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110화, 파달로크의 최후
파달로크가 밀크와 얼굴을 마주했을 때 성국 일행들은 이미 포위를 당한 상태였다. 발이 빠른 켄타우로스와 위도레빗 그리고 엘프가 숲을 돌아 그들의 뒤를 점했고 미노타우로스와 오거, 홀스타우로스 등의 부족들이 정면에서 그들을 압박했다.
주변을 돌아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파달로크, 그는 창을 들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젊은 홀스타우로스 밀크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아인 따위가 땅을 지배한다고? 웃기는 소리로군. 아하- 이거 반가운 얼굴도 있군그래?”
밀크의 뒤를 지키고 있는 칸젤라를 보고 한 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본 그녀는 잠잠히 분노를 다스렸다. 여기서 괜히 흥분해 보았자 될 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그녀였으니 말이다.
“그래. 이렇게 천한 아인들을 데리고 몸소 항복하러 온 것인가?”
“눈이 있으면 상황을 좀 봤으면 하는데? 어디가 항복하러 온 상황이라는 거지? 너흰 포위되었다.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뭐라?! 크하하하하!!!”
실로 유쾌하다는 듯 웃어넘기는 파달로크, 그는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싸늘한 미소를 내보이며 밀크에게 으르렁거렸다.
“적당히 까불어라. 아인. 기습하여 우리 성국의 병사들을 조금 쓰러트렸다고 기고만장해 있구나. 성국 최고의 성기사인 내가 있는 한 너희야말로 항복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도 지휘관이라고 있는 부대라니…. 그것도 헤베나에서 자랑하는 1 기사단이라던데 지휘관이 이 모양일 줄이야.”
“뭣이!”
아인에게 모욕을 당한 것이 기분 나쁜 것일까? 항복하라는 밀크의 말은 웃어넘기더니 모욕만큼은 참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너희 성국이 자랑하는 정예 병사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다. 네 옆에 붙어 있던 부관이라는 여자도 이미 포로가 되었으니 너희도 항복해라. 그렇다면 적어도 목숨은 살려주도록 하지.”
“필요 없다! 감히 이 몸을 농락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아인! 흐읍!!!”
순간 힘을 모은 파달로크의 주변으로 아지랑이 같은 흰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매우 순도 높은 백마법의 마력이었다.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 빛무리는 곧 주변을 잠식하며 점점 퍼져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본 칸젤라는 얼굴색이 변하더니 급히 밀크를 불렀다.
“대족장 저것이 바로 마족의 힘을 억제하는 성기사들의 기술이다. 우리 같은 반마족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저 마력에 잠식당하기 때문이지.”
“그렇군. 하지만 아까도 보았겠지만, 우리에겐 이미 저 백마법을 억제할 방법이 있지.”
밀크의 말이 끝나자 어디선가 뿜어져 나온 정순한 마력이 파달로크가 일으키는 마력을 향해 휘몰아쳤다.
파달로크는 그 정순한 마력에 놀라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의 마력을 끌어 올렸지만, 백중지세를 이루던 두 마력의 싸움은 파달로크의 패배로 끝이 나고 말았다.
“크헉!”
속이 뒤틀리는 기분에 파달로크가 신음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몸 상태를 확인하던 그는 자신의 주변만 감싸고 있는 자신의 마력을 보고 분노한 표정이 되었다.
“이 아인놈! 네놈이 한 짓이더냐! 이건 이단이다! 감히 성국이 아닌 곳에서 신성한 신의 마력을 퍼트리다니! 그것도 유일신 파빌로님이 아닌 악신의 기운을 사용하다니! 이 이단놈!!!”
“누구 마음대로 이 분의 기운이 악신이란 것이지? 이분은 과거 홀스타우로스와 미노타우로스를 다스리던 여신 베라밀프님이다. 너희야말로 인간이면서 그저 신이라고 우상 숭배를 받던 자를 섬기면서 진짜 신의 기운을 악신이라 부르다니. 너희야말로 이단이 아닌가?”
“그 입 닥쳐라!”
후웅!
말로는 안 되겠는지 검을 들고 달려나가는 파달로크 그러나 그 검은 밀크의 앞으로 나선 칸젤라의 대검에 막혔다. 잠시 힘을 겨루던 두 사람은 파달로크과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흥! 오거년 넌 다음이다. 저 이단의 주구를 먼저 처리한 뒤 천천히 죽여주마.”
“미안하지만, 이분에게 가기 위해서는 일단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
눈을 부릅뜬 칸젤라는 그대로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엄청난 힘에 바람압력이 일어났고 파달로크는 그 바람압력에 눈가가 시릴 정도였지만, 어찌어찌 자신의 검으로 칸젤라의 대검을 받아내고는 다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이년!!!”
“흥! 그 알량한 신성 마법이 없으면 고작 이 정도인가? 몸의 단련은 전혀 하지 않았군.”
확실히 파달로크가 밀리는 느낌이 강했다. 몸집에서부터 이미 파달로크보다 두 배 이상 칸젤라 쪽이 컸고 힘도 그녀가 훨씬 강해 보였다. 그나마 파달로크는 인간 같지 않은 힘으로 그녀의 검을 버텨냈으니 이것 역시 신성력의 힘일 것이다.
주변을 잠식하던 신성력이 사라진 것이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신성력은 그대로였다. 아마 저 힘이 그의 능력을 강화해 주는 것이리라.
“하…. 너희 같은 아인 따위 신성력이 없어도 충분하다! 더러운 반마족의 피를 오늘 내가 정화하리라!!!”
다시 둘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이 대격돌을 보면서도 그를 따르던 성기사와 병사들은 쉽사리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뒤에서는 엘프와 위도레빗 그리고 켄타우로스가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싸움의 승패는 이 대결에 달려 있었다. 적어도 이곳에 모인 성국의 인원들은 그리 생각했다. 파달로크가 저 아인 오거년을 죽이고 자신들을 이끌어 이 난국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점점 산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처음 그녀와 검을 마주친 순간 알았어야 했는데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평소 아무것도 입지 않고 나신으로 살아가는 야만 종족인 오거가 가슴과 사타구니뿐이지만 갑옷을 착용했다는 것도 인지했어야 했는데 밀크와의 말싸움으로 머리에 피가 쏠리는 바람에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저번 싸움에서 자신이 두 동강으로 잘라 주었던 대검 대신 들고 있는 그녀의 대검이 매우 단단했다. 어지간한 타격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정도였으며 내려칠 때마다 그 엄청난 무게감 때문에 손목이 시큰할 정도였다.
그녀가 착용한 갑옷과 대검은 모두 밀크가 제작한 적이다. 칸젤라는 오거다 보니 몸에 뭘 걸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여 겨우겨우 합의점을 찾은 것이 이비키니 모양의 방어구였으며 검과 방어구 모두 명작으로 탄생했다.
황금 손잡이에 파란 보석이 박혀있는 이 대검은 아예 노리고 제작한 대검이었으며 그 이름 또한 발뭉이라고 지었다. 과거의 세상에서 그가 유일하게 즐길 수 있었던 여가생활인 소설책 읽기 각종 판타지부터 시작하여 영웅들의 신화속 이야기가 적힌 소설이 그의 주 관심사였다.
지크프리트의 애검으로 상처라는 뜻을 가진 대검, 검신에는 검은 흑강철을 사용했으며, 전체적인 디자인은 묵직하고 투박하지만, 진중한 느낌이 강한 검이었다. 능력으로는 착용자의 능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검의 힘이 증폭되는 단순하다 싶은 효과였지만, 그 증폭의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밀크가 검을 휘둘렀을 때는 그저 조금 좋은 검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칸젤라가 검을 휘둘렀을 때는 마치 그녀의 무기인 양 그야말로 엄청난 바람의 압력을 동반한 무식한 휘두르기가 이어졌다. 무게감을 상당히 느낀 밀크와는 달리 너무도 가볍다는 것 또한 이상적이었다.
방어구의 경우 그냥 생각 없이 비키니 아머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그 뜻을 모르기에 그냥 그렇구나 하고 착용한 느낌이랄까? 뭐 칸젤라는 처음에는 뭔갈 입는다는 것이 별로 마음에 안 든 모양이었는데 착용감이 제법 나쁘지 않아서 자신이 입기로 하였다.
비키니 아머는 확실히 면적이 적어 방어력은 형편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다른 쪽으로 보조를 해주었는데 오거 특유의 둔하지만, 위협적인 움직임을 더욱 빠르고 민첩하게 바꾸어 주었다. 칸젤라가 말하길 몸이 날아가는 듯하다고 표현하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저 날뛰는 오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칸젤라의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몸이 작아서 날렵할 것 같은 파달로크가 오히려 속도 면에서 칸젤라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웃!!!”
그리고 힘에서도 이미 상대가 되지 않으니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다. 비겁하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좋은 무기와 방어구도 결국에는 사용하는 사람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물건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칸젤라는 그야말로 무기와 방어구가 몸과 하나가 된 듯 그것을 확실히 이용하며 자신의 실력을 끌어내고 있었다. 오거 용사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은 경이로운 장면이다.
“크아아아! 까불지 마라. 아인년아!!!”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난 파달로크는 기합을 터트리며 신성력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그를 감싸고 있는 흰 빛이 더욱 강렬해졌지만, 외부로 더 뻗어 나오지는 못하였다. 베라밀프의 여신상이 그것을 억제하고 있다.
신성력을 모조리 쏟아붓고 있는지 움직임이 매우 빨라지고 실린 힘도 강해진 듯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칸젤라의 움직임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분노에 몸을 맡기며 위협적으로 공격해오는 파달로크의 모습에 칸젤라는 이런 자에게 과거 패했다는 생각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바로 마음을 바꿔 먹으며 이것은 모두 위대한 밀크 대족장의 힘이라고 다시금 마음에 새겨 넣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파달로크는 자신의 반마족으로서의 힘을 억제하였을 것이고 자신은 이 발뭉과 비키니 아머를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즉 지금 자신이 그를 어린아이 다루듯 상대하는 것은 하나도 둘도 모두 그의 덕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를 따르리라. 그것이 곧 우리 종족을 보존하는 길이야.’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파달로크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전력의 차이는 극명하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달로크의 왼손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크악!!!”
‘내 아래로 태어나는 모든 오거들은 앞으로도 그를 따르리라.’
촤악!!!
이번에는 오른손이었다. 검을 쥐고 있던 손이 그래도 뭉텅 잘려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절단면이 너무도 매끄러워 피가 잠깐 튀어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으아악!!!”
순식간에 두 팔이 모두 사라진 파달로크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잘린 팔 절단면을 보며 울부짖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에게 휘둘러지는 칸젤라의 발뭉은 멈추지 않았고 그대로 그의 두 다리를 앗아갔다.
‘한 가지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바닥에 쓰러진 파달로크의 위애서 내려다보는 칸젤라, 독이 가득 오른 파달로크는 그런 그녀를 보고 저조를 퍼붓고 욕이란 욕은 모두 퍼부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무심하게 발뭉을 내려찍어 그의 심장을 찔러버리는 칸젤라, 고통에 펄떡거리던 파달로크는 이내 잠잠해지려고 했고 그것으로는 아직 오거들의 복수가 완벽하지 않은지 그녀는 그대로 검을 올려 그의 심장부터 머리까지 깔끔하게 반으로 잘라 버렸다.
‘그의 피를 이어받은 오거를 낳고 싶군.’
왠지 그라면 오거와 오거가 아니라도 순수한 혈통을 가진 오거가 태어날 것만 같았다. 혹시 아닐지라도 그의 피를 이었다면 강한 용사가 되어줄 것이다. 그의 핏줄에게 다음 대의 오거들의 운명을 맡겨보고 싶었다.
파달로크가 허무하게 죽자 성기사들과 병사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 무릎을 꿇거나 무기를 버리며 항복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흉수는 이미 죽었어. 우리 땅에 더러운 피를 더 뿌릴 필요는 없지. 모두 잡아가서 노예로 부린다.”
“흥- 그거 재미있겠군. 인간을 우리가 역으로 부리다니 말이야.”
“대족장님!”
전투가 모두 끝나자 그들에게 달려오는 라파니의 모습이 보였다. 산 아래에 있는 그들의 진형으로 몰래 보내놓은 기습부대를 지휘하는 임무를 맡은 그녀였는데 일이 잘 끝난 것인지 밀크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온 모양이다.
“기쁜 소식입니다. 그들에게 잡혀 있던 오거와 서큐버스들을 구해냈습니다.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아!!!”
칸젤라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눈물까지 흘렸다. 많이 부드러워진 그녀의 마음은 과거 눈물을 참고 몸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힘들어하던 그녀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기쁨을 표출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준 밀크는 그녀와 함께 산에 올라오고 있는 상처투성이의 오거와 서큐버스들을 맞이해 주었다.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살아남아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다행이었다. 오거는 열 명 서큐버스는 약 스물이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모두 고마워!”
“용사님!”
오거들은 그들의 지배자인 칸젤라를 보자 드디어 해방이라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리고는 모두 힘이 다 빠진 듯 그 자리에 쓰러졌지만, 고생하던 그녀들이었으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성국을 물리친 밀크는 포로로 잡혀 있던 이들을 구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후처리를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