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85화, 부족 발전
“젖! 젖을 팔게!”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에스타 상단의 한 판매점, 얼마 전 다시금 유통이 시작된 홀스타우로스의 젖을 얻어가기 위해 찾아온 귀족가 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아침 일찍 상단이 운영하는 판매점이 문을 열자마자 몰려와 젖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엄마 젖 찾는 아이들처럼 아우성이었다.
“이쪽은 치즈, 치즈를 주시게!”
그리고 그중에는 새로이 등장한 치즈를 구하기 위해 온 하인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향이 강하여 역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진정 맛을 아는 자들은 이 치즈의 맛이 깊은 맛으로 다가왔고 와인과 함께 그야말로 환상의 짝꿍임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젖의 경우는 아침을 활기차게 여는 먹거리였다고 하면 치즈의 경우는 술과 함께 밤을 즐기게 해줄 또 다른 먹거리로 부상하였다. 그것도 고위 귀족들만 맛을 볼 수 있는 고급 음식으로 말이다.
“에잇! 내가 먼저 왔소. 순서 좀 지키시오!”
“아니 이놈이! 나 말시온 후작가에서 왔어 넌 뭔데 감히 이리 방자하게 구는 것이냐!!!”
“뭐야? 나는 에실리아 공작가에서 왔다! 감히 공작가에서 일하는 하인에게 대들다니 치도곤을 당하고 싶은 것이냐!”
“헉….”
이렇게 각 귀족가에서 나온 하인끼리의 다툼도 있었지만, 상대방 귀족가가 더 높은 작위라면 낮은 작위를 가진 귀족가 하인이 깨갱 하는 추세였다.
뭐 그들이 아무리 싸워도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상단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큰 이익을 보는 것은 밀크였고 말이다.
유통이 끊겨 한동안 가격이 튀어 올랐던 홀스타우로스의 젖은 100L에 3000골드 호가에 거래되다가 점점 그 가격이 내려와 다시 원래의 가격을 찾게 되었다. 원래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지만, 왕국에서 지속해서 거래해야 하는바 괜히 입방아에 올라봐야 좋은 것이 없었기에 상단주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틈새시장을 노려 잠시 유통을 한 레이나남작 상회만 반짝 3000골드로 팔았으니 그리 문제가 될 일도없었다.
레이나의 경우 밀크와 협력하여 귀족들의 높은 콧대를 꺾어버리려고일부러 그러한 가격에 유통한 것이었다. 덕분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귀족들은 젖에 걸어둔 세금을 줄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새로이 떠오르기 시작한 치즈가 치고 올라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홀스타우로스의 젖이 가진 풍미가 깊이 가미된 치즈는 서늘한 곳에 두면 젖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기에 보관도 쉬웠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처음에는 호불호가 많이 갈렸지만, 이것을 전폭적인 고급화 전략으로 판매하여 이젠 치즈의 맛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입이 싸구려라는 욕을 받을 정도로 고위 귀족들의 입을 사로잡은 상태였다.
이를 통하여 만약 젖이나 치즈에 다시 세금이 붙을지라도 젖, 또는 치즈의 유통을 좀 더 늘리고 세금이 붙은 쪽을 줄이는 것으로 귀족들의 다음 공격에도 대비할 수 있었다.
둘 다 세금을 붙인다면? 또 안 팔면 되지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유통은 에스타 상단이하고 있으니 절대 갑은 상단 쪽이다.
그런 간단한 시장 구조도 모르고 어설프게 처리한 왕국의 몇몇 귀족들이 멍청할 따름이리라.
깡!
깡!
깡!
왕국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자신의 이익에 위협이 될 요소가 없어지자 밀크는 다시 대장간에 틀어박혔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자 주변이 서늘해져 몸에 힘이 돌아온 그는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작업에 착수하는 중이었다.
루가 말하길, 밀크가 여름에 힘을 못 쓰는 이유는 생활 리듬이 깨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장간에서 더운 열기를 이겨가며 일하는 시간은 약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 길면 일곱 시간이다.
그러나 여름의 열기는 가을이 될 때까지 유지되며 밀크를 괴롭히기 때문에 계속 열에 노출되어 자는 중에도 더위에 계속 깨어나고 자고를 반복하니 피로까지 누적되어 더 힘들었던 것이라 설명했다.
[다음 여름이 오기 전에 여름 대책을 세우실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야. 가을과 겨울에 꼭 냉방용품을 만들어 둬야지 원….’
[어떤 아이템을 제작하실 생각이신가요?]
‘지금 생각하는 건 목걸이 형태의 온도 조절마법이 걸려있는 아이템을 생각하는 중이지만, 마법사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지. 이건 실현 가능성이 좀 낮다고 할 수 있지.’
[그렇다면 차라리 추운 지대에 사는 마수들의 소재를 이용하여 아이템을 제작하는 건 어떨까요?]
‘그런 마수의 소재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니 오히려 마법사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더 힘들 거 같은데?’
[하피들은 넓은 생활 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들이라면 설산 지대에 가까이 있는 부족이 있거나. 그곳까지 비행할 수 있을 겁니다. 퀸과 밀크의 사이가 좋으니 다음에 꼭 부탁을 해보는 걸 추천해 드릴게요.]
‘아 참! 하피들이 있었지. 저 첼슨 왕국의 일 때문에 내가깜박 잊어버리고 있었네. 다음에 그녀와 만나면 한번 부탁을 해볼게.’
하피 퀸 바토리와 재회하면 설산 지대에 사는 마수들의 소재를 얻을 수 있을지 물어볼 생각을 하며 계속 철을 두드리는 밀크, 그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간단한 모양의 사다리였다.
사다리,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다. 철과 마수 소재를 사용하여 기본적인 형태의 사다리를 제작하는 중이었다.
먼저 제작된 사다리는 3M 크기의 사다리였다. 뼈대를 혼 바이슨의 뿔을 길게 펴서 세웠고 그 중간에 철로 된 발판을 엮어서 만들었다.
철이 많이 사용돼서 무게는 좀 무거웠지만, 어차피 홀스타우로스가 사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무게라 별문제는 없었고 혼 바이슨의 뿔이 뼈대 역할을 톡톡히 해주어 튼튼함은 완벽했다.
지금까지 홀스타우로스들은너무 높은 나무에 있는 열매는 따지 못하고 목말을 타서 닿을 수 있는 높이까지만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너무 높이 지어버리면 나중에 천장 등의 관리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 보니 수리를 위해서도 홀스타우로스가 하나 이상이 필요했고 못 해도 네 명이 모여서 목말을 타 2인 1조가 되어 두 팀이 수리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이 사다리가 있으면 건물 수리를 비롯하여 나무 높이 있는 열매까지 손쉽게 딸 수 있을 것이다.
사다리야 인간들도 익히 사용하는 물건이지만, 인간들이 사용하는 것을 몸이 무거운 홀스타우로스가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하여 마수들의 소재를 사용하여 홀스타우로스의 무게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것으로 또 더 크고 발판이 넓은 것으로 새로 제작하였다.
밀크는 사다리에 그치지 않고 한 가지 더 새로운 물건을 만들었는데 높은 곳에서 일하는 자들을 위한 충격 완화 작업복이었다.
충격에 강한 데빌베어 가죽을 겉에 두고 안감으로 다이어울프의 가죽을 사용하니 떨어져서 오는 충격을 일차적으로 데빌베어 겉감이 받아주고 나머지 충격을 안 감인 다이어울프 가죽이 분산시켜 몸으로 전해지는 충격 대부분을 없애 주는 작업복이 완성되었다.
가장 먼저 실험을 해본 발렌과 그 수하들은 5M 높이의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그 충격을 완벽하게 흡수하여주는 작업복의 효능에 놀라워할 뿐이었다.
“마법도아닌데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충격이 없는 옷이라…. 왜 지금까지 우린 이런 간단한 것도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발렌의 감탄, 그녀는 밀크를 거의 신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보며 존경에 마지않는 눈길을 보내왔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 밀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 일이 거의 없잖아. 끽해야 건물이나 성벽 작업을 하는 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일하겠지만, 그들은 모두 천민이나 일반인이 아니겠어? 그들의 목숨이야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이런 물건으로 보호해줄 생각 따위 전혀 없겠지.”
“하,하지만…. 이 물건이 있으면 지금까지 높은 곳에서 작업하다가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지간한 물건으로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 충격을 받아낼 수가 없어. 지금 제작한 것은 데빌베어의 가죽과 다이어울프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작업복이야. 재룟값만 생각해도 이미 가격이 30실버는 넘어갈 거야. 작업하는 수많은 천민을 위해 그런 돈을 사용할 귀족이 과연 있을까?”
“….”
듣고 보니 그랬다. 첼슨 국왕이 성군은 아니어도 제법 민생을 잘 돌보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왕국의 90%를 차지하는 천민과 일반인 모두를 챙기지 못하였다.
말이 나온 김에 설명을 하자면 천민들은 노예보다는 나아도 그렇다고 대단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노예보다 아주 약간 나은 거리의 부랑자보다는 나은 삶을 사는 이들이었다.
첼슨 왕국은 부랑자가 10% 천민이 60% 일반 시민이 다시 28% 귀족과 왕족이 2%로 이루어져 있다. 왕국 입장에서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병균이나 다름없는 부랑자가 적다는 것만 보아도 현 첼슨 국왕이 나라를 잘 이끌어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부랑자는 삶의 의욕도 없이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남들에게 빌어먹고 살아가는 이른바 거지들이다. 여름만 되면 가장 먼저 전염병을 옮기고 다니는 이들이지만, 왕국의 백성 수를 집계하거나 징집을 할 때는 도움이 되기에 이른바 화살받이 인력이었다.
그보다는 조금 나은 천민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백성이며 세금을 걷는 왕국의 주 수입원이다. 천민이 천민인 이유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수입의 40%가 왕국의 세금으로 납부된다.
만약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여 재산을 탕진한다면 부랑자로 낙은 찍혀 강제 징집을 당할 수도 있기에 그들은 뭐가 되었던 일을 찾아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가장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일은 자경단이나 병사였다.
월급이 생각보다 높으며 기본적으로 훈련도 받기에 막상 전쟁이 터지면 강제 징집되는 이들보다 오히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차라리 자경단이나 병사 일에 몸을 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다만 몸이 건강한 16세부터 45세의 남성만 한정된 일거리였기에몸이 약하고 이보다 나이가 많거나 여자의 경우는 다른 일을 알아보아야 했다.
다음으로 일반 시민은 세금을 20%만 받는다. 이들로 말할 것 같으면 왕족의 사생아, 또는 귀족이지만 방계이거나 귀족가에서 일을 하는 이들의 가족, 또는 상단을 경영하는 이의 가족이나, 자수성가하여 귀족보다는 못해도 제법 부를 쌓은 이들이다.
적은 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20%만 책정해도 왕국에는 충분한 수입이 들어온다. 특히나 상단을 경영하고 있는 자들은 수입의 20%가 아닌 수입의 10%를 부여하는 특혜를 주어 상업을 더욱 활성화했다.
다음으로는 귀족이다. 여기에 속한 이들은 귀족과 그 귀족의가족들이다. 세금을 5%만 낸다. 받는 녹봉이 크지 않기에 이들이 내는 세금 또한 적은 것이다. 다만 뒤에서 끌어모으는 어두운 돈들이 있어 귀족들은 누구나 다 떵떵거리고 잘 사는 편이었다.
이렇게 살펴본바 아래쪽에 있는 자들은 위에 있는 자들이 등골까지 빼 먹은 먹이사슬 피라미드와도 같은 형상이 그려지지만, 어디를 가도 이런현상은 틀에 박혀 있었다.
그저 세금이 어디가 좀 더 적고 많고의 차이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가장 아래쪽에서 40%의 세금을 쪽쪽 빨아 먹히는 천민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쁘지 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전혀 없었다.
말했던 대로 그 위에 있는 시민과 귀족들은 돈이 넘쳐나기에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더욱 편리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니 좀 더 편해지고 싶으면 돈을 쓰지 굳이 몸 힘들게 뭘 개발하거나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높은 곳에 뭔가 작업을 해야 하면 이 작업복을 꼭 착용하도록 해. 아마 6M까지는 추락할 때 충격을 완화해 줄 거야. 그 이상에서 떨어지면 몸 어딘가 하나가 상하겠지만.”
“죽지 않는 게 어딘가요. 정말이지이 작업복은 대단한 물건이에요. 혹시 검이나 활도 막아내는 거 아닙니까?”
“데빌베어의 가죽이 질기긴 하지만, 찌르거나 베어내는 공격에는 좀 약하지. 그래도 그냥 옷보다는 튼튼해서 한 번 정도는 목숨을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 주먹이나 뭉툭한투척물이 주는 충격은 확실히 줄여줄 수 있을 테고.”
“아…. 그렇군요.”
수긍하며 다시 작업복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발렌, 그녀는 부하들이 안전 검사를 끝내고 난 뒤 발렌 역시 작업복을 입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보았다.
쿵!
땅에 몸으로 떨어졌는데 충격이 거의 없었다. 다만 다리부터 떨어지면 충격이 완화되지 않아 위험하니 머리를 가죽 모자로 보호하며 옆이나 뒤로 착지해야.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공중에서 중심을 잡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이러한 작업복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나으리라 생각되었다. 발렌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경외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뒤로 홀스타우로스 마을은 사다리와 작업복의 힘으로 탄력을 받아 건물의 질이 한층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처음으로 2층 구조의 집에 도전하였고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으며 내구력도 단단한 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3층까지는 아직 무리였지만, 그래도 소득이 있었던지라 이쯤에서 만족하고 앞으로 늘어날 부족의 인원을 감당하기 위해 건물을 2층 구조로 짖는 것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 부족 마을에는 전에 약속한대로 손님들이 찾아왔다. 크리스티나와 그녀의 등에 탄 윈디아가 바로 그 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