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1화 〉111화, 전쟁 피해 복구 (111/177)



〈 111화 〉111화, 전쟁 피해 복구

“으, 으….”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 쥴라, 잠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만지려 했으나 그녀의 손과 발은 단단히 묶여 있었다. 다급하게 힘을 끌어올려 묶인 팔과 다리를 풀어내려 했지만, 손과 발을 묶고있는 부드러운 가죽끈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데빌배어의 가죽으로 만든 끈이었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끊어버릴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신성력을 동원하려고 해보는 쥴라였지만,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시, 신성력이….”

단 한 줌의 신성력도 발휘되지 않았다.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신성한 마력은 충분히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을 밖으로 뿜어내려고 해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모르고 있지만,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밀크의 마을이며 베라밀프의 여신상에서 너무도 가까운 곳에 갇혀 있었다. 산 중턱에 있던 파달로크가 자신에게만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계속 끙끙거리며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그녀가 노력하고 있을 때 조금 어두웠던 방에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밝은 빛에 놀라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리는 그녀를 향해 어디선가 들어본적 있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뵙는 군요 헤베나 신성 왕국 제1 성기사단 부단장 쥴라.”

“너, 너는”

기억에 있는 여자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 아인들을 돌보고 있는 상단의 작업장이 있다는 밀고를 받고 움직인 곳이었다. 은밀한 밀고여서  진위는 알  없으나, 모르긴 몰라도 1 왕자의 입김이 닿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당시 파달로크의 명령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이동한 그녀는 정말 그곳에서 보호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아인들을 보고 전부 체포했다. 그리고  와중에 충돌을 일으킨 여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존재 레이나였다.

“그때  하급 귀족이로군.”

“예. 상황은 좀 다르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뵙는군요.”

“더러운 년. 인간이면서 설마 아인 편에 섰다는 소리를 하려고  건 아니겠지!”

쥴라의 으르렁거림에 레이나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과거 폭력으로 그녀를 상대했던 쥴라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턱을 잡아끌어 자신과 시선을 맞추었다.

“야만스럽게 다르다는 이유로 탄압을 하는 당신들보다는 아인들이 훨씬 나아요.”

“네년!!!”

“뭐…. 어차피 당신이 내 말을 이해할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다만 이대로 당신이 처형당하는 것도 억울한 일이라서 말이에요.”

“흥. 복수라도 하겠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말하는 게 훨씬 좋군. 그래. 어디  하찮은 아이들의 복수를 해보아라. 그러나 기억해야  거다.  조국에는 아직도 아인들을 경멸하는 자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남아 있다. 그들이 군을 이끌어 온다면  작은 촌락 따위 순식간에 대륙에서 사라지고 말 거다!”

쥴라의 말을 들으며 표정의 변화가 없던 레이나는 결국 그녀의 말이 끝나과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나 즐거워 보이는 웃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죽어간 자들이 기억이 아는지 어딘지 모르게 소름끼치는 웃음이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그저 하찮다는 이유로 아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지만, 잘 기억하세요. 이 대륙에 인간은 생명체의 일부일 뿐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족을 다 아인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그들은 결국 고립되고  거예요.”

“우리가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아인들이 우리에 의해 고립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어리석어요. 너무 어리석어.”

“큭…. 내가 이곳에서 풀려나면 가장 먼저 네년을….”

“아니요. 당신이 이곳에서 풀려나오는 순간부터는 당신과 전 동료가 될 거예요.”

“뭐가 어째?!”

“곧 그렇게 될 거니까 기대하고 계시지요. 그럼 평안히 지내시길.”

의미를 알  없는 말을 지껄인 뒤 방을빠져나가는 레이나, 그녀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밝은 빛이들어오던 입구가 닫히면서 방은 다시 어둠이 가득하게 되었다.

까득!

“내가, 내가 아인 따위를 아끼는 인간과 동료가 될 성싶으냐!!! 그럴 일은 없다! 차리라 날 죽여라! 날 죽이라고!!!”

아쉽게도 그녀의 외침은 레이나에게 닿지 못하였다. 조잡해 보이지만 이 방은 매우 방음이 잘되도록 제작되어 있기 때문이다.

*****

밀크의 부족 마을에서 내려와 불타버린 렘톤의 참혹한 현장에서는 포로들이 일하고 있었다. 파괴된 마을의 흔적을 지우고 죽은 자들을 묻어주고 또 그들이 저지른 이 처참한 현장에서 일하게 함으로 그들의 잘못을 알게 하려 함도 있었다.

구역질하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 아직 뉘우치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뉘우치든 뉘우치지 않던 이들이 노예에서 벗어날 방법은 죽음뿐일 테니까.

생명을 살려주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지만, 그래서는 절대 본보기가 될 수 없다. 다음에도 아인들을 죽인 자들은 아무런 본보기가 없다면, 자신이 저지른 일을 하나의 유희로 생각하게  뿐일 테니까.

그래서 밀크는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죽을 때까지 일하게 함으로 그 벌을 대신할 생각이었다. 그들의 목에는 노예를 만들 때 사용하는 강력한 마법이 내재한 목걸이가 착용 돼 있었으며  주인은 밀크로 각인되었다.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고 이곳으로 달려온 레이나가 가져온 물건 중에는 노예화 목걸이도 있었는데, 말 그대로 각인된 대상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해야만 하는 목걸이였다. 만약 그에게 대들거나 반항을 하면 고통을 느끼게 되고 목걸이를 벗으려고 하면 심장에 충격이 가며 벗으면 그 상태로 심장이 멈춘다.

성기사라 할지라도 목걸이를 착용하게 되면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파달로크 정도로 강력한 자라면 모를까. 지금 이들 중에는 그와 같은 레벨의 마력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렘톤의 정리를 하면서 주변을 살피던 밀크, 그의 곁으로 오늘의 싸움을 위해  길을 달려 와준각 부족의 족장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와 날개를 접어 드레스로 바꾼 바토리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밀크! 아니 이젠 대족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다행이구나. 난 정말 걱정이 되어서 하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단다. 내가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바토리가 보내준 하피들과 버드맨들도 적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그리고 바토리의 하피 일족은 성국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함부로 몸을 뺄 수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성국은 어떻게 되었나요?”

전투가 끝나고 벌써 4일이 지났으니 뭔가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 그가 성국의 일을 묻자 바토리는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별일 없단다. 이곳에서 살아남아 도망친 성기사와 병사들이 돌아갔지만, 싸움의 패배한 죄를 물어 처형을 당했지. 밀크의 마을은 거리가 거리이니 그들이 큰 군대를 일으켜 침공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지금쯤 성국 놈들 머리가 매우 아플 거야. 파달로크의 경우는 연이 닿아 있던 첼슨 왕국의 1 왕자에게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았지만, 그들은 그럴수가 없을 테니까.”

“무리한다면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모든 싸움이 끝났다고 믿지 않았다. 그들의 정예라고는 해도 그 수는  천명, 그 정도의 수가 당했는데 성국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무리한다면  수는 있겠지. 그러나 오는 길에 있는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나와 함께하는 한 하피들의 수만 수만이 넘어간단다. 그들을 공중에서 괴롭혀 여기에 오는 동안 충분히 피곤하게 만들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든든한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일단은 그들이 쳐들어올 방법이 없으니 당장은 안심을 해도 좋다는 바토리의 내용에 밀크는 그제야 크게 숨을 내쉬며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호호~ 그래  천진한 표정이 바로 밀크지, 그런데”

바토리가 밀크에게 몸을 밀착했다. 헤어지기 전에는 아직 베라밀프의 축복을 받기 전이라 키가 작았는데 지금은 축복을 받은 후라 키가 커져서 예전처럼 바토리의 품에 들어오지 않고 약간이지만 바토리가 그에게 안겨드는 느낌이 되었다.

“하…. 아쉽네. 예전에는 품에 쏙 들어왔는데 말이지.”

“작은 게 더 좋았나요?”

“호호호 아니야.  것도 나쁘지 않지. 그리고 그냥 크기만  것도 아니지 않으냐. 아이들이 돌아와서 밀크의 몸이 컸다는 말을 전해주었을 때는 혹시 우락부락하게 변해버린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계속 간직하고 있으니 다행이구나.”

뭐, 어느 정도는 밀리의 유전자의 힘이 컸을 것이다.

대충 그의 몸을 느낀 바토리는 그와 떨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그에게 말했다.

“잠시 상황을 보러 와본 거라 이만 돌아가지만, 조만간 시간을 내서다시 오마. 그간의 일은 아이들에게 들었지만, 네 입으로 다시 듣고 싶구나.”

“알았어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이번엔 저희 마을에서 잔치라도 열 테니 그때 꼭 참석해 주세요.”

“그래 그럼 연락을 기다리마.”

그녀가 날아오르자 이번에는 켄타우로스와 엘프의  족장이 다가왔다.

“그럼 대족장님 저희도 이만 터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부디 저희 딸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딸들을 수행할 인원은 조만간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 일족과 같이 저희도 천천히 이주 준비를 하겠습니다.”

“터전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 결정일 텐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우리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을 겁니다.”

“와하하! 당연히 그렇겠지만, 베라밀프님의 여신상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참 몸에  맞는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주변에 저희가 터전 삼을 만한 곳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천천히 이주하겠습니다.”

“저희 엘프들은 숲만 있으면 어디든지 터전으로 삼을 수 있으나, 역시 장로들과 이야기를 해 보아야 하니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고대 신의 축복을 받은 대족장님과 함께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엘프와 켄타우로스들이 떠났다. 다음으로 다가온 것은 워타이거들을 이끄는 족장과 미노타우로스의 족장이었다.

“여 밀크! 아니지. 대족장님”

“도칸 힘들면 그냥 이름 불러도 좋아.”

“아니지 그러 안 되지. 우리 여신님의 축복을 받은 대족장님의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불러서야 쓰나. 그런데 이거 말투가 참 고치기 힘드네.”

“이해해. 천천히 고치도록 해봐. 아니면 너도 그냥 칸젤라처럼 반말을 해도 상관은 없어.”

“그래. 그래도 호칭은 고치도록 할게. 그럼 나도 바로 돌아가 보도록 할게. 가서 우리 부족들 모조리 이끌고 와야지. 렘톤 마을 재건은 우리가 와서 도와줄 테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하고 있으라고. 아무렴 우리가 살아간 터전이 될 텐데 우리가 힘을 써야지.”

“후후후 갔다가 돌아오면 아마 놀라 자빠질 거다.”

“오 그래?! 이거 기대가 되는걸? 그럼 다녀올 테니까 그동안 잘 있으라고 대족장님!”

도칸에 이어 워타이거 족장도 인사를 한  자신이 이끌고  자들을 이끌고 돌아갔다. 아직 밀크와  인연이 없기에 이주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으나 그녀도 뭔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라파니를 비롯한 위도레빗들이 인사를 한 뒤 자신들의 터전으로 돌아갔다. 그들이야 원래 밀크의 부족과 가까운 곳에 있고 그 엄청난 속도를 생각하면 금방 왕래할 수 있으니 딱히 이주의 뜻은 밝히지 않았다.

“대족장님 부르셨습니까?”

“아. 퍼슨. 그래 렘톤 마을에서 에스타 상단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텐데 거래처는 생각해 봤어?”

“홀스타우로스의 우유와 치즈, 그리고 홀스타 주는 어디서든지 사려고 눈에 불을 켜는 물건들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 첼슨 왕국은 또 우유 품절 현상을 겪고 있을 겁니다. 아니 이번에는 치즈까지 동나 그 혼란이 더 심할 수도 있겠지요.”

과거 첼슨 왕국은 다음 대 왕권을 가지고 왕자끼리 다툼을 하다가 에스타 상단을 잘못 건드려서 홀스타우로스의 우유가 모습을 감춘 적이 있었다. 이놈의 1 왕자는 그런 가까운 과거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 또 에스타 상단을 건드렸다.

“흠, 그렇겠네. 그건 그렇고 이제 물건들 찾아와야지?”

“예? 아…. 그것들은 그냥 잊기로 했습니다. 자칫 그것들을 되찾아 오는 과정에서 왕국과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대족장님께 괜히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 그냥 포기하도록 하지요.”

“그럴 필요 없어. 왕국에  문서 전달해.”

“네? 음…. 이, 이건!”

밀크가 준 문서를 읽어본 퍼슨은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 그만큼 그가 내민 문서는 굉장히 위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왕국으로서 정말 풍전등화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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