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80화, 정리.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녀석 덕분에 무게 중심이 흐트러진 다른 녀석은 버터 아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곤두박질치듯 앞으로 쓰러졌다.
그 바람에 그들이 들고 도주하던 아내가 땅을 구르며 몸이 상한 듯 보였지만, 홀스타우로스들은 워낙 몸이 단단하니 크게 상하지는 않고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판 녀석들과 거리를 벌리며 멀리 떨어졌다.
비록 기습으로 인하여 잡힌 그녀였지만, 사지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상태라면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 다른 판들도 낭패한 얼굴이 되어 그냥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는 일만 생각하며 등을 돌렸다.
밀크가 다시 되돌아온 궁니르를 손에 잡았을 때는 포위되어 자리를 떠나지 못한 판 일곱 정도만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혼비백산 도망간 뒤였다. 족장이라는 크로울리도 별반 다를 바 없이 이미 예전에 내뺀 뒤였다.
흉흉한 얼굴로 양손에 각각 불, 또는 얼음이나 번개 마법을 끌어 올린 판들은 다가오면 그것을 던질 기세로 주변에 있는 자들을 협박하였고 창으로 동족의 목숨을 앗아간 밀크를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지?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몰라서 묻는 거냐! 우리 동족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여놓고도 그런 말을 하다니 이 잔혹한 놈!”
“그러는 너희는 우리 동족을 납치하려고 하지 않았나! 그것도 족장의 아내를 탐하려고 했는데 그걸 그대로 두고 볼 줄 알았어! 자기들 잘못은 잘못이 아니고 내가 한 잘못만 잘못이라고 화를 내다니 내가 너희들 판 종족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 보아하니 사건 사고만 몰고 오는 쓸데없는 종족이라는 건 잘 알겠더라. 마법을 지우고 순순히 굴어. 작당 모의를 한 녀석들이 아니라면 죄가없으니 위도레빗을 다스리는 분들이 마을 밖까지 너희를 보내줄 것이다.”
이미 목숨 하나를 죽인 밀크는 이 이후로 더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다. 완만한 처리를 위해 저들을 잠시 달래보지만, 그런다고 들어 먹을 인사들이었으면 아예 이런 사달을 만들지 않았음이라.
눈에 핏발이 선 판들은 밀크의 말에 괴성을 지르며 마법을 날렸다. 엘프들이 바로 바람의 장벽을 만들어 마법을 상쇄하긴 했지만, 마법적으로 능통한 것은 엘프보다 판이 더 높았으니 놈들의 마법이 거의 난사되듯 하며 주변을 마구잡이로 폭격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 밀크는 오른쪽 팔에 화염 마법을 직격으로 맞았다. 궁니르를 들고 있어 신체 능력이 향상되었기에 약간 그을린 상처가 생기는 것으로 끝났지만, 아릿한 통증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놈들이!”
상황을 보고 있던 도칸은 밀크가 화염 마법에 직격당하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나갔다. 그리고는 무식한 들소처럼 뿔을 세우고 나아가니 깜짝 놀란 판이 그를 향해 마법을 퍼부었지만, 그의 뿔은 그 마법을 그야말로 반으로 갈라버리며 탄환과 같이 달려갔다.
퍼억!
“꺼어!!!”
판의 복부에 도칸의 크고 거대한 뿔이 박혔다. 그대로 놈의 몸을 들어 올리며 콧김을 힘차게 내뿜은 그는 미련 없이 고개를 흔들어 죽어버린 판의 시체를 내동댕이쳐버린다.
그와 동시에 밀크의 옆에서 튀어나오는 여성이 있었으니 금발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아름다운 켄타우로스 크리스티나였다.
그녀의 등에 올라타 있는 친구 윈디아는 바람의 정령의 도움을 받으며 중심을 잡고 일어서서 화살을 날렸고 막 마법을 던지려는 판 한 명은 그 화살에 당하여 절명해 버렸다.
윈디아를 등에 태우고 그야말로 바람과 같이 달려나간 크리스티나는 말발굽으로 판 하나를 찍어 죽임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는 장창으로 바로 옆자리에 있는 다른 판 하나를 찔러 죽임으로써 순식간에 네 명의 판이 죽어 나자빠졌다.
낭패한 표정으로 계속 마법을 사용하는 판들, 그러나 놈들은 밀크가 창을 내던지는 순간 운명이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이고 와라.”
그는 의지를 가진 궁니르에게 적으로 인식한 것을 죽이라명하였고 궁니르는 그것을 여과 없이 해내었다.
날아간 궁니르는 먼저 가까운 곳에 있는 판의 복부를 뚫고 나와 놈을 절명 시킴과 동시에 바로 뒤에있던 판이 자신을 인식하기도 전에 목을 꿰뚫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자신을 발견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법을 난사하는 녀석의 마법을 요리조리 피하더니 끝내 놈의 심장까지 뚫어내고 나서야 그 움직임을 멈추고는 천천히 날아 밀크에게 되돌아 왔다.
마지막에 심장을 꿰뚫린 자는 크로울리였다. 그는 구멍이 뚫린 가슴을 손으로 감싸며 허망한 표정으로 쓰러졌다.
사교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지만, 모두다, 판 녀석들이 벌인 일임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혼란은 덜하였고 정리 또한 빠르게 진행되었다.
놈들의 마수에서 풀려나긴 했지만, 상황이 끝나자 긴장이 풀려 쓰러진 버터의 아내 타냐에게 달려간 밀크는 그녀의 몸에 별 이상이 없음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뒤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버터를 맞이했다.
“타냐!”
“많이 놀라긴 했지만, 몸에 지장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족장님.”
“밀크 족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한 무예였습니다!”
“아니…. 뭐….”
홀스타우로스 남자는 유약하고 힘이 없기로 소문난 이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몸을 지키기 위한 작은 호신술 정도는 익힌다고 하지만, 이처럼 적들을 사정없이 도륙할 정도의 힘은 그 누구도 없었다.
명작 무기라는 기물의 힘을 빌리긴 하였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누구도 밀크의 무예를 깎아내리지 못하리라. 무려 네 명이나 되는 판이 그에게 목숨을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장내 정리가 끝난 도칸과 트루칸을 비롯하여 윈디아와 크리스티나도 밀크에게 다가와 그의 무예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족장님! 정말 대단했어요. 창을 던져서 세 명의 목숨을 거두다니 난생 그런 장면은 처음 봐요!”
“이야! 정말 대단하군! 무기도 무기지만 그걸 다루는 자네 솜씨도 보통이 아니니 말이야.”
“형님 말씀대로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밀크님.”
“저런! 족장님 팔에 물집이!”
방금 화염 마법에 당한 상처 때문에생긴 그을음, 홀스타우로스의 마법 저항력이 좋아서 다행이었지, 사람이었으면 팔에 물집이 잡히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말 그대로 타들어 갔을 것이다.
윈디아는 바로 밀크의 오른쪽 팔에 붙어서 마법을 사용해 그의 상처를 돌보았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말끔하지는 않아도 물집 대부분이사라졌으며 통증도 완화 되었다.
“약초와 붕대를 가져다. 주세요. 마법으로 환부를 치료하고 통증은 줄였지만, 마법에 당한 화상의 기운은 바로 다스리지 않으면 화기가 올라와서 덧 나기 일쑤입니다.”
“아, 알았어요!”
그 말에 라파니가 휘하 위도레빗들을 데리고 창고로 나아갔다. 벨과 유크는 마치 자신들이 다친 양 밀크의 옆으로 와서 눈물 고인 눈으로 그에게 죄를 청하는데 밀크는 피식 웃으면서 두 여성의 머리에 작게 꿀밤을 주는 것으로 벌을 충당하였다.
“사교장에서 그런 흉수가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그리고 내가 겁 없이 나서다가 당한 것이니 내 잘못이지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유크와 벨을 달래주자 라타니가 화상에 좋은 약초와 붕대를 가져와 그의 팔에 둘러 주었다.
시원함이 느껴짐과 종시에 잠시 쓰라리고 아픈 통증이 올라왔지만. 약초가 화기를 누르는 와중에 생기는 통증이었던지 잠시 후 완화되었다.
팔을 휭휭 휘둘러도 그다지 아프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밀크 그리고 그를 향하여 라파니와 필리아를 비롯한 위도레빗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판을 잔치에 부른 저희의 잘못이 너무 큽니다. 하지만 그들과 친하게 지내는 다른 부족들이 있기에 그들만 쏙 빼고 불렀다가는 다른 부족과의 관계가 서먹해질까 두려워 제가 불러들였어요.”
“그들이 누군데요?”
“여기 계시는 파브 족장과 율마 족장입니다. 저희와 같은 위도레빗 종족이시죠. 이분들도 족장님께 사과를 전하고 싶다 하십니다.”
그리 말하는 라파니의 뒤로 파브 그리고 율마 족장이 서 있었다. 두 여성 모두 밀크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함을 전해 왔다.
“정말 미안합니다. 족장님…. 평소 크로울리가 이끄는 판 종족과 친하게 지내던 파브라고 합니다. 그들은 본시 저희와 가깝고 살가워서 설마 이렇게 잔인하고 천지 분간 못 하는 성격인 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정말 무섭군요.”
“율마입니다. 저희도 정말 죄송함을 감출 길이 없네요. 저놈들이 설마 이런 무모한 행동을 할 줄이야…. 달콤한 말로 홀리고 그들에게 푹 빠져서 항상 쾌활하고 멋있는 청년들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제가 무엇보다도 멍청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한 말씀 전합니다.”
그녀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확실히 여성에게 있어서 판 놈들은 강력한 페로몬을 발산이라도 하는지 율마, 그리고 파브 족장의 얼굴에는 정말 몰랐다는 느낌과 미안함이 가득하였다.
하긴 위도레빗은 여자만 태어나고 남자가 없는 종족이 아닌가, 그에 반대되는 남자만 있는 종족인 판이 주변에 있으니 관심이 없을 수가 있으랴.
물론 위도레빗은 그 유전자가 강해서 판조차도 이겨버리니 판들의 입장에서는 그녀들과 성관계를 해봐야 자손을 남길 수 없어 그다지 바라는 상대는 아닐지라도 여성이니 이용할 수 있겠다 싶어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그렇게 판들의 만행으로 그들은 이곳에 모여있는 그 어떠한 종족에게도 배척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 세상에는 인간도 있고 아인들도 많이 있다. 그들은 또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들에게 손을 뻗어서 이 같은 만행을 계속 저지르리라.
“왜 저런 쓸모없는 종족이 계속 살아남아 있는 겁니까? 이 정도면 아인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사라질 법도 합니다만?”
밀크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이 생일의 주인공인 제사장 카린이었다.
“비록 백해무익한 자들이지만, 그자들도 세상을 이루는 한 종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다른 아인 남성분들이 많아 저들이 힘을 쓰지 못했을 뿐, 만약 그들만 있는 자리에서 여성이 있다면 여성을 홀리는 그들의 페로몬과 말솜씨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자신의 씨를 여성에게 심어 자손을 남기고 살아가는 것이 저들의 운명이지요. 어찌 보면 가엽기도 하지만, 무도한 자들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으음….”
카린은 중립적인 견해를 밝혔지만, 밀크는 그들에게 도저히 좋은 인상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만나게 되면 적대하지는 않더라도 절대 부족 마을에 들이지 않으리라, 혹시 그들이 적대한다면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씨를 말려 버리겠다 다짐을 하였다.
그렇게 소동이 끝나고 하나둘 부족들이 떠나갔다. 그리고 밀크 또한 물의 날이 되어서 돌아가는길에 올랐다.
크리스티나와 윈디아가 말했던 크로울리들의 만행이 바로 위에서 말했던 사건이다. 그들 때문에 사교장도 거의 무너지고 불의 날에는 밀크가 상처 때문에 두문불출하는 바람에 그녀들이 밀크와 대화를 더 나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여성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전달한 밀크, 그는 아쉬워하는 그녀들에게 자신의 마을로 놀러 오라며 초대를 해주었다.
“올펀 부족장님께 물어보면 저희 부족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겁니다. 크리스티나도 윈디아도 시간이 나면 한 번씩 놀러 오세요.”
“저, 정말이죠?! 약속이에요 밀크님!”
“물론입니다.”
“저는 내일부터라도 당장 찾아갈 수 있어요. 어차피 부족 내에서 할 일이 없는 공주님이나 마찬가지인걸요~ 밀크님 부족과 친분을 다지고 온다 하면 아버님이 흔쾌히 허락해 주실 거예요.”
선수를 쳐버리는 윈디아의 모습에 크리스티나는 친한 친구이지만 진짜 얄밉다는 표정을 하고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니?”
“흥! 아무것도 아니거든!”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윈디아의 천진난만해 보이는 얼굴이 크리스티나의 속을 더 긁어 놓았다. 속에 구렁이 열 마리는 들어 있을 거야. 라고 중얼거리는 크리스티나의 말은 그 누구도 듣지 못하였다.
그녀들이 배웅을 끝내자 이번에는 미노타우로스 도칸과 그 아우인 트루칸이 거대한 몸을 이끌고 나와 그에게 인사했다.
“이거 형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죽이 잘 맞은 두 사람은 밀크를 중간에 두고 나이가 많은 도칸이 큰형, 나이가 밀크보다 많긴 하지만 직급에서 달리는 트루칸이 겸허하게 막내를 맡으며 밀크를 둘째로 초빙하여 네 사람이 의형제를 맺었다. 참고로 남은 한 사람인 셋째는 버터였다.
“하하~ 도칸 형, 형도 시간 남으면 언제든지 놀러 오라고 환영할 테니까.”
밀크가 그에게 인사를 끝내니 버터 또한 도칸과 트루칸의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밀크에게 다가가 손을 마주 잡고 인사했다.
“전 꼭 찾아뵐게요. 밀크 형. 그저께는 정말 감사했어요. 제 아내도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무리를 할까 봐 그냥 있으라고 하고 제가 대신 나왔답니다.”
“무리?”
“아…. 그게 아내가 어제 일로 많이 놀랐거든요.”
“하…. 썩을 놈들 진짜…. 마지막 순간까지 성욕과 집념으로 타냐를 납치하려 하다니 판 놈들은 정말 상종을 못 하겠군.”
도칸이 길길이 날뛰었다. 트루칸과 버터가 그를 애써 말리자 씩씩거리던 도칸은 밀크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했다.
“내가 좋은 소재를 가지고 찾아갈 테니까 나도 좋은 무기 하나 만들어 줄래? 네 궁니르를 보니까 샘이라서 못 버티겠다. 하하하”
아무래도 그 신기에 가까운 능력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가 보다. 그러나 밀크는 한동안 명작을 만들지 못하게 된 몸, 그래도 이리 부탁을 해오는 형의 모습에 밀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온 힘을 다해 만들어 줄 테니 꼭 찾아오라고.”
“그래 알았다!”
그렇게 밀크는 새로운 인연들과 인사를 하고는 헤어져 부족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떠나는 그의 등을 보는 모두가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하였다.
그는 거대하다. 라고.