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81화, 전염병의 전조 (81/177)



〈 81화 〉81화, 전염병의 전조

본격적인 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이 되었다.  시기는 특히 인간에게 위험한 시기였으니 높아진온도 때문에 식품의 부패가 빨리 일어남에 따라 각종 구토병을 비롯한 역병들이 더위와 함께 기승을 부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인족 중에서도 이 여름에 특히나 약세를 보이는 종족들이 있다. 인간들과 같은 이유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부족의 인원이  이상 죽어 나가기에 특히 조심해야 하는 시기다.

다만 홀스타우로스의 경우는 예외였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더위에 강한 부족으로 식료품 관리 또한 철저하기에 질병에 대한 대책도 탁월했다.

추위에 약하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그거야 지금은 난방용품을 인간들과 거래 할 수 있기에  문제가 없었다.

인간들과 교류가 없었을 때도 생활반경 줄이기, 그러니까 족장의 집을 기준으로 가까운 위치에  명씩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서로의 온도로 집 기온을 높여 생존하는 법으로도 그들은 쉽게 겨울을 나곤 했다.

이 시기엔 밀크의 집에 뷰렌과 벨, 그리고 유크의 가족들이 몰려와 함께 살곤 했으니 겨울만 되면 집이 시끌시끌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곤 하였다.

뭐, 아직 오지도 않은 겨울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산적해 있는  무더위가 시작된여름의 일이 더 문제이니 겨울의 일은 겨울이 오고 나서 다루도록 하고 지금은 여름의 밀크 부족의 생활을 보도록 하자.

홀스타우로스가 더위에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족이라는 큰 틀에서 한 이야기일 뿐 하나하나 살펴보면 개중에는 특별히 더위에 약함을 보이는 경우가 있긴 했다.

몸은 더위에 강할지라도 정신적인 부분에서 더위를 이기지 못하여 몸이  처지고 힘이 없어 빌빌거리는 자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밀크였다.

“하이고…. 죽겠다….”

족장의 자리에 거의 눕다시피 등을 기대어 옆에서 걱정스럽게 간호하는 밀리와 뷰렌의 부채질을 받는 밀크

땀이 비 오듯이 주룩주룩 흐르고 온몸에 기운이 없는 듯  처져 있었으니 더위를 타고 있는 것이 확실하였다.

대장간에서 일을 하면서 더위에 익숙해져 있던 그였지만, 여름의 더위는 그것을 상회하는 찌는 듯한 더위라 버티기 힘들었다.

대장간에서 일하고 나온 뒤에 노곤해진 몸을 잠자리에 누이며 편안하게 자고 일어나야 다음 날의 활력이 되돌아오는데 더위 때문에 잠도 설쳐서 더욱이 힘이 솟아나지 않았다.

내부에서 루가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더위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여름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는 밀크가 축 처져 있을 확률이 높았다.

건강하고 튼튼한 홀스타우로스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밀크의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 지난 생에서도 더위에는 무던히 욕을 보던 그였던 지라 그의 몸은 정신을 따라 축 처져 있었다.

‘치맥 먹고 싶다….’

그가 더위를 이기는 법은 다른 것이 없었다. 작은 단칸방에 선풍기 하나 틀어 두고 시원한 맥주에  다리 하나 뜯으면서 신선놀음이나 하면 더위는 자연스럽게 물러가곤 했다.

그러나이곳에는 선풍기는 고사하고 그 흔한 통닭을 만들 수조차 없었으니 제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문명에서 왔다고 해도 그놈의 지식이 모자라 튀김가루의 튀에도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나마 인간들에게 입수한 검은색의 흑맥주를 시원한 곳에 두었다가 마셔보긴 했지만, 냉장기술로 식히는 시원함과는 천지 차이일 수밖에 없고 한국 맥주의 탄산에 길든 그에게는 무던히도 자극이 약할뿐더러 보리 찌꺼기가 씹히지 않나 그 맛도 쓰디쓴 것이 그 옛날 탕약이 아닌지 의심되는 맛이었다.

축 처진 밀크 덕분에 부족 내부에서 대소사를 진행하는 일도 차질이 있을 뻔하였으나 더위가 조금 가신 밤에는 그도 어느 정도 힘을 되찾아 그때를 기점으로 일을 해결하고 아침나절에는 휴양하는 등 여간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대장간에서 일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장간의 열기 그리고 밖의 열기가 시너지를 더하여 엄청난 더위를 이기지 못해서 한 번은 그가 혼절까지 한 일도 있었다.

결국, 그는 한동안 대장간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를 따르는 부족원 모두가 그의 건강을 걱정하여 역정을 내니 아무리 그라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족장님  퍼슨입니다. 아…. 이렇게 건강이 안 좋으시다니 제가 좀 더 일찍 찾아 뵈어야 했는데….”

어느 날 오랜만에 찾아온 퍼슨은 밀크가 더위에 헥헥 거리면서  아내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는 마치 그가 금방이라도 죽을 거 같은 뉘앙스로 말을 이었고 그 말에 기분이 상한 밀크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니…. 더위 좀 먹은 거 가지고 너무 부산떠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오랜만에 보는군. 무슨 일로 여길 다 찾아온 거야?”

그의 말에 퍼슨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대답했다.

“다름이 아니라 족장님께서 더위 때문에 고생을 하신다는 발렌 행수의 말을 듣고 이렇게 왔습니다. 인간 마법사를 수소문하여 얼음을 공수해 왔으니 이걸 받으시고 더위를 물리치셨으면 합니다.”

“하하…. 정말 고맙군, 팔 하나 꼼짝하기 힘들긴 하지만, 기온이  떨어진 밤에는 움직일 수 있으니 그때 확인해 볼게.”

“예. 그리고 하나 더 알려드릴 일이 있습니다.”

“응?”

“주변에 사람들을  물려 주시겠습니까? 중요한 일입니다.”

“흠….”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밀리와 뷰렌, 그리고 그를 호위하는 벨, 린다, 그리고 유크다. 이 중 벨과 유크는 밖에 나가 있고 린다는 안에 있으니 방 안에 있는 이들 중에 세 명을 물려달라는 뜻이었다. 그의 말에 밀크는 괜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적어도 이 중에는 감히 족장의 집에서 나온 일을 주변에 떠들 인원은 없어. 그냥 말해도 좋아.”

“예. 그렇다면 조금 가까이 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말에 린다가조금 움찔하긴 했지만, 밀크와 자주 알고 지내던 사이이면 지금까지 전혀 해를 가하지 않은 인물이기에 그녀 또한 가까이 이동하여 안전을 책임질 뿐 그의 움직임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다가와 공손하게 앉은 그는 밀크의 가까운 거리에서 입을 열고 조용히 말을 시작하였다.

“족장님이 무더위로 고생을 하시는 것처럼 첼슨 왕국도 지금 더위 때문에 고생을 하는 중입니다.”

“더위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고? 다들 나처럼 더위라도 타는 거야?”

“아닙니다. 이 무더위의 날씨에 식량이 상하고 그런 상한 식량을 섭취한 이들이 식중독에 걸려 여기저기에 구토하더니 그러한 것을 빠르게 처리하지 못해 왕국 이곳저곳에서 전염병이 돌아 수많은 인명이 쓸려나가는 중입니다.”

“헉!”

식중독과 전염병,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같이 기승을 부리는 아주 독한 녀석들이다. 특히나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이 세계에서는 재앙 중의 초 재앙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대신 마법이 있어 제때 치료를 받으면 그 확산을 막고 병을 잡아낼  있으나 식량이 상하여 식중독이 일어나는 일은 나라님도 막지 못하고 또 식중독으로 인한 구토, 설사 등을 막지 못하면 전염병이 다시 창궐하니 이는 말 그대로 끊을  없는 도돌이표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전염병이라는 놈이 다시 잘 먹고 잘 생활하면 병마가 잡히기에 식량이 상하지 않는 가을과 겨울로 넘어가게 되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곤 한다.

그러나 그 기간에 죽어 나가는 인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으며 이때를 기점으로는 비단 첼슨 왕국뿐 아니라 다른 왕국과 제국도  고통을 당하는 시기라 할  있었다.

“이미 저희 상단도 무던히 애를 보는 중입니다. 하여 이번에는 투창과 데빌베어의 가죽을 모두 제하고 그만큼 홀스타우로스의 젖을 받아갈 수 있으면 합니다.”

“전염병은 잘 먹고 잘 자면 자연 치유되곤 하지.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으니 약초라도 찾아보는 게 어때? 식중독 때문에 속이 비어버리고 상한 이들이 홀스타우로스의 젖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심한 병에 걸릴지 좀 걱정이라 말이야.”

“예! 그 점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운을 북돋아 주고 상한 속을 다스려줄 약초는 저희가 백방으로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하나 의문이 있는데.”

“말씀하시지요.”

“그걸 나라도 아닌 일개 상단이 한다고? 좀 이상하지 않아? 첼슨 왕국은  하고 있대?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 빨고 있나?”

어이가 없다는 투의 밀크의 말, 그는 대화를 나누는 중에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것인지 허리를 세우고 의자에앉아 있었다.

“하하하…. 왕국 제일의 상단이지 않습니까? 벌써 첼슨 전하의 명으로 저희가 구호 대책을 일임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정리되고 나라가 안정되면 곱절로 보상을 하겠다 하지만, 그거야 일이 해결돼봐야  일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왕국이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경우는 너무도 많아서 이번에도 보상을 받을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 많이 가지고 있는 만큼 많이 베풀어야 큰 탈이 없는 법이니 상단주님께서는 흔쾌히 나서서 백선들을 구호하고 계십니다.”

“거 참…. 알았어. 물론 동족은 아니지만, 생명이 그리 허망하게 죽어간다는데 도와줘야지.   투창과 데빌베어의 가죽을 제외하고 그만큼 우리 여인들의 젖을 더 넣은  그  배를 줄 테니  대금은 전염병 사태가 끝난 뒤에 천천히 받도록 하지.”

“아아! 족장님 정말이지 감사드립니다. 첼슨왕국 백성들을 대신하여 족장님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 말하며 넙죽 절을 하는 퍼슨이었다. 일이 결정되자 그는 밀크에게 읍하여 인사를 한  족장의 방을 빠져나갔다. 그날 그는 마차가 터질 정도로 많은 양의 홀스타우로스의 젖을 받아 왕국으로 돌아갔다.

밀크는 왕국의 일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에 있는 밀리, 그리고 뷰렌과 린다를 불러 가까이 오게 한 뒤 부족 내부의 일을  더 소상히 물었다.

“우리 부족은 어때? 가까운 곳에 렘톤 마을이 있으니 전염병이 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을 할 수 없잖아?”

“예 족장님. 말씀하신 바는 잘 알겠지만, 저희는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인간이 걸리는 전염병 따위에 저희가 걸릴 리가 없어요~”

화사하게 웃으며 야무지게 대답하는 뷰렌, 그녀는 밀리와 함께 부족의 이인자가 되어 열심히 그리고 살뜰히 부족을 살피고 있었다.

부족한 것은 바로 밀크에게 알리고 고민이 있는 이는 바로 구하여 고민이 없도록 만드는 일이 그녀의 일이며 다소 경박한 면은 있으나 맡은 바 일에는 성실한 그녀였다.

이미 요즈음 발렌과 대화를 통하여 렌톤 마을에는 전염병이 돌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있었으며, 홀스타우로스는 인간이 걸리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고했다.

 말을 들은 밀크는 그녀가 너무 자신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혹시 모르니 더 면밀하게부족원들을 살피라고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바로 나가서 다시 한번 우리 부족원들을 살피고 올게요-”

밀크가 심각하게 말하니 그녀도 새삼 다시 걱정되는지 오늘 아침에 살피고 왔지만, 굳이 몸을 고생하여 다시 살피고 오겠다고 했다.

뷰렌이 나가자 그 자리를 차지한 린다, 그는 부채를 들고 그를 간호하며 전사 중에도 밀크처럼 고통을 호소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왔다.

“역시 더운 여름에도 훈련을 받다 보니 입맛들이 없는지 소식하고 더위에 유독 민감한 이들도 있습니다. 하여 훈련도 훈련이지만 쉬는 시간을  더 늘리고자 하니 허락을 부탁합니다. 족장님.”

“당연하지. 전사들이 쓰러지면 누가 우리를 지켜주겠어. 린다는 걱정하지 말고 일에 차질이 없을 정도로만 전사들을 굴리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시간을 줘서 푹 쉴 수 있도록 해줘. 내가 괜히 전사들을 많이 뽑은 게 아니야. 돌아가면서 쉴 시간을 주고 훈련을 할 때도 더위를 피해 숲에서 하거나 되도록 시원한 곳에서 행동할 수 있도록 지휘체계를 잡아 줘.”

밀크의 부족의 전사들은 근 칠백 명에 달한다. 그 절반의 수만 있어도 충분히 마을을 지킬  있으니 나머지는 휴식을 취해도 무방한 것이다.

처음에는 전사들을 늘리는 밀크에게 우려의 눈길이 많이 보내졌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되어 돌아왔다. 이제 전사들은 힘든 여름을 고단하게 보내지 않게  것이다.

린다 또 한 밀크의 말에 크게 감동하여 읍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밀크와 단둘이 남게 된 밀리는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떨어질 듯한 얼굴로 그를 다정하게 간호했다.

“아…. 우리 아들 이렇게 아파서 어떻게 해….”

“아이…. 더위 좀 타는 거 가지고 엄마까지 왜 그래-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더위를 타기에 몸은 힘들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밀리의 곁에서 어리광을 부릴 수 있어서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러나 더위가 몰고 온 문제는 밀크의 부족 마을에도 결국 그 화를 끼치게 되니 홀스타우로스들을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바로 지척에 있는인간에게 화를 끼친 것이었다.

“이런….”

얼마  흰색의 묽은 토사물을 뱉어낸 발렌이 그 자리에 앓아누웠다는 소식이 밀크의 귀에 들려왔다. 다름 아닌 전염병이 밀크의 부족 마을에서 같이 사는 에스타 상단 인간들에게 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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