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107화, 시작된 싸움
다음 날 아침
밀크 부족의 마을이 있는 렘톤 마을에서 멀지 않은 산, 그곳에서 헤베나 성국의 병사들의 포위 섬멸 작전이 시작되었다.
뒷동산 정도의 작은 산도 아닌데 병사들을 넓게 풀어 포위 섬멸을 하다니 일순 무모한 전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인간이자 성국이 자랑하는 정예 병사들에게는 이 정도 일은 식은 죽 먹기라는 자부심이 남달랐다.
그렇게 파달로크의 명령을 받은 구백 명의 병사들은 뒤에서 그들을 산 위로 밀어 넣는 독전관 임무를 수행하는 성기사들의 압력을 받아 꾸역꾸역 산 위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포위망을 좁힌다!”
“쥐새끼 한 마리도 놓쳐서는 안 돼! 한 마리라도 빠져나갔다간 그 화는 우리가 받는다!”
“공격!!!”
그런 병사들 틈에서도 또 지휘관 급의 병사들이 지시를 내리니 가장 말단의 병사들을 죽을 맛이었다.
쉴 시간도 없이 몸이 축축 처지고 호흡도 힘든데 산에 올라가며 주변 경계까지 해야 하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니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 바로 병사였기에 하는 수가 없었다.
후웅---!!! 퍽!!!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소리에 놀란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가 돌아갔고 그곳에서 투창에 머리가 완전히 박살나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 자리에 쓰러지는 자신의 동료를 볼 수 있었다.
“히, 히익!!!”
“이, 이게 뭐야!”
“어디서 날아온 거야!”
자칭 정예라 칭해지는 성국의 병사들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했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병사들에게 공포는 빠르게 전염되었고 웅성거리며 주위를 중구난방으로 살피기 시작한다. 군의 사기가 이 한방에 덜어져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퍽!!! 퍼걱!!!
그 와중에 다시 날아온 투창에 두 명의 머리가 또 터져나갔다.
푹!!! 퍼벅!!!
누군가는 창에 몸이 꿰뚫려 날아오는 힘의 방향으로 그대로 공중에 떠서 날아가다가 투창이 나무에 박히는 것과 함께 멈추어 숨을 거두었고 또 누군가는 방패로 창을 완벽하게 막았으나 그 방패가 관통당해 가슴이 찔려 숨이 멎었다.
“으아아악!!!”
“어디냐! 어디서 공격하는 거냐!!!”
“사, 살려줘! 난, 주, 죽기….”
퍽!
“컥!”
죽기 싫다면서 창을 들고 오들오들 떨고 있던 병사마저 죽음을 맞이했다. 그나마 살아남아 있던 지휘관급 병사는 살아남아 있는 다른 병사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방패 들고 물러나! 미친놈들아 여기서 이렇게 서 있으면 다 죽…. 는…. 으…. 모, 몸이….”
투창 공격이 겨우 먿었다고 생각하고 병사들을 독려하려 했지만, 도중에 그는 따끔 하다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통제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야 했다.
훅!
그뿐만 아니라살아남아서 투창이 타격하기 힘들데 나무 뒤에 숨거나 바닥에 엎드린 자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은 아주 고요하고 싸늘한 죽음이었다.
“생존자는?”
“아무도 없어.”
인간들이 죽은 곳에서 멀지 않은 위치, 모습을 드러내는 홀스타우로스와 위도레빗의 전사들은 인간들을 살펴 생존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후퇴한다.”
“알았어. 다들 후퇴!”
위도레빗과 홀스타우로스, 누가 위고 아래라는 개념이 없이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나누더니 또 그곳에서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인간들의 관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습격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마수의 발톱에라도 당한 건지 사지가 찢겨나간 채 발견된 병사들도 있었고 어느 곳에서는 무거운 둔기로 내려쳤는지 곤죽이 되어있는 병사들도 있었다.
전선이 넓게 벌어져 있던 터라 헤베나 성국의 병사들은 대처를 빠르게 하고 또 소식을 뒤로 전하기 힘들었다. 누군가는 뒤로 빠져나가야 했는데 전선이 넓어지고 산을 오르느라 지쳐 있는 와중에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습격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초전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2차, 3차로 투입을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이 산에 올라가면서 본 것은 동료들의 시체로 이루어진 지옥도의 한 장면이었다. 결국, 지휘관급 병사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빠르게 산에서 내려와 피해를 줄일 수는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1차로 투입된 100명 이상의 병사들 피를 산에 뿌린 뒤였다.
막사 안에서 쥴라의 보고를 받고 있던 파달로크는 그 보고가 거의 끝나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대뜸 쥴라 뺨을 쳐올렸다.
“큭….”
건틀릿을 끼고 있던 파발로크였기에 쥴라의 볼은 그대로 부어올랐다. 입 안쪽이 충격으로 터졌는지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쥴라에게 파달로크가 으르렁거렸다.
“지금 그걸 보고라고 올리고 있나?”
“하, 하지만 피해 보고는 제 임무이기에….”
“아직 전투가 다끝나지도 않았는데 피해 보고를 하다니 자네도 기강이 다 빠졌군.”
퍽!
이번에는 단단한 쇠갑옷으로 무장된 발길질이 이어졌다. 복부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쥴라는 눈을 크게 뜨고 고통에 힘겨워했다. 다리가 풀려오는 감각을 느끼며 가까스로 힘을 줘서 꼴사납게 쓰러지는 꼴은 면하였다.
퍽!
그러나 파달로크의 발길질은 그로부터 세 번이나 더 이어졌다. 그것도 정확히 그녀의 복부만을 노린 타격에 마지막 발길질을 받았을 때 쥴라는 배를 부여잡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땅을 디디고 있었다.
“병사들 집합시켜라. 올라갔다가 자기들 멋대로 내려온 녀석들의 목을 베겠다.”
“…….”
“대답이 없군. 부단장.”
“알겠… 습니… 다.”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나가는 쥴라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러나 그녀는 상관에게 대들면 안 된다는 성국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어차피 이런 일이 하루 이틀 있던 게 아니라 이젠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성국에서 공부하고 훈련하던 시절이 더 밝게 미소지었던 그녀는 군부에 올라 이 남자를 상관으로 만나자마자 얼음과도 같은 차가운 얼굴이 되었다.
용감하고 자애로운 제1 성기사 파달로크, 주변에서 부르는 그의 이명에는 모순이 참 많았다. 성국의 1급 시민들에게만 자상하고 자애롭다고 평을 내려야 좀 더 그에게 어울리는 이명이 되리라.
자신의 명예와 공을 위해서는 3급 이하의 시민들로 구성된 병사들의 목숨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아군과 적군의 피가 호수를 이루는 공포의 대명사이자 광적인 신 추종자인 파달로크, 이것이 지금까지 그녀가 보아온 자신의 상관에게 어울리는 이명이었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파달로크가 내린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스스로 검을 뽑아 들고 도망쳐온 지휘관급 병사들의 목을 손수 베어버렸다.
공포로 마비되어 완전히 얼어버린 병사들의 중앙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 쥴라는 단 한마디만 하였다.
“올라가라.”
그리고 그녀의 말은 병사들의 얼어붙은 몸을 공포로 지배하여 움직이게 했다. 죽기 싫은 표정이 된 병사들은 뒤에도 죽음, 앞에도 죽음이라는 두 가지 공포에 완전히 질린 상태로 반쯤 미쳐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 위에서 아래가 잘 보이는 부분을 통하여 이같은 모습을 정찰하고 있던 라파니는 빠르게 발을 놀려 밀크에게 가 이를 보고했다.
“파달로크라고 했나? 왜 이렇게 무모하게 나오는 거지?”
그의 물음에 옆에 있던 퍼슨이 대답했다.
“듣기로 그는 자신의 명예와 공을 위해 병사들의 희생 따위는 나 몰라라 하는 인물입니다. 어차피 제대로 된 전투는 성기사와 자신이 직접 하니 그동안 우리의 힘을 빼놓는 용도로 사용되는 이른바 화살받이라는 거죠.”
“그렇군. 병사들만 안 되었어. 하지만 저들은 아무리 명령이었다고 해도 같은 인간들을 학살한 용서를 받지 못할 놈들이야. 일말의 자비심을 주어서는 안 돼. 그 작은 자비심이 전투에서 우리의 피해로 직결될 거야.”
“예 대족장님.”
퍼슨은 주변 정세에 밝고 생각이 깊어 밀크의 옆에서 참모 역을하는 중이었다. 물론 군사적인 측면은 그가 문외한이라 거의 도움이 안 되었지만, 적들 지휘관에 대한 정보는 그를 통하여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라파니.”
“예 대족장님.”
“저렇게 미친 듯이 산을 타고 올라와 주는데 우리가 굳이 피해를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 전투 인원들 뒤로 물려, 산 중턱이 아니라 마을 인근까지 저들을 유인해서 일망타진한다. 함정도 모조리 사용해.”
“알겠습니다.”
몸을 날려 다시 전선으로 이동하는 라파니, 어차피 체력이 뛰어나고 발이 빠른 그녀들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인간들이라면 1시간 이상 걸릴 정보의 전달은 위도레빗들의 존재로 인하여 빠르게 주변으로 전달되었다. 전투를 위해 산 중턱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은 모두 마을 인근의 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산을 타고 올라오던 인간들은 중턱쯤에서 습격이 있던 기억을 되살려 철저한 방어 태세를 취하며 천천히 산을 올랐고 끔찍한 시체를 마주하면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그러나 아무리 올라가도 습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오히려 초조해지기만하는 것은 성국의 병사들이었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습격이 이루어지면 맞서 싸우기라도 하련만 언제 어디서 창칼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미지의 불안감은 그들에게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큰 부담을 주고 있었다.
“헉헉….”
“헉….”
“후욱…. 큽…. 훅”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음에도 긴장감 때문에 호흡이 이상하게가파르고 가을인데도 땀이 줄줄 흘렀다.누군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로 온몸이 최고 긴장 상태에 달해 눈앞이 흐려지는 인원들도 다소 생겨났다.
파밧!!!
그때였다. 그들이 이동하다가 뭔 건드렸는데 하필 그것은 함정을 발동시키는 촉매제였다. 나무에 고정되어 있던다발의 석궁들이 일제히 발사되어 긴장 중이던 병사들의 방패를 때렸다.
“커컥!”
“스, 습…. 억!!!”
“아악!!!”
1차로 날아온 석궁이 방패를 때리자 방패를 관통하고 들어간 화살이 방패든 병사들을 쓰러트렸고 시차를 두고 발사된 2차 화살은 뒤에서 방패의 보호를 받고 있던 병사들의 연약하고 조잡한 갑옷을 찢어발기며 그들의 목숨을 거두었다.
일부러 하나라도 촉매제를 건드리면 시간을 두고 두 번째 세 번째 촉매제도 다 발동되는 방식으로 함정을 설치해 두었었다. 숲에서 인간들을 상대할 때 고도로 발달한 엘프들의 함정은 인간들의 허를 찌르는 아주 대단한 함정이었다.
“크악!!!”
“아아악!!!”
긴장해서 천천히 주변을 살피면서 걷는 것이 화근이었다. 숨어서 습격하는 자들이 있다는 일차적인 정보만 너무 맹신한 나머지 그들은 함정이 있을수도 있다는 의심을 완전히 배제해 버렸다.
샅샅이 수색하는 것은 더욱 독이 되었으니 그들이 숲 더미와 풀, 그리고 땅을 헤집기 위해 검으로 창으로 찌르고 흔들어 보는 행동에 함정의 촉매제들이 벌 때처럼 발동해버린 것이다.
그들이 서 있던 곳이 갑자기 구덩이로 변하여 무시무시한 가시가 가득한 지하로 떨어지거나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투명 마법이 해제되면서 무수히 많은 투창이 공중에서 낙하하거나. 심하면 바윗덩어리 두 개가 양쪽에서 굴러와 압사를 당하는 예도 있었다.
엘프들이 알려주어 매개체를 피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밀크 마을의 전투원들은 모두 무사했지만, 한 번 습격으로 크게 덴 성국의 병사들은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샅샅이 뒤지는 행동을 하여 오히려 피해를 보고 말았다.
“이, 이게….”
또다시 피해를 보고 내려온 병사들의 모습에 쥴라의 얼굴은 냉정함이 깨지고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일그러졌다. 피해자의 숫자는 아무리 잘 쳐줘도 이백 명 이상이었다.
“하….”
병사들이 받게 될 벌보다 이것을 보고하면서 자신이 파달로크에게 당할 벌이 더욱 두려운 그녀였다.
그러나 보고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전투가 끝나고 모조리 보고 하라고 말했지만, 성격이 지랄 맞은 그는 언제고 그 말을 번복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안 해도 혼나고 해도 혼난다면 그냥 하는 게 나았다. 적어도 나중에 하지 않았다고 책망을받으면서 더 심하게 혼나는 경우보다는 차라리 먼저 매를 맞으러 가는 것이 훨씬 벌의 강도가 약하니 말이다.
‘그래도 피해가 200 이상이라니…. 이건 각오를 해야겠어.’
저 산에 뭔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도망친 아인들이 있든지 아니면 신의 힘을 받은 이단자들이 있든지 뭔가 확실히 있었다.
그러나 놈들의 수법이 너무나 교묘했다. 처음엔 습격으로 혼을 빼두고 그 이후에는 함정을 사용해 허를 찌르다니. 아인들이 언제 이렇게 교묘하게 싸웠단 말인가.
인간 우월주의에 빠진 그들에게는 상상도 하기 힘든 고도의 전투법이었다. 쥴라는 이를 악물며 파달로크의 막사로 들어갔고 그 후 그녀가 다시 밖으로 나올 때는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큭...”
피가 흘러나오는 자신의 사타구니를 꽉 눌러 고통을 참아내는 쥴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채찍질투성이의 등과 찢어진 옷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와 음부의 피는 단단히 당했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파달로크!”
분노에 찬 작은 일갈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