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9화 〉109화, 무너진 성국의 선봉 (109/177)



〈 109화 〉109화, 무너진 성국의 선봉

방어벽이 깨져 혼란에 잠긴 그들에게 어김없이 투창이 날아들었다. 방어할 수단도 없이 멍하게 멈춰버린 그들은 좋은 표적에 지나지 않았고 홀스타우로스들이 나무와 숲 사이에서 던져대는 무수히 많은 투창에 당한 적들은 수수나무처럼 쓰러졌다.

“아악!!!”

“습격이다! 방패올려! 억!!!”

“크아악!!!”

공격당한 위치만 다를 뿐 전황은 어제와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성기사들은 마법이 파훼 당한 상태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려 투창을 피하거나 피하고 쪼개 버리는 등 열심히 선전했지만, 그들의 마법만 믿고 있던 일반 병사들에겐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1차 공격으로 적들의 혼을 빼버린 홀스타우로스들의 투창이 끝나자 이번에는 화살, 바늘, 그리고 석궁의 볼트가 날아들어 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무기들의 향연에 적들은 그야말로 공황 상태가 되어 도망치기 급급하였다. 그러나 적 병사들은 도망도 함부로 칠  없었으니

촤악!

도망가려고 하는 병사 한 명의 목이 그대로 날아올랐다. 피가 분수처럼 튀었고 자신이 죽었는지도 깨닫지 못한 것인지 공포에 빠져 도마이던 표정 그대로 굳어 있었다.

“성국의 정예 병사가 이딴 일로 도망을 치다니! 만약 이 이후로도 도망치려는 놈은 내가 즉결 처분하겠다!”

산에 올라가자니 적들의 공격이 거세고 뒤로 물러나자니 같이 따라온 성기사들이 독전관 역할을 하며 그들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성기사들에게 조련이란 조련을 확실하게 받은 병사들은 적을 향해 달려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누군진 몰라도 저항이 제법 거세군.”

최후방에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을 파달로크 대신 가장 선두에 서서 병사들과 같이 진군 중이던 쥴라, 그녀의 방패는 날아온 화살로 이미 벌집이 되어 있었다. 성수로 축복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쯤 방패는 흔적도 없이 박살 났을 것이다.

날아오는 투창을 피하고 위험에 빠진 병사들을 구해주면서 천천히 어떻게든 진군하고 있지만, 전방에서 계속되는 공격에 밀려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이대로는 전멸을 면할 수 없겠어.”

“부단장님! 이대로 나아가는 것은 무모합니다. 일단 뒤로 물러나서 전열을 가다듬은 연후에 다시 오시죠!”

“병사들의 피해가 심합니다. 겁먹은 자들이 너무 많아서 목을 베는 것으로도 통제가 안 될 정도입니다.”

성기사들의 말에 조금씩 마음이 흔들려가는 쥴라, 그러나 지금 돌아가면 뒤에서 기다리는 파달로크가 무슨 말을 할지 안 봐도 뻔하였다.

아니 어쩌면 당장에 패배한 것으로 일을 꾸며 자신을 강등시키거나 전투 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벌을 주며 모욕을 줄 것이라 생각이 들자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타고 있던 말의 허리를 박차며 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길을 뚫겠다. 죽고 싶지 않다면 내 뒤를 따라 진격하라!”

용감히 공격해 들어가는 쥴라, 그녀는 숲 안으로 말을 타고 들어가자마자 검을 휘둘렀다. 정면에는 아직 몸을 빼지 못한 홀스타우로스 여전사가 있었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목을 베어버리려던 쥴라의 검은 누군가 내민 검에 가로막혔다.

카앙!

맑고 고운 소리와 함께 검과 검이 부딪혀 공명했다. 그리고 잠시 힘겨루기를 한 두 검의 주인 중 쥴라가 말에서 튕겨 나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큭”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 쥴라는 자신의 검을 막아낸 존재를 찾아 시선을 돌렸다. 다른 홀스타우로스보다 몸집이 머리 하나 더 큰 강인해 보이는 여전사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강한 우유빛을 머금은 명검 쉐이크를 들고 있는 린다였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검을 겨누는 그녀의 모습에 강렬한 기합을 느낀 쥴라는 긴장을 하면서 검을 잡고 그녀를 겨누었다.

“넌 누구냐!”

“인간들을 언제나 그놈의 이름이 궁금한 모양이지?”

“뭐라?!”

“떠들 시간 있으면 덤벼라. 감히 대족장님이 다스리는 이곳을 침범한 죄 그 몸에 새겨주마.”

“오만한 년! 하압!!!”

쥴라는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어차피 홀스타우로스는 반마족이 아니기에 자신의 신성력으로 능력을 줄일 수도 없는 존재이다. 신성력을 사용할  있어도 어차피 순수한 검술로 그녀와 승부를 봐야 했다.

흉흉한 기세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성기사로서 열심히 수련해온 자신이 그녀의 밑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빠르게 검을 휘둘러 선공을 가하였다.

챙!

머리와 허리를 노린  번의 빠른 검격, 그러나 린다는 그런 검의 궤도를 보고 하품이 나올 정도로 간단하게 막아내 버렸다. 쥴라는 검이 막히자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다음 공격을 계속 이어 나가며 맹공을 펼쳐냈다.

캉! 캉! 채챙!!! 카가가가각!!!

눈 깜짝할 사이에 불똥이 세 번 튀었다. 린다의 오른쪽 어깨와 가슴 그리고 다시 머리에서 튄 불꽃의 뒤에는 어김없이 두 사람의 검이 부딪쳤다. 그리고 다시 가슴에서 만난 두 검은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

촤앙!

그러다 결국 누군가의 검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을 놓친 것은 쥴라였다. 그녀는 허망하게 날아가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완전히 무방비한 모습으로 양손을 하늘로 올린 자세를 잡고 있었으며 다음 순간 위에서 아래로 내려질 린다의 검을 보며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여기서…. 아인 따위에 죽다니…. 이렇게 허망할 수가….’

그러나 기다리고 있던 검은 내려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눈에는 그녀가 검을 천천히 회수하여 검집에 넣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는 검을 놓쳐 무방비해진 그녀를 향해 두 주먹을 쥐고 빠르게 달려들어 주먹을 뻗어왔다.

빡!

“큿!!!”

다행히 눈에 보이는 공격이라 팔로 막을 수 있었지만, 어찌나 강한 일격인지 온 팔이 다 떨려왔다. 반격하기 위해 발을 차올리자 린다는  발을 자신의 팔로 막으며 계속 육탄전을 걸어왔다.

린다가 무릎을 들어 올려 그녀의 복부를 가격하려 했다. 그러자 쥴라역시 그에 반응하여 양손으로 그 무릎을 막아 단단히 방어를 올렸지만, 엄청난 홀스타우로스 힘에 인간이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퍼억!!!

“케핵!!!”

묵직한 타격에 쥴라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파달로크의 주먹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엄청난 충격에 눈앞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쓴 물이 올라오는 느낌에 겨우 속을 다스려 참아내 보지만 다음 순간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린다의 얼굴을 보고는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쿵!

박치기였다. 야만스러운 방법이라 속으로 욕을 하고는 있지만, 효과는 탁월했고 쥴라는 뇌가 흔들리는 고통을 느끼며 한쪽 코에서 흘러내리는 코피와 함께 그대로 땅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녀의 처절한 사투를 본 병사들은 믿었던 쥴라의 패배에 모두 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공포는 서서히 전염되기 시작했고 점차 항복을 외치는 자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있었다.

“항복하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참수하겠다!”

“돌격해라 돌…. 악!!!”

병사들을 다그치는 성기사들에게는 투창과 화살, 그리고 독바늘이 날아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병사들은 너나  거 없이 모두 무기를 버리고 바닥에 엎드리며 항복을 하였다.

“큭…. 윽….”

고통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쥴라는 머리에 손을 대고는 천천히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려오는 엄청난 패배감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강대한 적을 쳐다보았다.

“항복해라.”

린다의 말에 쥴라는 마음이 꺽일뻔 했지만, 지금까지 무시하고 천시해온 아인에게 항복을 할 수는 없기에 독기가 가득한 눈을 하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천박한 아인 놈에게 항복하느니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런가?”

두 번의 설득은 없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쥴라의 목을 잡고 들어 올린 린다는 그녀의 목을 서서히 조르며 무서운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켁! 큭!이…. 차, 차라리 목을…. 끅!”

“아인들을 수도 없이 죽여온 너희가 죽을 방법을 고를  있다고 생각했나? 어리석은 인간 년아.”

“끄윽….”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는 린다의 손에 공중에 대롱대롱 떠서 그녀의 양 팔목을 잡아 저항을 해보지만, 힘에서부터 차이가 너무 극명하여 소용이 없었다. 산소가 부족해지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점점 의식이 저 나락의 아래로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왔다.

‘내, 내가 이런 추한 최후를….’

“그 정도만 해 린다.”

의식이 사라지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들려온 미성의 목소리, 마음이 따듯해질 정도로 안정감이 드는  목소리를 들으며 쥴라는 결국 기절했다.

린다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고는 기절한 듯 보이는 쥴라를 내려주며 뒤를 돌아보고 인사했다.

“대족장님 오셨습니까. 아직 전투가 진행 중이라 위험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밀크를 걱정하는 린다, 밀크는 그런 린다의 걱정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사로잡은 포로들과 적의 대장급으로 보이는 여성을 포박하라 지시했다.

“아인 멸시 사상이 골수까지 차오른 년입니다.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 더 안전할까 싶습니다만….”

“남자는 몰라도 여자라면 내가 잘- 설득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

“아….”

밀크의 말을 알아들은 린다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밧줄을 풀어 쥴라의 몸을 단단히 묶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쥴라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린다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운이 좋구나. 성기사년, 대족장님의 은혜로 그 목숨이 부지되었으니 그분을 위해 죽을 때까지 봉사하거라.”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린다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잘게 몸을 떨어오는 쥴라, 아무래도 방금 호되게 당한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칸젤라.”

쥴라를 포박하여 전사들과 다른 인간들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가는 린다의 뒷모습을 보며 밀크가 칸젤라를 부르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대답을 했다.

“여기 있다 대족장.”

“2차는 우리가 공격을 나설 거야. 적의 대부분은 사로잡혔고 적 대장을 지키는 병력은 이제소수야. 중턱에서 좀 더 위로 올라오게 되면 여신상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니 그곳에서 일족의 복수를 하라고.”

“고맙다. 내 그놈의 목을 반드시 베어내어 죽어간 우리 일족들의 복수를 하겠다.”

대략 포로로 삼은 인원이 삼백을 넘었다. 이 정도면 일손으로는 충분할 터. 이 이상 포로를 늘릴 필요는 없으니 남은 소수의 인원은 확실하게 죽이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칸젤라를 필두로 한 각 부족의 정예 전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적들이 다가오는 것을 대기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파달로크가 이끄는후발대가 산 위로 올라왔다. 처참하게 죽어 나자빠진 아군의 시체를 본 이들 중 동요하지 않는 자는 파고들 로크 본인뿐이었다.

“흥. 그래 절반 이상은 죽었으니 나머지절반은 지금쯤 저 이단들을 모조리 주살하였겠군.”

“그, 그럴 겁니다. 쥴라 부단장께서 열심히, 큭!”

얼굴에 꽂히는 묵직한 주먹에 성기사는 바로 대답을 달리했다.

“죄송합니다. 파달로크 단장님의 작전이 정확하게 먹혀들어 갔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단장님.”

“다리나 벌리는 것밖에 모르는  알량한 년은 내가 이런 전공을 세울 수 있게 배려한 것을 고마워해야  것이다. 흥…. 그러나 피해가 너무 크군. 이참에 그년을 다른 곳으로 좌천시키든지 해야겠어.”

“…….”

성기사가 대답이 없었지만, 파달로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막 중턱을 지나 밀크의 마을로 향하는 산길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성국의 후발대는 점점 늘어만 가는 아군의 시체를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단장님. 아무래도 피해가 너무 큽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절반이 채 될지 모르겠군요. 이대로 내려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합니다. 아니면 저희가 먼저 가서 상황을 살펴볼 테니 그 뒤에 오심이 어떠십니까?”

“흥! 나 파달로크 사전에 그런 겁쟁이 같은 행동이 용납될 줄 아느냐?! 딴소리하지 말고 따라와라! 이랴!”

성기사들이 간청하는 말을 무시하며 말을 박차 앞으로 나서려는 파달로크의 정면으로 엄청난 속도의 투창이 날아왔다. 그 투창을 막아낸 파달로크는 힘에 밀려 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단장님!”

“단장님!!!”

깜짝 놀라 달려오려는 성기사들을 손으로 제지한 그는 자신이 막아낸 창이 땅에 박혀 부르르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여간내기가 아님을 직감하며 긴장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땅에 박혀있던 창이 떠는 것을 멈추고는 그대로 스스로 날아올랐다.  모습에 주변을 가득 채운 성국의 인원들이 놀라자 그것을 비웃어 주기라도 하듯 그대로 두둥실 날아가 누군가의 손에 안착했다.

“넌 누구냐.”

“이 땅의 지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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