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87, 켄타우로스에게 방천화극을
“오셨어요. 족장님? 손님분도 함께 시내요.”
“인사드려. 이쪽은 켄타우로스 부족 족장의 딸인 크리스티나, 그리고 이쪽은 엘프 부족 족장의 딸인 윈디아라고 해.”
“두 분 모두 환영합니다. 이곳의 공방 장을 맡은 메어리라고 합니다.”
짧은 머리의 건강한 몸의 메어리가 인사를 하니 두 사람은 그 위압감에 살짝 주춤하더니 이내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크리스티나예요.”
“윈디아라고 해요.”
“두 사람에게 무기를 만들어줄 생각이야. 내 모루 혹시 누가 사용 중인가?”
대장간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밀크의 고정 자리도 쉬지 않고 사용되는 중이라 일단 자리가 비어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밀크의 말에 메어리가 대답한다.
“오늘은 작업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족장님의 자리를 사용하지 않고 있답니다.”
“다행이군. 그럼 바로 작업을 시작하도록 할게.”
“아! 제가 도와드릴게요. 족장님~!”
명랑한 파티마의 말에 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헤비스파이더의 거미줄과 데빌베어의 가죽으로 만든 실을 가져왔다.
“파티마는 이 두 실을 엮어서 하나로 만들어주겠니? 되도록 탄력이 살아 있도록 해주렴.”
“그럼 헤비스파이더의 거미줄을 베이스로 잡고 데빌베어의 가죽을 더 얇게 만들면서 돌돌 감아둘게요. 그럼 탄력은 살아 있고 잘 늘어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래. 활대에 엮을 줄이 될 테니까 탄력이 생명이거든.”
“알았어요. 족장님!”
그렇게 시작된 작업, 파티마는 밀크의 말대로 가죽 실과 거미줄을 엮어 보다 탄력 있게 만들기 시작했고 밀크는 나무를 깎아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
엘프목은 이미 활을 만들기 좋다고 소문난 목제이다. 조금의 노력만 기울여도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활은 엘프들도 만들 수 있기에 판에 박혀있는 활을 만들어 주어봤자 그것은 선물이라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밀크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합성 궁을 만들어 선물해줄 생각이었다. 즉 각궁을 만들 생각이다.
물론 밀크는 전통적인 각궁을 만드는 법을 모른다. 그러나 다년간의 노력으로 대장기술의 비결도 많이 쌓여 있고 이 세계에 있는 활을 뜯어보면서 활이 어떻게 생산되고 만들어지는지 역시 많이 공부해둔 상태였다.
혼 바이슨의 뿔과 힘줄, 그리고 엘프목이라는 최고의 재료를 이용한 합성 궁. 이것은 아마 엘프들 사이에서도 최초이지 않을까 싶었다.
엘프목을 딱 좋게 깎아둔 뒤 활대의 모양을 만들고 혼 바이슨의 뿔이 너무 단단하게 굳어버리지 않도록 열을 가해 탄력을 살려 혼 바이슨의 힘줄과 결합하였다.
중간에 함을 파 접착제 역할을 해줄 타이거 호넷의 분비물을 발라 뿔과 힘줄을 넣고 단단하게 결합을 하니 이상적인모양의 활이 만들어졌다.
다만 아직 활줄을 엮지 않아서 그 모양이 반대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원형을 하고 있었다. 활치고는 기이한 모양이라 처음으로 받아든 윈디아의 표정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곳의 활이란 숏 보우와 롱 보우가 보편적이기 때문에 줄을 풀었을 때 반대쪽으로 훅! 말려 들어가는 각궁은 난생처음 보는 물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활의 명수인 엘프였던 그녀는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다가도 활대를 쫙 펴며 반대쪽으로 줄을 이어 이상적인 활의 모양을 만들고는 신기한 듯 각궁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이게 활이란 것이 전혀 믿어지지 않았는데 탄력을 살리기 위해 원래의 모습이 그리 생긴 거였군요.”
그리고는 부들부들하는 팔로 활의 줄을 잡아당겨 보았다. 본래 사용하던 활보다 더 큰 힘을 들여야 했지만, 조금 지나니 그러한 부분도 적응이 된 듯 보였다.
퉁!
맑고 고운소리와 함께 화살이 없는 빈 활이 공기 중에 튕기는 소리를 내었다. 윈디아는 활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쁨에 겨워하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족장님! 지금까지 써오던 활들과는 차원이 다른 활이네요. 다만 들어가는 재료가 만만치 않아서 관리하는 것이 여간 불편할 거 같네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요. 관리는 6개월에 한 번 정도만 받으면 충분할 테니까 그 중간에 우리 부족을 방문하면 내가 수리해줄게요. 그리고 활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새로 하나 더 만들어줄 테니 편하게 사용해요.”
“아껴서 사용할게요. 이런 대단한 물건을 험하게 사용하면 족장님을 무슨 얼굴로 바라보나요.”
“괜찮은데….”
호호 웃으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 크리스티나는 뒤에서 덩그러니 혼자 있는 자신의 상황을 알고는 샘이 나는지 볼을 한번 부풀렸다.
그리고는 도도하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은 뒤에 윈디아를 한 번노려보고는 밀크에게 시선을 돌려 세상 따듯하게 바라보며 사근사근 그에게 말을 건다.
“족장님- 저도 무기 만들어주셔야죠-”
근대 목소리는 사근사근 한데 그 안에서 왠지 모를 냉기가 풍기는 것은 왜일까? 밀크 역시 그러한 냉기를 느꼈는지 이 더운 대장간에서 오한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하하- 그래야죠. 어떤 무기를 가지고 싶은지 떠올랐어요?”
“아…. 그러니까…. 크. 큰 거요!”
“큰…. 거?”
아무런 맥락 없이 큰 거라고 말한 크리스티나. 이곳에 모인 모두가 그녀의 말에 어안이벙벙해져 버렸고 크리스티나 또한 자신이 한 말을 깨닫고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수그렸다.
‘큰 게 뭐야 큰 게! 아으…. 이 멍청한 녀석아!’
속으로는 자신을 욕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어 밀크의 얼굴을 살피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그는 크리스티나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려 보이는 그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어른의 남성은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남자답게 느껴지면서도 깜찍했다.
크리스티나는 다시 한번 가슴을 세차게 두들기는 감정을 겨우겨우 억제하며 밀크가 말을 하길 기다렸다.
“그거라면….”
이번에는 제대로 철을 사용하려는지 집게로 광석을 잡은 뒤 용광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가 선택한 광석은 이번에 하피퀸 바토리가 대장장이인 그에게 보낸 진귀한 광석인 미스릴 이었다.
하피들이 사는 고산지대에 광산을 파고 눌러 않아버린 드워프들이 있는데 그녀들과 친해진 드워프들이 자주 광석을 들고 와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거래한다고 한다.
덕분에 하피들은 광석 수급이 나쁘지 않았고 그중에 진귀한 광석인 미스릴을 골라 밀크에게 선물해준 것이다.
본디 미스릴은 다른 광석과 합금으로 만들어 강도를 높임과 동시에 미스릴이 가지고 있는 증폭 효과를 이용한 무기를 만들게 된다.
제조에 따라 미스릴 함량은 25% 50% 75%로 나뉘며 100% 미스릴 제품은 갑옷이나 무기가 아닌 액세서리 정도가 제작된다.
통짜 미스릴 만으로 무기를 만드는 것은 비싸기도 하고 그 효율이 너무 낮아서 만들지 않는 것이다.
미스릴은 형상 기억 금속이라고 해서 충격을 받아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습성을 가진 금속이다. 그렇기에 미스릴 주괴를 수차례 때리고 지지고 볶아도 결국에는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버린다.
다만 예리한 도구를 이용하여 세공하면 잘려나간 부분까지는 다시 합체되지 않기에 이를 이용하여 100% 미스릴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상 기억 금속인 미스릴을 다루는 다른 방법이 바로합금으로 만들어 제련하는 법이었다.
본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려는 미스릴도 다른 금속과 섞이게 되면 물건이 완성될 때까지는 그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가 완성된 후에 천천히 능력을 되찾아 그 이후부터는 완성된 모습을 원래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무기, 또는 갑옷으로서의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그리고 이 미스릴의 함량으로 무기 또는 갑옷의 성능이 차이가 나는데. 기본적으로 50% 비율로 섞는 것이 가장 무난한 방법이다. 착용자의 능력 증폭 효과와 강도를 동시에 잡을 수 있으며 가격이 좀 비싸지만, 수리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이 되니 장기간 연전이나 모험에서 사용하기 좋았다.
25% 미스릴 함량으로 다른 광석과 섞은 물건의 경우는 갑옷에 자주 사용된다. 이는착용자의 능력 증폭이 조금 적지만 그만큼 강도가 높아지고 아차 하는 순간에 목숨을 살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75%의 미스릴 함량으로 다른 광석과 섞은 물건은 무기에 사용되곤 한다. 강도는 낮아도 사용자의 능력을 가장 많이 증폭해 주며 특히나 마법 검사같이 마법과 검술에 모두 능통한 이들이 이러한 미스릴 검을 사용하여 활약하곤 했다.
그러한 미스릴 광석으로 지금 밀크가 만들려고 하는 물건은 바로 방천화극,이곳에서는 핼버드나 폴암이라고 불리는 무기였다.
이곳의 인간들도 자주 사용하고 있으며 기병대 운영에 핵심으로 자리 잡은 무기이지만, 켄타우로스들에게는 딱히 보급되지 못한 무기이다.
뭐 이유야 많지만, 한 가지만 꼽는다면 아인에 해당하는 켄타우로스들이 큰 힘을 가지는 것이 두려워 인간들의 공격적인 무기를 그들에게 팔지 않는 것이 이유이다.
켄타우로스들은 날쌔고 용맹하지만, 손재주는 형편이 없기에 스스로 무기를 만들지 못하여 가까운 이웃 아인들에게 부탁하여 활이나 뭉툭한 방망이 같은 무기를 원조받아서 살아가곤 했다.
그러나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 그들의 돌진력을이용한 말발굽에 잘못 치이기만 해도 불귀의 객이 되기에 무기는 근접에서 싸울 때의 호신용이나 원거리에서 적을 격멸하기 위한 외에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그나마 크리스티나의 부족은 장창을 사용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나무를 깎아 만든 봉 끝을 날카롭게 갈아버린 조잡한 창이었다.
전날 크로울리의 판들과 싸울 때도 그녀의 창은 단 한 번 사용으로 그 끝이 무뎌지게 되었고 한 놈에게 선물로 주다시피 그냥 손에서 놓아 버린 뒤 육중한 말의 하반신을 이용한 발굽 공격으로 신나게 적들을 밟아 죽이는 것이 그녀의 전투 방식이었다.
우아한 여성의 상체와는 다르게 그아래에 있는 단단한 근육질의 말 하체는 보기만 해도 우아함보다는 위협감이 들 정도로 멋지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밀크는 그런 그녀에게 제대로 된 창을 그것도 공격적으로 휘둘러도 괜찮은 창을 하나 선물하고 싶었다. 켄타우로스의 인마 일체인 몸을 보고 마중 적토, 인중 여포를 떠올려 그의 주 무기인 방천화극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크리스티나의 몸을 자세하게 살핀 그는 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미스릴과 강철을 섞어 합금으로 만드는 과정은 충분한 용광로의 열기가 알아서 해줄 일이었으니 밀크는 그동안 제련하기 위한 거대한 망치를 들고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그저 철이나 별거 다른 마수들의 소재를 사용하여 손 망치만 있어도 충분히 그 모양을 잡을 수 있었지만, 이 합금 미스릴은 달랐다.
섞은 철이, 철을 다년간 제련하여 불순물을 빼낸 강철인 것도 한몫했지만. 또 다른 이유는 그 엄청난 강도의 강철이 미스릴을 만나 증폭이 되어 보다 한층 강한 강도를 가지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보통의 손 망치로는 두들겨 봤자흠집도 나지 않기에 열기가 충분한 시점에 이 거대한 망치를 사용하여 내려쳐서 모양을 잡아야 했다.
이 거대 망치로도 한계는 분명 존재하지만, 방천화극을 만드는 것은 충분할 것이다. 이 무기는 지구에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강렬한 인상을 준 몇 안 되는 물건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해지고 찢긴 보육원의 책 중에 그의 눈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바로 연의의 내용을 토대로 한 삼국지 만화책이었다.
비록 그가 잔인무도하고 천인공노할 패륜을 저질렀다 하더라고 단기 필마로 적들을 휘몰아치는 여포의 모습은 단연 연의의 백미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기억에 강렬히 남은 무기의 생김새가 마치 그림 그려지듯 머릿속에 떠올랐다.바로 시작된 작업에 파티마가 달려가 집게로 합성된 합금 미스릴을 용광로에서 꺼내 왔고 밀크는 오랜만에 힘을 써서 그 거대한 망치를 들어 올렸다.
쾅!
둔탁한 소음과 함께 미스릴의 모습이 변화했다. 그에 그치지 않고 밀크는계속해서 미스릴을 두드렸다.
홀스타우로스 남자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홀스타우로스 종족에서의 말이지 다른 종족에서 보자면 그리 약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남자보다 힘은 훨씬 강하며 뼈도 튼튼하다. 다만 어린 시절에 너무 유약하게 자라 버리면 그것이 죽을 때까지 있어지는 것뿐,밀크의 경우는 어려서부터 단련된 대장간의 일로 인하여 안쪽은 온통 근육질이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을 뿐이지 이렇게 작업을 함에 따라 단련된 근육이 펌프질 되어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낸다.
파티마는 침까지 삼켜 가며 작업이 아닌 그의 몸에 집중하고 있었다.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그 근육질 몸은 감탄을 자아낼만했다.
그리고 비단 그런 모습을 보고 볼을 붉히는것은 그녀뿐 만이 아니라 메어리, 크리스티나, 그리고 윈디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등에서 튀어나온 등 근육과 엉덩이 아래로 이어진 허벅지 등등 그녀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괴롭히는 섹시한 자태에 여인들의 눈이 호강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그녀들은 서로의 눈이 밀크를 향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자기들끼리 눈을 마주쳤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모르는 척하였다.
그러면서도 곁눈질로 계속 밀크를 살피고 있으니 작업을 하는 밀크의 모습은 위험한 유혹인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