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86화, 크리스티나와 윈디아.
“어서 와요. 두 사람 모두 환영합니다.”
족장의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은 맞이하는 밀크, 여름이 시작할 무렵 위도레빗 마을에서 열린 제사장의 생일잔치에서 본 두 여인의 모습,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다시 봐도 대단했다.
두 사람은 먼저 인사해온 그를 보며 고개를 숙이며 마주 인사했다. 밀크의 나이가 그녀들보다 아래지만 한 부족을 책임지는 족장이니 함부로 해서는 안 되었고, 함부로 할 생각도 없던 그녀들이었다.
“여름 동안 별일 없으셨죠?”
“제법 더운 날씨였네요. 족장님도 평안하셨나요?”
순서대로 크리스티나, 그리고 윈디아의 인사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밀크의 옆을 지키고 있는 밀리는 젊은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장소를 만들어 주기 위해 밀크의 명이 없었지만, 알아서 밖으로 향하였다.
그렇게 세 명만이 남은 공간에 작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나가기 전에 뷰렌이 가져다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그와 그녀들, 대부분 말은 그녀들이 먼저 하고 그에 관하여 밀크가 대답을 해주는 정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여튼 그날 이후로 저희 부족은 판이라는 것들이랑은 상종을 안 하고 있어요. 가끔가다 물건을 교환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는데 올 때마다 우리 여자들을 보는 눈빛들이 안 좋아서 벼르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엘프들도 판이 숲에 들어오는 것을 제재하는 중입니다. 특히나 저희는 여성 비율이 더 높은 종족이라 판들이 욕망을 가지고 숲에 들어오는 경우가 잦았거든요. 자칫 말이라도 섞었다가 그들이 발하는 페로몬에 당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위도레빗의 잔칫상에서 진상이란 진상을 모두 떨었기에 그 이후로 판 종족이라면 모두가 이를 갈게 될 정도로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다.
여자를 후리는 페로몬과 특유의 말 실력, 그리고 누가 봐도 미남으로 보이는 얼굴 등등 딱 성격만 좋으면 이 세계의 모든 여성을 후리고 다닐만한 카사노바가 되었을 텐데 그놈의 천박한 성격이 발목을 잡은 종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얼굴도 잘생기고 페로몬 그리고 말 실력까지 좋은 이들이 성격까지 좋았으면 다른 종족의 남성들은 아마 그들에게 밀려 매일 여자를 빼앗기지 않았을까? 이러한 이유로 신은 그들에게 천박한 성격을 준 것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볼 뿐이다.
어쨌든 세상은 넓고 종족도 많다. 이곳이 아니라고 그들이 발을 못 붙일 리가 없으니 아마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판들은 이러한 공기를 눈치채고 지금쯤 사는 곳을 옮겨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뭐. 당장 밀크의 코가 석 자인데 그들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대화에 녹아들어 그녀들이 욕하는 판 종족을 같이 욕해주며 공감대를 형성하며 좀 더 친밀한 관계로 이어갔다.
“그런데 오면서 보니까. 홀스타우로스 마을치고는 건물의 형태가 어딘지 모르게 세련된 분위기더라고요? 마치 인간들의 마을을 보는 거 같았어요.”
“나무뿐 아니라 돌을 가공해서 집을 만들다니. 처음에는 작은 성인 줄 알고 기겁을 했지 뭐예요.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까 깔끔하고 단단해 보이는 것이 안정적인 집이라 생각되더라고요. 족장님의 작품인가요?”
“돌을 가공해서 벽돌을 만든 다음에 그걸 점착력이좋은 타이거 호넷의 분비물을 발라서 쌓아 올린 겁니다. 뭐 제가 손재주가 좀 부족해서 보이는 것과 같이 좀 투박하게 만들어졌지만, 내부는 잘 다듬어서 아늑한 분위기를 주고 있지요.”
“그런데 굳이 돌로 만든 집이 필요할지는 좀 의문이긴 하네요. 지금까지 홀스타우로스들이 살아온 통나무 집도 충분히 살만하지 않나요? 물론 내구력이 약하긴 하겠지만, 저희도 통나무 집에서 사는 데 그리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크리스티나의 말이었다. 일견 투박해 보이는 돌로 만든 집이 신기하긴 했지만, 기존과 너무나 다른 모습에 어딘지 모르게 좀 거북한 감정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런 당연한 반응에 밀크는 화내지 않고 미소 지으며 찬찬히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그 대비책이라고 해야 할 수 있겠네요.”
“겨울이요? 그렇다면 혹시 추위 대비인가요?”
“맞아요. 우리 부족은 더위는 잘 안 타지만 추위는 잘 탑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겨울을 버티기 위해서 네 가구나 다섯 가구가 한 집에 모여서 생활을 하는 불편한 일을 반복해 왔지요. 거기에 통나무 집은 방한을 하기에 그리 적절하지 못하지요. 내부에서 불을 피웠다간 그냥 그대로 집 전체가 홀라당 타버리니까요. 그래서 저렇게 벽돌로 집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집 안에서 불을 피운다고요?”
“인간들의 경우는 집 중앙에 작은 통로를 설치해서 그 안에 나무를 넣고 불을 붙여서 미리 만들어둔 통로를 따라 연기가 빠져나가고 집은 따듯하게 만드는 구조를 사용합니다. 다만 기술적인 한계인지 모르겠지만, 크기도 작고 연기도 계속 빠져나가는 조악한 구조라서 겨울철에 이걸 사용해 연명하면 삐져나온 연기에 몸이 상하거나 충분히 난방되지 않아서 고생하더군요. 그걸 좀 더 보완해서 지붕에 굴뚝을 만들어 그곳으로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설계를 한 다음에 불을 지필 공간을 따로 배치해 두었어요. 저기 보이죠?”
가장 먼저 바꾼 것이 바로 이 족장의 집이었다. 외관부터 뜯어고쳐 전부 벽돌로 대체했고 넓고 큰 족장의 방 한쪽 끝에는 네모반듯하게 생긴 뚫린 공간이 보였다.
“저곳에 장작을 넣은 다음 불을 피우면 연기는 그 위로 올라가서 전부 밖으로 배출되고 열기만 방 안쪽을 훈훈하게 만들어 주는 구조랍니다.”
전문적인 지식은 없었지만, 몸으로 배운 케이스가 바로 과거의 그였다. 건설업에 20년 이상을 종사하며 잔뼈가 굵었던 그는 알음알음 주변 사람들에게 배움을 받으며 건설에 관한 일에는 지금 이 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PC를 조작하여 캐드 프로그램을 통하여 집을 구상하거나 하는 작업을 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손을 이용하여 집의 구조를 종이에 그리는 일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단련된 그의 지식은 다른 것은 몰라도 집을 짓는 것에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대장장이 기술로 올려둔 손재주도 그의 그림 실력을 도와주었으며 아직 과거 지구에서의 높은 고층 건물이나 멋들어진 디자인의 단독 주택을 짓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른 시간에 좋은 결과를 끌어낼 벽돌집은 가능했다.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용광로를 개량하여 점토를 구워낼 고온의 화덕을 만들고 그곳에 에스타 상단에 부탁하여 수소문 끝에 얻은 점토를 구워 네모반듯한 벽돌을 찍어낸 뒤 마르기만 하면 그 무엇보다 점착력이 뛰어난 타이거 호넷의 분비물로 건물을 세운 것이다.
타이거 호넷의 분비물은 노란색의 연한 꿀 향기가 풍기는 액체인데 일단 수분을 보충해주면 계속 흐르는 물과 같은 약한 점성의 액체로 있다가 수분이 모두 말라버리면 그 이후에는 엄청난 점착력을 보여주는 물질로 변한다.
한번 수분이 말라버린 이 분비물은 다시 수분이 묻어도 원래의 성질로 돌아가지 않아서 취급을 잘 해야 하지만, 일단 건물을 세우는 것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비가 오는 날에는 작업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일단 햇빛에 말려가면서 조금씩 건물을 올리면 벽돌이 깨지면 깨졌지 타이거 호넷의분비물로 접착시킨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들어올 때 저 높이 솟아오른 부분이 신경 쓰이긴 했는데 저곳이 연기를 배출하는 곳이었군요.”
“맞아요. 그게 바로 굴뚝입니다.”
“다만…. 나무가 많이 소모되겠네요.”
다만 윈디아의 경우는 나무가 많이 소모되는 것을 유려하는 지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러한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자연과 함께 숲에서 살아가는 엘프들, 본디 숲의 허락을 받아 나무가 만들어 준 공간을 집으로 삼아 생활하는 이들이었다.
나무를 해치지 않고서 나무들이 만들어 준 곳에서 생활하기에 그녀의 종족은 숲을 수호하는 존재라고도 알려져 있다.
물론 그들의 무기인 활과 화살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가 소모되지만, 나무와의 소통을 통하여 철저하게 선택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무를 사용하고 또 한 대부분은 나무들이 스스로 내어주는 단단한 나뭇가지 가공하여 사용하기에 나무를 무분별하게 해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가 불을 피우기 위해 소모되는 나무들이 많다는 것을 슬프게 생각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도 대책 없이 땔감을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말라 죽은 나무를 벌목하거나. 살아 숨 쉬는 나무를 벌목한 뒤에는 그곳에 묘목을 심어두고 있어요.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무분별하게 벌목행위도 하지 않고요. 인간들은 벌목한 뒤에 나무의 뿌리를 내버려 둬 버리지만, 우리 홀스타우로스는 뿌리 부분도 확실하게 제거한 뒤에그곳에 새로운 나무와 식물이 자랄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을 많이 파괴하지는 않을 겁니다.”
밀크의 말에 조금이나마 안정이 되는지 윈디아는 슬퍼하던 표정을 지우고 밝기 미소 지었다.
“족장님의 말을 믿어요. 물론 나무를 배는 행위 자체를 좋게 보는 엘프는 없지만, 그래도 오래된 나무가 주변의 모든 영양분을 독차지하는 경우는 저희도 잘 보아왔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를 제거해 주신다면 더 많은 식물이 살아갈 수 있을 테니 어찌 보면 이것은 궁극적으로 더 많은 싹을 만드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다시 약속하지요. 인간들처럼 무분별한 벌목은 자제하고 딱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아끼지 않을 겁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다시 밝아진 윈디아의 표정, 밀크가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킬 것은 지키자는 주의였다. 이곳도 과거의 지구처럼 민둥산이 즐비한 그런 환경으로 만드는 것은 절대로 싫었기에 자기들 종족만이라도 그러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었다.
“저~”
“응? 왜 그러죠. 크리스티나?”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밀크를 부른 그녀, 그러나 뭔가 쑥스러운 것일까? 선뜻 말을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며 있었다.
그에 더욱 못한 윈디아는 쓰게 웃으며 그녀 대신 밀크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였다. 그것은 바로 무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희에게 무기를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크리스티나가 저번에 족장님의 무기를 보고 단단히 빠졌거든요.”
“으악! 윈디아!”
자기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차례를 빼앗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윈디아에 의해 숨긴 마음이 폭로되어서 그러는 것일까? 뭐가 되었든 그녀가 하려고 했던 말은 바로 무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물론 만들어 줄게요. 그런데 무슨 무기를 원하죠? 다짜고짜 만들어 달라고만 하면 만들어 주기 힘들거든요.”
그 말에 크리스티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녀 역시 밀크에게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할 생각에만 부풀어 있었지 정확히 어떤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할지는 생각해 두지 않았다.
그런 그녀와 달리 이미 엘프라면 활! 이라 할 정도로 주 무기가 정해져 있는 윈디아의 경우는 밀크에게 활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마침 물소 뿔과 비슷한 미노타우로스의 빠진 뿔, 그리고 뼈대 역할을 해줄 나무, 흔히 엘프 목이라 불리는 좋은 나무를 윈디아가 가져 왔기에 재료는 확실했다.
“먼저 윈디아의 무기를 만들테니까. 그동안 무슨 무기가 가지고 싶은지 생각해 봐요. 지금 내 실력이라면 대부분의 무기는 다 만들 수 있으니까요.”
“네, 족장님.”
윈디아가 먼저라는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지만, 기분만 앞서서 정작 가지고 싶은 무기를 생각하지 않았던 자신의 잘못이니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밀크의 뒤를 따라 대장간으로 가는 내내 생각에 잠겨 있어야 했다.
그날 역시 대장간은 엄청난 열기를 유지하며 땀 흘려 일하는 여성들의 살결이 충분히 달구어지는 공간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뛰어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이제 본격적으로 실력이 높아진 본래의 마을 대장장이 메어리와, 그동안 살과 근육이 멋있게 붙어서 건강미를 물씬 풍기고 있는 인간 대장장이 파티마였다.
그동안 노예로 팔려 다니며 못 먹고 일만 하다가 빼빼 말라 있어서 볼품없던 그녀였지만, 잘 먹고 열심히 일하면서 몸이 점점 건강함으로 물들자 미모는 좀 약해도 활기찬 건강 몸매의 여성으로 탈바꿈한 뒤였다.
캉! 캉!
이제는 2인 1조가 아니라 스스로 집게를 쥐고도 망치를 내려칠 정도로 힘이 붙어 있었으며 흐르는 땀방울이 잘 굴곡진 몸을 타고 흐르는 모습은 미모를 떠나서 남자의 심장을 불태우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어머? 공방장님~ 족장님 오셨어요!”
밀크를 발견한 파티마가 그리 외치자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메어리는 안전하게 철을 내려 두고는 밀크에게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