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90화, 윈디아의 계략.
그로부터 얼마 후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며 노을이 질 무렵이었다. 나무 아래에서 말의 하반신을 땅에 대고 편하게 앉아 있는 크리스티나와 그런 그녀와 끈적하게 키스를 나누고 있는 밀크의 모습이 보인다.
떨어질 줄 모르는 두 사람은 점점 눈을 비추는 노을에 정신을 차렸고 시간이 꽤 늦어가고 있음을 인지하고는 아쉬워하는 눈으로 떨어져야 했다.
“돌아갈까?”
“그럴까요? 아마 지금쯤 윈디아도 우릴 찾고 있을 거 같네요.”
“음…. 글쎄…. 그럴 확률은 없을 거 같은데. 이미 우리 두 사람 보낼 때 이런 상황을 예견한 듯했으니까.”
애초에 그녀의 뉘앙스 자체도 크리스티나가 밀크와 먼저 같이할 수 있도록 양보한다는 느낌이 강하기도 하였고 두 사람이 숲을 달리게 된 원인 역시 그녀가 은근히 부추긴 경향도 없잖아 있었다.
두 사람은 옷을 추슬러 입고는 이곳으로 달려왔던 것처럼 다시 크리스티나의 등에 밀크가 올라탄 상태로 부족의마을로 돌아왔다.
뉘엿뉘엿 지고 있던 해는 두 사람이 부족에 돌아왔을 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저물어서 이제는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어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밀크가 오길 기다리고 있던 여전사들의 인사를 받으며 마을로 들어가 족장의방으로 돌아오니 그곳에는 윈디아와 밀리, 유크, 벨, 그리고 린다가 모여 있었다.
“오셨군요.”
“다녀왔어. 별일 없었지?”
“예. 오늘은 시간이 늦어 윈디아님이 이곳에서 하루 보낸 뒤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크리스티나님도 마찬가지 신지 물어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올 때도 같이 왔으니 돌아갈 때도 다르지 않을 터, 혹시나 크리스티나가 먼저 돌아갈 수도 있긴 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크리스티나 역시 마을에 하루 머물기로 하였고 그렇게 두 사람 모두 지정된 숙소로 이동하였다.
“어땠어?”
두 사람을 위한 숙소에 들어가 몸을 씻은 후 머리를 말리면서 나온 윈디아가 다짜고짜 저렇게 질문하니 크리스티나는 사레들린 듯 연신 기침을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윈디아가 서 있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외면했다.
“무, 무슨 소리일까? 하…. 하하…. 하.”
“어머- 시치미 뗄 셈? 여기에 이렇게 밀크님의 것이라는 마킹까지 남겨 온 주제에?”
발소리조차 없이 조용히 움직인 윈디아, 그녀의 신형은 바로 다음 순간 크리스티나의 등 위에서 나타났다. 크리스티나의 등에 올라탄 그녀는 양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잡아 올리며 짓궂게 되물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숲에서 많이 즐겼어? 다 알고 있으니까 시치미떼지 말고- 말해봐 응-”
엉덩이를 살살 쓰다듬어 오는 윈디아의 행동에 크리스티나는 짧게 교성을 내버리고 말았다.
아직 그가 남겨준 마킹이 채 지워지지 않았는데 후끈하게 달아오른 엉덩이에 느껴지는 차가운 손의 감촉이 너무도 감미로웠기 때문이다.
“흐읏! 아, 아무 일도 없었다고!”
“흐응- 티나는 거짓말도 서투르다니까. 다 예상하고 두 사람 보낸 건 줄도 모르고”
“이, 이거 놔 윈디아! 장난치지 말고”
“벌써? 우후후~ 티나가 진실을 이야기해주기 전에는 놓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에잇!”
“햐앙!!!”
크리스티나의 입을 비집고 달콤한 교성이 울려 퍼진다. 윈디아는 능숙하게 크리스티나의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그곳을 손바닥으로 살살 문질러 준 것이었다.
입술을 바르르 떨기 시작하는 크리스티나, 그녀는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가슴을잡은 윈디아에게 굴복하여 점심나절에 있었던 일을 실토하고 말았다.
밀크와 숲을 달리며 마물을 사냥하고 작은 호숫가에서 같이 몸을 씻고 그 뒤에는 서로의 몸을 탐한 뒤 섞었다. 그리고 생긴 엉덩이의 마크까지 모두 실토했다.
적나라하게 어떻게 즐겼는지까지는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았지만, 윈디아에게는 그 정도 정보로도 충분했다.
괴롭히고 있던 그녀의 엉덩이를 놔준 윈디아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린 크리스티나의 앞으로 이동했다.
“첫 번째 양보했으니까. 이번에는 내 차례인 거다?”
“윽….”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아무리 크리스티나가 눈치가 없다 해도 윈디아 또한 밀크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밀크와 관계를 맺은 것 역시 윈디아가 어느 정도 판을 깔아준 것도 없잖아 있어서 질투심만을 가지고 그녀가 밀크와 하겠다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었다.
“하, 하지만 밤에는 족장님도 바쁘지 않을까? 그 아내분이 오십 명이나 된다는….”
“이미 그건 다 이야기가 끝났어. 족장님 첫 번째 아내분에게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시던걸?”
“너는 진짜….”
평소에는 얌전하고 또 얌전하기 그지없는 엘프의 표본인 그녀였지만, 일단 마음에 드는 일을 할 때의 행동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빠르고 일 처리도 완벽한 그녀였다.
크리스티나가 무식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같이 다닐 때면 행동은 크리스티나 그리고 머리는 윈디아다 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그녀의 과감한 행동력을 볼 때면 크리스티나가 한 수 접어줘야 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생각했다.
두 사람이 열심히 사랑을 나누고 오는 동안 윈디아는 마을에 남아서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움직여 마을의 분위기를 살피고 살가운 성격을 이용하여 마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밀크 외의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어디까지나 제1부인 이라는 위치로서) 밀리를 공략하여 솔직하게 밀크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렸다.
두 종족 간의 좋은 관계 유지와 더불어 밀크 족장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그녀의 말은 밀리를 움직이기 충분했다.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밀크가 헤쳐 나가기 위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종족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리고 호전적이긴 하지만 호탕하고 의리 있는 켄타우로스와(밀리는 이미 크리스티나와 관계를 맺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질 좋은 나무를 계속 공급받을 수 있는 숲의 아이들인 엘프라면 더없이 좋은 상대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켄타우로스는 홀스타우로스와 상성이 좋아서 다섯, 여섯을 한 번에 출산할 때 그중 세 명은 홀스타우로스일 확률이 높았다. 부족 원의 수를 늘려 부족의 힘을 강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테고 엘프의 경우는 홀스타우로스보다 유전자가 딸려서 출산을 하면 무조건 홀스타우로스가 태어나기에 밀리로서도 환영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크리스티나는 활발하고 호탕해 보이지만 생각이 깊지 않아서 뭔가 꾸미기에는 부적절하다 느낀 것도 좋게 작용했다. 괜히 지식이 좀 있다고 그것만 믿고 설치기라도 하면 서열 기강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윈디아의 경우는 지식도 많고 생각이 깊어 보였지만, 적어도 내분을 일으킬 성격은 아니라 보였다. 여자는 여자가 더 잘 안다고 하지 않던가?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될 여성은 아니라 판단 되었다.
그렇게 제1 부인에게 공식적인 허락을 받은 윈디아는 오늘 밤 밀크의 상대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받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크리스티나는 역시 윈디아라고 속으로 생각을 하며 오히려 그녀가 부러운 듯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눈빛을 보내보았다, 그러나 윈디아는 그런 그녀의 의사를 단칼의 거절 했다.
“안돼~ 내가 족장님하고 밤에 오붓하게 즐기기위해 너에게 선점 기회까지 주었잖아? 여기서 더 우기면 욕심이야.”
“약은 계집애!”
잔뜩 볼을 부풀리며 화를 낸 크리스티나, 그러다가도 연신 부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숲에서 다급하게 잠깐 즐긴 것과 밤에 분위기를 잡고 방에서 오붓하게 즐기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밖에 못 받았는데….”
“어머- 좋은 정보다- 그럼 족장님 아직 충분히 남아 계시겠네?”
“앗!”
천기를 누설한 입을 때려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낸 크리스티나, 그때 두 사람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잔심부름하는 홀스타우로스 여인이었다.
“안에 계신가요?”
“네~”
“족장님의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준비되면 밖으로 나와 주세요.”
말을 마친 여인이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듯했다. 기쁜 얼굴로 옷을 갈아입은 윈디아는 크리스티나에게 말을 걸어 복장을 두드렸다.
“나 어때? 괜찮아?”
“당장 나가 이 계집애야!”
“후후훗~”
크리스티나도 정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살짝 짜증만 부린 거였고 윈디아도 그녀의 그런 성격을 잘 알기에 웃으면서 방을 나갔다.
“좋겠다….”
윈디아가 나간 뒤 혼자만 남게 된 크리스티나의 공허한 한마디가 반 안을 맴돌았고 그녀는 그대로 폭신한 베개를 품에 안고 상체를 눕혔다.
홀스타우로스 여인을 따라간 윈디아는 얼마 안 가 밀크가 기다리고 있는 벽돌로 된 집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그날그날 상대할 부인의 집으로 밀크가 찾아가는 식으로 밤일을 치르곤 했지만, 밀크를 위한 벽돌집이 완성된 이후로는 그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날 밤 상대를 할 부인이 이 집으로 찾아오는 식으로 변경이 되었다.
내부도 아늑하고 무엇보다 인간들에게 사들인 고품질 양털을 가득 채운 침대는 과거의 지구에서의 침대와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짚으로 만든 조악한 홀스타우로스들의 침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였다.
“족장님. 오늘 밤 상대를 할 분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와도 좋아.”
“자 들어가시지요.”
밀크의 허락이 있자. 홀스타우로스 여인이 문을 열어주었고 윈디아는 열린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진흙을 구워 만든 갈색의 벽돌로 만들어진 집의 외관가는 다르게 안쪽에는 따로 색을 칠하여 눈이 편한 아주 미세하게 분홍빛이 감도는 하얀색의 벽이 보였고 바닥에는 카펫을 깔아 폭신하여 걷기가 좋았다.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 작은 진열장에는선물을 받았는지 인간들이 즐겨 마시는 술, 그리고 홀스타주가 정리되어 있었다.
작은 잔에 홀스타주를 한잔 따라서 마시고 있던 밀크는 들어온 대상이 윈디아라는 점에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윈디아? 여기는 무슨 일이죠?”
밀리가 말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원래 오늘 그를 상대할 사람은 40번째 부인이었는데 그녀가 아니라 윈디아가 등장했으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랄 만도 했다.
밀크의 표정을 살핀 윈디아는 다소곳한 자세로 의자에 앉으며 그에게 먼저 사과의 말을 전달했다.
“죄송해요. 족장님 조금 놀라셨죠?”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시간에 내 방에 온 게 윈디아라는게 좀 놀라웠어요.”
“밀리님께 부탁드려서 오늘 밤 상대를 제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무례를 범해서 죄송해요. 족장님.”
꾸벅 고개를 숙여오는 그녀, 밀크는 당황해서 그녀의 행동을 말렸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마치 그가 용서해 줄 때까지 그러고 있겠다는 듯 말이다.
하는 수 없이 그녀를 용서해 주며 고개를 들라고 하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들었고 밀크는 그녀가 엘프치고는 속이 검다는 느낌을 받으며 속으로 혀를 찼다.
“후…. 안 그래도 크리스티나 문제도 있는데 윈디아씨까지 왜 그래요?”
“잔치 이후로도 계속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렇게 큰 감정이 아니었는데 동족을 구하기 위해 창을 들고 나서는 모습도 그렇고…. 그 뒤에 보인 남자다운 모습도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거기에 우리 엘프족 역시 괜찮은 동맹 상대를 물색하는 중이어서 이참에 밀크님의 부족과 좀 더 긴밀하게 연계를 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답니다. 전 엘프족 족장의 명령으로 전권을 가지고 있어요. 티나 역시 마찬가지고요.”
“거의 작정을 하고 왔다는 말이네요.”
“후후훗- 그보다티나에겐 말을 편하게 하시던데 저 역시 괜찮으니 이제 편하게 말씀하세요. 오늘 이후로는 저 역시 족장님을 성심성의껏 모실 예정이니까요.”
“나 역시 크리스티나도 윈디아도 상대로는 전혀 나쁘지 않지만…. 역시나 너무 빠른 감이 있어서 어안이 벙벙하네.”
“그 점은 뭐라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저희도 몸이 달아올라 있었으니까요. 사실 점심나절에 티나의 등을 떠밀면서도 제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르실 거예요.”
의자를 들고 밀크의 옆자리로 이동한 그녀, 그리고는 그와 가까운 곳에 의자를 두고 몸을 밀착하더니 상쾌한 숲의 향기가 가득한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을 밀크의 어깨에 걸치면서 고개를 기대어 왔다.
“받아주실 건가요? 솔직히 거부하셔도 저희 부족과 밀크님의 부족 간의 동맹은 계속 추진할 거랍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더 끈끈한 사이가 되느냐 못되냐의 문제일 뿐이고요.”
말을 꺼낸 윈디아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왔다. 어디까지나 선택은 밀크에게 있었다. 동맹은 따로 추진하고 여기서 윈디아를 안지 않아도 그리 문제는 없었다.
이제는 그녀의 몸도 잘게 떨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떨려오는 그녀의 허리에 밀크의 손이 불쑥 들어와 감아서 품에 안았다.
고개를 든 윈디아를 마주하고 있는 것은 밝은 미소가 가득한 밀크의 얼굴이었다. 허락이라는 것을 알아본 그녀 역시 환하게 웃으며 그의 손에 이끌려 침대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