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6화 〉96화, 밀크의 꾸짖음 (96/177)



〈 96화 〉96화, 밀크의 꾸짖음

“후!”

대장간 안에서 시원하게 땀을 뺀 밀크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대장간에서 나왔다. 뒤를 따라 나온 메어리와 파티마등에게 수고하라는 손짓을 해준  그곳을 떠나는 밀크의 뒤로 린다가 따라붙었다.

“밖에서 보니까 뭔가 거대한 물건을 만드시던데 뭡니까?”

“아 저거? 토템이랄까.”

“토…. 템이요?”

대장간으로 향하면서 밀크는 자신의 가이드 루에게 신성 왕국 헤베나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고 말했고, 그에 따라 루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신성 왕국 헤베나에 대한 것은 칸젤라와 릴리핀의 이야기에서 추가로 보충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우선 헤베나 왕국이 믿고 있는 신이란 존재는 사실 근거 없는 거짓입니다.]

‘헉! 그럼 우상숭배 같은 거야?’

[확실히 인간으로서 마법에 관하여 모든 것을 통달하고 이 세계에 거대한 업적을 이룩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위대하다 하여도 인간인 이상 신의 반열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행성을 창조한 신과 그것을 관리하는 하급 신들이 계시긴 하지만, 파빌로는 결코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    헤베나에서 섬기는 다른 파벌의 신들 또한 모두 인간이면서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긴 이들뿐이고 제대로 된 신을 섬기는 집단은 그 어떤 곳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마족이라던지 신성력이라던지 설명이  되는점이 너무 많은데?”

[본디 세계 창조에는 선, 그리고 악의 기운을 반씩 나누어 그 균형을 천칭으로 대조하여 만들어집니다. 이런  너무 복잡한 이야기이니 적당히 넘어가지요.아무튼, 그렇게 창조된 악의 기운과 선의 기운을 가진 생명체는 세월에 따라 인간, 아인, 마수, 마족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신성 왕국 헤베나가 신성력이라고 칭하며 발휘하는 모든 힘은, 정순한 마력을 뿜어내어 사용되는 백마법입니다. 결코, 신이 허락한 신성력이 아니지요.]

‘세상을 향해 제대로 사기를 치는 집단이라 이거지. 그렇다면 뭔가 대항할 방법이 있다는 뜻이잖아? 신에게서 받은 신성력 같은 미지의 힘이 아니라 이 세계에 존재하는 기운이란 말이니까.’

[마력을 흐트러트리는 매개체를 사용하여 마을을 방어할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마을 곳곳에 새워두는 것으로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이 몸에 걸칠 수 있는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도 좋겠지요. 백마법 또한 마법이기 때문에 마력을 억제하는 물건이 있으면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 그런 재료가 있던가?’

[이미 있습니다.]

‘뭐? 어떤 건데?’

[미노타우로스의 뿔입니다. 그들의 뿔은 마력을 흐트러트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노타우로스들은 자신의 뿔 부분으로 마법을 받아내 그 마법에 사용된 마력을 흐트러트려서 파훼해 버립니다. 다만 대단위의  마법의 경우 미노타우로스 한 명으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지요. 하지만 이것은 많은 뿔을 사용하여 만든 대형 설치물로 충분히 파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하여 루의 말대로 미노타우로스가 내어준 빠진 뿔을 대량으로 사용하여 마을 중앙에 설치할 동상을 제작하는 중이었다. 뿔로 뼈대를 만들고 그 주변을 황금으로 채운 동상을 만들어 설치해둘 생각이었는데 처음에는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다.

‘혹시 홀스타우로스의 신은 없어? 우릴 관장해 주신다거나 하는 신.’

[계십니다. 정확히는 미노타우로스와 홀스타우로스를 한꺼번에 관장하시는 여신이 계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베라밀프, 풍요, 그리고 다산을 관장하시는 여신이지요.]

‘하필이면….’

밀프라는 이름에 묘한 상상을 하다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밀크였다. 그리고는 다시 루에게  베라밀프라는 여신의 모습을 차근차근 물어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분의 모습을 설명해 드린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전달을 잘못할 수도 있으니 차라리 밀크님의 어머니인 밀리의 모습을 본떠 조금씩 변형을 주어 만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뿔과 꼬리가 없는 전라의 여성상, 베라밀프님의 몸은 밀리와 비슷하니 따로 손볼 필요 없이 그대로 본떠도 됩니다.  얼굴의 경우 항상 우아함과 기품이 넘치게 눈을 감고 계시며 포근한 미소를 짓고 계십니다. 수억 이상의 생명을 잉태하도록 유도하는 분이기에 그분의 가슴에서는 항상 신성한 모유가 흘러내립니다. 죽거나 새로 태어난 영혼들은 이 모유를  방울 마심으로써 축복을 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갑니다.]

‘음…. 아, 알겠어.  번 노력해 볼게.’

일단 뼈대의 경우는 자신이 충분히 만들  있었다. 남은  뼈대 위에 황금을 녹여 덧칠하고 그 황금을 조각하는 일이다. 그냥 황금으로만 만들면 미노타우로스의 뿔 효과를 볼 수 없고 미노타우로스의 뿔로만은 조각상을 만들기엔 너무 단단했다.

그래서 결국 뼈대는 미노타우로스의 뿔로 만들고 그 밖을 황금으로 충분히 덮은 뒤 조각을 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다만 이렇게 하고 보니 조각이 문제였다. 그는 조각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의 손재주는 이제 달인을 넘어 명인 반열에 올랐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로 통한다는 만류귀종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지요?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을 그대로 떠올리시면서 세심하게 집중하시면 분명 큰 문제 없이 성공하게 될 겁니다.]

‘루가 그렇게 말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좋아 조각을 하는 동안 날 계속 도와주길 바라.’

[제가 당신을 서포트 하겠습니다.]

‘고마워.’

그렇게 시작하여 오늘 완성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인간의 형상이 되기 전의 애매한 상태의 뼈대 모양이었다. 그러나 미노타우로스의 뿔이 너무도 단단하여 이 정도만 하여도대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바로 린다가물어본 그 정체 불명의 토템이었다.

“그냥 동상 같은 거야.”

“아하 동상을 만드시는 거였군요. 혹시 밀크님의 동상입니까? 확실히 마을 중앙 공터가 넓어져서 좋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횅한 느낌이 있었는데 잘 되었습니다.”

“아니  것은 아니고. 그 뭐랄까. 신님의 황금상이랄까?”

“신이요?”

“나중에 설명해 줄게. 나중에.”

있었는지도 모르는 지금의 홀스타우로스에게 그들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설명하면 과연 누가 믿을까. 차라리 이런 일은 루피카와 입을 먼저 맞춘 다음에 한 차례 연극을 하는 한이 있어도 모두가 믿을 만한 상황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내일이나 모레쯤 루피카를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한 그는, 진이 다 빠진 몸을 이끌고 천천히 자신의 집으로 향하였다.

“족장.”

“음? 아 칸젤라. 운동이라도 하고 온 모양이네요?”

“하하! 이곳의 전사들도 쓸 만하군. 우리 오거들도 싸움이라면 이골이 있는데. 비록 둘이서 한꺼번에 덤비긴 했지만, 나에게 대적하다니 대단해. 정말 대단해!”

아무래도 그녀는 여전사들의 훈련장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완전히 지쳐서 녹초가 다된 얼굴의 벨과 유크가 서 있었다. 그녀가 말한 둘은 그녀들인 모양이다.

대적했다고 말해주긴 했지만, 열심히 몸을 놀린 칸젤라는 땀이 좀 나긴 했지만, 상처도 없고 전혀 힘들어하지 않지만, 뒤에서 그녀를 따라온 둘은 온몸에 작은 상처와 더불어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많이 봐준 모양이다.

“아직 부족한 아이들에게 교육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칸젤라님.”

“음~ 아니야 님은 빼도 좋다고. 이젠 나도 여기 있는 밀크 족장의 부하나 마찬가지지. 말투도 조만간 고칠 테니 그…. 아! 그래 린다. 자네도 나에게 편하게 굴어도 좋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칸젤라. 그래도 저보다 연장자에 실력도 높으시니 제 존경에서 우러나오는 이 존대는 계속 유지하지요.”

“후후후~ 자네도  하는 모양인데 다음에   어떤가?”

“영광입니다. 가르침  받겠습니다.”

“후~ 기분 좋은 날이군 하하하.”

전사끼리 서로 알아본다는 것일까? 칸젤라도 린다도 서로에게굉장히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손을 자주 잡았다.

“그러고 보니 몸을 씻을 장소로 날 데려다준다고 했는데 거기가 여긴가? 여긴 족장의 저택이 아닌가?”

“아. 둘에게는 제가 그렇게 지시했어요. 내 저택에는  욕실이 있거든요. 모두가 같이 사용하는 대욕탕도 있긴 한데. 손님을 그렇게 대접할 수는 없죠. 릴리핀은 어디에 있나요?”

“그녀는 먼저 쉰다고 하더군. 그리고 서큐버스들은 애초에 잘 더러워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참 부럽긴 하더라. 후후후 이렇게 보여도 나도 여자는 여자니까 더러운 모습을 보이는 건 좀 그렇더라고. 지금도 좀 부끄럽기도 하고.”

땀이나 흙먼지로 더러워진 몸을 밀크에게 보인 것이 부끄럽다는 그녀의 말에 밀크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 미안합니다.”

“와하하하! 아니 농담을 좀 한 건데 그런 반응이라니 밀크 족장은 귀엽군.”

“아, 아하하….”

“부끄러웠을 거 같으면 온몸을 옷으로 감싸고 다녔겠지. 애초에 홀라당 벗고 다니는 년이 뭐가 부끄러울까. 안 그런가 족장? 아니 족장님.”

털털하기가 참 남들을 당황스럽게 할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 밀크는 또 새로운 캐릭터가 들어왔다고 속으로만 생각하며 그녀의 말에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들어갈까? 족장님 집에 혼자 어슬렁거리며 들어가 봤자  구조도 모르고 괜히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니 소개 좀 해줬으면 좋겠어.”

“그리하죠. 린다는 유크랑 벨을 데리고 가서 쉬게 해줘. 보다시피 오늘 훈련은  만큼 한 거 같네.”

칸젤라는 오거들을 지배하던 만큼 오거중 가장 강하다고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두 사람은 오늘 하루 만에  달 치 훈련량을 소화했을 것이다.

린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사람의 어깨를 강하게 두드렸다. 그 바람에 유크는 그대로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죽는소리를 냈고 벨은 굳은 표정으로 겨우겨우 버텨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사라지고밀크는 기다리고 있는 칸젤라를 안내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호! 뭘 부수는 것만 잘하지 손재주가 없는 우리에게는 정말 별세계로군.”

“우리 홀스타우로스도 얼마 전까지는 나무와 짚더미로 만든 집에서 생활했어요. 인간들의 문화를 들여온 것은 최근이지요. 인간과 아인의 사이가 좋지는 않아도 그들에게 배울 것은 배우고 또 이용할 것은 최대한 이용해야죠. 그래야 우리 아인들도 발전이 있을 겁니다.”

밀크의 말에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녀는 진중해진 표정으로 그의 말에대답했다.

“그 말이 옳아…. 전통이란 이유로  우리에겐 우리의 방식이 있다는 이유로 인간들의 것을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지. 아마 이번 우리의 패배는 거기서 온 안일함과 나태함이 원인일 거야. 후…. 족장님…. 아니 잠깐만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해줘.”

“허락하죠.”

“고맙다. 그럼 밀크…. 나는…. 아니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자리에 우뚝  칸젤라. 그것도 모르고 잠시 혼자 앞으로 걸어가던 밀크는 옆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없자 뒤를 돌아보았고 고개를 숙인 상태로 자리에 멈춰 서서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를  수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한 명의 전사가 아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지도자였다. 털털하고 또 활발하게 보였고 당당하게 보였던 것은 이것을 숨기기 위한 모습일 뿐, 철저하게 파괴된 자신의 종족을 모두 바라보았던 그녀라고 왜 안 슬프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짊어진 자로서 버티고 또 버텼던 거다. 부족이 그나마살아남은 릴리핀의 경우는 몰라도 그녀의 부족은 이제 그녀를 포함해서  세 명뿐, 자신이 무너지면 부족이 그대로 무너진다는 생각으로 꿋꿋하게 버틴 그녀였다.

그러나 밀크의 마을을 보면서, 이 저택의 안으로 들어와 겪으면서 그의 말을 들으니 과연 우리 우거는 다시 존재할  있을까? 일어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방식을 바꾸지 못하면 어려웠고 자신에겐 방식을 바꿀 힘이 없었다.

나가서 싸우라면 싸울 수 있고 지키라면 지킬  있다. 그리고 죽으라면 부족을 위해 죽을 각오도 있다. 그러나 부족을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부족에 전파하는 그런 머리, 결정적으로 그러한 지도자가 지녀야 할 능력이 그녀에게 빠져 있었다.

말이 좀 심할지라도 오거는 단순하다. 단순한 만큼 호전적이기도 하지만, 정도 많다. 그리고 그만큼  속기도 하고 함정에 빠지기도 하며 발전이 더뎠다.

“고개 들어요. 당신이 그런 표정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순간 벼락같이 들려온 밀크의 목소리에 칸젤라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눈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과 마주했다. 작디작은 그의 모습, 그러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이 존재감, 내려다보는 것은 자신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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