가 성국과 함께 벌인 무수히 많은 실책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서신의 끝에는 이미 사라진 렘톤 마을을밀크의 부족이 재건하는 것으로 그곳을 자신들이 통치하겠다는 것이었고 에스타 상단의 첼슨 왕국 상행을 2 왕자의 권한으로 윤허해 달라는 청을 했다.

 대신 상단에서 유통하는 물건  10%를 무상으로 2 왕자 측에 제공하겠다는 것과 세금과는 별개로 그들에게 금액도 후원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즉 렘톤 마을을 받는 것과 상행을 왕자의 이름으로 공고히 해주는 것에 대한 대가라는 것이다. 다른 왕자들과 힘겨루기 중인 2 왕자로서는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 상행 허가서였다. 에스타 상단은 왕국의 적법한 허가를 받아 상행하고 있으니 과거의 잘못은 모두 사하며 이후로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은 그 어떠한 경우라도 이들의 상행을 방해할 수 없다.

글을 읽을 수 있는 백인장이  허가서를 읽는 동안 사시나무 떨듯 떨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에  있는 다른 병사들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대충 눈치로 예상할 수 있었다.

으득- 으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병사들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오거 여전사 한 명이 자신의 목을 돌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전투를 앞두고 흥분하고 있는 것인지 홍조에 미소 그리고 금방이라도 그들을 덮칠듯한 어마어마한 근육질 몸매가 참으로 위협적이었다.

‘까, 까닥 잘못하면 오늘 관짝에 들어가겠구나.’

‘마, 마누라 미안해….’

‘어, 어머니….’

그러나 그들이 걱정하는 일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다. 백인장이 꽉 막인 남자가 아니었던 것도 있고 이미 이렇게 버젓이 허가서가 있는데 이것을 뭐 어쩌겠는가?

만약 이 일로 문책을 당하더라도 그들은 충분히  말이 있었다. 그러니 괜한 싸움을 벌여서 피를 보느니 여기서는 조용히 물러나야 했다.

“흠, 흠…. 아…. 뭔가 착오가 있던 모양이군. 확인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소이다. 그럼 수고들 하시오.”

“예- 예- 그럼 조심히 돌아들 가시지요.”

“하하하…. 뭐하나! 아무 이상이 없구나. 다들 돌아간다.”

뻘쭘하게 서 있던 백인장이 뒤돌아 소리치자 병사들은 걸음아 나 살리라는 심정으로 달려서 그곳을 빠져나갔다.

한차례 소동이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불타오르는 구매자 행렬이 사그라들진 않았다. 그날 하루 에스타 상단은 그동안 장사를 접어서 당하였던 불이익을 단숨에 만회하고도 남을 엄청난 실적을 올렸다.

머리가 좋아 셈이 빠른 엘프들이 중앙에서 릭스와 퍼슨을 도와 행정을 담당해 주었고 상단의 일꾼은 인간이 반 그리고 힘이 좋은 미노타우로스가 반이었다. 상단을 호위하는 것은 오거와 홀스타우로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의 전사들이 맡았다.

여기에 상단에서 취급하는 물건을 수도까지 운송하는 일은 홀스타우로스들이 끄는 우마차로 이송하여 많은 양을 빠르게 운송할 수 있었고 우유같이 상하기 쉬운 물품의 경우는 켄타우로스들이 끄는 속달용 마차를 이용해 운송하였다.

그리고 정보의 전달이 필요하면 위도레빗들이 움직였고 상단 앞에서 남녀 서큐버스들이 호객을 하니  아름다운 얼굴에 이끌리는 손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인들의 합류로 인해 에스타 상단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왕국에서 벌어들이는 자금으로 다시 건축 자재와 각종 물품을  렘톤에 투자하는 동시에 상단의 규모를 키우고 그렇게 키운 상단은 다시 첼슨 왕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1 왕자의 집무실

쾅!!!

“이런 젠장!!!”

책상을 때려 부술 기세로 내려친 1 왕자, 그러나 그런다고  튼튼한 책상이 부서질 리 만무했다. 오히려 자기 손이 더 아픈 모양인지 팔을 부르르 떠는데 뒤에서 보고 있는 귀족들의 눈치가 있어서 그냥 참는 듯했다.

“2 왕자 측에서 성국과의 일로 탄핵 요청이 날로 늘어가는 중입니다. 특히나…. 왕자님에 대한 탄핵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요?! 벌레들 몇 죽였다고 지금  왕국의 왕족이자 차기 국왕인 날 뭐 어찌 해보겠다. 이거요!!!”

“그, 그런것이 아니오라.”

“되었소!!! 후…. 이번 일은 확실히 내 실책이 있긴 하였으나 감히  형에게 이를 들이밀다니…. 이참에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어야겠소이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얼마 전에야 1 왕자가 성국과 연계를 하면서 2 왕자보다  주도권을 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밀크의 지원을 받는 2 왕자가 다른 왕자들을 제치고 엄청난 주도권을 행사하는 중이었다.

“3 왕자, 그리고 4 왕자와 연락을 하시오.”

“전하?!”

“어차피 이대로는 그놈들도 별수 없겠지. 그놈과 주도권 싸움을 하려면 이 수밖에 없소.”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밀크가 쏘아 보낸 서신은 왕국의 왕권 다툼을 더 부추기는 동시에 관심이 시들해진 에스타 상단이 왕국을 조금씩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계획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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